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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4.07.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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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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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1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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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다섯 번째 영웅 (4)

DUMMY

여기를 둘러봐도

저기를 둘러봐도

눈을 비비고 봐도

자토스는 확실히 멸망했다.


“저하.”


“어. 수고.”


그리고 나는 율리안 듀발론이라는 놈의 몸을 차지했다.


“방금 들었어? 저하께서 수고한다고 하셨어!”


“멍청한 놈! 수틀리면 고문할 테니 조심하라는 뜻이잖아!”


선의로 한 말조차 악의로 받아들인다.

저들의 마음이 뒤틀려서가 아니다.

이 몸의 원주인이었던 녀석의 심보가 그랬던 거겠지.


“저하! 어찌 비를 쫄딱 맞으며 혼자 오십니까?”


눈앞에 안경을 쓴 노귀족 한 명이 나타났다.

체격과 골격, 기운을 보아 기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군사인가?


“그냥 비를 맞고 싶어서.”


노귀족은 당황했다.

그의 의도는 알고 있다.

비를 쫄딱 맞으며가 포인트가 아니다.

어찌 혼자 오십니까가 포인트.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그렇습니까?”


“전멸했네. 나를 제외하고.”


“마이트 경도 전사했다는 말입니까?”


“그만큼 강한 존재였네. 검성의 후예 아닌가?”


“.......”


“왜? 황족인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생각하나?”


나는 눈앞에 귀족의 대답을 주시했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귀족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황권은 어느정도 있는 거 같고.’


다음은 이 노인의 정체.


“그대는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도노반 슬레인이라고 합니다.”


“도노반 슬레인....”


그냥 느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이 노인과는 깊게 엮일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노반 슬레인 경. 자네가 총사령관인가?”


“그렇습니다.”


“전쟁은 끝났다. 주둔할 병사는 주둔시키고 떠날 병사는 떠나게 작업을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허면 탈주한 검성의 후예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의심받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의심을 끊을 수 있을까?


“이곳의 지리는 이곳 귀족이 잘 아는 법. 한동안 이곳에 머무르며 제국에 충성을 맹세한 귀족들의 도움을 받겠네.”


“황궁으로 바로 복귀하지 않으실 겁니까?”


“두 번 얘기하게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자리를 떠났던 도노반이 내 앞에 자토스의 몰락한 귀족들을 데리고 왔다.

명령은 따르되 의도는 묻지 않는다.

확실히 유능한 귀족이었다.


“그럼 일 보십시오.”


도노반이 나간 뒤, 나는 의자에 앉아 내앞에 고개숙이고 있는 귀족들을 살폈다. 그 수가 총 10명.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였다.


“너희 돈 많냐?”


귀족들이 눈을 깜빡였다.

당연한 일.

돈이라면 넘쳐날 황족인데 다짜고짜 돈을 찾으니.


“나는 없거든.”


“얼마가 필요하십니까? 저하?”


이때 눈치빠른 귀족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이름이 뭐지?”


“아이작 므로반이라고 합니다. 저하.”


아이작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짝!


나는 보란듯 녀석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었다.

나라를 이따위로 만들고 적에 붙어먹은 것.

애초에 네크로맨서를 오물로 취급했던 점.

눈에 보이는 얍삽함.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기선제압.


“아이작. 내가 지금 너랑 흥정하자고 이런 질문을 한 거 같나?”


“죄송합니다.”


“모두 알다시피 검성의 후예가 제국의 귀장한 기사는 물론 태양교의 사제까지 죽인 후 탈주했다. 나는 한동안 이곳에 머물며 그녀의 행적을 쫓을 생각이다. 근데 내가 머물 집이랑 돈이 없네?”


귀족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아니야. 눈치보지마.”


깜빡거리는 눈들.


“힘을 합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텐데 왜 경쟁을 하려고 해.”


귀족들의 얼굴이 죽상이 됐다.

누군가는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다.

하지만 모두가 나눠가진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이란 말인가?

내가 이렇게 배려심이 깊다.


“나 밥 먹고 올 테니까. 정해지면 연락해.”


***


자토스 거리는 옛날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나라가 멸망했고 비가 와서 움울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전에 동료들과 자주 같던 술집은 옷집으로 변해있었고

처음보는 음식을 파는 곳도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물은 전쟁으로 반파되거나 손상된 상태.


거리를 둘러봤다.

사람들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주변에 시체들은 널려있었다.


“흠.....”


거리 곳곳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이 나를 보고 경례했다.

내 얼굴을 아는 이도 있겠지만 내 갑옷에 새겨진 마크 때문이겠지.

