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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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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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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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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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달 밝고 별이 많은 밤에

DUMMY

꺽쇠의 집.......

꺽쇠는 산채로 떠나기 전에 집을 찾았다. 지난 밤 죽음을 각오하고 복수하러 갈 때는,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아 모작에게 아내의 장례를 부탁하고, 집에다 불을 놓아 최참판 집에서 삶을 정리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화적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살아남게 되었고, 솔개와 돈두의 동행 조건으로 모지리에게 겨우 허락을 얻어 온 것이다.


꺽쇠 일행이 바위와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보면....... 불탄 집 뒤로 백정 모작과 동료 두 명이 언 땅을 힘겹게 파고 있고, 그 옆에 그의 아내가 거적때기에 감싸져 있다.


아내의 얼굴이 보이자 꺽쇠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린다....... 솔개가 꺽쇠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 준다.



“(속삭이듯) 마누라 얼굴이 곱다....... 잊지 않도록 가슴에 잘 담아둬”


“.......”



눈발이 날리자 돈두가 재촉한다.



“이제 갑시다. 더 이상 지체하면 해 떨어지기 전에 산채로 도착하기 어렵소!”


“시간이 더 필요하냐?”


“아니오. 됐습니다. 이제는 길을 떠나겠습니다.”



돈두가 채비를 하고 일어서면, 눈밭에서 무를 뽑아먹던 멧돼지 무리가 후다닥 도망가고, 이 바람에 백정들에게 발견된다....... 모작이 반갑게 꺽쇠를 알아보고 뛰어온다.



“형님....... 집은 어떻게 해서 불난 거요? 최참판 집은 밤새 화적이 들어 요절났다고는 들었습니다만.......”



미처 몸을 숨기지 못한 솔개와 돈두가 화적이라는 말에 칼을 꺼내려는데....... 꺽쇠가 앞을 가로 막고.......



“곰 사냥을 온 분들인데 길을 잃으셨어.”



그렇지 않아도 화적 솔개와 돈두는 짐승가죽으로 겉옷을 입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는 사냥꾼차림이었다. 모작도 의심 없이 화적에게 눈길 한 번 안주고 꺽쇠를 책망한다.



“형님도 참....... 남 걱정할 때요? 집은 이렇게 홀라당 다 타 버리고....... 막란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도 되지 않소?”



모작이 의심을 거두자, 화적들이 칼을 뒤춤에 숨기고 한 발 물러선다.



“재 너머 먼저들 가 계세요. 아우하고 얘기 끝내고....... 길을 알려 드릴 테니.”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 합니다.”


“당신들 길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형수님 흙 한줌 뿌려줘야 황천길도 갈 것 아니요!”



솔개와 도야지도 더는 어쩌지 못하고 언덕을 넘어간다.


아내에게 가는 꺽쇠....... 차디찬 구덩이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아내에게, 자신의 겉옷을 벗어 따뜻하게 덮어준다....... 한참을 아내의 손을 잡았다 놓아 주는 꺽쇠...... 흙 한 줌 집어 아내에게 뿌려준다.



“막란이는 걱정 말고....... 잘 가시게.”



화적이 되면 고향 땅은 다시 밟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 죽은 아내와도 마지막이었다.



“형님....... 막란이는 어딨소?”


“먼저 떠났네.......”


“아까 그 사람들이 데려갔소?”


“.......”


“겨울잠 자는 곰이 어딨다구.......”



평생 짐승의 피를 보고 살아온 모작이다. 그런 그가 사냥꾼이라는 거짓에 속을 리 없었다. 지난 밤 꺽쇠의 행동이 이상해서 다시 찾았을 땐, 이미 집은 불 타 재만 남아 있었고 최참판 집은 화적이 휩쓸고 지나간 터였다. 시체들 속엔 막란과 꺽쇠가 보이지 않아 화적하고 떠났을 거라 짐작했는데, 꺽쇠가 지금 그들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자네에게 입은 은혜는 갚지 못하고 떠나네.”


“아무 말도 묻지 않겠습니다....... 어디서든 막란이를 지켜주세요.”



막란이 어렸을 때 꼽추가 되자 최참판은 사정 두지 않고 내다 버렸다. 그 때, 백정 모작이 거두어 애지중지 여기며 지금껏 보살펴 주었던 것이다. 막란도 모작을 믿고 따라 둘 사이는 이미 부자 이상의 관계였다. 그럼에도 이제는 맘 놓고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막란이는....... 내 목숨 걸고 지킬거야.”


“고맙수....... 위험하니까 백정촌은 얼씬도 말라 전해요.”


“자네도 몸 상하는 일 없이 잘 살게.”


“얼른 가슈. 같이 온 그 놈들 성나기 전에.”


