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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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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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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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DUMMY

"좋소. 이 말을 듣는 대신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이미 목숨을 걸고 공작 각하를 만나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드라구노프는 극비사항인 쿠데타 계획에 대해 자세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현재 수십 명의 장군들이 쿠데타에 참여했으며 거사일은 앞으로 사흘 뒤인 8월29일이라고 했다.




그날 왕실 친인척들이 모두 참가한 가운데 벨라시타에서 20km가량 떨어진 노르트폴에서 사냥이 열리기로 돼 있었다. 군터스가 듣기에 드라구노프의 계획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그럼 코를리우스 1세를 폐위시킬 계획이십니까?"




"당연하오. 실정에 대한 책임을 게오르크에게만 묻는다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소. 자 나의 패는 모두 보았으니 이제 회장께서 찾아온 이유를 말씀해주시오."




군터스는 일단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저희 상인들이 공작 각하의 계획을 적극 지지하며 이를 돕겠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드라구노프는 예상했다는 듯 만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돕겠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저희들이 무슨 물리적인 힘이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가진 건 하나밖에 없는데... 아무래도 이런 거사를 치르다보면 많은 자금이 소요될 텐데 저희들이 미력하나마 이 부분을 지원하겠습니다."




그렇잖아도 자금지원을 부탁할 참이었는데 이렇게 먼저 도와주겠다고 하니 기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내일 비스트로비체 회장을 비롯해 볼프그라트 은행장 등을 만날 예정입니다. 이들에게도 이번 거사의 의의를 설명하고 동참을 촉구할 계획입니다."




"이거 정말 고마운 일이구려. 혁명을 앞두고 아주 좋은 징조입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혁명군에게 필요한 자금을 제공한다고 약속했으니 그 반대급부를 요구해야 했다.




"알고 계신 지 모르겠지만 저희들이 거사에 동참하려는 이유는 공작 각하의 이상이 스피글리츠 공작께서 추진해오신 각종 개혁들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있습니다."




드라구노프는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이었다. 상인들이 아무 조건 없이 자금지원을 약속할 리 없었다.




"말씀해보시오. 불가능한 게 아니면 당연히 들어드려야지요."




군터스는 녹인장 제도부터 시작해 게오르크 집권 후 행해진 각종 반상공인 정책의 즉각적인 폐지를 주장했다. 그리고 집권 이후 상공업을 장려할 수 있는 정책을 새롭게 추진해줄 것을 부탁했다.




군터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드라구노프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군터스는 뭔가 실수한 게 아닌가 갑자기 두려워졌다.




"회장의 뜻은 잘 알겠소. 게오르크가 행한 각종 반개혁 정책은 당연히 폐기될 것이오."




"감사합니다."




"다만 회장께서 말한 상공인 우대정책은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할 부분이오. 기존 반개혁 정책만 폐기해도 사실 상공인들로서는 큰 혜택 아니겠소. 그런데 거기다 상공인들을 우대하는 정책이라... 이 부분은 향후 더 논의를 거쳐야 할 듯하오."




"네 알겠습니다, 공작 각하."




일단 기존 반상공인 정책의 폐기를 약속받은 것만으로도 드라구노프와의 성공적인 만남이었다. 상공인 우대정책은 군터스 회장이 반응을 보기 위해 한 번 찔러본 것이었다.




"내일 비스트로비체 회장을 어디서 만날 예정이오?"




"아마 제 건물에 있는 비밀 회의실이 될 것입니다."




"내가 직접 그곳으로 가서 다른 상공인들을 만나보겠소. 군터스 회장이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 혹시 모르니 내가 가서 직접 설명하고 동참을 촉구하겠소."




일단 만나자고는 했지만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던 군터스 회장으로서는 더없이 반가운 말이었다.




"공작 각하께서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다된 밥이나 다름없습니다. 내일 저녁 늦게 만날 계획인데 시간이 정해지면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991년 8월27일 늦은 오후.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을 모이라고 한 건 중요한 안건에 대한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오."




슈테판 군터스 상공인연합회장은 이날 모이기로 한 5명의 참석자가 모두 자리에 앉자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뗐다. 참석자는 군터스 회장을 비롯해 볼프그라트 은행장 앙겔 볼프그라트, 라이히차이퉁 사장 드미트리 일리치 블레어노프, 섬유협회장 귄터 타운젠트, 융엔조선 회장 코닌 비스트로비체 등이었다.




군터스는 전날 급하게 이들에게 서신을 보내 최근 정세와 관련해 급히 의논할 게 있다며 한 자리에 모이게 했다. 이들은 모두 최근 벨라시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터라 다른 일을 제쳐두고 두말없이 참석했다.




군터스의 말에 참석자들은 별다른 말 없이 조용히 군터스의 입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군터스는 일단 상황 설명부터 시작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6년 전 느닷없이 시행된 녹인장 제도로 인해 무역은 급감하고 상공업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습니다. 흉년이 몇 년간 계속되면서 농민들의 살림살이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오늘날과 같은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소이다."




군터스가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참석자들 모두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모두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말을 빙빙 돌리는 지 의아했다.




참다못한 비스트로비체가 중간에 말을 끊었다.




"군터스 회장님, 바쁜 사람 불러다 놓고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하는 건 시간낭비 아닌가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으면 좋겠군요."




