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기의 올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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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라곤신
작품등록일 :
2024.08.04 22:24
최근연재일 :
2024.08.2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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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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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쿠우웅. 쿠우우웅······.


잿빛 하늘 아래, 흑색으로 칠해진 도시 위. 거대하다 못해 장대한 핏빛 태산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체들과 그 원념이 뭉쳐서 만들어진 배덕과 불경의 온상. 인접한 모든 생명들을 집어삼켜 제 일부로 만드는 범세계적 재앙, ‘시산혈해’라는 존재였다.


콰앙! 콰아아아앙!


시산혈해의 위쪽 하늘에는 새하얀 색으로 빛나는 수십 척의 비행함선들이 폭격을 가하며 퇴각하는 중이었다. 수백 미터에서 수 킬로미터를 일시에 소각시키는 빛의 함포들은 분명 위협적이었지만, 저 흉험한 태산에게는 그조차도 경미한 손실일 따름이었다.


한편, 새하얀 함선들 중 하나의 함교 위에는 어떤 남자가 시산혈해를 향해 오른손을 뻗고 있다. 손끝이 향하는 방향, 함선과 시산혈해의 중간 지점에는 새하얗고 커다란 날개를 지닌 여자가 있었는데, 여자의 한쪽 날개는 시체의 태산에 반쯤 파묻힌 상태였다.


[벗어나야 해! 날개를 끊어!]


남자는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여자의 날개와 그의 손끝은 하얀 빛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그 연결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또한 아무리 잡아당겨도, 여자의 날개는 시체의 산을 뚫고 나오지 못했다.


[······난 가망이 없어. 이미 시산혈해의 잠식이 시작됐으니.]


여자는 무신경하게 말했다. 일견 매정할 정도의 말투였으나, 그녀와 정신이 연결되어 있는 남자는 그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너까지 붙잡히게 할 수는 없어. 죽음보다 훨씬 끔찍한 고통은 나 혼자로도 충분해. 너를 위한 나의 마음을 헛되게 하지 말아줘.


[안 돼! 차라리, 차라리 같이······!]


남자는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차라리 거인과 함께 산에 파묻히는 것을 선택하려 했다.


[······사랑해.]


하지만 여자가, 남자가 탄 함선을 향해 두 손바닥을 내지르자.


파아아아앙─!


두 손바닥으로부터 거대한 충격파가 일며 여자와 남자가 탄 함선을 멀리 밀어냈다. 그리고 여자는 충격파의 반탄력으로 인해 산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안 돼애애애애애애─!! 아아아아아아악─!]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남자는 목이 쉬도록 애처롭게 비명을 질렀다. 등 뒤에서 몇몇 사람들이 다가와 함선에서 몸을 던지려는 그의 몸을 붙들었다.


* * *


띠리리리링!


몽롱한 어둠 속에서, 감겼던 눈이 떠지며 빛이 보인다.


“안 돼애애애······.”


올해로 15살이 되는 소년, 티르는 침대 위에서 울먹이며 팔을 휘저었다. 감정의 격랑에 잠겨 있길 잠시, 그는 자신이 꿈에서 막 깨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킬 즈음, 바깥에서부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그리고 근처에서 울리는 자명종 소리도.


띠리리리······. 탁!


티르는 자명종에 손을 뻗어서 끈 다음, 눈물이 흘러내리는 눈으로 천장을 멍하니 응시했다.


“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는 방금 전에 겪은 그 경험을 그저 단순한 꿈이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시체의 산에 파묻힌 여자에게 손을 뻗으며 느꼈던 그 감정들은 지금까지도 선연했다. 그는 기이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그건 언젠가의 내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야.”


잠시간 제자리에 멍하니 있던 그는, 이내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찬물로 세수를 하는 동안 생각했다. 그 꿈의 의의를 지금은 알 수 없으니, 현실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세수를 마친 티르는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뒤, 허리춤에 장검 한 자루를 찼다.


“티르 공자님.”


그 상태로 방 바깥으로 나가자 단정한 옷차림의 노신사가 티르에게 목례했다.


티르의 전속 집사 ‘노엘’이라는 자였다.


“오늘도 식사하신 후에 개인 연무장으로 가십니까?”


“응.”


노엘의 물음에, 티르는 무표정한 얼굴로 짧게 대꾸하며 그를 지나쳐 복도를 가로질렀다. 저택의 1층에 있는 식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노엘은 그런 티르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저택은 매우 넓음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관리도 잘 안 되었는지 먼지와 거미줄이 잔뜩 깔린 곳도 많았다. 이는 사실상 저택에 지내는 인원이 티르와 노엘 둘뿐이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돌빵으로 해결하실 겁니까?”


식당에 도착하자, 노엘이 물었다. 티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 근처에 산처럼 쌓인 검은색 돌덩어리들 중 몇 개를 집었다. 이름하야 돌빵. 세상에서 가장 값싼 식품이며, 말 그대로 돌과 같은 맛이 난다는 특징이 있었다.