고개를 치켜들고 늠름하게 서있는 황금 사자 마크.

그 마크가 나의 신분이요 무기였다.


“저하. 식사는 하셨습니까?”


어딜 가나 출세의 목마른 인간들은 많았다.

지금만해도 그랬다.

내가 누군줄 알고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와 말을 건단 말인가?


“아니.”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와서 드시지요?”


“됐다. 너나 많이 먹어라.”


“예!”


전쟁이 벌어지면 무엇보다 식량이 귀해진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거리엔 사람이 없었다.

그 이유가 있었다.

다들 배식을 받는 군인에게 빌붙어 한끼라도 얻어먹으려는 것.


“아! 잠깐만.”


“무슨 일이라도?”


“평상복이랑 돈 좀 구해줄래?”


***


식당에 와있다.

내가 룬디아였던 시절, 로레인, 나타샤와 함께 자주 왔던 곳이다.


‘나타샤. 여기는 100년이 지나도 망하지 않는다는데 진짜였네.’


“무엇을 드릴까요?”


새삼 자토스라는 나라가 망했다는 게 느껴진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식당의 주인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어색한 제국어를 쓰고 있었다.


“여기서 제일 잘 나가는 걸로.”


나는 주인장이 편하게 자토스어로 말해줬다.

주인장이 후다닥 주방으로 들어갔다.

식당을 살폈다.

영혼에 있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구수한 음식 냄새.

따듯한 온기.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달력.

달력을 바라봤다.


제국력 673년 10월.


‘제국력?’


“주인장.”


“예? 예!”


“제국력 673년이 여명력으로 몇 년이지?”


제국력은 제국이 쓰는 년도.

여명력은 자토스가 쓰는 년도였다.


“562년입니다!”


“562년이라....”


의미있는 숫자였다.

내가 랜턴에 들어간게 여명력 462년이었으니까.


“정확히 100년만이네.”


그렇게 회상에 잠겨있을 때 주인장이 음식을 내왔다.

돼지고기를 푹 삶아 국물이 진한 음식이었다.


“자토스 사람이래요?”


주인장이 식당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나에게 자토스어로 물었다.


“자토스 사람이었죠.”


“아.... 그렇죠. 우리는 이제 제국인이죠.”


랜턴에 나와 처음 먹는 음식.

맛있었다.

입안에 여러가지 감각이 조화를 이뤘고

뱃속이 따듯해졌다.

새삼 내가 다시 살아났음을 느끼는 순간.


“이제 대륙에 남은 나라가 몇 개입니까?”


“없어요.”


“네?”


“자토스가 마지막이었어요.”


“케스위브, 리올란다, 콘티센트. 모두 멸망했다고요?”


주인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듀발론이 대륙을 통일했다는 말이에요?”


주인장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살아있던 대전쟁 시절.

듀발론은 작은 소국에 불과했다.

그 당시 책사로 활약했던 솔로몬 듀발론의 머리가 비상하긴 했지만 설마 100년 뒤에 대륙을 통일할 줄이야.


내가 병사들에게 평상복을 준비해달라는 이유였다.

제국의 병사들에게 하나하나 충분히 물어볼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율리안이라는 녀석을 몰랐다.


부하를 대하는 태도.

평소 말투.

생활 패턴.

여성편력까지.

뭐 하나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니 식당에서 주인장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고 안전한 일.


“당신은 어떻게 살아남았죠? 반항하는 이들은 모두 죽였을텐데.”


그녀의 눈에 일순 강한 경멸감이 스쳤다.

이해할 수 있었다.

건장한 자토스 남성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개가 되는 것’


그들은 제국의 목줄이 기꺼이 묶인 채

적군이 아닌 동포들을 향해 몽둥이를 들었다.

지금 그녀는 내가 제국의 개라 생각하고 있는 것.

그때


끼익.


문이 열리고 제국군이 들어왔다.


“어서오쉐요.”


주인장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제국어를 사용하며 공손하게 제국군에게 갔다.


“여기 음식이 참 좋아.”


병사는 총 둘이었다.

그 중 나이가 지긋한 털보 병사가 주인장의 엉덩이를 노골적으로 주물렀다.


“캄사합니다.”


주인장은 희롱을 감내하며 주문을 받았다.


“맛있게 부탁해.”


털보 병사는 가는 그 순간까지 주인장을 희롱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해서 음식을 먹었다.

나라가 망하면 자국민은 고통받는 게 당연한 일이었고

저들도 전쟁의 광기를 아직 씻어내지 않은 상태니까.

그렇게 계속 밥을 먹고 있는데

털보 녀석은 여전히 심심했나보다.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걸어왔다.

