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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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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DUMMY

9화




멍하니 견신을 보던 주견심이 이내 화들짝 놀라며 대꾸했다.


“아···! 크흠···! 여러 스승님, 그··· 정왕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만 세세히 짚어 볼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경연에서 모두 답을 아는, 쉬운 주제만 논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해서는 공부가 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제대로 된 공부가 되지 않겠습니까? 무릇 공부란 모르는 것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고 하였으니.”


그는 내심 답을 하면서도 이현과 스승들을 흘겨보았다. 갑자기 순장이라니? 경연장에서 순장처럼 민감한 주제를 다룰 생각이었다면 어제, 최소한 오늘 아침에라도 귀띔을 줬어야 할 게 아닌가 말이다.


‘이 인사들이···!’


어제 찾아가서 충효와 관련된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해달라고 말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장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충효와 관련된 주제들로 이루어 지기는 했다. 문제는 주제들이 한참 어린 형제들도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쉬운 것들이라는 데 있었다. 주견신이 답변할 수 없는 수준의 주제가 나와야 주견신을 혼내 줄 텐데 계속 쉬운 주제들만 다뤄서 답답해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순장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른 것도 아니고 그 순장으로 돌진한다? 더군다나 미치지 않고야 지금 시점에, 부황의 병이 날로 악화 중인 이 시기에 불충불효하게 순장을 논한다? 여차하면 괘씸죄로 몰리기 십상이다.


‘눈치가 이리 없진 않으셨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현과 스승들은 학문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잔뼈가 굵은 이들. 그런 이치를 모를 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는 어떤 의도가 깔린 주제 선택이라는 건데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황자들이 있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그리고 주견신도 문제다. 언제 저리 언변이 늘었단 말인가? 쟁기 이야기는 또 뭐고?


아무튼, 귀띔도 없이 순장을 꺼낸 것과 관련 스승들에게 한소리는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가 어찌 됐든 주견신과 한참 어린 황자들이 보는 데서, 그것도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난감한 주제를 꺼낸 것은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그처럼 주견심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그의 반박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않았기에 이현이 냉큼 환영했다.


“오오— 그렇지요, 아는 부분만 논하다 보면 모르는 부분을 등한시하게 되기 마련이지요.”


그리고 그런 주견심보다 더 큰 혼란 속에 빠진 사람이 바로 이현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개중 가장 어처구니가 없는 건, 오늘 경연에서 순장을 다뤄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바로 저 주견신이라는 점이었다.


‘이이가 대체 지금 뭘 하자는 건가?’


자기가 요청하고서는 환영은커녕 타박하고 있으니 이해할 수도, 어처구니도 없었다.




#




이틀 전, 문연각(文淵閣).

문연각은 본래 황궁 장서고인 여섯 개 내각(內閣) 중 한 곳, 수장은 정5품 대학사. 전시를 뛰어난 성적으로 급제한 문관, 한림원 출신 학사가 임명되고, 황제와 육부 등 조정 사이에서 국정 조정 및 중재를 담당했다. 쉽게 말해서 승상 혹은 재상의 역할을 수행 중이라는 이야기. 이들 여섯 명의 대학사를 통틀어 전각대학사(殿閣大學士)로 불렀다.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과거의 내각은 문자 그대로 황궁 장서고였고 대학사는 명목상 황제의 자문이었다. 황제가 어떤 사안과 관련하여 경문, 사례 등을 요구하면 찾아서 보고하고 조언하는 자문.


개국 초기에는 좌우 승상 두 명이 국정 조정 및 중재를 담당했으나 태조가 재위 중 없앴다. 이유는 재상 정치의 폐단 철폐와 황권 강화였고.


탁발승에서 시작, 홍건적이 됐다가 군벌을 이루고 결국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주원장의 집착도 대단했다. 용상을 향한 집착이.


물론 주원장의 집착은 용상이 본인의 것이어야만 하는 데, 그 당시 신하들로부터 지키려는 데 기인한 집착은 아니었다. 사실 지킬 필요가 없었다. 원(元)을 몰아내고 천하를 평정하여 개국 태조에 오른 그의 위상과 실권은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므로.


주원장의 집착은 그가 세운 나라의 통치가 반드시 주 씨에 의해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그의 용상이 아닌 주 씨 소유의 용상에 집착한 것이다.


