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은 빌런 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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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햄
작품등록일 :
2024.07.15 11:25
최근연재일 :
2024.08.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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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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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독수는 누구야?

DUMMY

급기야 바닥에 쓰러지는 김독수. 


어느 틈에 김독수의 왼팔을 움켜잡은 존 도자. 암바를 시도 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존 도자의 둘도 없는 기회. 그러나 김독수에겐 위기다. 


지난 라운드에서 아무리 많은 유효타를 기록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한 번 걸리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필살기 암바. 걸리면 끝이다.


“아! 안돼. ”


애가 타는 청년들. 마주 잡은 김독수의 양손이 존 도자의 힘에 조금씩 풀리려고 한다. 두 팔이 힘을 잃는 순간 암바는 완성된다.


이를 막으려는 김독수의 필사의 방어. 그러나 쉽지 않다. 


“아!”


그 순간 몸을 허공으로 구르듯이 돌려 존 도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는 김독수.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허탈한 표정을 짓는 존 도자.


“와! 쓰바. 미쳤다.”

“푸하하! 내 그럴 줄 알았다고.”


김독수가 악마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자 청년 둘이 미친 것처럼 환호한다.


가만히 앉아 관전을 하는 데도 몇 시간 운동을 한 것처럼 온몸이 다 젖었다. 셔츠가 축축하다. 속이 타는 민관장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청년들도 따라서 물을 마신다.


이기고 있어도 불안하다. 경기가 끝나 봐야 아는 것이지만 오늘은 유달리 불안하다. 제자의 경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더욱 불안한 것이겠지.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낮에 본 아이가 자꾸 생각난다. 


도장 앞에 쓰러진 아이. 119를 불렀지만 한눈에 봐도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심하게 폭행을 당한 얼굴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필 시장통 국숫집 손자라니. 두 노인의 얼굴이 눈에 어른거린다. 


다시 해설자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 천천히 해도 됩니다. 득점은 충분하거든요.

- 맞습니다. 무리할 필요가 없죠.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 존 도자가 마지막 반전을 노리네요. 이런 때는 피해가는 게 좋습니다.


아나운서와 해설자, 마치 자신들이 죽다 살아 난 것 같은 목소리다. 


마침내 4라운드가 끝났다. 그런데 5분이 왜 이렇게 길단 말인가. 


이제 운명의 5라운드다. 


마지막 5분이다. 유효타가 훨씬 많은 김독수. 이대로라면 승리가 확실하다. 그러나 몸을 사리지 않는 김독수. 끝까지 밀어붙인다.


존 도자의 로우 킥에 이은 양 훅을 간신히 피해낸다.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빈틈을 파고 드는 김독수. 마음이 조급해진 존 도자 빈틈을 보이기 시작한다. 김독수 절대로 시간 끌기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너무나 사나이답지 않은가.


‘역시 김독수다.’


김독수의 그런 자세에 박수를 쳐주는 민관장​. 진정한 스포츠맨다운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일까.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둥, 득점이 충분하다는 둥, 그런 말은 쑥 들어간 아나운서와 해설자.  


이제 마지막 10초. 


다가서는 존 도자의 안면을 향해 날아가는 김독수의 왼발 하이킥. 그러나 아쉽게도 살싹 비껴나가는 킥. 킥이 빗나가자 몸의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김독수. 많이 지쳤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인파이팅을 하는 복서처럼 김독수의 안으로 파고 든 존 도자. 김독수가 중심을 잡으려는 순간 존 도자의 훅이 날아간다. 겨우 가드로 주먹을 막아내는 김독수.


“안돼!!!”


그 순간 민도기 관장. 본능적으로 느끼는 소름에 몸서리친다. 오랜 권투선수 생활을 한 민관장. 종목은 달라도 안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면 그 다음이 어떤 상황인지 단박에 안다.


자신의 불안이 기우이기를···.


그러나 민도기 관장의 불안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오른쪽 어깨 아래 숨겨져있던 비수가 김독수의 안면을 행해 날아가고 있다. 


