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자 생활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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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딴곰
작품등록일 :
2024.07.22 23:16
최근연재일 :
2024.09.1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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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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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DUMMY

처음 눈을 떴을 때 나는 검은 방 안에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밝은 빛과 함께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더니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쿵!


고통이 온몸에 퍼져 나갔다. 아마도 바닥에 그대로 내동댕이쳐진 것 같았다.


“끄응.”


말도 못 하는 그때, 웅성거리는 소리 속에서 비교적 또렷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마지막 사람이 오셨어요!”


‘마지막 사람?’


의문과 함께 나는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인 것은 나를 둘러싼 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여긴 도대체?”

“일단 일어나보시죠. 여기로 온 이상 우리는 모두 동지니까.”


나를 둘러싼 이들 중 잘생긴 남자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흠흠.”


내가 손을 잡지 않고 빤히 보고있자, 그가 무안한 듯 소리를 내었다.


“아, 미안하군요.”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일어나는 순간 고통이 다시 한번 엄습하였다. 아무래도 떨어질 때의 충격이 상당했던 듯싶었다.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자 여섯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뚱뚱한 남자, 머리가 벗겨진 노인, 여학생, 문신이 있는 남자, 잘생긴 남자, 그리고 평범한 젊은 여자까지. 연령도 성별도 다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있었다.


바로 하얀 환자복을 입고 있다는 거였다.


“으, 왜 미소녀짱이 오지 않은 거냐능.”

“요즘 것들은 왤케 어른 공경이 없어! 사람을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 할 거 아니야?”

“하아, 또 남자야? 역겨워.”


저마다의 투정소리. 그때


“뭘, 그렇게 봐요. 당신도 똑같잖아요?”


처음 들었던 젊은 여자의 목소리.

그녀의 말에 나는 나 또한 이 괴상한 집단과 마찬가지로 환자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였다.


“이게 대체 무슨.”

“그러게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그녀는 생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하나 확실한 거라면 게임을 하다가 끌려왔다는 거겠죠?”

“레메게톤?”

“네. 바로 그 망할 게임 말이죠.”

“...”


그녀의 입에서는 험한 말이 나왔지만, 표정은 여전히 생글생글하였다. 마치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짜릿하지 않아요? 만약 이게 게임에 빙의 된 거라면 판타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거잖아요! 마법을 쏘고 몬스터들을 마구 잡고!”

“아니요. 저는 별로 좋지 않은데요?”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21세기의 평범한 인간이다. 굳이 현대 문물의 평안함을 잊고 중세의 시대상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것도 이 세계관이 레메게톤의 세계관이라면 악마들이나 나오는 그 끔찍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 대답에 여자는 적지 않아 당황한 듯 보였다.


“네? 왜요?”

“그것보다 혹시 아까 말했던 마지막이라는 뜻은?”


그때 갑자기 문신 남자가 끼어들었다.


“자자, 민정 씨는 잠시 가만히 있으시고. 이봐, 말랑깽이. 너 인마, 딱 봐도 집에서 게임만 하던 부적응자 새끼인 거 같은데, 처신 잘해 알았어?”


남자는 거칠게 내 가슴팍을 밀치려 하였다. 허나, 나는 반사적으로 남자의 손을 피했고 남자는 헛손질을 하였다.


남자의 인상이 구겨졌다.


“하나, 이 새끼가.”


남자는 화가 난 듯 거칠게 말하였다.


“이 씹새끼가 내 손을 피해?”

“그럼 피해야지. 알고도 맞아주리?”

“이 새끼가!”


남자는 몸집을 앞세워서 빠르게 돌진해 왔다. 과연 사회에 있을 때 싸움 좀 해본 놈인지, 녀석은 빠르게 내 몸을 잡고 마운트 자세로 들어가려 했다.


쿵!


“큭.”


아까 있었던 고통이 배가 된다. 놈은 그 상태에서 내 얼굴을 때리기 위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으, 너무 폭력적이라능.”

“하여튼 요즘 젊은것들은 못 배워 먹어서 주먹질부터 나간다니까!”

“역시 남자들은 야만적이야! 역겨워!”


무리에 있는 사람들이 떠들어대었지만, 정작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유일하게 아까 처음 손을 내밀었던 남자가 조폭의 주먹을 막았다.


“한성 씨. 잠깐만요. 우리끼리의 싸움은 아직 금물입니다!”

“씨발, 놔라고. 이런 삐뚤한 새끼는 초장에 정신을 차리게 해야한다니까?”

“그 부분은 맞지만... 아직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저희끼리의 다툼은 전력을 약화시킬 뿐입니다!”