본인이 빈농 출신으로서 황제가 된 사람인지라 봉기에 의한 역성혁명의 가능성을 신뢰하여 경계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언제든 주 씨의 용상을 빼앗으려고 하는 인물과 세력이 나타날 거라며 믿었다.


그래서 그 이름도 유명한 금의위를 만들고 금의위를 휘둘러 조정과 지방의 관료들은 물론 지방의 군대까지 전방위로 감시했고 공포정치, 숙청통치, 철권통치를 시행했다.


또 권한 및 권력을 가진 신하가 반란을 모색하는 것을 우려해서 신권을 대폭 깎아내렸다. 그 방법은 권한의 회수. 모든 결심과 결재가 황제의 소유가 되도록 신하의 결정권을 회수한 것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가장 경계한 신하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승상이었고 그 회수의 대표적인 예시가 중서성 철폐, 좌승상 호유용 숙청이었다. 사건 진실을 떠나서 결과만 놓고 보면 좌승상 호유용을 숙청하고, 그의 죄를 명분으로 재상 정치의 폐단을 지적해서 중서성과 승상을 폐지했다.


그리하여 본래 승상의 판단과 결심을 거쳐서 황제에게 도달하던 모든 민정은 육부 상서가 황제에게, 군정도 병부상서와 오군도독부 각 도독이 황제에게 직보하는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과거 나라 모든 정보와 결정권을 한 몸에 가진 자는 황제와 승상 둘까지 총 셋. 그 세 명에서 황제 한 사람으로 축소되었기에 황권은 주원장의 의도대로 강력해졌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중서성과 승상이 사라지자 막상 가장 불편함을 느낀 사람은 황제였다. 중간에서 조정 통제하던 중서성과 승상이 사라지자 황제는 황제대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보고를 받고 고심해서 해답을 제시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고 신하는 신하대로 사무와 관련된 황제의 정확한 의중을 모르는 채, 정책을 준비한 뒤 보고하고 의중을 물은 뒤 수정해서 다시 보고해야 하는 등 효율성이 저하됐다.


그래서 인종과 선종 대에서부터 내각과 내각대학사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인종이었다. 인종은 덕이 깊고 애민 정신이 투철해서 국정 수행에 대한 의지는 컸으나, 태자 시절부터 갖은 병치레에 시달린 그가 온종일 국정을 살피고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명목상 황제의 자문 기관으로 돼있었던 내각을 조부와 아비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육부 상서와 비견될 만한 학식과 연륜을 가진 인물들을 대학사로 임명했고 상서 등 실직과 겸직하게 한 뒤 황제와 육부의 중간에서 국정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겼다. 조부인 태조가 역모를 발단으로 없애버린 중서성과 승상을 다시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라 꼼수를 부린 셈.


세월이 흐르고 환관 왕진이 주모자인 환관 정치와 동창 정치의 폐단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과정에서 군주로서의 권위도 제왕학을 배양할 시간 역시 잃어버린 주기진 대에 와서는 내각이 국정을 도맡아 처리하는 실정이었다.


문연각은 그러한 내각 중 한 곳이고, 당대 대학사는 이현이었다. 상소문 더미와 수많은 책, 서찰에 파묻힌 이현은 방금 막 문연각을 떠난 사람이 남기고 간 말에 대해서 생각 중이었다.


“경연을 함께 하시겠다라··· 충효를 중심으로 다루고··· 흠···”


그 사람은 태자 주견심, 조금 의아한 일이었다. 친왕들과 관계가 썩 좋지 않고 개선할 의지도 없으며 줄곧 엄격하게 서열을 가르듯 내외해 온 사람이 경연에 동생들을 불러달라니. 직접 부르면 될 일을 지금처럼 부탁하고 또 부른 과정도 동생들에게 밝힐 필요 없다고 하고.


뭔가 특별한 의도가 있어 보이는 행사처럼 느껴졌으나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하긴··· 경연에 특별한 의도는 무슨. 의도가 있은들. 그냥 경연이거늘.”


경연은 경연일 뿐, 무슨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시간도, 대단한 일을 벌일 시간도 아니니까. 역모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등 미친 주장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면.


게다가 주견심이 대단한 일을 벌일 사람도 아니고, 벌일 이유도 없고.


