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은 빌런 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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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햄
작품등록일 :
2024.07.15 11:25
최근연재일 :
2024.08.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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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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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 영웅을 기다리며

DUMMY

“혼자 걸을 수 있겠니?”

“당연하죠.”


병원에서부터 집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 정식은 기억을 살리려 애를 썼다. 저기 어느 길로 가면 될 것 같기는 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르다니. 


‘아직은 무리구나.’


공정식의 기억이 돌아오고 있지만 전부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특히 마을과 마을 사람들, 학교 친구들···. 생각해보면 그들 중 기억이 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학교든 마을 사람들이든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알텐데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니. 

 

그러니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병원 앞 도로를 건너고 초등학교 옆길을 지나 근린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은 초등학교와 인근 주택가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고 간단한 운동기구와 벤치, 정자 그리고 화장실과 노인회관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특히 2층 노인회관은 어느 대기업 회장님이 기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외양도 아주 현대식이다. 


마침 저만치 떨어진 노인회관에서 나오는 어르신 한 분. 얼핏 보니 낯이 익은 분이다. 그런데 누구더라?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다.


“힘들면 쉬었다 가자.”


공정식을 부축하듯이 거들던 방대호가 말했다. 


“얼굴색이 좋지 않네.”

“그래. 그게 좋겠어.”

 

허동철과 전은숙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공정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요. 좀 쉬었다 가요.”

“그래그래. 그러자꾸나. 힘들지?”


공정식의 말에 할아버지가 동의했다. 

힘들지는 않았다. 아까 잠에서 깨어났을 때 느꼈듯이 몸은 가뿐했으니까. 


벤치에 앉은 정식은 주변을 살핀다. 마을의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공정식이 가진 기억이 살아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공원을 둘러싼 주택들과 상가. 식당, 병원과 약국, 부동산과 문방구 그리고 동물병원 등등. 서울이 아니더라도 어느 도시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흔한 모습이다.


노인회관에서 나온 낯익은 어르신은 뒷짐을 지고 저만치 걸어가고 있다. 대호에게 누군지 물어보려다 참았다. 


“물 마실래?”


정식을 보며 할머니가 물었다. 다친 손자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두 눈에 가득하다. 그 눈을 보는 순간 왠지 마음이 울컥해지는 공정식.


‘괜히 나 때문에···.’


할머니가 건넨 물을 벌컥 벌컥 들이켜는 공정식. 그러고 보니 목이 말랐다.


“집에 가면 할미가 니가 좋아하는 국수 삶아 주꾸마.”

“국수요?”

“그래. 국수라면 자다가도 일어나지 않니? 이 할미가 칼국수 만들어 주마. 아니면 삼겹살 꽈주랴?”


국수라는 말이 공정식의 귀에 날아들었다. 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국수라니. 


“할머니가 만든 칼국수는 최고예요.”


자신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할머니가 만든 칼국수가 최고라고?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시장통에서 국수집을 하고 있는 게 생각났다.


그래서 자주 먹던 칼국수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았다. 할머니의 정성과 솜씨가 담겨서 그런 것일까. 정식에게 지상 최고로 맛있는 음식은 할머니가 만든 애호박 칼국수였다. 


‘칼국수라?’ 


칼국수라는 말과 동시에 머릿속에 걸리는 뭔가가 있다. 불충분한 기억, 미처 살아나지 못하고 기억의 저편에서 발버둥치는 어떤 존재가 주는 거북함이었다. 칼국수와 함께하는 누군가에 대한 기억.


그 기억은 모호하기 이를데 없어서 공정식의 것인지 김독수의 것인지 불분명했다. 답답했다. 


그런 게 힘들었다. 어떤 기억들은 곧 생각이 날 듯 하다가도 저만치 물러나고 있었다. 답답했다. 대체 그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머리 한구석에 똬리를 튼 기억의 실타래가 풀리지 않았다.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기다릴 수밖에.

 

공정식은 탐색을 하듯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건 마치 산책을 나간 강아지가 동료들이 남긴 마킹자국을 더듬는 것과 비슷했다.

 

다행히 걸음 옮길 때마다 잊고 있던 공정식의 기억들이 한올한올 되살아났다.

 

마침내 집에 도착한 공정식 일행. 

 

“우린 이만 돌아갈게. 내일 봐.”

 

밥이라도 먹고 가라는 할머니의 만류에도 세 친구들 집으로 돌아갔다. 어르신들도 쉬셔야 한다. 힘드실텐데. 고등학생이지만 생각이 깊다. 

 

“들어가자.”

 

집에 들어섰다. 평범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단층 주택이다. 좁지만 나름 마당도 있다. 거실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오는 집 내부 공간. 다행히 낯설지 않다. 안방과 작은 방 두 개 그리고 화장실.


“오빠!”

 

그때 공정식을 향해 달려드는 어린 여자아이. 초등학생으로 보인다. 그런데 오빠라고? 

 

“누구?”

 

놀란 공정식.  

 

“오빠! 나야 동생 정희라고? 정신이 들어?”


“으응···.”

 

당황한 공정식. 동생이 있었던가? 여동생이? 

 

“정희야. 오빠가 아직 기억이 다 안 돌아왔단다.”

“그래. 오빠를 가만히 놔둬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공정희를 말렸다. 기억상실이라지만 동생을 못 알아보는 듯한 공정식의 태도에 당황한 조부모님들. 그리고 동생 공정희. 

 

‘정희라고? 동생? 기억이 안 나는데. 이런!’

 

낭패하기는 공정식도 마찬가지다. 동생을 몰라보다니. 당황스럽다. 하지만 어쩌랴.

 

“아아! 미안. 내가 기억이 아직 다 안 돌아와서.”

