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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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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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이제 거리낄 게 없어진 에테베는 870년 봄 트란베스트의 독립을 차근차근 추진해나갔다.




바손의 기마대는 완전 해체해 기존 보병부대와 혼합해 새롭게 편성함으로써 바손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웠다. 정부 조직은 프란디아의 조직을 그대로 본따 개편했다.




바손을 처리하긴 했지만 곧바로 독립을 선포하지 않은 것은 울루모츠의 형이 여전히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에테베에게 있어서 도들란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고, 형에 대한 원초적인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세작으로부터 전해진 소식을 종합해 보면 도들란은 점점 정사를 멀리하는 것은 물론 건강마저 크게 악화되고 있었다. 데고르의 전횡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발리마츠는 온갖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혼돈의 왕국으로 변해 있었다.




독립을 선포하지 않았을 뿐 트란베스트는 871년부터 발리마츠에 조공조차 보내지 않는 사실상 독립 국가였다. 이에 대해 발리마츠의 일부 대신들은 발끈했지만 도들란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데고르에게 정사를 맡긴 채 오랫동안 은둔 생활을 이어가던 도들란의 건강은 점점더 악화돼 갔다. 873년 이후에는 병석에서 단 한 번도 일어서질 못해 죽는 날까지 단 한 번도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들은 차기 대권을 누가 쥘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졌고 국가 운영은 날이 갈수록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마침내 877년 2월 호튼족을 통합해 최초로 왕조를 창업하고 프란디아를 공포로 뒤덮게 만들었던 도들란이 5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도들란이 사망했을 무렵 발리마츠는 생기 발랄했던 창업 초기와는 달리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도적들이 들끓는 등 왕조말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부족이 이탈하는 등 통일왕조가 와해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불로장생을 꿈꿨던 도들란은 황태자를 책봉해놓지 않았다. 일부 대신들은 후계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진언했으나 오히려 황제의 미움만 사 삭탈관직되거나 심지어 옥에 갇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런 황제의 붕어는 울루모츠 정가의 혼란을 부추겼다. 큰아들 베지오투가 승계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지만 다른 형제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태자들은 제각각 외척들과 손을 잡고 차기 황제에 오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런 도들란의 자식들간의 권력투쟁과 함께 울루모츠 조야의 관심은 분봉왕 에테베의 행보에도 집중됐다. 황제국에 대한 예도 지키지 않는 에테베가 황권을 노리고 울루모츠로 진격해올 가능성은 충분했다.




이들의 두려움과 달리 에테베는 사실 피로스 산맥 너머의 땅에는 관심이 없었다. 도들란이 사라졌지만 에테베에게 울루모츠는 여전히 께름직한 도시였다.




울루모츠 조야는 에테베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황제의 장례식에 와서 조문할 것을 요구했다. 저들의 의도가 뻔한데 멍청하게 호구에 머리를 들이밀 만큼 에테베가 멍청하지는 않았다. 에테베는 프란디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이유를 들어 일언지하에 조문을 거부했다.




에테베의 이 같은 행동은 울루모츠 조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일개 분봉왕이 황제의 장례식에 조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충 중의 불충이었다.




에테베는 조문 대신 사신을 통해 조전을 보내왔는데 그 내용 또한 발칙하기 그지없었다. 황제의 신하로서 보낸 게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보낸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울루모츠 조야가 자신을 다음 황제로 추대한다면 그 자리에 앉아줄 아량을 베풀 마음이 있다는 뜻을 은근히 내비쳤다. 울루모츠가 지배하는 트란베스트가 아니라 베르린츠가 지배하는 발리마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에테베의 발칙한 행동에 누구보다 분노한 사람은 베지오투였다. 아버지를 능멸한 에테베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베지오투는 울루모츠 중신들에게 하루빨리 자신을 황제로 추대할 것을 종용했다.




울루모츠 중신들은 바손 처형 이후 에테베라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런데 잘못하다가는 발리마츠가 통째로 에테베에게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외부로부터의 위기는 내부를 결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중신들은 차기 황제를 선출하는 원로회의의 개최하기로 했다. 도들란이 황제가 될 당시에는 부족장 회의였으나 황제가 된 이후 통일국가에서 더 이상 예전 부족은 의미 없다며 원로회의로 바꿨다.




원로회의는 즉시 베지오투를 발리마츠의 2대 황제로 추대하고 도들란의 장례식을 치른 뒤 3월 즉위식을 거행했다.




베지오투는 황제의 눈과 귀를 흐리고 기만했다는 죄명으로 무당 데고르를 능지처참한 뒤 그 시체를 까마귀 밥으로 던져주었다.