단단하기는 어찌나 단단한지, 가루로 만들지 않으면 애초에 먹을 수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신기하게도, 가루로 만들어 위장 속에 들어가면 대단히 훌륭한 영양소로 바뀐다는 특징도 있었다.


빠드드드득! 빠드득!


티르는 주방 안의 커다란 분쇄기에 돌빵들을 넣고 간 뒤, 가루가 된 돌빵을 호리병에 넣어 입속에 탈탈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쓴 맛과 비릿함에 인상을 찌푸렸다.


‘제대로 된 음식의 맛이 어땠는지, 이젠 기억도 잘 안 나.’


그라고 항상 좋아서 돌빵을 먹는 것이 아니었다. 돈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남들이 보면 이상하게 여길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티르는 이 베이샤 대륙의 7대 검술가문들 중 하나인 아라테스 공작가의 서자(庶子)들 중 하나였기 때문. 적자(嫡子)만큼은 아니어도, 나름의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는 신분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럼에도 티르가 항상 돈에 쪼들리며 살아야 하는 이유. 그것은 그가 검술에 재능이 없는 탓에 아라테스 공작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공작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은, 가문 내에서 그에게 어떠한 힘도 없다는 의미였다.


“티르 공자님. 이리 와보십시오.”


연신 냉수로 입을 헹구는 티르를, 아까 전부터 주방에서 냄비에 무언가를 넣고 끓이던 노엘이 불렀다. 티르는 약간의 호기심과 기대감을 품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주방에는 쓴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큼 강한 향을 뿜어내는 것은 고급 약재 혹은 영약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자, 이걸 보십시오.”


“······노엘.”


과연, 예상은 들어맞았다. 물이 끓는 냄비 안에는 푸른 단환 같은 것이 들어 있었는데, 이는 베이샤 대륙의 특산물이자 영약인 ‘창천(蒼天)의 정수’라는 물건이었다.


하나의 가격이, 중산층 가정의 한 달 수입을 1백배는 상회하는 귀물.


“조금 있다가, 훈련하는 와중에 복용하십시오.”


창천의 정수를 집게로 건져낸 노엘이, 그것을 보온병 안에 온수와 함께 담으며 말했다. 가만히 그걸 응시하던 티르는, 이내 목 멘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노엘이 사비로 구매한 거지?”


“예. 물론입지요. 제가 돈이 날 구석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난 10년 동안 공작가 자제들의 선생 노릇 하면서 벌어온 수업료를 다 털어서 샀습니다.”


“······.”


노엘은 티르의 어머니를 수발들던 시종이었다. 티르의 어머니가 공작의 미움을 받아 시름시름 앓다 죽은 이후, 노엘의 처지는 티르와 다를 바가 없어졌다. 다만 그건 노엘이 자처한 바가 없지 않았는데, 그는 굉장히 박식하고 유능한 인물이어서 공작의 수족을 자처했다면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노엘은 공작에 대한 앙심을 저버리지 못한 탓에, 티르와 나란히 밉상으로 찍혔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공작가의 자제들을 상대로 세계의 중심인 ‘중앙대륙’에 대한 귀한 지식을 베풀었는데, 베푸는 지식에 비해 초라한 봉급을 받아왔다.


그렇게 10년 동안 벌어온 돈을, 고작 영약 하나를 사기 위해 전부 날려버린 것이다.


“정말, 고마워······.”


티르는 울음을 참으며 보온병을 받아들었다. 노엘은 그런 그에게 인자하게 웃어주었다.


“자, 어서 가십시오. 오늘은 분명 진전이 있을 겁니다.”


“응······!”


티르는 몇 년 만인지 모를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식당을 나섰다.


하지만 저택의 별채에 마련된 개인 연무장으로 가는 길. 티르의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근데, 내가 영약을 복용한다고 해서 경지를 증진시킬 수 있을까?’


아라테스 공작가의 자제들은 보통 15살, 성인식을 치르기 전에 오러의 경지를 3위계 초기까지 끌어올린다. 반면, 티르의 경우는 15살이 된 올해에 이르러서도 오러의 경지가 1위계 중기에 불과했다.


하루 평균 열다섯 시간을, 스스로를 혹사하다시피 훈련하는 것이 티르이니. 그것은 재능의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재능의 벽은, 노력만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것보다 더 훌륭한 영약을 복용했을 때도, 나는 아무런 효능을 끌어내지 못했다.’


사실 영약을 복용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한때는 티르 역시 공작으로부터 열렬한 기대를 받았던 때가 있었다. 티르의 어머니는 구성원 전원이 여성이며, 자궁 속의 자녀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우수한 자질을 전수한다는 ‘진모족(眞母族)’이라는 아인종이었기 때문.


전 대륙의 모든 유력한 남성들이 앞 다투어 배우자로 들이길 희망한다는 진모족을 우연히 거둬들인 공작의 환희는 대단했고, 그녀와 동침하여 낳은 아들이 폐급이었음을 깨달은 이후의 분노는 그 이상으로 격렬했다.


‘어머니는 내 자질이 형편없는 탓에, 공작에게 미움을 받아 돌아가셨다.’


진모족은 상당히 예민한 종족이었다. 반려의 미움을 받게 되면 얼마 못 살 정도로.


