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무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새글

서마
작품등록일 :
2024.07.03 16:47
최근연재일 :
2024.09.19 21:06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467,410
추천수 :
19,164
글자수 :
408,740

작성
24.07.19 18:35
조회
10,656
추천
520
글자
23쪽

13화

DUMMY

13화




봉천전(奉天殿), 황궁의 공적 사무 구역 외조 중심에 있는 정전. 황제가 정무를 주재하는 3대 정전 중 가장 컸다. 자금성을 통틀어 가장 큰 전각이었고 황제 황후의 즉위식, 대규모 조회(朝會), 칙서 반포 등 국가적 행사나 주요 정치 행위가 봉천전에서 거행됐으며 앞에는 광활한 너비의 광장을 안고 있었다.




새하얀 대리석 기단 위에 천순제 주기진과 황후가 앉을 용상과 의자들이 나란히 배치됐고 거기 주기진의 자리 옆에 차례로 앉은 태자 주견심과 귀비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


[······.]


하나는 어제 경연장에서 주견심이 사실상 패퇴했기 때문이요 둘은 황제가 아침에 견신을 독대했기 때문이며 그다음 셋은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견신을 지지하는 중이기 때문이요 마지막 넷은 독대 중 정3품 이상 고관들이 소집됐기 때문이다. 비빈까지 포함해서.


비빈들은 원칙적으로 정무에 관여할 수 없다. 그러니 궁중 가장 큰 정전에 정3품 고관과 더불어 비빈들까지 소집됐다는 건 지금의 회동이 평범한 사안으로 말미암은 모임이 아니라는 증거다.


그처럼 조금 불편한 표정의 모자는 침묵한 채 신비와 덕왕 주견린 등을 곁눈질했다. 눈빛으로 묻는 것. 너희가 꾸민 일이냐고 너희도 동참한 일이냐며.


찌릿—




모자의 반대쪽 황후의 옆자리에 앉은 신비와 주견린은 대체로 무심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근심 짙은 표정이었다. 견신을 향한 근심이.


[······.]


어제 경연이 끝나자마자 영문 파악차 대책 논의차 신비의 침궁에 집결한 일가족은 견신에게서 아주 짧은 약속만을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에, 나중에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시 건청궁의 환관과 궁녀가 찾아왔고 견신에게 오늘 아침에 건청궁으로 들라는 황명을 전달했다. 그 순간부터 시작해서 조금 전까지 온종일 승천문 광장에서 들려오는 아우성을 애써 외면하며 뜬 눈으로 가슴을 졸이던 중에 갑자기 소집 명령이 하달된 것.


집결 장소가 다른 곳도 아니고 봉천전이기에, 불길한 생각이 가족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주기진이 이례적으로 황후와 비빈들까지 모이라고 한 탓에 신비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처럼 귀비 일가와 신비 가족 포함, 황궁 권력의 상층에 한 몸 걸친 이들은 알고 있었다. 지금 주기진과 견신이 오는 중이라는 사실을.


그랬지만 건청궁 내부에서 오간 대화는 알지 못했다. 주기진이 출발 전에 엄포를 놓았기 때문. 대화 내용이 새어나간 게 확인되면 반드시 엄벌하겠다며, 새어나가면 만사가 틀어지고 말 것이므로.


그런 주기진의 태도에서 순장의 철폐를 점친 환관들과 궁녀들은 입을 다물었다. 주 씨 부자가 건청궁을 떠나는 순간부터 온갖 끈들이 달려들 것을, 그런 끈들이 저들과 다르지 않은 환관들과 궁녀들일 것을 알기에 장인태감 홍순과 건청궁 궁녀의 수장이 수를 냈다.