데고르 제거와 함께 대대적 숙청이 시작됐다. 먼저 자신의 황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은 형제들을 모조리 역모죄로 엮어 참수형에 처했다.




부정부패 척결을 선포한 뒤 부패한 권력층에 대한 숙청도 시작됐다. 여기에는 바손의 아들 레비우를 앞장섰다. 국가 재정을 좀먹은 죄인들은 모조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등 울루모츠는 한동안 시산혈해의 도시가 됐다.




베지오투는 즉위 1년이 채 되지 않아 구악을 일소하고 발리마츠에는 다시 통일 초기처럼 활기를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제국 내부를 정리한 베지오투의 다음 타깃은 에테베가 있는 트란베스트였다. 베르린츠로 사신을 보내 작은아버지 에테베에게 황도에 입조해 충성서약을 하라는 칙명을 전했다.




"뭐? 나보고 입조를 하라고? 어린 놈이 황제가 되더니 겁을 상실했구만..."




에테베는 콧방귀를 뀌며 황제의 칙명을 담은 서신을 사신 앞에 내던졌다.




어전에 모여 있던 중신들은 에테베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명목상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분봉국 트란베스트의 주인은 황제였다. 그런 황제의 조칙을 담은 서신을 내던지는 행위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사신은 듣거라. 이곳 트란베스트는 더 이상 발리마츠의 분봉국이 아니다. 난 분봉왕 에테베가 아니라 트란베스트의 국왕이니라. 너희 황제에게 가서 내 뜻을 똑바로 전하거라."




사신으로부터 에테베의 행동을 전해들은 베지오투는 격노했다. 베지오투는 에테베가 아버지 도들란의 후광 덕에 분에 넘치는 지위에 올랐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에테베를 봐왔던 베지오투는 그 용렬한 인물됨도 잘 알고 있었기에 에테베를 얕잡아보고 있었다.




"대신들은 들으시오. 트란베스트의 분봉왕 에테베가 감히 짐을 능멸했소. 내가 가만히 있는다면 내가 자기를 두려워 하는 줄 알 것이오. 내 즉시 트란베스트 정벌에 나서겠소."




바손의 아들 레비우가 베지오투 앞에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폐하, 에테베는 저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이옵니다. 부디 정벌군의 선봉을 저에게 맡겨 주시옵소서."




"오, 레비우 경. 걱정마시오. 선황 폐하의 기일이 곧 다가오니 그때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트란베스트 정벌에 나설 것이오."




베지오투는 즉각 트란베스트 정벌을 결정하고 휘하 장수들에게 전쟁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서른세 살의 젊은 베지오투는 투지가 끓어 올랐다.




878년 2월 전대 황제의 제사를 지낸 후 늑대의 피를 마시며 '트란베스트 정벌'을 선언했다. 베지오투는 레비우와 함께 직접 선봉에 서서 15만 기병대를 거느리고 피로스 산맥을 넘었다.




에테베는 에테베대로 베지오투를 평가절하했다. 형 도들란은 무서웠지만 조카 베지오투는 자기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다.




바손 2만 기마대를 해체한 후 이를 토대로 새로 육성한 10만 기병대와 20만 보병군단이면 베지오투 군대를 충분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전하, 발리마츠의 기마대가 피로스 산맥을 넘었다고 하옵니다."




"즉각 응전하도록 하시오."




에테베의 예상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크게 빗나갔다. 다섯 방향으로 나뉘어 진격해온 베지오투의 기마대는 거침 없이 트란베스트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베지오투는 카리스마가 부족하긴 했어도 용맹성이나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아버지 도들란을 꼭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지오투의 군대는 피로스 산맥을 넘자마자 하셀트에서 에테베 군대를 격파한 후 채 열흘이 지나지 않아 젠크, 아렌 등 주요 거점지역을 점령해나갔다.




예전 도들란의 침략 때보다 속도가 느렸던 이유는 트란베스트를 완전히 복속시키기 위해 각 지역들을 하나씩 세밀하게 점령해가는 전술을 구사했기 때문이었다.




베지오투 군대는 트란베스트의 수도 베르린츠까지 이틀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인 글라츠 평원까지 도달했다. 광활한 평원에 단단한 성벽으로 도시 전체가 둘러싸인 글라츠성은 수비하기가 용이한 곳이었다.




글라츠를 우회해 베르린츠로 가는 방법도 있었으나 전략적 요충지인 글라츠를 건너 뛰고서는 보급선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시간을 더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곧바로 글라츠성 공략을 결정한 베지오투는 평원에서 야영을 하며 후발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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