아무튼, 이는 뜻밖의 호재였다. 그러지 않아도 황실 스승들이 조만간 한 번 합동 경연을 열어보자며 뜻을 모은 상황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견심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처럼 주견심이 스스로 요청하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잘 됐군. 좋아하겠어.”




다음 날, 경연 하루 전.

탁자 위 놓인 일거리를 보고 질려버린 이현이 헛웃음을 짓는 그때.


“많군··· 이걸 언제··· 허허허··· 자— 그럼, 오늘도 시작해 볼까.”


복도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저벅저벅—


“······?”


그리고 이내 중서사인(中書舍人)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7품 중서사인은 전각대학사의 보좌다.


“대인!”

“무슨 일인가?”

“정왕 전하께서 납시었습니다.”

“누구···? 정왕 전하께서? 이런···!”


놀란 이현은 서둘러 옷매무새를 점검한 뒤 부리나케 달려 나갔고 뒤를 따르려던 종서사인이 탁자 위 놓인 관모를 발견하고는 얼른 주워들었다.


“대인! 관모를!”




잠시 후, 견신과 이현이 마주 앉았다.

이현은 하루가 멀다고 내각을 드나드는 형들 동생들과 달리 구룡무맥 전수 중지 결정이 난 뒤로 한 번도 내각을 찾은 적이 없는 견신의 방문에 당황했다. 전임자가 맡고 있을 당시 마지막으로 방문했었을 것. 장장 몇 년 만의 방문인지도 아리송했다.


물론 짚이는 구석은 있었다. 어제 경연 참석 통보가 갔으니 아무래도 그 일로 왔을 터였다.


“태자태사.”


자리에 앉은 뒤 줄곧 실실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던 주견신이 호명했을 때 그런 확신이 들었다. 대학사가 아닌 태자태사로 부른 것이 증거라고. 내각의 일이나 다른 일로 찾아온 게 아니라 경연 일로 찾아온 게 맞다고.


“예, 전하.”

“지금은 경연 중이 아니므로 내 이리 말하겠소.”

“예, 전하. 뜻대로 하시옵소서.”


원래 경연 중에는 스승과 제자 관계이니만큼 황자들도 경어를 썼다. 황제도 하오체를 썼고.


그렇게 무슨 말을 꺼내는지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이어지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명일 경연에서 순장을 다뤄주시오.”


철렁—


“저, 전하?”

“그리해주시오, 꼭.”




#




그렇게 부탁한 사람이 요청대로 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있으니, 대체 이게 무슨 경우고 영문이란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


아무튼 주견심이 잘 대답해 줬다. 무릇 경연에서 한쪽의 완벽한 승리나 패배는 지양해야 하는 법. 애초에 승패에 구애돼서는 아니 되는 법이다.


학문과 무술은 다르다. 학문은 우악스러운 무술과 다르게 단순히 승리와 패배로 가름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아니 되는, 아주 심오하고 또 오묘하며 고결한 도(道)요, 예(禮)다.


따라서 학문을 논할 적에 승패에 집착하여 승리만을 추구하게 되면 패도나 사도로 빠지고 사문난적(斯文亂賊)이 되는 법이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인정과 존중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겸손한 자는 세 살배기 아이에게도 배운다고 하셨으니 한 사람의 선비이자 군자로서 개인적인 감정과 이해할 수 없는 영문을 다 떠나서 순수하게 주견신의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학사 이현이 학문 외적인 이유로, 태자 주견심과 덕왕 주견린의 심기를 이유로 이전과 달리 어린 황자들에게 먼저 물으려고 했다는 것을, 그 행위가 학사로서 떳떳하지 않은 행위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오나, 정왕 전하의 말씀도 실로 일리가 있사옵니다. 소신 또한 전하의 말씀을 듣고 깨우치는 바가 있었사옵고 금과옥조로 삼아 이후 경연에 임하겠사옵니다. 정왕 전하, 근래 공부에 커다란 진전이 있으셨던 듯하옵니다. 소신, 충심으로 경하드리옵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민망하군요.”




견신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으나 그도 내심 이현의 인물됨을 인정했다. 스승 된 자가 제자들 앞에서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지위와 체면이 있기에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권위가 무너질 수 있으므로.


전생 중 논밭에서 또 전장에서 그 자신의 앎과 기술만이 유일한 진리요 공리라며 고집과 억지 피우는 이들을 얼마나 많이 봤던가. 특히 오래 종사한 자일수록, 자기 성취가 크고 높다며 자부하는 자일수록 그러한 경향을 보였다.


