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은 빌런 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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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햄
작품등록일 :
2024.07.15 11:25
최근연재일 :
2024.08.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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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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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는 누구인가

DUMMY

‘김독수가 누구냐고? 어이없네. 정말.’


화를 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밀려드는 어지러움을 이기지 못한 김독수는 다시 잠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뜬 김독수. 시간은 불과 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러나 느낌상으로는 한나절은 족히 지난 듯했다.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든 김독수를 놔두고 밖에 나간 모양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김독수.


‘?’


그런데 이상하다. 쑤시고 아팠던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뭇 달라져 있었다.  


경기 후, 몸이 아픈 건 늘 겪는 일이었다. 경기 후유증이다. 그러니까. 경기중 당하는 부상들 때문이다. 근육과 근육이, 뼈와 뼈가 충돌하며 살이 터지고 피가 솟구치기 마련이었다. 뼈와 근육이 으깨진다. 온몸을 지배하는 고통은 그렇게 부서진 신체 조직들이 내는 신음소리였다.


그러므로 격투기 선수에게 육체의 고통은 늘 함께하는 친구 같은 것이었다. 문제는 회복이었다. 완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 한 달이 걸리기도 했고 어떤 상처는 영영 회복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한잠 자고 난 지금.


김독수의 몸은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얼굴 부위에서 느낄 수 있는 약간의 통증과 호흡시 느껴지는 폐부의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다른 신체적 통증은 완연히 줄어들었고 몸은 가볍게만 느껴졌다. 마치 경기에 나가기 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그 순간처럼 말이다. 


그런데


몸이 어째 좀 가볍다 못해 날리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뭐란 말인가. 그리고 왠지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부실함은 또 뭐란 말인가.


‘뭔지 모르겠지만 좀 허전하네.’


이상한 걸 느낀 김독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창가로 다가간다.


창밖의 친숙한 한국의 어느 시내 풍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을 열자 훈훈한 봄바람이 코끝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도로변에 노란 개나리들이 서로 다투듯이 피어있다. 봄이었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 같이 생소했다. 


봄이라니. 봄이었다니. 


경기를 준비하느라 계절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걸 기억했다. 아니 어쩌면 봄이라는 계절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보육원 출신 파이터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김독수가 있는 곳은 도로 변에 위치한 병원의 5층 입원실이었다. 

근처에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주변이 잘 보였다.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초등학교와 주변 상가 그 뒤로 빌라들이 들어선 주택가. 이어서 주택가 사이에 자리 잡은 아담한 근린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지 모르게 포근한 느낌을 주는 동네였다. 


병원 정문에 ‘삼일병원’ 이라고 쓰인 큰 간판이 보였다.   


주변을 살피던 김독수.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주변을 둘러보면 볼수록 그 풍경이 눈에 익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눈앞의 풍경에서 알 수 없는 친근함에 당황하는 김독수. 


분명히 어디선가 아니 언젠가 본 듯이 친숙하다. 그럴 리 없는데.


시선을 돌리는 김독수. 


그 순간 창에 낯선 청년의 얼굴이 얼핏 비친다. 순식간에 지나간 그 얼굴. 빛이 드리운 창에 투영되는 흐릿한 얼굴. 윤곽도 모양도 뚜렸하지 않다. 그러나 낯선 청년이다. 


창에 슬며시 드리운 실루엣.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낯선 저 청년은 누구란 말인가. 

아무도 없는 병실 아닌가. 나 홀로 있는 병실이 아닌가.


놀란 김독수. 황급히 자신의 손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황급히 환자복의 바지를 끌어올린다. 


희고 가늘다. 손도 팔도 다리도···.


UFC 밴텀급 세계랭킹 5위에 랭크되었던 ···. 그래서 챔피언 존 도자와 타이틀 매치를 벌였던 파이터 김독수의 몸이 아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놀란 나머지 화장실 안으로 달려갔다.


“악!”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 비명을 막을 수 없었다.   


‘뭐지? 누구지? 응? 누구야.’


거울 속의 청년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하고 아직 입가에 솜털이 까뭇하게 남아 있는 고딩같은 얼굴을 한 청년이 보일 뿐이다.

   

당황한 김독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다시 거울 앞으로 다가서는 김독수. 그러나 같은 얼굴이 나타날 뿐이다. 


“아니야. 아니야.”


미친 듯이 소리를 친다. 

무슨 짓을 해도 김독수는 온데간데 없고 처음 보는 얼굴이 거울 안에 들어 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려 본다. 거울 속에 청년의 얼굴은 변하지 않는다. 내 얼굴이 아니다. 


“대체 넌 누구니?”


대답하지 않는다. 도리어 거울 속의 청년이 되묻는다. 


“대체 넌 누구니?”


그러고 보니 목소리도 달라졌다. 김독수의 목소리와는 사뭇 다른 저음의 얌전한 목소리다. 얌전한 계집아이 목소리 같다면 지나친 것일까. 가는 팔다리처럼 목소리도 가늘고 연약하다. 


그런데  


김독수의 시선을 사로 잡은 것이 있다. 

잘 생겼다. 격투로 찢어지고 꿰맨상처만 가득한 얼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대신 깨끗하고 윤기가 흐르는 하얀 얼굴을 한 고등학생쯤 되는 사내아이가 거울 안에 있다. 