“자네와 난....... 어제 이후로 본 적이 없는 거네”


“걱정마슈. (백정들을 가리키며) 이놈들의 입단속도 단단히 해 놓을 테니까.......”



함박눈이 온 세상을 덮는다. 그 속으로 사라지는 화적들과 꺽쇠....... 꺽쇠의 아내도 하얀 눈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




화적들의 산채.......

쉬지 않고 달려왔음에도 꺽쇠 일행이 산채에 도착한 시각은, 이미 해가 넘어가 회색빛이 화적 마을을 감싸 안고 있었다.


마을이라고 해봤자 언제든 털고 도망갈 수 있도록, 단순하게 지은 움막들이 전부였고, 그마져도 무방비 공격에 대비할 수 있게 거리를 두었다. 움막들은 서로 튼튼한 황마 끈으로 연결되어, 유사시 잡아당기면 종이 울려 위급상황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임시로 마련된 움막 안에서 모지리의 아내 덴년이의 간병을 받고 있던 막란이, 꺽쇠를 보고는 얼굴이 밝아진다.



“어미는 잘 보냈소?”


“모작 아저씨의 도움이 컸다.”


“어미가 불쌍해.......”



어릴 때부터 떨어져 살아 아비의 정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아들이지만, 어미의 넘치는 사랑을 막란이는 알고 있었다. 꺽쇠도 모르게 잔칫날이면 남몰래 음식을 챙겨 주었고, 날씨가 춥기 전에 솜저고리를 밤을 새며 만들어 갖다 주었다. 그러다 주인에게 들키면 여지없이 매타작을 당했는데도 도움 될 것이 있으면 그 무엇도 하는, 어미에게 있어 막란이는 맹목적인 대상이었다.


어미 생각에 막란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막란의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주는 꺽쇠....... 덴년이가 이미 막란에게서 사정이야기를 들은 터라, 이들 부자가 안쓰럽다.



“이젠 아들놈 몸이나 잘 챙겨.”


“고맙습니다.”


덴년이가 막란의 상처부위를 닦으며 꺽쇠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키도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데다가, 눈썹이 진한 모양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얼굴이다.


“화적으로 썩긴 아깝다....... 몸이 아주 실혀.”


“.......”


“당귀와 함께 천속단을 끓여 놨어. 두 시진(4시간) 마다 멕여. 뼈 붙는 데에는 이만한 약재가 없어. 모지리 그 놈도 호랭이 잡다 발목이 부러졌는데, 달포 만에 걸어 다녔을 정도로 효과가 좋으니께.”


“신세가 많습니다.”


“아들놈이 애비를 닮았구만. 골격이 튼튼한 것이....... 옷 갈아입힐 때 보니깐, 부랄도 큼지막한 게 어떤 년이 붙어 먹을른지 몰라도 아주 환장하겄어.”


“애비! 이 아줌마 못하는 말이 없소!”


“문딩이 자식! 낼 아침에 올 테니까 몸조리 잘해!”



덴년이가 떠나자....... 막란이 주저하며 힘겹게 말한다.



“아비....... 나 화적하기 싫어.”


“.......”


“백정 손에 자랐지만....... 모작 아저씨가 당부한 게 있어.”


“.......”


“칼은 짐승한테만 쓰라고 했어.”



산채에 들어왔으면 화적이 되어야 한다. 막란도 화적이 되는 것이, 차라리 인간답게 사는 길일 것이다. 그래서 다른 생각 안하고 막란을 데려왔다.



“여기서 살아야 돼.......”


“사람한테 칼 쓰기 싫다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최참판 그 놈처럼!”


“화적이 되고 싶지 않아!”


“애비 말을 들어.”


“애비....... 그동안 어디 있었는데!”



아무리 최참판에 의해 떨어져 살게 되었어도, 꺽쇠가 막란을 소홀하게 대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니 아내가 찾아가는 것도 주인 눈치를 보며 말리기까지 했었다....... 꺽쇠는 더 이상 막란에게 애비 말을 들으라고 할 수 없었다.




*




며칠 후 산채의 밤.......

달 밝고 별이 많은 밤에 화적이 되기 위한 입적식이 열리고 있다. 흰 생쌀 한 줌을 입에 물고 횃불을 받는 간단한 의식이었다. 꺽쇠가 화적들의 중심에 서 있다.


화적들은 불을 놓아, 대낮같이 밝힌다....... 모지리가 새로 입적한 꺽쇠에게 화주(火酒:술에 불을 붙여 마시는)를 주며 모두에게 말한다.


“화적이 되면 죽는 순간까지도 화적이어야 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얼굴과 이름이 달라도 한 가족이다! 같은 밥을 먹고 함께 살고 배신하지 않고, 함께 죽을 수는 없으나 죽어서는 화적으로 남을 것이다!