건청궁에서 오간 대화를 들은 환관과 궁녀 전원이 주 씨 부자를 따라나서기로 한 것.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전해 들은 권력자가 거짓을 말했다며 벌하려 들 거고, 말해주지 않으면 심부름 온 환관들과 궁녀들이 다칠 테니까. 그 증거로 주견심과 귀비는 물론 태사를 포함한 삼공과 여러 고관대작도 진실을 궁금해하는 중이었고 별별 추측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 예로 귀비의 측근 환관과 궁녀가 쪼르르 달려와서 진실과는 전혀 다른 추측을 속삭였다.


“태사가 심려치 마시라며 전하라 하였사옵니다. 성심이 노하신 듯하고 아직 북직례 유림이 승천문 광장에 있으니, 비 전하께서 염려하실 것이 없다 하였사옵니다.”

“이부상서도 천녀에게 그리 일렀사옵니다. 세세한 내용은 모르나 건청궁에서 고성이 오갔다 하옵니다.”


귀비는 고성에 주목했다.


“고성이 오갔다? 그랬단 말이지?”

“그렇사옵니다.”


그러고는 안도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찜찜해하던 참이었는데 일이 예상대로 된 모양. 다행이다.


황제가 이례적으로 주견신과 독대한 탓에 놀랐고 놀란 가슴이 쓸데없는 걱정을 한 셈. 하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기진이 허튼 선택을 할 리가 있나. 누구보다 태자와 친왕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해 온 인물인데.


그처럼 마음속 찜찜함이 대부분 가신 그녀가 곁에 앉은 주견심에게 속삭이는데 그때.


“태자, 들으셨지요? 괘념치 마···!”


돌연 주견심의 옆 한 쌍의 용상에 앉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비.”


중서성과 승상이 존재하던 그 시절에도 일인지하 만인지상이었던 사람. 황제와 더불어서 폐하의 경칭을 받는 인물. 황후의 목소리였다.


“예, 황후 폐하.”

“황상께서 전에 없이 명하신 자리다. 소란을 삼가라.”


그녀의 낮은 경고에 귀비는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 옆의 주견심도 마찬가지였다. 황후는 황궁에서 모자가 넘볼 수 없는 유일한 사람. 모자가 주기진보다도 어려워하는 인물이었다.


“송구하옵니다, 황후 폐하.”


그랬지만 귀비도 주견심도 내심 이를 갈았다.


‘내 아들이 용상에 앉기만 하면 애꾸 네년은 끝이다. 아이도 낳지 못한 주제에 뭐? 황태후? 어림도 없는 일이지.’

‘황후 폐하. 어머니를 괄시하신 것을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다 자업자득이니, 누구도 원망치 마시길.’


두 모자는 터놓고 의논한 적은 없지만, 줄곧 저들을 신비와 견신보다 홀대해 온 황후의 훗날을 결정해 둔 상태였다.




그처럼 모자와 황후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이는 황후도 마찬가지, 주견심과 귀비를, 모자를 추종하는 세력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황제를 보필하는 데 쓰여야 할 마음을 뽕 밭에 뒀다고 생각했기 때문. 특히 그들이 태자의 지위 확립 같은 얼토당토않은 명분으로 친왕의 구룡무맥 전수 중단을 밀어붙였을 때부터는 숫제 혐오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한편으로는 모자를 향한 두려움도 있었다. 황후는 주견심이 용상에 앉으면, 생모 귀비를 위해서 그녀를 해칠 거라고 봤다. 친어미를 정비로, 태후로 만들기 위해서. 나아가 황후가 아닌 친어미를 아비의 영생, 그 동반자로 맺어주기 위해서.


원칙적으로 황제의 묘 봉분에 나란히 합장되는 여인은 단 한 명이다. 정비 한 명. 따라서 주견심이 용상에 차지한 뒤, 귀비를 먼저 주기진의 황후로, 그다음 주견심의 황태후로 승격시킨 후 아비의 정비로 지명한다면 현 황후는 그야말로 빈털터리가 되는 것. 황후와 모자의 관계가 좋을 수 없는 이유다.




