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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딴곰
작품등록일 :
2024.07.2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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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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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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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끅."


목에 핏대가 강렬히 섰다. 그와 동시에 내가 알지 못하는 지식이 머리속으로 박히고 있었다.


[띡! 격에 맞지 않은 지식이 들어왔습니다. 차단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주의 차단 시스템은 만능이 아닙니다!


"윽, 머리가.. 어떻게 된 거지?"


순간 기절한 듯한 감각.


나는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앞에 있는 신성한 여신과 무릎 꿇고 있는 사람들.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모습이었다.


"귀의합니다."


백슬한이 나서서 여신의 손에 입을 맞추었고 다른 이들 또한 차례대로 입을 맞추며 귀의한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마지막 한 분은?"


여신은 그제서야 나에게 관심을 가졌다.


"몸이 많이 상하셨군요."

"저 친구가 올 때부터 크게 다쳤더라구요. 그렇지?"


백슬한이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와 부축하였다.


"좋게 좋게 응?"


역겨운 표정이었다.

여신의 앞에 까지 반강제적으로 간 나는 무릎꿇려졌다.


"용사님에게 축복을."


여신의 손에서부터 나온 빛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자, 용사님도 저와의 맹약을 통해 힘을 받으세요."


여신이 손등을 내밀었다.


한순간, 여신의 손이 눈알로 겹쳐 보였다가 다시 바뀌었다.


우엑!


뱃속에서부터 흘러나온 토사물이 여신의 손을 뒤덮었다.


"미친 새끼! 무슨 짓거리야!"


뒤에 있던 남자들이 튀어나와 나와 여신을 떼어놓았다.


"여신님! 이 놈 관리는 제가!"

"아닙니다. 속이 엄청 안 좋으셨나 보군요."


그 말과 함께 여신이 내게 다가오려했으나,


우엑!


나는 한차례 더 뿜어내고 말았다.


"미!"


여신의 미모에 매혹되어 있던 백슬한과 다른 일행들, 심지어 여자들까지도 급히 나섰다.


아까까지는 한 없이 자애롭던 여신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용사님, 왜 이와 같은 행동을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도 몰라."

"이상한 일이군요. 평범한 벌레... 아, 이런 말실수를."


여신이 눈웃음 지었다. 허나, 입꼬리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전송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보군요... 하지만 7명을 무조건 맞춰야 하니... 이렇게 하죠."


여신이 두손을 모으고 말하였다.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이세계에 가기 전 축복을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주겠다는 말에 다른 이들은 재빨리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여신의 입에서 알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고 그와 동시에 빛이 퍼지며 사람들에게 깃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빛이 나에게로도 퍼져 흡수되었다.


[축복을 받았습니다.]


"부디 이 축복이 마음에 들었으면 하네요"

"감사합니다. 여신님. 그런데 이 힘은?"


일행들의 손에서 파란색의 일렁이는 기운이 모여들었다.


"이세계에는 마나라는 힘이 있습니다. 일반인은 느낄 수 없는 그런 힘이지요. 용사님들을 위해 그것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영혼의 성질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마도 각자의 성향에 따라 각 원소를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일행들은 자신의 손에 깃든 이질적인 기운을 신기한듯 쳐다보았다.


[상위의 존재에게서 받은 축복이기에 시련으로 변질됩니다.]


[적의가 느껴집니다. 오직 당신만 보정보너스를 받지 않습니다. 시련의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다만, 시련을 극복했을 시 보상이 커집니다.]


오직 나만이 마나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군요. 아마 이세계에 도달하게 된다면 각자 자신의 할 일을 자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신의 축복이 깃들길."


그 말을 끝으로 빛의 기둥이 생기며 우리를 어딘가로 보내기 시작했다.


빠르게 땅이 사라졌다. 그리고 보인 것은 하늘이었다.


하늘 높은 곳에서부터 우리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을 이기며 겨우 고개를 꺽어보자, 동쪽으로는 거대한 나무, 남쪽으로는 사막, 북쪽은 거대한 설산, 서쪽은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떨어지는 가장 아래쪽 중앙대륙에는 찬란한 인류문명의 도시가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빛의 기둥이 꺾이더니 오직 나만을 북쪽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이, 이런.'


다른 이들은 그런 나를 보았지만, 비릿한 웃음만을 지을뿐이었다.


