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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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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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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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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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까마귀 날아오르다

DUMMY

궁궐 인목왕후의 대비전.......



“네 나이 아홉이던가? 열은 넘지 않았을 게야....... 내 앞에서 사서와 삼경을 줄줄 외우던 것이 생각나는구나.

너도 생각나느냐?”



씩씩거리며 화적들을 살려달라는 나이 스물 하나의 윤서를 인목대비는 아직 놓치고 싶지 않았다.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몰라도 마마님이 좋아하셔서 뭐든 외우고 다녔습니다. 특히 마마님이 좋아하는 구절을요.”


“난 중용의 이 문장이 좋다. ‘도(道)라 함은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기억나느냐?”


“마마님의 도입니다. 제 도는 양반의 것도 천민의 것도 아닙니다. 억울한 죽음을 막는 것이 제 도입니다. 화적들을 살려 마마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화적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재상 일곱과 왕비 둘을 배출한 너의 가문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버리고 화적과 혼례를 이룬 너의 잘못된 길을 추궁하는 것이야. 너의 본래의 가문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저의 길은 제가 정했습니다. 가문과 마마님이 가라해서 가고 오라해서 오고 할 인생이 아닙니다.”


“부귀영화를 누려야 할 네 몫이 남아 있다. 후회되지 않느냐?”


“후회....... 날마다 후회했습니다. 화적들과 날마다 쫓기며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가문이 정해주고 마마님이 허락하신 세자비가 되지 않은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명나라에 제 이름이 알려져 태자비로 오라 할 때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앞으로 또 후회할 겁니다. 이제라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부귀영화 누리라는 마마님의 청을 거절한 오늘을요....... 옳다고 믿는 대로 살아온 저입니다. 만약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을까요? 마마님이 답해 주세요. 마마님의 인생은 어떠했습니까? 저보다 나은 인생이었습니까?”


“부모와 자식을 잃고 폐비가 되었던 나한테 묻는 것이냐? 목숨을 구걸하러 다니는 것이 숨 막힐 정도로 고통스럽더냐? 난 차라리 죽여 달라고 했다. 그럴 수 없다기에 남들 눈을 피해 죽으려고도 했다....... 너의 물음에 답을 주겠다. 윤서 너보다 백배 천배 아니 이 나라 어느 누구 보다도 살기 싫은 인생이었다. 그래도 다시 살라하면 이 인생을 살 것이다. 아니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내 자리라면 내가 짊어질 것이다. 너도 니 자리가 있다. 내가 함부로 거절할 수가 없듯이 너도 받아들여야 하는 자리다.”


“마마님을 살리고 새로운 왕을 만든 사람들입니다.”


“화적들이다. 죽어야 할 놈들이다. 화적들의 도움으로 임금이 됐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놈들이 죽어줘야 임금의 용포에 때가 묻지 않는다.”


“정적들을 죽이면 죄를 사해 준다고 약조하지 않았습니까? 새로운 왕을 만드는데 일조를 하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준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권력이다. 권력을 위해선 더 한 것도 할 수 있다. 형제를 죽이고 숙부를 죽이고 조카도 죽인다. 화적 따위는 천이고 만이라도 속여서 죽일 수 있다는 말이다.”


“마마님의 아들 영창대군이 아홉에 독살되어 죽었습니다. 마마님의 아버님도 역모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모든 한을 풀어준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저들을 죽여야 되겠습니까?”


“저들을 살려놓으면 새로 등극한 임금의 정통성을 의심받는다. 죽어야 할 사람들을 더 이상 붙잡지 마라.”


“저는 화적의 아내입니다. 저는 왜 죽이지 않는 겁니까?”


“넌 이 나라 근간이 되는 사대부의 여식이야. 더 이상 가문에 먹칠하지 말거라.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니 자리로 돌아가.”


“제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면 저들을 살려 주시겠습니까?”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물이 됐다. 넌 저들과 달라. 돌아오너라.”


“어디로요? 마마님한테요? 아니면 저들보다 못한 백부한테요? 아니면 저들이 만든 임금한테요? 천지간에 제 마음 갈 곳이 어디란 말씀입니까?”


“날이 너무 서 있다. 그래선 나처럼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오래 살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마님처럼 숨죽여 살 자신은 더더욱 없습니다.”


“숨죽여서라도 살아라.”


“협박이십니까?”


“화적들 속에서 나오라는 뜻이다.”


“제 눈엔....... 마마님과 임금님 그리고 제 백부가 화적입니다.”


“.......뱃속의 아기를 진정 화적의 아기....... 천민의 아기로 기를 셈이냐?”