“아니야. 아니야.”


신음하는 민도기.

이어서 김독수의 턱에 꽂히는 존 도자의 라이트 엘보. 휘청이는 김독수의 머리. 턱이 부서질 것만 같다. 그리고 번개처럼 이어지는 레프트 훅에 이은 플라잉 니킥. 


몸의 무게중심을 잃고 쓰러진 김독수.

그의 머리 위로 무수히 내리꽂히는 존 도자의 체중을 실은 주먹들. 죽음의 파운딩이 아닐 수 없다.  


순식간에 정신을 잃은 김독수···. 그러나 존 도자는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움직이지 못하는 김독수의 머리위로 체중을 다 실은 존 도자의 니킥이 내리꽂힌다. 


“안돼. 더러운 놈! 짐승만도 못한 놈!”

“저런 놈이 무슨 챔피언이야.”


지나친 공격에 공분하는 청년들. 존 도자의 만행에 격분한다. 

쓰러진 상대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 잔인함. 야수라고 불리는 이유를 여실히 드러낸다.


피도 눈물도 없다. 


​미처 심판이 말릴 틈도 없이 이어진 치명적인 공격들···.

당황한 심판이 존 도자를 제지한다. 그러나 존 도자 코웃음을 칠 뿐 실신한 김독수를 향한 공격은 계속된다. 축 늘어진 김독수. 

 

실신을 한 상태에 다시 가해진 공격이었다. 티비 속의 관중들조차 모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야유의 소리가 들려온다.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짓이다. 그러나 도리어 그걸 즐기는 존 도자.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김독수···.

 

“아···. 아니야. 이건 아니야.”

 

민도기 관장의 흐느낌. 어느새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다.

 

‘독수야.’

 

링 한가운데 쓰러진 김독수. 

믿을 수 없는 장면에 할 말을 잃은 사람들. 

 

티비도 고장난 것 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진행 요원들이 들 것을 가지고 링 위로 뛰어올라 올라간다. 


***


경기는 끝났다.


희미한 정신의 끝자락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다.

나는 늘 링 위에서의 죽음을 꿈꿔왔다. 모든 파이터의 꿈이다.

오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날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죽는다 해도 내 죽음을 슬퍼해 줄 가족은 없다. 


아니. 어쩌면 단 한 사람, 그분이라면 나를 위해 울어 줄지도 모르겠다. 보육원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운동을 가르쳐 주었던 그분.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 정신이라고 말하던 분.   


그분과 함께 처음 운동을 시작했던 곳.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어린아이가 샌드백을 치며 분노를 불태우던 곳. 지금도 어제처럼 밴드백이 걸린 체육관의 모든 것을 환하게 기억할 수 있다. 땀과 눈물. 도장 곳곳에 얼룩처럼 새겨진 추억들이 그립다.   


희뿌염한 시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누워 있으면 안 된다. 존 도자와 싸워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쳐도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챔피언 존 도자의 엘보와 니킥이 나를 쓰러뜨렸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존 도자를 피하지 않았다. 등을 보이는 비열한 승자가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민관장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이제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의 급한 걸음걸이를···.


들것에 실려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갈 수 있다면, 내가 처음 운동을 시작한 그곳으로. 그분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 

 

“휴우-.”


막혔던 숨이 터지듯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살 것 같다. 


‘아! 여긴 어디지?’  


움직일 때마다 몸이 아프다. 경기를 하고 나면 늘 그랬다. 승패에 상관없이 격투기 선수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었다. 경기가 끝나면 가장 먼저 가는 곳이 병원이다. 챔피언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오늘은 머리가 유달리 아프다. 


파이트 머니를 전부 병원비로 썼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하는 선수도 있다. 다른 종목과 다른 격투기 선수의 현실이다.


얼마나 누워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제법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다. 한잠 자고 일어난 것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아이고! 이제 정신이 돌아왔네.”

“날 알아보겠니?”


눈을 뜨자.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감격에 겨운 얼굴로 소리쳤다. 