아무튼, 황후가 내심 자식 대신 아낀 사람은 견신이었다. 그녀는 박해의 첫 번째 대상이 됐고 그로 인해 점차 엇나가는 견신을 가엾게 여겼다. 다른 이들이 견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비방해도 혼내거나 문책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거기 더해 주기진이 당부한 뒤로는 끊었으나 그전에는 종종 견신을 불러서 격려하고는 했었다. 그런 황후를 지켜보는 주견심과 귀비는 점점 더 황후를 멀리했고, 그런 모자를 추종하는 세력이 뜬소문을 지어내기도 했다.


자식이 없는 황후가 자식 대신 주견신에게 정을 주는 거라고. 정적인 귀비를 어미로 둔 태자에게 정을 줄 수는 없으니, 아쉬운 대로 주견신에게 정을 주는 거라는 소문을. 그 대상이 많고 많은 황자 중에 주견신인 까닭은 모르지만.


“내신들과 여관들도 이 이상 소란을 삼가라. 내 엄히 꾸짖을 것이다.”

[명심하겠나이다. 황후 폐하.]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황후 폐하.]


이어서 환관들 궁녀들도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다음 정3품 최고의 고관들도 마찬가지고.


“대신들도 정숙하여 황상을 기다리라.”

[예, 황후 폐하.]


그처럼 시장통이 될 뻔했던 봉천전 광장의 소란을 단박에 잠재워버린 황후는 무심한 얼굴로 정면을 주시했다. 무심한 눈길이 광장을 지나듯이 새하얀 구름 한 점이 파란 하늘 가운데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그 구름이 황후에게는 평생 소원인 동시에 고통인 자식처럼 보였다.




황후 전씨는 불임인지라 자녀를 낳지 못했으나, 주기진과의 금슬은 아주 좋았다. 특히 황후로서 현명하고 슬기롭게 처신했다. 주기진이 처가에 관작을 내리려고 했지만 자신으로 인해 가족이 부귀영화를 탐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극구 사양했다.


즉, 외척이 정사에 관여할 여지를 주지 않은 것. 황후의 가족이 어떤 관작도 받지 않은 사례는 역사를 통틀어 아주 드물었다.


특히 아내로서 주기진을 섬기는 데 지극정성이었다. 포로로 붙잡혀서 온갖 고초를 겪고 있을 때 몽골의 사자를 수시로 만나 재물을 주고 주기진을 구해달라며 간절히 회유하기도 했고, 날마다 지아비의 환궁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다. 제 몸을 돌보지 않으면서 기도한 나머지 당시 한 쪽 눈이 실명됐고 굶은 채로 절하고 일어서다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런 애정은 주기진이 풀려난 뒤 태상황이 돼서 궁에 유폐됐을 때도 변함이 없었다. 주기진의 곁에서 끊임없이 위로 격려하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따라서 주기진이 천순제로 복위할 수 있었던 까닭의 절반 이상이 그녀에게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사실, 태자를 낳지 못한 황후의 권세는 위력적일 수가 없지만 주기진이 그 자신보다도 그녀를 신뢰하고 또 존중하기에.


비록 자식을 낳지 못했으니 현모는 못될지언정 아내로서 양처임은 확실하고, 황후로서는 표상과도 같은 행실을 보여온 인물이기에 지금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황후는 불임이라는 사실 하나를 제외하고는 비난할 거리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게 흰 구름 하나가 유유히, 광장 이쪽에서 저쪽을 지날 때쯤, 북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모두가 기다리던 신호였다.


[황제 폐하 납시오—오—]


일제히 일어서서 허리를 숙이는 사람들 뒤로 주기진이 장인태감 홍순, 금의위 지휘사, 제독동창 그리고 금의위의 호위를 받으며 다가왔다. 그가 등장하자 남쪽 승천문 너머 광장에서 들려오던 종3품 이하 관리들과 북직례 유림의 아우성도 멈췄다.


