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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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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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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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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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울루모츠의 상황을 세작으로부터 전해 들어 잘 알고 있던 에테베는 이참에 트란베스트를 발리마츠로부터 독립시키고 싶었다.




가장 걸림돌은 사사건건 자신의 일에 훼방을 놓고 있는 바손의 존재였다. 바손과 더불어 휘하 고지대 출신 호튼족 장수들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독립은 불가능했다.




2만에 달하는 기마병의 존재는 외부의 적을 막는 방패이기도 했지만 에테베 자신을 찌를 수 있는 흉기이기도 했다.




에테베는 바손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고 이를 위한 계략을 꾸몄다. 웬만한 죄로는 발리마츠 왕국 최고의 공신인 바손을 제거하는 게 불가능했다.




트란베스트로 올 당시 바손은 황제로부터 사면권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역모 이외에는 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역모혐의는 조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매수해야 하는 대상도 많았다. 무엇보다 바손 휘하 장수들의 반발도 의식해야 했다.




한참 고민하던 에테베는 아주 추잡하고 파렴치한 범죄혐의를 씌워야 손쉽게 제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에테베는 최근 결혼한 왕세자의 부인 왕세자비의 생일 연회일을 거사일로 잡았다. 869년 10월 왕세자비의 생일을 맞아 왕실 친인척 및 중신을 모두 왕궁으로 초청해 연회를 벌이기로 돼 있었다.




에테베는 왕세자비의 생일 연회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바손에게 보냈다. 에테베의 초청장을 받았을 때만해도 바손은 시큰둥했다.




하지만 초청장에 동봉된 에테베의 친서를 읽고서 마음을 바꿨다. 서신에서 에테베는 어린 시절 자신을 친동생 이상으로 돌봐준 바손에 대한 감사함과 앞으로 오해를 풀고 잘 지내보자는 뜻을 밝혔다.




절절한 사연을 담은 에테베의 서신을 보자 얼어붙었던 바손의 마음이 약간 녹아내렸다. 어린 시절 에테베의 귀여웠던 모습을 떠올리자 바손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느 날 바손은 사냥을 나갔다가 도들란을 만났고, 사냥감을 두고 경쟁하다 서로 호연지기가 통해 곧바로 의형제를 맺었다.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형 때문에 후계자가 될 수 없었던 바손은 도들란을 사실상 주군으로 모시며 어디든 함께 다녔다.




후계자 수업을 받느라 바쁜 도들란 대신 네 살배기 에테베를 돌봤던 사람은 다름아닌 바손이었다. 에테베도 친형처럼 바손을 따랐고, 둘의 관계는 누가 보더라도 친혈육 이상의 끈끈한 관계였다.




에테베가 잘못을 했을 때 이를 감싸준 이도 대부분 바손이었다. 도들란은 친동생의 일이라 대놓고 끼어들기가 난감했다. 하지만 바손은 주변 시선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에테베를 감쌌다.




'그래, 이 기회에 에테베와 그동안 쌓였던 감정을 풀자.'




바손이 연회 참석을 결정하자 수하들은 즉각 만류했다. 둘의 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상황에서 연회 참석 요구가 수상하다는 게 이유였다.




바손은 수하들의 만류를 뿌리쳤다. 바손에게 에테베는아직 어린애였다. 감히 발리마츠 최고 개국공신이자 황제의 의형제인 자신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라 자신했다.




호위병이라도 많이 대동하라는 수하들의 요구도 물리쳤다. 바손은 마부를 포함해 단 6명의 호위만을 대동한 채 에테베의 궁전으로 향했다.




에테베는 이런 바손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자신을 어린애로 보고 있다는 것과 과도한 자신감으로 호위도 많이 대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에테베는 바손이 도착하기 전 왕실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금의위장 제베에게 바손을 옭아맬 수 있는 음모를 꾸미라고 사전에 지시해두었다.




제베는 경호를 핑계로 음식을 마련하는 주방을 장악한 뒤 에테베가 바손에게 하사할 술에다 미리 몽혼약을 탔다. 바손을 잡을 무대는 마련됐고 준비도 끝났다.




이러한 흉계가 있는지 꿈에도 모른 채 바손은 에테베의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바손 형님,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의 앙금은 풀고 오늘은 그냥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자, 제 잔부터 먼저 받으시지요."




어전회의에서 얼굴을 붉히며 언쟁을 벌였던 에테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바손은 이날 초대가 에테베의 진심이라고 생각해 주는 대로 술을 넙죽넙죽 받았다.




"전하께서도 한 잔 받으시지요.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서로 술잔을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점점 연회의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벌써 술이 거나하게 올라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사건은 자정이 다가올 무렵 벌어졌다. 에테베로부터 술잔을 여러 잔 받아 마신 바손은 왠일인지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워낙 술이 센 탓에 10만 기마병과 대작해도 이길 사람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바손이었다. 하지만 몽혼약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아니, 제가 듣기로는 바손 형님을 취하게 만들려면 울루모츠의 모든 양조장을 비워야 한다고 했는데 오늘따라 좀 취하신 듯 하십니다. 하하하."




바손도 자신이 이렇게 취하는 영문을 몰랐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




바손은 분봉왕의 면전에서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정신을 깜빡깜빡 잃어가던 바손은 언제부터인지 귀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연회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프란드어로 바뀌어있었다.




호튼족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바손은 프란드어를 전혀 익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바손은 정신이 혼미해지고 사람들의 말도 알아듣지 못하자 짜증이 났다. 그냥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에테베에게 양해를 구했다.