그리고 오직 나 혼자만이 설산으로 뒤덮인 북부에 떨어졌다.


-


며칠 뒤


북방의 작은 도시 라이카필드.


"일어나."


나는 라이카필드에 있는 영주 가문의 장남으로 빙의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걸어갈 때 발을 걸어 넘어뜨린 이 인간은 이 집의 차남, 그러니까 나의 동생인 로안이였다.


로안이 마치 더러운 것을 보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로안의 주위에 있는 인간들도 로안과 비슷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침을 뱉고는 말했다.


"발 걸었잖아. 사과해."

"흥, 뭐라고?"

"사과하라고."

"하, 얘들아 얘가 나보고 사과하란다."


로안과 주위의 인간들이 웃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슬슬 맛이 갔다던데 그 말이 정말인 것 같네."


로안이 내게 다가와 허리를 숙이고는 속삭였다.


"형, 머리를 박은 이후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은데 내가 다시 한번 말해줄게. 이 세상에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가 있어."


로안은 씩 웃었다.


"우리 가문의 피를 이었어서도 너 같은 놈은 지배당하는 자라는 소리야."


로안은 그 말을 하고 마치 승리자인냥 당당하게 허리를 폈다.


그때


"도련님!"


한 명의 기사가 내가 있는 곳으로 급히 달려왔다.


"로안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충성스러운 멍멍이가 왔네. 키키키. 얘들아. 귀찮아지기 전에 가자."


로안과 그 무리는 기사가 오기 전 자리를 옮겼고 나만이 그곳에 홀로 남게 되었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아. 란돌프."


기사의 부축을 뿌리치고는 나는 일어섰다. 기사는 그런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였다.


"도련님, 로안 도련님과는 만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전까지는 잘 해오시지 않았습니까?"

"그게 잘 안되서 말이지."


나는 쓰게 웃으며 생각했다.


'그야 며칠 전까지는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허나, 이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방으로 돌아가시지요. 옷이 더러워졌습니다."


란돌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에 돌아온 직후, 시녀들에 의해 강제로 옷이 갈아입혀졌다. 그리고 오늘도 고난했던 하루를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생각할수록 화가 난단 말이지."


여신에 의해 강제로 영혼이 전송된 나는 이 가문의 장남으로 빙의되었다.


'하지만, 최악의 조건이지.'


적자이지만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 지지기반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었다.


'그나마 란돌프가 있지만...'


아버지가 붙여준 기사 란돌프.


충성스러운 인물이었지만, 결국 아버지 쪽의 인물이었다.


그에 비하면 로안은 대단했다. 새어머니 쪽 가문도 그렇지만, 로안이 가진 가능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가문에서 수백 년 만에 나온 마나를 느끼는 인물이지."


이 변방의 가문 레이친 가문은 아주 먼 옛날 선조 중 한 분이 마법사가 된 적이있었다. 그로인해 그때 당시에는 엄청난 위용을 가졌었지만, 그것도 잠시. 그 이후로는 대가 끊겨 쇠락의 길을 면치 못했다.


그렇게 평범한 집안으로 전락하는 중 로안이 마나를 느껴 마법에 두각을 나타내려하고 있었다. 당연히 가주인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로안을 애지중지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 같은 장남은 눈에 가시 같을 거고."


로안이 천재성을 나타내기 전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아버지는 나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때 큰돈을 들여 마법사를 부른 적이 있었는데, 체질 검사에서부터 틀려먹었다는 판정을 들었다.


"마나가 머물지 않는 것은 응당 인간이라면 받는 축복, 마나하트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심장에 위치하여 마나가 서클을 형성하는 것인데, 이 아이는 그것이 없군요. 일반인 보다도 못한 수준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이요. 그래도 이 아이가 적자란 말이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미래를 위해서 누가 적자가 될 것인지는 잘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허어, 어쩔 수 없단 말인가."


아버지는 크게 실망한 듯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마법사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


물론 이들의 얘기는 내게 수면마법을 취한 뒤에 이뤄진 것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안통했고 나는 이들의 얘기를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다.


'망할 여신.'


마나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것은 필히 여신의 농간일 것이 분명했다. 여신치고는 마음이 고블린 소갈딱지보다도 못했다.