견신은 주기진의 바로 뒤를 따르는 중. 신비와 견신의 남매들도, 귀비와 주견심도, 대신들도, 환관들과 궁녀들도 그런 견신을 주목했다. 난데없는 풍파, 순쟁(殉爭)을 일으킨 주인공을.




이윽고 황후가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주기진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황후,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어서 앉으시지요.”

“예, 폐하. 간밤에 안녕하셨사옵니까.”


염려 가득 담긴 눈빛으로 이리저리 뜯어보는 아내를 주기진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황후께서 이리 짐을 염려하시는데 안녕해야지요. 황후께서도 안녕하셨습니까? 작야에는 고심할 거리가 있어서 가지 못했습니다.”

“괘념치 마세요, 폐하. 신첩도 안녕하였습니다.”

“다행입니다. 정왕도 앉으라.”

“예, 폐하.”


견신은 친형의 옆 빈자리로 가면서 황후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황후는 신비를 제외한 비빈 중 견신이 가장, 진심으로 공경하는 인물이었다.


“황후 폐하.”

“그래요, 정왕. 어서 앉으세요.”

“예, 황후 폐하.”


견신이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주기진이 곧장 포문을 열었다.


“짐이 금일 그대들을 모은 연유는 한 가지 결정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약속한 듯 일제히 숨죽인 광장에 울려 퍼졌다.


“이는 짐이 작야 이전부터 숙고해 온 사무이며 오랜 고심 끝에 정한 것이니 그대들은 짐의 뜻을 헤아려 시행토록 하라.”

[예, 폐하.]


수백 명의 이구동성이 하늘로 솟구치고 땅을 두드리는 순간, 소리친 이들의 심장이 달리는 기대감에 발맞춰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다음 이어질 말을 기대하는 것. 광장 여기저기서 마른침을 삼켰다.


“짐은 금일.”


한쪽은 어떤 형태로든 견신이 불이익을 받고 순장이 존속하면서 순쟁이 종결되기를.


다른 한쪽은 순장이 마침내 불가역적인 종말을 맞이하기를 기대했다.


그렇게 상반된 기대가 충돌하여 발생한 무형의 소용돌이가 봉천전 광장에 몰아치고 이내 주기진의 결정이 광장을 강타했다.


“순장을 철폐하고자 함이다. 이부와 예부, 형부는 논의하여 대명률과 영락대전 등 순장 시행에 관한 기록 일체를 고치고, 내각은 칙서를 준비토록 하라.”


찰나 크게 찢어지는 눈꺼풀들. 미친 듯 떨리는 눈동자들. 장내 놀라지 않은 사람은 화자인 주기진과 견신, 두 사람뿐이었다.


[!!!!!!]


잠깐 시간이 멈춘 듯했다가 직전에 호명된 관아의 수장들 즉, 세 상서가 발작하듯 목소리를 냈다. 셋 모두 귀비와 태자를 추종하는 정파에 속해 있었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폐하! 어찌 철폐하신다는 말씀이옵니까!”

“폐하! 이는 작일과 금일에 결정할 사안이 아닌 줄로 아옵니다!”


그들의 반반을 신호 삼아 승천문 광장에서도 격렬한 반발이 터져 나왔고.


[폐하! 아니 되옵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주견심과 귀비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팔걸이를 있는 힘껏 움켜쥔 모습으로 주기진을 올려다봤다. 대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냐는 대꾸를 눈빛에 실어서.


모자도 대신들처럼 항변하고자 했지만, 주기진의 곁에서 서늘한 빛을 뿜어내는 외눈이 그런 의지를 차단하고 있었다. 황후의 눈이.


그런 황후의 조력이 아니라도 주기진은 모자를 물리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건청궁을 나서기 전 이미 뜻을 세웠기에.


전에는 관리들과 유림의 대대적 반발이 발생하면 한 걸음, 아니 두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더 이상 이전의 주기진이 아니므로.