"전하, 오늘 피곤한 탓인지 술이 많이 올랐습니다. 혹여 전하께 실수할까 두려우니 이만 물러나겠사옵니다."




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라였다. 마음은 일어섰다고 생각했는데 다리가 쭉 펴지지 않았다. 겨우 두 다리로 지탱하며 섰으나 곧 다리에 힘이 풀려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바손 형님, 괜찮으십니까? 여봐라 바손 형님께서 많이 취하셨으니 영빈관으로 모시도록 하여라."




바손은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니옵니다, 전하. 어찌 제가 사사로이 궁 안에 머물 수 있겠사옵니까. 제 호위들을 불러 갈 터이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바손은 다시 일어서 테이블 사이를 지나쳐 가려 하다 중심을 잃고 테이블 위로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음식이 담긴 접시를 손바닥으로 짚는 바람에 음식물이 튀어 테이블에 앉아 있던 참석자들 옷을 버렸다.




"시위들은 무얼 하는 게냐? 바손 장군께서 대취하셨으니 냉큼 부축해 영빈관으로 모시거라."




에테베 뒤편에 있던 시위 두 명이 다급하게 뛰어가 바손의 양어깨를 부축해 일으켰다. 바손은 이들을 내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전하, 추태를 보여 항공하옵니다. 소신은 정말 괜찮사옵니다. 귀가를 허락해주시옵소서."




에테베는 바손의 주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에테베의 손짓에 시위는 바손을 부축한 채 연회장을 벗어났다.




바손으로 인한 약간의 소동은 트란베스트를 축원하는 에테베의 건배 제의와 함께 참석자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왕궁을 자주 드나들었던 바손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영빈관의 위치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연회장에서 나와 왼쪽으로 돌아 가야 하는데 시위들은 오른쪽으로 돌아서 가기 시작했다.




"이... 이쪽 방향이 아니지 않나?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장군님, 이쪽이 맞습니다. 지금 장군님께서 대취하셔서 방향 감각이 없는 듯 합니다."




이들의 말이 미심쩍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걸어 가자 저 멀리 화려한 장식과 조각상들로 뒤덮인 아름다운 건물이 나타났다.




건물 앞에 다다르자 대기하고 있던 시녀 두 명이 곧바로 문을 열어 안으로 안내했다. 바손은 아무리 생각해도 영빈관이 아닌 것 같았지만 저항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여러가지 꽃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술이 깰 정도로 강렬한 향기였다.




바손을 부축한 시위들은 바손을 복도 맨 끝에 있는 방으로 안내한 후 문을 닫고 나갔다. 방 안은 뭔가 기분을 야릇하게 만드는 향기가 가득했다. 바손은 어쩔 줄 몰라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런데 향기를 맡으면 맡을수록 뭔가 알 수 없는 욕정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몸은 이미 술에 취해 가누지 못할 정도였는데 바손의 남성은 강한 자극을 받은 듯 빳빳했다.




"아~~."




여인의 야릇한 신음소리가 바손의 귓가를 때렸다. 하얀 휘장으로 둘러쳐진 침대 위에 속이 비치는 속옷만을 걸친 여인이 누워 있었다.




'여긴 어디지? 저 여인은 도대체 누구지? 에테베가 날 잡기 위해 만든 함정인가?'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침대 위 여인은 교태를 부리듯 몸을 비비 꼬았다. 바손은 자기도 모르게 침대 위를 응시했다.




휘장 안의 여인은 새하얀 허벅지를 드러낸 채 옆으로 누워 있었다. 이 여인도 향기에 취해 욕정을 느끼는 듯 신음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바손의 눈은 여인에게 고정돼 있었다. 여인이 자세를 고치려 다리를 움직였을 때 여인의 은밀한 부위가 스치듯 드러났다. 더 있다가는 무슨 일을 벌일 지 스스로 두려웠다.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바손은 뒤로 돌아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기 위해 막 손잡이를 잡으려는 찰라였다.




"아흑~!"




바손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침대 위 여인은 두 팔을 두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는 잔뜩 웅크린 자세로 몸을 꼬았다.




자신을 유혹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점점 바손의 본능을 잡아두고 있는 이성의 끈이 풀리고 있었다.




바손은 트란베스트 원정을 온 이후 1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울루모츠에 남겨진 부인과 부부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5년 전 황제 즉위식에 참석하기 위해 울루모츠를 방문했을 때도 사람들과 만나느라 바빠 집에서는 잠시 잠만 자고 트란베스트로 귀환했었다.




그럼에도 금욕적인 성격에다 부인을 워낙 사랑했던 바손이었기에 지금껏 어떤 여성과도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휘하 장수들이 일부러 기녀가 있는 술집으로 바손을 초청해 여자를 품에 안겨줬을 때도 흔들림이 없었다. 부하들이 노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여자와 동침하는 척만 했을 뿐 전혀 손 대지 않았다.




그런데 몽혼약이 첨가된 술과 성욕을 끓어오르게 하는 향기, 요염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있는 아름다운 여인 등 천하의 바손도 스스로 의지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다.




바손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침대 앞으로 다가와 휘장을 걷고 있었다. 휘장을 걷자 사실상 알몸이나 다름없는 여인의 아름다운 육체가 훤히 눈에 들어왔다. 바손의 본능을 붙잡고 있던 마지막 이성의 끈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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