티르의 어머니는 말 그대로 지속적인 미움을 받은 탓에 죽어버렸고, 티르는 그것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항상 죄책감을 느꼈다. 항상 혹독하게 훈련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어머니······. 당신은 돌아가셨는데, 저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개인 연무장의 문 앞에 도착한 티르는, 고개를 푹 떨어트린 채 수렁과도 같은 상념에 잠겼다. 뼈저리게 힘든 훈련을 아무리 악착 같이 해도 결과는 늘 미미했다. 그래서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던가.


······그때마다 티르를 위로하고 지탱하던 것은 단 한 명, 노엘이었다.


‘노엘······.’


노엘이 티르에게 재능이 없음을 몰랐겠는가?


그럼에도 그는 기어코 티르의 앞날을 위해 영약을 선물했다.


‘여기서 주저앉는다는 것은······.’


노엘의 10년 세월과, 그의 기대를 모조리 저버리는 일.


거기까지 생각한 티르의 눈길이, 손에 들린 보온병에 닿았고.


끼익.


티르는 더 이상의 상념을 지운 채, 개인 연무장 안으로 들어섰다.


드넓은 연무장 내에는 수많은 기구들이 있었다. 혼자 쓰기에는 과해보일 정도로 좋은 시설. 유망주로 기대 받았던 시절에 공작이 하사한 연무장이기에 그랬다. 지금은 방치되다시피 한 티르의 저택 역시 마찬가지의 것이었다.


티르의 자질이 형편없음이 밝혀진 현재에 이르러서도 저 넓은 저택과 연무장을 그대로 티르의 것으로 두는 이유는, 진모족의 집을 강탈하면 액운이 찾아온다는 미신 때문이었고.


저벅저벅.


티르는 기구들 중에서, 강철 갑옷을 입은, 인간 상체 형태의 허수아비들이 스물다섯 개 나열된 곳으로 다가섰다. 각 허수아비들을 매단 금속 막대들은 천장에 이리저리 그려진 실선 형태의 홈 너머와 연결되어 있었다. 연무장 내에서 가로 세로 각각 25미터의 넓이를 차지한 그것은, 통칭 ‘허수아비 때리기’라는 훈련기구.


스릉.


허리춤의 진검을 뽑아든 티르는, 잠시간 허수아비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근처의 계기판에서 버튼 하나를 눌렀다.


위이이이이······.


기계음과 함께 허수아비들이 위아래로, 그리고 천장의 실선들을 따라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둥근 천장이 빙글빙글 회전하기도 하는 탓에, 막대에 고정되어 실선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음에도 허수아비들의 움직임은 굉장히 변칙적이었다.


티르는 체내의 오러 하트에 집중하여, 체내 마나를 오러 하트를 중심으로 고밀도로 응집시킴으로써 오러로 연성해냈다. 이후, 오러를 오러 하트의 힘으로 체내에서 순환시킴으로써 육체능력의 증강을 이뤄냈다.


탓!


직후, 티르는 위험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허수아비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이 훈련에서 평가의 요소는 세 가지였다. 허수아비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속도의 빠르기, 허수아비들에게 새긴 검흔들의 치명성과 그 개수, 허수아비들의 몸통박치기에 영향 받지 않는 날렵한 체술.


파각! 카각! 쩌엉!


헌데, 첫 시작부터 티르는 극심한 위화감을 느꼈다. 점차 시간이 느려지는 것과 동시에, 검에 실리는 힘이 강해지고, 또한 몸이 이상하게 가벼워졌던 것이다.


‘이게 대체······?’


카가각! 빠악! 타앙!


거의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와중에, 매 1초마다 전력을 실은 네 번의 검격을 날리며, 그 검격들이 전부 허수아비들의 가슴팍과 목, 머리에 적중하고 있었다. 전방과 양 측면은 물론, 후방에서 쇄도해오는 허수아비들도 소리를 듣고 어렵잖게 피해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신들린 듯이 움직였다. 상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대략 5분의 시간이 지나자.

─────────

훈련 종료.

총 점수 : 8,142점

전체 순위 : 10,823위

1위계에서의 순위 : 1위

─────────


연무장 내의 인공지능이 훈련 결과를 계기판에 내보였다.


그건 티르의 기존 기록보다 수십 배는 더 높은 점수였다.


‘1위계에서, 1위라고? 진짜로?’


그 말인즉, 공작가의 그 누구도 1위계였던 시절에는 티르보다 더 높은 점수를 기록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현 가주인 공작을 비롯하여 가문 역사상 수백이 넘는 천재들조차 말이다.


믿기지가 않았다. 심지어 아직 영약, 창천의 정수는 복용하기도 전인데 말이다.


원인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티르는,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오늘 꾼 꿈.”


이 날의 특이한 점을 꼽아보자면, 단연 잠자리에서 꿨던 꿈이 있었다.


티르는 그 즈음 더더욱 확신했다.


그건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차라리 전생의 기억에 가까운 것이었다.


‘내 영혼에 무슨 변화가 생긴 게 분명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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