누구에게 맞은 듯 붉게 부은 자국이 눈에 거슬릴 뿐이다. 그러나 그런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다. 며칠내 사라질 것들이니까.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 부르던 이름이 생각났다. 정식이라고 했던가? 그래 맞아 정식. 


왠지 모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이 드는 이름이다.


정식. 그래 공정식.


마침내 이름이 생각났다. 그리고 병실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소란을 떨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이 하나씩 돋아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랬다. 노부부는 정식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일찍 부모님을 잃은 공정식은 조부모와 같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버릇없는 얘들은 정식의 같은 반 친구들이다. 


방대호와 허동철 그리고 전은숙이다. 사람들의 관계와 이름이 생각나면서 병원에 오게된 이유도 어렴풋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돈을 갈취당하고 폭행을 당했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그건 마치 조폭 영화의 한 장면같았다. 폭행을 당해 종잇장처럼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공정식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김독수는 허약하기 이를데 없는 몸을 둘러보았다. 


‘이런 몸을 가진 애를 때리다니.’


공정식은 키만 클 뿐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치는 약골이었다. 근력 부족은 당연하고 맷집같은 건 애초에 없어 보이는 몸이었다. 그런 아이에게 함부로 주먹을 쓰다니 인간 양아치가 따로 없는 짓이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분노와 함께 더욱 선명하게 살아나는 공정식의 기억들···. 


그러고 보니 오재영에게 당한 것과 비슷한 경우를 겪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같은 반의 일진 조경태도 그렇고 많은 학교 폭력배들이 공정식과 친구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아직도 학교에 이런 일이 있다니 김독수는 믿어지지 않았다. 김독수가 학교에 다닐 땐 도리어 그런 일이 없었다. 왜냐고? 김독수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다. 


어떻게 공정식이 당한 일들이 김독수에게 떠오르는 것일까. 김독수는 어디로 사라지고 공정식에게 들어온 것일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김독수는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공정식의 핸드폰을 발견했다. 문제는 비번이었다. 숫자나 패턴은 생각나지 않았다. 핸드폰 하단에 패턴표시 그림이 떴다. 잠시 망설이던 김독수가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패턴을 입력했다. 


놀랍게도 핸드폰 화면이 열렸다. 핸드폰 화면이 열리자 김독수는 잠깐동안 당황했다. 


검색포털 앱을 열었다. 


‘김독수’

  

검색어 김독수를 치자 무수히 많은 기사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놀랍고도 믿을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 김독수 선수, 쓰러진지 하루 만에 하늘로

- 김독수, 고아로 태어나 영웅으로 죽다  

- 꽃다운 청춘, 펜타곤에서 산화하다

- 챔피언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난 우리들의 고독한 영웅 

- 김독수, 급성뇌부종으로 사망···외상으로 인한 뇌손상. 경기 후유증인 듯.


그리고 존 도자를 비난하는 기사도 상당히 많았다. 


- 존 도자의 비열한 반칙으로 끝내 사망

- 한국 UFC 선수협, UFC측에 강력 항의

- 요령을 모르는 진정한 스포츠맨

- 존 도자의 선수자격 박탈해야. 

- 살인자 존 도자, 그냥 둬서는 안된다.


 .

 .

 . 


거의 모든 언론이 김독수의 죽음을 다루고 있었다. 하나같이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죽은 김독수를 애도 하는 내용들이었다. 


기사를 읽고 난 김독수···. 그만 침대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김독수가 죽다니. 내가 죽었다고.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지만 죽은 김독수의 영혼은 학폭에 시달리다 정신을 잃었던 고등학교 2학년 공정식의 몸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왜 많고 많은 사람중에 공정식이란 말인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공정식이라는 이름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알지도 못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던가?


단 한 가지, 어딘지 모르게 공정식의 조부모님은 얼굴이 익은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설명되지는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정식과의 관련성을 찿을 수 없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심 끝에 김독수는 공정식의 몸을 얻었으니 이제부터는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살라는 하늘의 뜻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하늘이 다시 한번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쉽지 않아 보였다. 공정식의 몸은 단련을 한다고 운동 선수가 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김독수는 잊어야 한다. 그리고 공정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거울 앞에선 김독수. 아니 공정식.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이건 뭐 너무 힘이 없군.’


실망스럽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정식아. 화장실에 있니?”


방대호의 목소리다. 


“잠을 얼마나 곤하게 자던지. 너 잘 자라고 좀 나갔다 왔어. 어때 정신이 좀 드니?”


공정식이 밖으로 나가자 다들 긴장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못한 정식을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잘자서 그런지 기운이 나고 기억도 돌아오는 것 같아.”

“아! 정말?”

 

다들 일제히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러면 내 이름이 뭔지 기억나?”

“전은숙 아냐. 그리고 너희들은 방대호와 허동철이고.”

“와! 정말 정신이 돌아왔네. 그럼. 하나만 더 물어 볼께. 너 이름이 뭐야?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이야?”

 

이번에는 허동철이 작은 눈을 껌벅거리며 물었다. 

 

“삼일고등학교 2학년 5반 공정식이다. 됐냐?”

“아이구, 우리 정식이가 이제 정신이 돌아왔구나.”

 

할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정식을 끌어안았다.

  

“집에 가자. 집에 가서 밥 먹자. 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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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운동 좀 해야겠다 1 24.07.24 93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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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김독수는 누구야? 24.07.21 116 4 12쪽
2 2. 김독수와 존 도자 24.07.20 133 6 12쪽
1 1. 갈취와 폭행 24.07.20 149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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