“오늘이 지나면 사대부의 양반집 여식에서 전 관노가 될 것입니다. 제가 택한 길입니다. 제게서 태어난 아기도 처음의 신분은 천한 노비이지만 그들의 인생은 그들이 택할 것입니다.”


“양반에서 천민이 되는 것은 선택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천에 하나다. 그 어려운 길을 부모라 해서 강요해서는 안 된다.”


“화적인 제 지아비를 살리려는 것입니다. 제가 노비가 되고 제 자식들도 노비의 신분을 따라야 서방님을 살려준다 합니다. 양반으로 사는 것이 뭐라고 제 낭군을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지아비를 버리고 자식을 얻어라. 그것이 부모다.”


“저는 지아비도 살리고 자식도 얻을 것입니다. 비굴하게 살아도 모두의 살 길을 택할 것입니다.”


“비굴한 삶이 아니야. 천민의 삶이다. 넌 신분이 말하는 의미를 아직 모른다. 죽지 못해 사는 나의 신분은 왕비다. 어쩌면 이것 때문에 목숨을 부지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부유해도 천민은 천민이다. 아무리 없어도 양반은 양반이다. 같은 밥을 먹어도 그 둘은 겸상할 수 없다. 이 신분의 차이는 대를 물릴 것이다. 자식에게 천민의 옷을 입히지 마라.”


“천민도 화적도 마마님의 백성입니다. 마마님의 도란 말씀입니다.”


“양반도 천민도 화적도 조선 땅 안에 있으면 모두 내 백성이다. 그들이 있기에 나라가 있고 임금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자리에 그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너의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이냐?”


“저는 여기 마마님 앞에 있습니다. 마마님의 눈이 멀어 저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난 기회를 줬다. 다시없는 기회다. 그래도 지아비를 살리려 평생 노비의 삶을 택하겠느냐?”


“마마님과 저의 인연은 여기까지 인가 봅니다. 후대 사람들은 이 자리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할 겁니다. 화적의 아내는 정의를 질문했다하고 마마님은 불의로 답했다 할 것입니다. 마마님의 인생을 더는 가엽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가라! 니 뜻이 정 그렇다면 네 서방과 함께 노비로 살아라!”



그렇게 윤서는 인목대비와 이별을 했다.




*




의금부 전옥서.......

화적들이 처형당하기 전 마지막 밥상을 받는다. 술과 고기가 올려져 있다. 누구하나 먹지를 못한다. 식솔들을 살려준다 하여 순순히 죽기로 작정한 화적들이다. 그러나 막상 밥상을 받으니 억울하고 서럽다.


반정(反正)에 앞장서면 있는 죄도 없애주고 신분도 올려준다 했다. 세상이 바뀌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준다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을 죽이라면 죽였고 살리라면 살렸다. 세상을 바꾸라 해서 바꿨다. 그러나 화적들이 만든 세상은 그들을 버렸다.


여기저기에서 화적들의 탄식이 나온다.



“억울해서 못 죽겠다! ”


“이종(인조) 오라고 해라! 우리가 만든 임금 말이야!”


“형님은 억울하지 않소! 뭐든 풀고 가란 말이오!”



화적의 두령이자 윤서의 시아버지 꺽쇠에게 화적들 중 한 명이 속에 쌓인 억울함을 토로하라고 한다. 꺽쇠가 앞에 있던 상을 엎는다.



“이놈들 밥이 식었지 않느냐! 식은 밥을 먹고는 황천길을 갈 수 없지 않느냐!”



꺽쇠의 말에 화적들도 앞에 놓인 상을 엎는다.



“그래 이놈들! 우리가 걸인이냐! 새 세상을 만든 일등공신이란 말이다. 더 좋은 밥상을 차려 내 오거라!


“술도 묵은 술 말고 방금 빚은 술로 가져 오거라!”



화적들이 뭐라도 일을 낼 듯 살기가 대단하자 관군들이 금방이라도 죽이려는 듯 창과 칼을 갖다 댄다. 그때.......



“방금 빚은 술입니다. 허락해주세요!”



윤서다. 힘들게 구한 술을 사람을 구해 지게에 항아리 째 싣고 왔다. 형을 집행하는 관리가 그녀 앞을 막는다.



“오늘 처형될 죄수들이오. 그대가 상대할 사람들이 아니니 돌아가세요.”


“이승에서의 마지막 식사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볼 수 없는 분들이니 술 한 잔 따를 수 있도록 간청 드립니다. 백부 최이척 대감이 허락하신 일입니다.”