“짐은 이미 결정···! 콜록콜록—”


그처럼 굴하지 않고 주장을 피력하려던 주기진이 말하다 말고 허리를 숙이며 기침하자 황후가 얼른 지아비를 부축했다.


“폐하! 태의! 태의는 어디 있느냐! 태의를 불러라!”

“후욱— 지, 짐은 괜찮소. 황후.”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어찌 이리 신첩을 놀라게 하시옵니까.”


그런 지아비를 보고 격분한 황후가 광장을 돌아봤다. 하나 남은 눈에서 검은 분노가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정숙하지 못할까! 폐하께서 분명 고심 끝에 내리신 결정이라고 말씀하셨거늘! 천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한 자가 이리도 많다는 말인가! 다들 귀가 먹은 것인가! 폐하, 신첩에게 말씀하소서. 신첩이 전달하겠사옵니다.”

“후욱— 황후, 그리해 주시겠습니까. 짐은 이미 결심하였노니 작일의 경연에서 오고 간 논의로 순장에 관한 논의는 충분함이다. 짐의 오랜 고심, 태자, 덕왕, 정왕, 삼공, 삼고, 태자삼공, 태자삼고의 견해를 모아서 궁리하였으며 모두의 견해에 일리가 있으나 철폐를 결정하였다. 하니, 예서 더는 논하지 말라.”

“예, 폐하. 폐하께서는 이후 정양하시옵소서. 신첩이 전달하겠나이다.”


지아비를 향해 외눈을 끔뻑인 황후가 일어서서 광장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목소리에 아내로서 지아비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듣거라! 짐은 이미 결심하였노니 작일 경연에서 태자, 덕왕, 정왕과 삼공, 삼고, 태자삼공, 태자삼고가 함께 논의한 바로써 순장에 관한 논의는 충분하다! 어느 견해에나 다 일리가 있으나 고심 끝에 철폐를 결정하였으니 더는 논하지 말라! 궁금하거든 돌아가서 작일에 있었던 경연의 논의를 차근차근 곱씹도록 하라!”


그처럼 황후가 전면에 나서서 광장을 압박했으나 귀비와 태자를 추종하는 세력과 진심으로 순장을 찬성하는 세력은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홍무 폐하부터 선덕 폐하까지 열성조께서 시행하신 일을 어찌 하루아침에 철폐하신다는 말씀이옵니까!”

“태자 전하의 견해가 옳고 정왕 전하의 견해에는 비약과 무리가 있사옵니다!”

“정왕 전하의 견해를 들어 순장을 철폐하신다면 이는 열성조를 욕되게 하는 일이 될 것이옵니다!”

“천하의 불충이고 불효이옵니다!”


그처럼 어제부터 줄곧 주기진과 황후, 견신을 넌덜머리 나게 한 아우성이 다시금 밀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순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그래서 주기진의 결정이 옳다며 외치는 자도 더 많았으나 저들의 뜻이 좌초되면서 절박해진 찬성파들의 결사항전 의지에, 목소리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배부른 자가 배고픈 자보다 절박할 수는 없는 법.


그에 금방이라도 혼절할 사람처럼 분노하며 치를 떠는 황후가 다시 일갈하는데.


“감히! 황명을 거역할 것이란 말이냐!”


여인의 목소리인지라, 힘없이 파묻히고 마는 그때였다. 별안간 벌떡 일어선 견신이 고함을 내지른 것은.


“황상 폐하—아—아—아—!”


쩌렁— 쩌렁—


열네 살 소년의 목소리, 주 씨 사내 특유의 장중한 목소리가 광장 가운데를 관통, 황궁 전역으로 뻗어나갔고 광장을 뒤흔드는 우레에 놀란 찬성파들의 아우성이 멈췄다.