“그러면 어쩌라고.”

“차라리...”


그 말을 한 후 남자가 양아치에게 무언가 속삭였다. 그러자 양아치는 주먹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남자와 양아치의 시선이 맞닿았다. 남자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양아치는 결국 주먹을 쥔 손을 풀었다.


“후우, 씨발!”


양아치는 욕설을 한차례 내뱉고는 일어섰다. 허나, 고분고분 말을 따르는 게 싫었는지 내 배를 지긋이 무릎으로 눌렀다.


끅, 치사한 새끼.


배에 고통을 느끼며 나는 놈을 노려보았다. 놈 또한 나를 노려보았지만, 이내 눈을 거두고 걸어갔다.


“일어나시죠.”


엘리트 남자가 쌀쌀맞게 말했다.


“한성 씨가 잘한 건 아니지만, 당신도 잘한 것 같진 않군요. 이럴 때일수록 모두가 협조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모르십니까?”

“...”


내가 아무말도 안하고 있자 남자는 한숨을 푹 쉬었다.


“휴, 말을 아끼겠습니다. 그것보다는 이제 저를 따라오시죠.”

“따라오라고요?”


내 반문에 남자가 말하였다.


“네, 아까 민정 씨에게 듣지 않았습니까? 마지막 사람이라고.”

“그래서 그 마지막 사람이란 게 뭔데요?”

“저기 앞을 보시죠.”


남자의 말에 앞을 본 나는 곧 거대한 신전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그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저곳으로 가시면 자연적으로 그 뜻을 알게 될 겁니다.”


그 말을 마치고 남자도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참, 제 이름은 백슬한입니다.”


남자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백슬한? 설마 그 백슬한?”

“아, 저를 아시나 보군요.”


레메게톤의 전설적인 게이머. 그 남자가 백슬한이었다. 이 남자가 만든 길드, 황혼의 사자단은 아직까지도 전서버 1등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 현실에서는 엄청난 재벌이라던데.’


그가 입찰한 경매에서 상회입찰은 꿈에도 못 꿀 정도라고 정평이 나있을 정도였다.


‘얼굴까지 잘생겼다니.’


육각형의 남자 그 자체였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유진입니다. 유명인사를 못 알아뵈었네요.”

“하하,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아유진? 어디서 들은 거 같은데... 혹시 솔플 공략을 주로 쓰시지 않습니까?”

“아, 맞습니다! 제가 그 솔플러 거든요.”

“하하, 한 번 재미난 리포트가 있길레 관심 있게 읽은 적이 있었죠. 그게... 리콴이었나?”

“리콰이어 던전 말입니까! 그게 참 어려운 던전이었죠! 그때 제가 어떻게 플레이 했냐면...”


나는 흥분감과 동시에 고취감을 느꼈다. 랭커 플레이어도 내 플레이 방식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나는 걸어가며 계속해서 백슬한에게 말을 걸었고 그럴 때마다 백슬한은 성심성의껏 들어주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신전 앞에 도착하였다.


신전의 천장에는 토끼, 사자, 여우, 당나귀 등등 많은 동물이 그려져 있었고 또 여러 가지 영웅적인 모습의 인간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커다란 제단이 보였다.


제단 위에는 7명의 손바닥을 얹을 수 있는 홈이 파져있었다.


‘이래서 내가 마지막이라고 했던거구나.’


뭔진 모르겠지만, 일곱 명이 모여야지만, 나아갈 수 있는 관문인 듯 했다.


이미 제단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젊은 사람이 왜이렇게 느려!”


노인이 투덜대는게 들렸다.


“벌써 이 공간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한 명의 여자를 빼고 다른 사람들도 노인의 말에 동감했는지 표정에서는 이미 짜증이 한가득이었다.


“아아, 죄송합니다. 유진 씨의 말을 듣다 보니 조금 늦었군요. 그럼 지금 바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시죠.”


백슬한이 앞으로 나서서 중재하며 말하였다.


“아유진 씨, 이쪽으로 오시죠. 저희가 이때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겁니다.”

“아, 네.”


백슬한의 말에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때 나는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문뜩 멈춰 선 나.


“잠시만요.”


나의 말 한마디에 백슬한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그간 백슬한을 만나 흥분한 건 사실이었지만, 내 본성이 어디간 건 아니었다.


“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일부터 벌이기는 좀 그렇지 않나요?”

“예?”

“먼저 이 공간을 파악해보고 혹시라도 벌어질 일들을 유추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아, 그런 거라면 이미 저희끼리 다 분석을 끝내놨습니다. 그러니 아유진 님은 저희와 같이 손 만 올리시면 됩니다.”