게다가 지금 적잖게 당황하기도, 어처구니없기도 할 거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현은 관직과 품계를 떠나 괜찮은 사람 같았다. 그래봐야 궁을 떠나면 엮일 일이 없는 인물이지만.


아무튼, 이현은 약속을 지켰다. 한참 어린 아우들에게 먼저 물으려 했던 행동은 계획과 다르지만, 순장을 다루겠다고 한 약속만큼은 지켰다.


어제 마지막에 이현이 이유를 물었으나 진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이, 인간적인 정(情) 같은 사사로운 감정이 이유니까. 이유를, 진실을 알아도 되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천순제 주기진, 두 번째 생의 아버지뿐이다.


순장은 어제 경연의 참석을 전달받고 고심 끝에 우연히 생각해 낸 묘수다. 그리고 기회다.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어제부터 직감이 말하고 있다. 소리치고 있다. 이것은 일기일회(一期一會), 일생에 단 한 번 오는 기회라고. 동시에 경고한다. 커다란 기회가 제 몸집만큼 거대한 위험을 데리고 왔다며, 조심하라고.




기회는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 채로 찾아왔다. 마을 밖 세상을 만나게 해준 기회는 혹한과 동창이라는 위험을 끼고 찾아왔다. 재능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줬던 서주성 전투는 승상 탈탈과 죽음이라는 위험을 데리고 왔으며, 사검을 검자로 바꿔준 애병 고(鼓)는 팔 한쪽과 맞바꾼 셈. 그리고 자유는 미치광이가 돼서야 누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은 위험이었다. 위험하다. 느낄 수 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배다른 형과 친형. 이 둘은 괜찮을 것이다. 황위 계승 서열 1위와 2위이므로.


그러나 정왕 주견신과 그 아래로는 괜찮지 않을 수 있다. 아니, 괜찮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중 정신병을 앓는 데다가 반골 기질까지 발휘 중인 황자가 확실하게 위험하다.


그가 어떤 답안을 내든 지탄이 쏟아질 거고 그 지탄이 지금 시기에 정신병과 반골 기질까지 더해져서 최악의 경우는 친왕의 폐위까지 몰아붙일 것이므로.


다시 한번 그러나, 그렇기에 이는 분명 기회다. 전생에서는 온 가족을 잃고 순정도 잃고 한쪽 팔을 잃고 온전한 정신을 잃고 나서야 얻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기회. 어떤 것도 잃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기회.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최초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


곱고 예쁜 답안을 내놓거나 끝내 답을 유보하는 것은 곧 기회를 포기하는 것. 그렇게 하면 자리보전은 할 수 있되, 자유는 되찾지 못할 것이다. 영영.


그러니 병사는, 무사는 포기할 수가 없다. 적과 맞서서 살아날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적의 칼과 함께 온다는 사실을 아는 병사와 무사는 포기할 수가 없다. 기회의 소중함을 아는 병사와 무사는 외면할 수가 없다. 죽음을 각오한 전사만 살 수 있다는 진리를 아는 병사와 무사는 기회 앞에서 물러설 수가 없다. 평화와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를 뼈저리게 또한 가슴에 사무치도록 배운 병사와 무사는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현과 스승들이 두 형에게만 순장을 묻고 더는 묻지 않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순장을 다뤄달라고 한 이가 정왕 주견신이니 십중팔구는 물을 것이다. 이내 순장은 정왕 주견신에게 죽음보다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다. 일신의 자유는 물론 생명을 제외한 모든 것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이 포악한 이빨과 포효를 들이밀 것이다. 그럼에도, 두려워도 전진할 수밖에 없다.


병사와 무사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후회이므로. 그때 지쳐 쓰러질 것 같았던 그때, 죽을 것만 같았던 그때, 죽음이 너무도 두려웠던 그때 한 번만, 한 번만 더 온 힘을 다했어야 했다는, 기회를 잡았어야 했다는, 주저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그랬다면 전우를 살릴 수 있었다는, 형제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는 바로 그런 후회.


하지 않은 것,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 말이다.


병사는, 무사는 위험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아가야 한다.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기어이 전진해야 한다. 그것이 전사의 숙명이므로.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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