뚝—


광장은 구조상 기단 위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도록 설계됐다. 일상적인 크기의 목소리도 광장 끝 구석구석까지 전달되도록.


그렇게 설계된 자리에서 견신이 있는 힘껏 목청을 뽑아냈으므로, 천지를 뒤흔드는 진동이 기단 아래 관리들을 덮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순간 간담이 떨어지는 듯 경악한 사람들이 동시에 돌아보자 거처 밖에서의 그로 돌아간 견신이 뚜벅뚜벅 걸어서 주기진과 황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폐하, 소자에게 맡겨주시옵소서. 이는 모두 소자가 벌인 일이옵나이다.”


그러자 셋째 아들이 여기서까지 나서는 것은 주견심과 귀비를 의식하여 결단코 원하지 않았던 주기진이 일부러 노성을 쏟아냈다.


“정왕은 나서지 마라! 짐의 숙고와 결정이 어찌 일개 친왕이 벌인 일이란 말인가! 자중하고 자리로 돌아가라!”

“그리할 수는 없사옵니다. 이 나라의 신하들이, 폐하의 신하들이 부황 폐하 모후 폐하의 명을 저리도 업신여기고 있거늘.”

[!!!!!!]


보란 듯 황제 황후를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는 견신을 모두 경악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단 한 사람, 황후만 빼고.


황후의 외눈은 세차게 떨리는 중이었고 그 빛은 조금 전에 새하얀 구름을 볼 때와 닮아 있었다. 그 빛의 이름은 아련함 혹은 그리움이었다. 죽기 전에는 절대 소멸하지 않을 그리움이지만 인연이 닿는 누군가가 어느 정도는 해소해 줄 수 있는 그런 아련함이었다.


“또한, 지금은 어느 때보다 폐하의 옥체를 보해야 할 때이거늘. 그런 때에 저리 한심한 작태를 보이는 신하들을 모자란 소자가 아무리 자금의 반골이라고 해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사옵니다.”


조금 전 건청궁에서부터 셋째 아들의 의도를, 아들의 기백이 예사 것이 아님을 완전히 깨달은 주기진이 애원조로 뇌까렸다.


“정왕, 정왕아. 나서지 마라, 네가 그리 하면 아니 된다.”

“아버지 폐하, 염려치 마시옵소서. 소자는 친왕인 동시에 무사이옵니다. 소자, 작일 경연에서 이미 검을 뽑았사옵고, 무릇 한 검사가 검을 뽑았다는 것은 한 자루 검에 생애마저 모두 건다는 뜻이니 이는.”

“······?”

“검을 휘두르다 죽어도 좋다는 뜻이옵나이다. 소자, 금일 죽어도 좋사옵니다. 죽을지언정 저들이 부황 폐하 모후 폐하, 두 분 폐하를 진정으로 경외하는 모습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야겠습니다.”


황궁의 반골 주견신으로 돌아가 실실 희미하게 웃으며 말하는 견신의 얼굴이 주기진과 황후의 동공을, 그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견신···!”

“정왕···!”


그로 인해 두 사람이 이제는 급기야 심장을 향해 짓쳐 드는 어떤 무엇인가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을 때, 견신이 천천히 일어서서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이부상서! 예부상서! 형부상서! 조금 전에 황명을 거둬달라고 하던데 충심으로 하는 청인가? 또한 그 충심, 진심인가?”


지목된 사람 중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정2품 상서 중 서열 1위, 명목상 나라의 문관을 대표하는 이부상서였다. 이부(吏部)는 일반적인 정무와 문관의 임용, 무관을 제외한 관리의 공훈 봉작 등을 담당하는, 조정 최고 실권을 가진 관아였다.


“전하! 어찌 함부로···!”

“허튼소리는 말라. 고(孤)는 분명 진심이냐 물었다. 묻는 말에만 답하라. 귀가 먹었거나 동문서답이 장기가 아니라면. 고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다.”