“하지만, 제가 그 내용을 모르는데요? 그 유추한 내용을 저한테 얘기해주시는 게 어떨까요? 들어보고 제가 한번 판단해보죠. 더 좋은 결과가 있을지 모르잖아요? 아까처럼 괜찮은 리포트를...”


나는 좋은 의도로 한 말이었지만, 백슬한의 얼굴에 짜증이 서렸다. 그러자 그때만을 기다렸는지 옆에 있던 문신남이 다가와 내 손을 낚아챘다.


“씹새끼야, 진짜 뒤질래?”


나는 힘을 써서 벗어나려했지만, 어느새 백슬한이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컥!


백슬한의 주먹이 내 복부에 꽂혔다. 순간적으로 숨이 안 쉬어졌다.


나는 얼굴을 들어 백슬한을 쳐다보았다. 놈의 사람좋은 인상은 어느새 사라지고 오직 비열한 모습만이 보였다.


“이게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주제도 모르는 거지놈이 말 좀 들어주니까 같은 급인줄 아네.”


백슬한의 주먹이 날아와 더 꽂혔다. 그러는 동안 다른 이들은 아무말도 하지않고 백슬한을 두려워 하듯이 보았다.


“주제를 알라고. 주제를! 뭐, 니가 판단을 한다고? 이 새끼가 어디서! 이 집단에서는 내가 판단을 해. 오직 나만! 알았어?”


폭행이 지속되는 동안 나는 뼈저리게 후회하였다.


방심.


백슬한이라는 인물을 만나고 너무 흥분했었던 듯 싶었다.


끄윽


“이제 그만하지. 아무리 그래도 진짜 또 죽으면 안 될 거 같은데...”


양아치 남이 백슬한을 말리다가 말끝을 흐렸다. 백슬한이 무섭게 양아치 남을 쳐다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폭력이 더 행해진 후 백슬한의 발길질이 멈추었다.


“후우, 그러게 왜 선을 넘어요. 선을. 에이씨, 스타일만 버렸네. 한성 씨. 이 인간 좀 묶어봐요.”

“아, 묶을 게 없는데?”

“옷 좀 찢으면 될 거 아니야.”

“그, 그렇네. 야, 뚱보. 니 옷이 면적이 제일 넓네. 내놔!”

“히익.”


뚱보는 질색하였지만, 반항하지는 못하였다. 이윽고 문신남이 뚱보의 옷을 찢어 내 손을 묶었다.


“이놈 좀 옮기고 이제 일을 시작하죠.”


정신이 반쯤 희미해진 상태로 제단 앞에 끌려간 나는 제단에 손이 얹어졌고 그렇게 7명의 손이 얹어졌다.


“응? 아무일도 없는데?”


허나, 1분이 지나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설마 이대로 아무 일도 없는 건 아니겠지.”


의심의 눈초리가 백슬한에게로 향하려고 하는 그때.


엄청난 빛이 신전의 천장에서부터 퍼져나갔다.


모두가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노인과 뚱남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도망까지 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두려워하지 마세요. 용사님들.]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목소리가 퍼져나갔고 빛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을 떳을 땐 신령한 후광을 두른 한 명의 여인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황금빛의 머리칼. 아름다운 청녹색 눈동자. 하늘하늘거리는 순백의 드레스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해 보였다.


[제 이름은 아리엘. 이 세계를 지키는 여신 중 한 명입니다. 용사님들. 당신들은 선택받으셨습니다. 저희 세계는 지금...]


여인의 말이 이어졌다. 백슬한과 그 집단은 기사처럼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고 그녀의 말을 황홀하게 듣고 있었다.


[특히 당신에게는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역대급 재능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여신이 백슬한을 지목했고 백슬한은 얼굴을 붉혔다. 그도 남자이기에 저런 여인에게 지목당하자 흥분한 듯했다.


한편, 나는 여인이 나타났을 적 바람으로 인해 뒤쪽 땅바닥으로 내팽개쳐진 상태였다. 그런 나를 천사와 백슬한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부었던 눈이 희미하게 떠졌다. 그리고 나의 눈알이 쪼그라들었다.


[정신 면역(하급)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앞에 있던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이 눈 깜작할 사이에 변했다.


우윽!


강렬한 두통과 함께 구역질이 몰려왔다.


“우웩!”


헛구역질을 하였지만,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황급히 눈을 감았지만,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눈알이다!눈알이다!눈알이다!눈알이다!눈알이다!눈알이다!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큰 눈알과 그 눈알을 돌고 있는 작은 위성 눈알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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