모두가 흥분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상했다. 자신을 둘러싼 그 누구도 알아 볼 수 없다.

  

“아이구! 이 녀석아. 이 할미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웬 할머니 한 분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옆에 서 있는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보는 이 노인들은 누구란 말인가. 그런데 그 얼굴들이 낯설지 않고 어디선가 눈에 익다. 그러나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머리를 너무 세게 맞았나 보다. 죽일 놈의 존 도자. 


“대체 어떤 놈이 우리 앨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여. 내 그놈을 잡기만 하면 아주 요절을 내고 말텨.”


눈시울이 붉을 대로 붉어진 할아버지. 꽉 움켜쥔 할아버지의 앙상한 주먹이 부들부들 떨고 있다. 


“정식아. 우릴 알아보겠어? 응?”

“너 하루가 꼬박 지나서 깨어났어. 알아? 대체 누가 그랬어? 응?”

“얼굴이 말이 아니야. 얼마나 맞았으면 저렇게 된 걸까?”


이번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셋이 동시에 소리를 쳤다. 셋 중 하나는 여자 아이다. 얼마나 울었는지 여자아이의 눈두덩이 퉁퉁 부었다. 


말하는 걸 보니 친구들 같은데···. 누군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정식이라고? 정식이는 누구란 말인가? 처음 듣는 이름이다. 

왜 나를 정식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이 자식아.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안경을 쓴 녀석이 손을 덥석 잡으며 울먹였다.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정말 걱정을 많이 한 건 진짜인 모양이다. 그런데 교복을 입은 걸 보니 고딩들 아닌가.  


걱정해 준 건 고맙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괘씸하다. 내가 평소 어려보인다는 소리를 듣기는 해도 곧 서른인데. 반말이라니 어이없다.


그런데 스텝들은 다 어디로 간 것 일까. 언제나 그림자 처럼 나를 따라다니던 스텝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분명히 라스베가스에서 존 도자와 경기를 하고 있었는데···. 언제 한국에 돌아온 것일까? 이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의사가 들어왔다. 족히 일흔은 되어 보였다.


“환자가 정신이 돌아왔다고요? 어디 봅시다.”


그는 환자의 눈을 까뒤집어 보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간호사가 혈압계를 환자의 팔에 부착했다.


“120에 80. 맥박 65.”


간호사가 숫자를 읊었다. 혈압과 맥박, 지극히 정상이었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군.”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하는 의사. 이어서 몇 가지 질문을 시작했다.  


“자네 이름이 뭔가?”

“김독수요.”

“······.”


“그럼. 몇 살이지?‘

“스물여덟 살입니다.”

“······.”


“어느 학교 몇 학년이야?”

“학생 아닌데요.”

“······.” 


의사와 환자 사이에 이어지는 간단한 질문과 대답. 


지켜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그럼. 저 노인분들이 누군지 알겠니?”

“모릅니다.”

“······.”


“저 학생들은?”

“처음보는 얘들인데. 버릇이 없네요.”

“······.”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이성을 되찾은 의사 선생님. 


“아직 충격에서 다 벗어 나지 못한 것 같아요. 머리에 충격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기억상실증 같은 게 생길 수 있습니다. CT 촬영 결과 뇌에는 아무 이상이 없으니까 며칠 쉬면 좋아질 거예요.”


의사가 눈을 껌벅거리며 말했다. 


“선생님. 정말 그럴까요?”

“그럼요. 말을 잘하는 걸 보면···.”


말을 잘하는 게 어떤 근거가 되는지는 몰라도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요. 왜 자기를 김독수라고 하는거죠?”

“충격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과 혼동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죠. 혹시 친구나 친척 중에 김독수라는 사람 있습니까?”

“아뇨.”


다섯이나 되는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런데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기는 하다.


어쨌거나 환자가 정신도 차렸고 대답도 꼬박꼬박하니 의사는 일단 안심하는 눈치다. 

한마디로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떤가. 사람이 깨어났으면 된 것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정식아. 김독수는 누구야?”


그때 눈이 퉁퉁 부은 여자 아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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