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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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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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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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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 (3)

DUMMY





마지막으로 시도한 항암제가 아무런 효과가 없었을 때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애써 슬픈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다시 PET를 찍어보니 암이 3배는 커져 있었다.


의사 자신도 이렇게 빠르게 진행이 될 줄은 몰랐단다.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암이 커지면서 먹는 진통제 함량이 높아졌다.


보통 말기 암 환자한테는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한다.


진통제는 두 종류로 나뉘는데 지속적으로 통증을 경감시키는 약(타진 서방정) 줄여서 타진과


돌발성 통증을 없애는 약(아이알코돈) 두 가지가 있다.


전자의 경우 12시간 단위로 복용하고 후자의 경우 갑자기 너무 통증이 심할 때 재량껏 먹는 약이다.


암이 작았을 때는 타진만 복용해도 전혀 아프지 않다.


하지만 점점 암이 커질수록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아이알코돈을 한 알을 먹어도 통증이 잡히지 않을 때는 두 알 심지어 네 알 까지도 먹는다.


예전에 통증이 잡히지 않았던 적이 있다.


엄청난 통증에 복압이 상승해 장루 즉 소장이 평소와는 다르게 훨씬 더 길게 튀어나왔다.


장루는 배로 소장을 꺼내 만든 인공항문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대장암 때문에 대장으로 똥이 배출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장루로 물똥이 수시로 나오기 때문에 대변 주머니를 차고 생활한다.


당장 병원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깔끔한 엄마는 병원에 한 번 입원하면 며칠 동안을 씻지 못한다고 꾸역꾸역 샤워하고 나왔다.


샤워하는 것도 곤욕인 게 장루를 감싸는 대변 주머니를 제거한 후 샤워하면 빠르게 씻어야 했다.


나는 엄마가 지금 당장 병원 갔으면 좋겠는데 씻는다고 하자 속으로 화가 나기도 했다.


씻고 응급실을 가도 해주는 게 없다.


끽 해봤자 진통제를 좀 더 주사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한다.


응급실에서 긴 시간을 견디고 상태가 호전되고 얼마 뒤 우리는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


외가가 부산 옆 김해에 있었고 몇 달 전 작은 이모와 부산 다대포에서 어싱한 기억이 엄마는 좋았던 모양이었다.


처음 계획은 2주 정도 머무르면서 어싱도하고 시장에 가서 구경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첫째 날부터 엄마는 극심한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5분을 걷는 것도 힘겨워했다.


얼굴은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동공도 노랗게 변했다.


그렇게 첫째 날을 통째로 누워있다가 둘째 날에 다대포를 걸었다.


잠깐 걸었을 뿐인데 엄마는 피로를 느껴 텐트에서 한 시간을 누워있었다.


도저히 체력이 안 돌아와 엄마를 주차장에 혼자 보내고 나는 텐트와 주변 정리를 한 후 주차장에 걸어갔다.



그런데 어디에도 엄마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전화해도 받지 않고 이리저리 찾아보던 중 엄마가 사진을 찍어서 카톡에 올렸다.


사진을 보고 찾아가니 벤치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주차장에 가는 길을 반대로 갔던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하염없이 걷다가 주차장을 찾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은 것이다.


엄마는 바보 같은 자신에게 큰 충격을 받고 눈물을 쏟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정말 끝인 것 같아서.



***



집안 어디에서도 엄마를 찾을 수 없자 나는 방으로 달려가 일기장을 펼쳤다....


[2020년 5월 15일]


엄마 대장내시경 결과 암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2기였다. 내가 받으라고 예약까지 했다는데 기억이 없다.


누가 내 몸에 빙의라도 한 것일까?


[2021년 3월 3일]


항암과 수술을 통해서 암이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는 밤에 파티했다. 너무 행복하다.


[2023년 3월 25일]


정기적인 대장 검사 결과 대장암 3기로 재발이 되었다.


미쳐버리겠다.


[2024년 2월 3일]


암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더 이상 항암제가 듣지 않는다.


치료를 포기해야 하나? 엄마가 죽으면 난 더 이상 사는 이유가 없는데.....


2월 3일을 끝으로 더 이상 일기가 작성되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결국 운명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나?


몇 번을 되돌아간다고 해도 엄마를 살릴 방법은 없다.


찍 쫙 쫙!


일기를 양손으로 들고 반으로 찢어버렸다.


씩씩대고 있자 얼굴 근처에 모기가 날아들었다.


위이이잉 위이잉~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온 나는 집에 살충제 세 통을 모두 다 뿌렸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집안을 쿵쾅쿵쾅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집 안에 있는 온갖 물건들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리실에서 전화가 왔다.


띠리리 띠리리리


딸깍!


"여기 관리실인데요. 아랫집에서 너무 쿵쾅거리지 말라고 하거든요 조금만 주의 부탁드립니다."


순간 욕을 한껏 내뱉고 싶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알겠다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잠시 멍청하게 거실 한복판에 서 있자, 온몸에 힘이 쫙 풀리기 시작한다.


그대로 거실에 주저앉아 버렸다.


난 안되는 놈일까?


어떻게 해도 엄마를 살릴 수가 없나?


이딴 타임머신 같은 거 누가 만든 거야 결국 아무것도 못 하는데.


허탈해진 나는 타임머신 상자를 벽에 던져버렸다.


쾅!


그때 꾸겨진 상자 틈에서 작은 일기장 하나가 나왔다.



"...이게 뭐지?"


상자의 비밀 공간에서 나온 일기장은 겉표지가 가죽 재질로 되어있었다.