다른 고관대작들과 마찬가지로 평소 견신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그에 지금 내심 아니꼽고 밸이 뒤틀린 그가 힘주어 대답했다.


“모든 신하의 간언은 충심과 진심으로 이루어진 것이옵나이다. 신하의 간언을 외면하는 것은 제왕의 자세가 아닐 것이옵니다.”

“그래서, 진심이란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틀림없는 진심이옵고 앞으로도 폐하와 대명을 향한 소신의 충심과 진심은 변치 않을 것이옵나이다.”

“과연 그러했는가. 역시 그대는 만고의 충신이다. 하기야, 아무나 정2품 상서가 되는 것은 아닐 테지. 예부상서, 형부상서도 마찬가진가?”


의례와 외교를 총괄하는 예부상서, 사법을 주관하는 형부상서도 같은 태도로 대답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전하께서 소신들의 충정을 의심하시니 억울함을 금할 길이 없사옵니다.”

“좋다. 허면, 이렇게 하자. 그대들이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고가 앞장서서 폐하께 주청하지. 황명을 거두어주시라고. 또한 고는 이번 순쟁의 책임을 지고, 폐서인(廢庶人)의 처분이라도 달게 받을 것이다.”


여기서 폐서인은 친왕의 작위는 물론 황족의 신분조차 박탈, 평범한 백성이 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그때, 세 사람 포함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 모두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너무도 당당한 모습에서 출발한 정체불명의 예감이 날아와서 뇌리를 찌르는 것을 느꼈지만 그 감각을 선명하게 인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정치판에서든 창칼이 오가는 전장에서든, 싸움이라는 것이 기세에서 밀리면 끝장이라고. 세 사람은 질 수 없다는 듯 당당하게 대꾸했다.


[말씀하시옵소서.]


대체 ‘자금의 반골’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는 식의 생각도 있었다.




이윽고, 찰나 조금 짙게 웃은 견신의 검이 그런 생각을 관통했다.


“세 사람 모두 부황 폐하께 순장을 맹세하도록.”


거침없이, 통렬하게.


“폐하께옵서도 그대들 세 사람 같은 만고 충신들이 자미원 가는 길을 호종한다면 든든하실 터. 천지신명과 여기 모인 모든 이들에게 천명하도록. 훗날 한날한시 폐하의 능에 기꺼이 또 지극한 충심으로 자원하여 순장되겠다고. 또한 누구도, 천자도 그대들의 맹세를 간섭할 수 없으며 돌이킬 수 없다고.”


찌르고 벴다. 끝에 가서는 실실 웃던 입꼬리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눈빛은 깊어졌다.


“해 보라. 그 맹세.”


살다 보면 천하의 장인이 단조한 철검보다 혀를 굴려서 벼린 검이 훨씬 더 날카롭고 위력적일 때가 있는 법이었다.


“지금.”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호우로 인한 피해 없으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윤회무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15화 +18 24.07.23 10,948 428 23쪽
15 14화 +28 24.07.22 10,639 507 21쪽
» 13화 +31 24.07.19 10,657 520 23쪽
13 12화 +54 24.07.18 10,716 536 23쪽
12 11화 +9 24.07.17 10,885 393 19쪽
11 10화 +16 24.07.16 11,032 432 18쪽
10 9화 +13 24.07.15 11,227 396 17쪽
9 8화 +14 24.07.12 11,634 471 20쪽
8 7화 +22 24.07.11 11,782 485 17쪽
7 6화 +32 24.07.10 12,474 521 23쪽
6 5화 +24 24.07.09 12,966 488 23쪽
5 4화 +20 24.07.08 13,647 474 20쪽
4 3화 +14 24.07.05 15,486 435 23쪽
3 2화 +19 24.07.04 17,403 522 18쪽
2 1-2화 서(序) +38 24.07.03 18,275 637 25쪽
1 1-1화 서(序) +60 24.07.03 24,147 627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