군터스는 자신의 말이 끊기자 기분이 나쁜 듯 비스트로비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비스트로비체 회장님은 성질 급한 건 여전하시군요.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의논할 주제와 깊이 연관돼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설명은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니 그럼 본격적으로 오늘 안건을 말씀드리겠소."




군터스는 말을 마치며 블레어노프 쪽을 바라보았다. 블레어노프에게 먼저 이야기하라는 듯 보였다. 블레어노프가 바통을 넘겨받아 말을 이어갔다.




"지금의 왕실이 지속된다면 우리 프란디아는 30년 전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각 제후국들은 저마다 상공업을 장려하고 무역에 힘을 쏟으면서 국가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각종 개혁정책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고, 새로운 정책은 오히려 우리 신흥자본가들을 옥죄어 오고 있습니다."




비스트로비체는 블레어노프의 말에 공감했다. 녹인장 제도 시행 이후 무역이 크게 줄면서 새로운 배에 대한 수요가 사라져버렸다. 융엔조선은 외국에서 일감을 가져오는 등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근근이 회사를 유지해오고 있으나 다른 군소 조선소들 중 열에 아홉은 이미 문을 닫았다.




"블레어노프 사장님의 말씀이 맞아요. 저희 회사도 이대로 가다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뭔가 획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해요."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타운젠트도 끼어들었다.




"우리 면직물 사업도 힘들긴 마찬가집니다.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국내 산업이 보호되기는커녕 면화에 대해 높은 세율이 부과돼 제품 가격만 올라갔어요. 그리고 외국도 보복관세를 부과해 수출길도 막혀버렸습니다."




"그래서..."




참석자들이 중구난방으로 이야기하며 분위기가 흐트러지자 군터스가 큰 소리를 내며 좌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래서 오늘 모이자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정부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에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합니다."




'모종의 조치'라는 군터스의 말에 좌중은 갑자기 말을 잃고 실내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깬 사람은 다름아닌 성질 급한 비스트로비체였다.




"군터스 회장님, 모종의 조치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말씀해주셔야죠. 다들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군터스는 두어 차례 헛기침을 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여기에 다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들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습니다. 이건 제가 양해를 구해야 할 사항 같군요."




지금껏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볼프그라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는 게 아무래도 어떤 정변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군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볼프그라트 은행장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군부에서 나서기로 했습니다. 군부에서 조만간 혁명을 일으켜 기존의 정부를 전복시키고 다시 막시밀리언 국왕 집권 초기처럼 국가를 활기차게 만들 것입니다."




혁명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비스트로비체, 타운젠트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뭔가 정부의 전향적인 정책 정도를 기대했던 이들은 혁명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이 들었다. 모든 것이 뒤집어진다면 현재 자신들이 향유하고 있는 기득권도 사라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코반트 대륙으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가 개척된 이후 매년 면직물, 올리브유, 와인, 가죽 등 다양한 생필품 수출이 늘었을 뿐 아니라 코반트의 향신료, 면화 등을 싸게 들여올 수 있게 돼 상인들의 재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은행들은 상인들에 돈을 빌려줄 기회가 늘어나면서 이자 수익이 늘었고, 무역선 건조가 활발해지면서 조선업도 호황을 이어가고 있었다.




도시의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대거 몰려들기 시작했다. 각 지역 영주들은 농민들의 무단 이탈에 대해 강력 대응을 외쳤지만 행정력이 느슨해진데다 새로운 삶을 갈구하는 농민들의 강한 욕구를 힘으로 누를 수 없었다.




하지만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일꾼들의 봉급은 오히려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시는 어느덧 농촌출신들이 빈민화 되면서 새로운 골칫거리를 떠안게 됐다.




한편 시류에 편승해 빠르게 사업기회를 잡은 한 줌도 되지 않는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면서 새로운 특권층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커진 경제적 영향력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신흥자본가들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현재에 만족하고 있었다.




비록 최근 몇 년간 정부의 정책이 거꾸로 가면서 상공인들을 옥죄고 있긴 하지만 이는 상공인 계층의 단기간 급성장에 대한 기존 귀족들의 반발 정도로 생각했다. 결국에는 정부도 상공인들을 완전히 내칠 수 없다는 게 비스트로비체와 타운젠트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혁명이라니... 잘못하면 역모를 뒤집어 쓰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현재의 체제가 유지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비스트로비체가 군터스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군터스 회장님, 저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혁명과 같은 불확실한 일에 제 목숨과 사업을 걸고 도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안 들은 걸로 할테니 전 빼주십시오."




군터스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치며 비스트로비체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이미 들은 이야기를 어떻게 안 들은 것으로 한답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어요. 만약 동참하지 않으신다고 하더라도 혁명이 일어나는 그날까지 신체적 자유는 박탈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스트로비체는 뭔가 단단히 잘못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혁명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기나 해야할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그럼 혁명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비스트로비체가 더 크게 반발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만약 비스트로비체가 계속 비토를 놓았다면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을 터였다.




"게오르크 경의 국정농단이 계속되는 한 우리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그는 귀족들의 특권 강화에만 관심있을 뿐 우리 같은 신흥자본가를 멸시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귀족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공업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도자를 우리 손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비스트로비체가 군터스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누가 있을까요?"




"공작 각하, 안으로 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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