촤롸라락


첫 번째 장을 펼치자 주의 사항이 나온다.


* 일기장에 적은 내용은 과거, 현재에 상관없이 유지됩니다. 즉 한번 적은 기록은 과거에도 적혀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는 일기장이라는 건가?"


손을 놀려 다음 장을 펼친다....[2002년 8월 10일]


오늘 나는 아버지의 교통사고를 막을 계획이다.


[2002년 10월 3일]


수십번의 시도 끝에 아버지의 목숨을 살렸다. 현실로 돌아오니 아버지는 살아계셨지만 내 아들은 태어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은 고통이지만 아들이 없는 세상은 나에게 지옥이다.


[2002년 10월 10일]


며칠 밤을 새워 고민한 결과 아버지에게 미안하지만, 과거를 바꾸지 않는다....


"하아아..."


일기장은 엄마의 처절한 과거 여행 기록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시골에서 자전거를 타다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많은 시도 끝에 할아버지를 살렸지만, 그로 인한 나비효과로 내가 태어나지 않은 것 같다.


일기장을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물어봐야겠어."


나는 다시 한번 시계를 맞춰 과거로 이동했다.




***



우리는 부산 여행에서 3일도 되지 않아서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엄마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병원으로 가 다시 검사를 받았다.


"앞으로 한 달 남으셨습니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목소리로 의사가 말했다.


"보호자와 할 얘기가 있으니, 어머니께서는 잠시 밖에서 대기해 주세요."


엄마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고 의사의 말에 혼자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아드님? 사실 어머니께는 한 달 정도 남았다고 했지만 사실 2주 정도 남으셨습니다. 가시는 길 행복하게 보내주세요."


머리에서 벼락이 떨어진 것 같다.


분명 처음에 진단받을 때는 2년 산다고 했으면서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한 달 남았다고? 그리고 이제는 2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의사가 돌팔이처럼 보였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병원이 엄마를 내쫒을까 두려워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날 바로 병실에 입원한 엄마는 먹고 있던 알약 진통제를 중단했고 혈관으로 모르핀을 직접 맞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아가니 엄마가 마치 기면증에 걸린 듯 3초에 한 번씩 졸기 시작했다.


밤이 되니 걷지 못할 정도로 몸에 힘이 없었고 말을 제대로 못 했다.



2일이 지나니 5번은 불러야 쳐다보았고 10번을 질문해야 고개로만 대답을 대신했다.


7일이 지나니 더 이상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10일 새벽 5시에 심장이 멎어 돌아가셨다.



***



[2024년 7월 31일]


과거 여행을 떠나 엄마에게 모든 사실을 물었다.


할아버지를 살린 사실이 진실인지


그것으로 인해 내가 태어나지 않아 할아버지 대신 나를 택한 건지


엄마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부모를 잃는 슬픔보다 자식을 잃는 슬픔이 더 괴롭다고 나한테 말했다.


폭포 같은 눈물을 쏟은 엄마는 시간여행을 그만두라고 신신당부했다.


"정수야 과거를 바꾸면 바꿀수록 미래는 더 안 좋아져 너도 나를 살리기 위해서 과거를 자꾸 바꿔나가면 결국에는 너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 거야"


머리로는 아는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고 말하자


엄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타임머신을 망치로 부수기 시작했다.


쾅! 쾅!


시계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고 내 눈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절대 과거를 바꾸지 마!"


마지막 말과 함께 몸이 땅속으로 꺼지는 느낌을 받으며 현실로 돌아왔다.



***



엄마가 돌아가신 후 뼛가루를 납골당에 모셨다.


납골함에도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일반 납골함과 진공 납골함이 따로 있었다.


상조에 가입이 되어있으면 일반은 0원이고 진공은 100만 원이 추가되었는데


진공 효과가 무엇이냐, 상조 직원에게 물으니


"진공 납골함은 뼛가루가 썩지 않고 벌레가 생기지 않게 도와줍니다."


같은 자식의 마음을 건드리는 답변을 들려왔다.


순간 많이 고민했지만, 뼛가루는 오랜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썩기 마련이다.


그런 것으로 효자 노릇은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납골당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청련사에 있다.


청련사는 이름에서 알 수가 있듯이 절인데 절과 협약을 맺은 납골당 업체가 상주해 있다.


납골당을 살펴보면 칸칸이 유리창으로 함이 나뉘어있는데


두 칸짜리와 한 칸짜리는 가격이 다르다. (두 칸이 더 비쌈)


게다가 눈높이에 맞는 칸은 경쟁이 치열해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예약을 해놓았다.


나는 엄마가 죽는다는 상상을 하는 게 두려워 하나도 준비하지 않아 맨 위에 모시게 되었다.


지금도 매주 일요일만 되면 차를 타고 납골당을 방문한다.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가끔은 생전에 좋아했던 김밥이나 된장국을 싸 온다.


다른 사람 중에는 피자나 치킨 맥주를 가져온 사람도 꽤 많다.



막상 납골당에 가도 눈물이 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


하지만 집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으면 울컥울컥 엄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죽음은 얼마나 허망한지


평생을, 자식을 위해 일한 엄마는 얼마나 불쌍한지




사람이 사는 원동력은 가족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기에 근근이 산다.


불교를 믿지는 않지만, 엄마가 부잣집에 환생하는 상상을 하거나


천주교를 믿지는 않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나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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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몽의 괴물 (2) 24.07.28 11 0 11쪽
4 악몽의 괴물 (1) 24.07.27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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