바깥세상과는 이제 단절이다. 여기 있는 화적들이 이웃이며 가족이고, 살기 위해 약탈하고 죽여야 하는 것이다. 꺽쇠는 화주를 마신다. 이렇게 해서 화적이 되었다.




*




백정촌........

토포사 조찬한이 졸개들과 모작의 집을 찾았다. 얼마 전 최참판 집에 화적이 들었고 모두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는데, 노비 꺽쇠만 사라졌고 놈의 자식 꼽추 놈을 백정 모작이 거두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모작은 백정촌에서 소비되는 동물의 대부분을 도살하고 있었다. 같은 백정이라도 모작이 도축해서 발골 해체하면 다른 백정들이 갖다 파는 식이었다. 그래서 도살백정은 누구보다 칼을 잘 다루어야 했고, 모작은 그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조찬한이 찾았을 때에도, 마침 아들 바우가 커다란 돼지 한 마리를 잡고 있는 중이었다.



“꺽쇠 놈의 자식....... 꼽추가 여기 있지!”



모작은 토포사 조찬한을 알아봤다. 민가에서 살인 등 중범죄를 저지르고 간혹 여기로 도망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마다 여기부터 뒤졌던 것이다. 원하는 범죄자가 나오든 안 나오든 이들이 다녀가면 거의 쑥대밭이 되었다.



“토포사님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묻는 말이나 대답해라!”


“막란이란 놈인데....... 워낙 자는 곳이 불명하여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놈! 백정 놈들은 관가나 양반 호출 외에는 백정촌에만 있어야 되지 않느냐!”


“그 놈은 백정이 아닙니다. 최참판네 노비 놈인데 꼽추가 되어 버려진 놈입니다.”



백정은 허가가 있기 전에는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꺽쇠의 아내 장을 치룰 때에도 관아의 허락을 맡고 서야 가능했었다. 하지만 막란은 백정이 아니었다. 때문에 어디든 나다닐 수 있는 것이다.



“최참판 댁에 화적떼가 든 건 알고 있겠지?”


“그렇지 않아도 화적을 대비해 여기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꼽추 놈의 애비도 사라졌다! 만약 숨기는 것이 있다면 능지처참 형을 받을 것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희 같은 백정 놈들은 나리님들의 은덕으로 먹고 사는 놈들입니다. 조금이라도 알릴 것이 있으면 당장 관아로 달려가겠습니다.”



포졸들이 모작의 집과 근처를 샅샅이 뒤져도, 꺽쇠나 막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자 조찬한이 위협한다.



“꼽추 놈을 잡아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니놈의 목을 벨 것이야!”


“연을 뗀지 한참 된 놈입니다. 그런 놈 때문에 저의 목을 베시다니요?”



돼지를 잡고 있는 모작 아들 바우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조찬한과 아비 모작을 번갈아 본다.



“저 놈이 네 아들이냐?”


“그렇습니다. 저의 미천한 자식 놈입니다.”


“꼽추 놈 뿐 아니라 그 애비도 잡아와라! 그렇지 않으면 네 아들놈도 성치 않을 것이다!


“나리 제발 그 분부만은 거두어 주십시오!”


“이레(일주일)를 줄 것이다!”



머리를 조아리는 모작을 뒤로 하고 매정하게 조찬한이 졸개들과 백정촌을 떠난다.



“아비........ 막란이 형님과 꺽쇠아저씨를 어디서 찾는단 말이요?”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찾아도 어찌 넘길 수 있겠소?”


“큰일이다. 놈들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텐데.......”


“아비 우리 이곳을 뜹시다. 그러면 해결되는 것 아니요?”


“안 돼! 우리가 도망가면 이 백정촌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을 거다!”



화적들 뿐 아니라 백정들도 유대관계가 남다르다. 이들만 모여 살기에 궂은 일 슬픈 일에는, 앞 다투어 자기 일처럼 손을 보태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모작은 이 백정촌을 이끌어 나가는 우두머리가 아니던가.......



“바우야 당분간 멧돼지 잡으러 나가.”



아들이라도 피신시켜야 한다. 모작은 혼자 죽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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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어느 부부의 이야기 24.07.24 41 0 11쪽
13 삼월 열 이틀 24.07.24 3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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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동백꽃 피어 있는 마당에 24.07.24 44 0 14쪽
5 메추리 한 마리 24.07.24 52 0 12쪽
4 눈 위에서 길을 찾다 24.07.24 61 0 13쪽
» 달 밝고 별이 많은 밤에 24.07.24 88 1 12쪽
2 아내가 죽었다 24.07.24 139 1 15쪽
1 까마귀 날아오르다 24.07.24 28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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