나는 잠시 여신의 못난 점을 생각하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방의 한구석에 있는 책장으로 다가갔다. 책장에는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있었는데, 그 중 하나의 모서리를 집어서 빼내자, 책장이 움직이더니 비밀의 문이 드러났다.


나는 비밀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보인 것은 깊고 좁은 통로였다. 나는 그 통로를 통해 나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가자 막다른 곳이 나왔고 나는 한쪽 벽에 귀를 대었다. 그러자 자그마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오... 무..."


신경을 집중하자 목소리가 더 뚜렷이 들려왔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

"예, 주인님."


나의 아버지이자 필레이도 레이친의 목소리였다. 이곳은 아버지의 알현실 뒤쪽 통로로 오직 내 방에서만 갈 수 있었다. 레이친 가문의 장남들 중 몇 명은 아버지의 생각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것 같았다.


'원주인이 이곳을 찾아내서 다행이군. 성격이 나랑 비슷했던건가?'


이 몸뚱이의 원주인에게 잠시 감사를 표하곤 나는 필레이도 레이친의 대화에 집중했다.


필레이도 레이친은 곰곰히 생각하다 말하였다.


"장남이 곧 열네 살이지?"

"예, 일주일 뒤면 열네 살입니다."

"열네 살, 열네 살. 마땅히 후계로선정할 나이구나."


필레이도 레이친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진 듯하였다. 그러다 그는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손을 멈추고는 말하였다.


"북방인들은 겨울의 밤을 이길 정도로 강인해야 한다. 그렇지?"

"예, 주인님."

"그렇다면... 루이스를 설원의 시험에 들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란돌프, 네가 어느정도 동행하는 것은 허락하마. 하지만, 주제넘은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


란돌프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는 충성스러운 부하. 주인의 명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였다.


나는 거기까지 듣고는 곧장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급히 비밀의 문을 원상태로 복귀시켰다.


'설원의 시험? 기어코 나를 죽이려고 작정했군.'


애초부터 가족애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 된 도리는 지켜야 하지 않은가. 아주 인류애마저도 바닥 치는 콩가루 집안이나 다름없었다.


게임 레메게톤의 주무대는 중앙대륙이고 다른 대륙들은 미구현으로 들어갈 수 없게 만들어놨었지만, 일부 인근 마을에서는 설원의 시험과 관련된 퀘스트를 치를 수 있었다.


[설원의 시험은 강인한 북방인을 기르기 위한 유일무이한 전통이다. 이 전통을 통해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 .... 시험의 참가자는 자신의 추종자와 함께 오직 가벼운 짐만 가지고 설원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보통은 그 시간이 사흘에서 일주일이지만, 버티는 시간이 오래될 수록 북부인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중부대륙 끝 마을인 누이크필드에서 퀘스트를 깨기 위해 수집했었던 정보였다.


'진짜 지랄 맞았었지.'


가만히 있으면 동사 경보가 떴었고 그렇다고 움직이면 허기짐으로 인해 캐릭터의 스테미나가 쭉쭉 빨렸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꺴었던 건 언젠가 나올 북부대륙을 위해서였던건데...'


그걸 현실에서 깨게 생겼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편법이라면 편법이지만, 나름 이 퀘스트를 깰 때 나만의 노하우를 만들었었다.


'가벼운 짐이라고 했지만, 어떤 거를 담는가에 따라 생존전략이 달라진다. 만약 그 '가루'만 구할 수 있다면 먹는 걱정은 덜수 있다.'


오후에는 시장에 나가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무력이겠지.'


설원에는 각종 몬스터들이 존재하기에 몸을 지킬 수 있는 무력이 필요했다.


'일단 란돌프에게 무력을 배운다.'


란돌프는 기사.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전문 기술들은 생존전략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또한 시험에서도 란돌프에게 최대한 빌붙어야 한다.'


이번 시험. 통과도 통과지만, 나는 최대의 효율을 뽑아먹을 생각이었다.


후계? 당연히 그것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 망할 놈의 콩가루 집구석을 떠날 생각이었다.


'한 달, 한 달을 버틴다. 그리고 미구현으로 더 하지 못했던 퀘스트. '순례의 길' 퀘스트를 노린다.'


내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망할 놈들이 원하는 데로 될 수는 없지.'


나의 파멸을 원하는 백슬한과 그 일행들. 그리고 여신까지.


복수의 달콤함을 꿈꿀 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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