관리는 윤서도 알고 있고 그녀의 백부 영의정 최이척도 알고 있다. 그러나 화적의 아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가족의 접견은 허락할 수 없소. 가져온 술은 두고 가시오.”


“이놈들! 죽기 전에 술 한 잔 받을 수도 없는 것이냐!”


“다 죽일 것이다! 죽여 한을 풀 것이야!”



화적들이 관군들의 창과 칼에 자신들의 몸을 갖다 대어 피를 낸다. 윤서를 보니 더욱 화적들이 억울하고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는 것이다. 화적들의 살기로 관군들도 뒤로 물러난다.



“저분들의 억울한 심정을 술 한 잔으로 풀게 해 주세요! 제가 진정시킬 것입니다!”



뭔 일이라도 일어날 분위기에 관리가 어쩔 수 없이 윤서의 길을 터준다.


윤서가 화적들을 돌며 술을 돌린다. 말없이 흐느끼며 술잔을 받는 화적들이 있고 그녀의 손을 붙잡고 통곡하는 화적들도 있다. 처와 자식들을 부탁한다는 말에 윤서는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으로 시아버지 꺽쇠에게 술을 따른다.



“두고 가시는 어머님은 제가 잘 챙길 것입니다. 그러니 술 한 방울 남기지 마시고 다 드시고 가세요.”


“.......술에?”


“(소리를 낮춰) 마비산을 탔습니다. 칼날이 무디어 여러번 베어도....... 신경을 잠재워 줄 겁니다.”



참수형이라고는 하나 칼을 여러 번 내리쳐 목을 끊어내는 형벌이다. 고통보다는 죄인들의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윤서는 술에 마취제인 마비산을 타 화적들의 고통과 공포를 줄여주려는 것이다.



“다들 마셨습니까? 저는 마시지 않겠습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마지막 길을 가고 싶지 않습니다.”


“많이 두려우실 겁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두려움 보다는 아씨에 대한 죄스러움이 더 큽니다. 용서해 주시면 한을 남기지 않고 두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방님의 아버지 되십니다. 저한테는 시아버님이시고요.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한 이 며느리가 용서를 구합니다.”


“참형장에는 오지 마세요. 참혹한 광경에 뱃속의 아기가 놀랄까 걱정입니다.”


“알겠습니다. 아버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서방님이 아버님의 마지막 길을....... 인도 할 겁니다.”



이렇게 화적의 두령이자 지아비의 아버지인 꺽쇠와 윤서는 이별했다.




*




당고개 참수형장.......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 기둥 끝에 매달린 화적들의 잘려진 머리 위로, 까마귀들이 눈을 쪼며 앉아 있다.


연이은 탁주에 꼽추 막란의 눈이 풀려 있고, 그 뒤로 차례로 잘려진 화적들의 머리가 기둥에 매달아 진다.


땀과 피로 얼룩진 막란의 얼굴....... 물바가지로 머리에 부어 온 몸을 적시면, 그 아래 꺽쇠의 머리가 목형에 놓여 있다.


한 참 칼을 갈고 일어나는 막란에게, 꺽쇠가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칼을 높이 쳐든다....... 번쩍이는 날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앉는다.



칼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까악 대며 까마귀가 날아오르자....... 순식간에 몸에서 분리되는 꺽쇠의 머리.......


까마귀 하늘 저 편으로 사라지면....... 꺽쇠의 머리가 기둥에 매달려 맥없이 흔들리고, 동시에 어느 백성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참형장 당고개를 울린다.



“꺽쇠 머리다! 꼽추 아들 막란이가 아버지를 참수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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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조선의 통역사는 첩자이다 NEW 57분 전 3 1 12쪽
70 그 바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24.09.16 5 0 11쪽
69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24.09.15 7 1 11쪽
68 저는 몰라요 24.09.14 12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8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0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0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9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3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6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1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3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3 1 12쪽
57 王八! 24.09.03 14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7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5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3 1 11쪽
53 무명(無名)이라 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1 24.08.30 19 1 12쪽
52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24.08.29 16 1 11쪽
51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 24.08.28 14 1 12쪽
50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24.08.27 16 1 11쪽
49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24.08.26 17 1 11쪽
48 황주(荒酒)로 데워 만든 온주(溫酒)입니다 24.08.25 16 1 11쪽
47 한계란의 언니를 아십니까 24.08.24 15 0 12쪽
46 가을 햇살에 눈이 감긴다 24.08.23 14 0 11쪽
45 세상의 반이 사라진다는 것 24.08.22 12 0 11쪽
44 황금 열 냥으로 할 수 있는 일 24.08.21 18 0 12쪽
43 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24.08.20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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