“아냐. 오빠! 곧 나아질거니까 걱정마.”

 

동생 공정희가 오빠를 위로했다. 어리지만 참 야무지고 인정이 넘치는 동생이 아닐 수없다. 그런데 집엔 여동생뿐이 아니었다.

“멍!” 


이번에 강아지였다. 녀석은 공정식을 보고서는 꼬리를 마구 흔들며 다가와 애교를 부렸다.


진돗개 백구다.

 

“영구잖아. 영구.”

“영구?” 

“응! 우리집 똥강아지. 영구.”

“아하! 그래. 맞아. 이제 생각이 난다. 영구 네 이놈. 이리 와.”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영구가 정식의 품에 달려들었다. 

정식은 달려드는 영구를 붙잡고 뒹군다. 기특하게 영구에 대한 기억은 금방 살아났다. 

 

“아유! 오빠 그만해. 하루 못 봤다고 또 이럴거야.”

 

영구랑 즐겁던 시간이 생각난다. 영구녀석 배를 긁어주면 아주 좋아해서 다리를 쩍 벌리고 드러눕는다. 그렇게 좋으냐? 거시기 보인다 임마! 배를 긁어주면 그렇게 좋아하다니. 희한 놈이 아닐 수 없다. 

  

“조금만 기다리렴.”


건강하게 돌아온 손자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려는 할머니. 얼른 주방으로 들어간다. 

 

***

 

은숙이 집에 돌아왔다. 

 

“정식이는 어떠니?”

 

밤을 꼬박 세우고 돌아온 딸을 본 엄마. 정식의 소식을 듣고 걱정을 많았다.

 

“정신이 돌아와서 퇴원을 하기는 했는데···.”

“그런데?”

 

뒷말이 궁금해서 되묻는 은숙의 엄마.

 

“다른 사람을 기억을 잘 못해. 기억상실이라고···. 기억이 다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해요.”

“뭐야? 아니 그걸 어쩌니. 기억을 못하다니.”

“처음엔 우리도 몰라보더니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기는 하더라고. 머리도 검사결과 정상이라고 하고.” 

“그럼. 다행이네. 그런데 대체 어떤 놈이 착한 정식이를 때렸다니?”

“짐작은 가지만 피해자가 기억을 못하니.”

“나쁜 놈들 얼마나 때렸으면···.”

 

안타까운 전은숙의 엄마. 정식을 어릴 때 부터 잘 아는지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쨌거나 퇴원을 해서 집에 돌아왔다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마음졸였을 정식의 조부모님이 눈에 선하다. 가슴이 찡한 은숙의 엄마.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눈을 비빈다.


세상을 떠난 정식이 엄마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그녀였다. 정식이 소식을 듣고 나니 또 눈물이 나려고 해서 견디기 힘들다. 


정식의 부은 얼굴을 되새겨보는 은숙. 

힘든 일을 겪어서 그런지 정식은 몹시 힘들어 보였다. 원래 약골이기는 해도 그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는데. 충격이 큰 듯하다.

 

이런 땐 그저 푹 쉬는 게 약이다. 오늘 하루 편히 자고 나면 또 좋아질 거다. 기억도 빨리 돌아올 테고.  


일단은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걸로 만족했다. 처음 기절한 정식을 봤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혼수상태가 계속되던 지난 하루동안 얼마나 조바심을 했던가.

 

무사히 퇴원을 했지만 아직 기억이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다른 사람이 된 듯하고 그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그런데 누가 정식에게 그런 짓을 했을까. 그 정도로 폭력을 쓸 정도면 조경태나 황기찬 같은 2학년은 아니다. 그렇다면 3학년? 그러자 몇몇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짐작이 간다.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하루가 꼬박 지났지만 아직 아무 소식이 없다. 아마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아니 어쩌면 영영 아무런 연락이 없을지도 모른다. 피해자가 기억이 불확실하니 얼마나 좋은 핑계인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늘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녀석들은 잘 나가는 부모를 등에 업고 못된 짓을 일삼는 인간 쓰레기 들이다. 


들리는 말로 어떤 녀석은 아버지가 의사고 또 어떤 녀석의 아버지는 변호사라고 한다. 또 다른 누구는 아버지가 육군 장군이라고···. 어디 그뿐인가 그 무리중에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아들도 있다. 

 

입맛이 쓰다. 그런 놈들이 무슨 짓을 한들 우리같은 시장통 사람들의 자식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빽있고 돈도 있고 우리 보다 공부도 잘한다. 고액과외를 하고 비싼 학원에 다닌다.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식이 사건은 억울하지만 어떻게 해볼 방법이 마땅치 않다. 기억이 온전치 않은 나약하고 어린  피해자와 국수집을 운영하는 늙은 조부모가 뭘 할 수 있을까.

 

정글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런 세상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지만 방법이 없다. 은숙은 낙담한다. 정식의 억울함을 풀어줄 방법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서 출세를 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냐고···.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고 하던데.

 

쾌걸 조로, 배트 맨, 수퍼 맨, 원더 우먼, 스파이더 맨 등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영웅들을 떠올려 보는 은숙. 

 

영화에는 많던데. 왜 현실에는 그런 영웅이 없는 걸까? 정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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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운동 좀 해야겠다 1 24.07.24 92 4 11쪽
» 5. 영웅을 기다리며 24.07.23 98 5 11쪽
4 4. 나는 누구인가 +1 24.07.22 106 2 11쪽
3 3. 김독수는 누구야? 24.07.21 116 4 12쪽
2 2. 김독수와 존 도자 24.07.20 132 6 12쪽
1 1. 갈취와 폭행 24.07.20 149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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