나무 바닥이 끼익끼익 소리를 냈다.

주인장을 바라보니 표정이 안 좋았다.

마치 나무 바닥이 도망가라 경고를 하는 느낌.


“이봐.”


나는 말없이 녀석을 바라봤다.


“....... 완장은 어딨나?”


“완장?”


“자토스 인들은 모두 완장을 찬다. 몰라?”


내가 주인장을 바라봤다.

그제야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완장.


‘잡토스’


거기엔 제국어로 망국의 국민을 희롱하는 단어가 써 있었다.


“나는 안 차도 된다.”


“국민 경찰이냐?”


“나도 제국인이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키가 큰 것도 있었지만

녀석의 키도 작았다.

그 별거 아닌 두 사실이 우리 사이의 키차이를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상인새끼냐?”


이미 긁힌 자존심.

녀석은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우월감을 드러내려 했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하나 고민했다.

그리고 가장 현명한 해답을 찾았다.


“도노반 슬레인의 가솔이요. 됐소?”


“실례했습니다.”


도노반 슬레인의 이름은 녀석을 군말없이 제자리에 돌려보내기 충분했다.


“식당에 왔으면 밥만 먹읍시다.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하지 말고.”


뒤돌아선 녀석의 몸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그럼에도 녀석은 군말없이 자리에 착석했다.

나는 괜히 주인장에게 미안해졌다.

저런 부류의 인간은 자존심의 상처를 입으면 자신보다 약한 이에게 화를 풀기 마련. 그리고 그 예감은 정확히 적중했다.


“오늘은 맛이 왜 이따위야!!!”


녀석이 나온 음식을 집어던지며 패악질을 부렸다.

그런 소란 속에서도 나는 담담이 밥을 먹었다.

이럴수록 더 먹어야 한다.

입맛이 떨어진다고 자리를 떠나는 건 나만 손해입는 일이니까.


“잘 먹었소.”


나는 제국어로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관련된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개입해 있었기에 그릇 앞에 돈을 두둑히 올려놨다.


“어디로 가야 하나?”


일단 허기짐에 밥을 먹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지금 당장 주머니 속 이 아이를 살릴 방도도 떠오르지 않았고

이 아이를 맡아줄 믿을만한 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신분이 발목을 잡았다.


대륙을 통일한 제국의 황자.

이는 검성 나타샤의 후손을 넘겨주기 전에 암살자를 만나는 게 더 빠를 거다.

찾아온 암살자한테


“검성 후손인데 맞아주겠니?”


이러면


“오? 진짜. 감사해요.”


이러면서 맡아줄 것도 아니고.

앞으로의 자취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어이! 거기! 너! 잠깐 서봐.”


저 거머리 털보 녀석이 의기양양하게 걸어나왔다.

저런 경우는 하나다.

나와 저놈 사이의 키차이를 뒤집을 수 있는 건수를 잡았다는 것.

녀석이 동전을 들어올렸다.


“이걸로 계산했지?”


“왜? 문제있나?”


“이게 뭔지 알아?”


“자토스의 돈 아닌가?”


“여기는 제국땅이다. 제국에서 왜 자토스 돈을 쓰지?”


‘아....’


순간적으로 머리가 아파왔다.

병사놈이 평상복과 함께 건넨 돈.

나는 녀석이 악의를 가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갑자기 황자가 자신에게 명령했으니 우선은 빠르게 준비해야했겠지.

이놈 원래 성격이 드러웠으니까.

라고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거 같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실수였소.”


“실수? 실수했으면 맞아야지.”


그래.

차라리 한대 맞고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거 같다.

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화가 났다.

내가 왜 이딴 놈한테 맞아야 하는가.


퍽!


“끄어어어어억.”


털보의 눈이 뒤집히며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


어딜 가나 마찬가지다.

욱하는 성질은 자랑이 아니다.

한 번만 참으면 될 걸 참지 않으면 생각보다 일이 커진다.

지금의 나처럼.


덜컹!


살아있음을 느낀다.

눅눅한 공기.

지독한 악취.

사방에 걸어 다니는 쥐.

그리고 꼬르르륵 소리.


나는 지금 감방에 수감 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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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로레인 블라디미르 (2) 24.08.01 85 1 12쪽
5 로레인 블라디미르 (1) 24.07.31 100 2 12쪽
» 다섯 번째 영웅 (4) 24.07.31 118 1 12쪽
3 다섯 번째 영웅 (3) 24.07.31 168 2 12쪽
2 다섯 번째 영웅 (2) 24.07.31 217 8 12쪽
1 다섯 번째 영웅 (1) 24.07.31 26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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