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기의 올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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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라곤신
작품등록일 :
2024.08.04 22:24
최근연재일 :
2024.08.2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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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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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뭐냐! 싸움을 멈춰라!”


“부상자들을 병동으로 데려가!”


기사들은 현장의 참극에 당황하면서도, 빠르게 허수아비 때리기 기구 안쪽으로 들어와 부상당한 소년들을 챙겼다. 티르 역시 더 이상 싸우길 멈추고 기구 바깥으로 나와서 어느 한 늙은 기사와 시선을 마주했다.


늙은 기사의 이름은 ‘베르트’. 공작가에 단 일곱 밖에 없는 기사단들 중 한 곳의 기사단장이며, 또한 공작가에 단 셋밖에 없는 소드 마스터들 중 한 명이었다.


‘이제 와서 든 생각이지만, 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게 빌터 패거리의 부모 같은 사람들이었으면 단칼에 죽임을 당했을지도.’


티르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베르트는 공정하기로 유명한 기사였으니.


“2위계가 되셨군요.”


잠시간 티르의 눈동자를 마주보던 베르트가 그리 말했다.


티르는 긴장이 풀리자 뒤늦게 찾아온 현기증을 느끼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불과 10여분 전까지만 해도 티르 공자께서는 1위계였던 걸로 압니다만.”


훈련기구들에는 사용자들의 체내 오러를 투시하여 그 위계를 알아내는 센서가 달려 있다. 그 센서를 기만하려면 최소한 5위계는 되어야 하므로, 베르트는 티르가 각종 훈련의 기록들을 세울 무렵에 1위계였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 역시 맞습니다만, 그 이후로 영약을 복용하고 승급했습니다.”


“무슨 영약을 복용하셨지요?”


“창천의 정수입니다.”


티르의 말을 들은 베르트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을 빛냈다.


“흥미롭군요. 티르 공자께서 복용하신 그 창천의 정수는 효능이 그닥 뛰어난 물건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예? 베르트 경이 그걸 어찌 아십니까?”


“노엘 씨에게 돈을 받아 창천의 정수를 대신 구매해드린 사람이 저이니까요.”


“아······.”


생각해보면 티르와 함께 저택에 유폐된 것이나 다름없는 노엘의 입장에선 돈이 있어도 직접 영약을 구매할 형편이 못 되었다. 유일한 방법은 공작가의 가솔들 중 누군가에게 의뢰를 하는 것. 하지만 공작의 눈 밖에 난 노엘의 청을 들어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영약을 복용할 사람이 티르라는 가문의 쓰레기로 예정되어 있다면 더더욱.


아마 베르트가 아니었더라면 창천의 정수는 영영 못 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티르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그에게 물었다.


“이번 일의 자초지종을 듣고 싶습니다.”


“아, 그게······.”


뒤이어, 티르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설명했다. 어차피 그는 떳떳했을뿐더러, 연무장의 모든 일은 마력 기록구에 의해 영상으로 녹화되니.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었다.


단, 오늘 꾼 그 특별한 꿈의 이야기는 발설하지 않았다.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았기에.


“티르 공자님의 진술이 사실인가? 말해보게.”


베르트는, 근처에서 어물쩍거리고 있는 두 명의 소년에게 물었다. 빌터의 패거리들 중 병동에 실려 가지 않은 두 명이었는데, 그들은 처음에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더니.


“당장 대답하라─!”


“아, 예, 예. 그, 그런 것 같습니다.”


“티, 티르가 한 말이 전부 마, 맞을 겁니다.”


베르트가 기세를 발하며 고함을 지르자 그때서야 덜덜 떨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쯧, 한심하기는······.”


“단장님. 영상을 봐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거 완전 대박인데요?”


혀를 차는 베르트에게, 연무장을 제어하는 계기판을 조작하던 기사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흠. 한 번 봅세. 티르 공자께서도······. 음. 기절하셨군.”


그 무렵, 티르는 선 채로 기절한 상태였다.


“톨겐! 치유사를 이곳으로 불러라.”


“옙!”


베르트는 부하 기사에게 티르를 치유할 사람을 부르라 시킨 뒤, 계기판 근처의 스크린에서 출력되는 영상을 시청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스크린에서 두 눈을 떼지 못했다.


* * *


‘끄응. 머리가 아프네.’


두통과 함께 정신을 차린 티르는, 제 주변에 꽤 많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후, 흐릿하던 시야가 또렷해지자, 티르는 주변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했고.


‘뭐야······?’


상당히 크게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아버지 아라테스 공작이 근처의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 뒤로는 공작가에 일곱 밖에 없는 기사단장들 중 다섯 명이나 시립해 있었기 때문.


‘이제 막 몬스터 토벌을 마치고 복귀했나보군.’


아라테스 공작은 주기적으로 몬스터 토벌대를 꾸려 영지 내에서 발생한 위험한 몬스터 무리들을 토벌한다. 기사단장들이 아직 먼지 묻은 갑주를 착용한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토벌을 끝마치고 영주성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자신을 찾아온 듯 보였다.


“일어났군.”


아라테스 공작이 푸른 눈으로 티르를 응시하며 말을 걸어왔다.


티르는 누워있던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예. 가주님.”


“네가 네 연무장에서 펼친 활약은 잘 보았다. 고작 하루 만에 엄청난 성취를 이뤘더구나.”


자기 친자식의 배에 구멍을 뚫은 그 짓거리를 ‘활약’이라고 칭하는 것부터, 티르는 공작에게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예. 그랬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지? 짐작 가는 바가 있느냐?”


티르는 잠시 고민했다. 꿈에 대해 사실대로 털어놓을까 하는.


하지만 이내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째서인지 그는 본능적으로 누구에게도 꿈의 내용을 털어놓기가 싫었고, 아라테스 공작에게는 더더욱 그러기 싫었다. 어머니를 죽인 점을 제하고 봐도 아라테스 공작은 상당히 음험한 인물이었으니.


“······어머니가 물려주신 자질이 이제야 발현된 건 아닐까요? 그 외엔 잘 모르겠습니다.”


티르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내뱉었다.


남들이었다면 이런 자리에서 거짓말을 내뱉는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일수도 있었다. 공작쯤 되는 위인에게 거짓말을 탐지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 하지만 티르는 자신에게 어지간한 거짓말탐지기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냥 태생적으로 그런 체질이었다.


“······그럴 리는 없을 텐데.”


헌데, 공작의 반응이 다소 예상 밖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그걸 어떻게 알지?’


티르가 의문을 떠올리던 와중에, 공작이 말을 이었다.


“하여튼 간에, 너를 찾아온 용건을 말하지. 조만간 대륙 서부에 대대적인 몬스터웨이브가 발생할 것이라는 백색마탑의 예측이 있었다. 4대 왕국의 53개 가문이 토벌을 위해 출정할 것이고, 우리 가문 역시 5만의 군사를 이끌고 갈 예정이다. 너 역시 거기에 참여해야겠다.”


“어째서입니까? 저는 고작 2위계일 뿐인데요.”


공작가의 가솔들은, 보통 4위계 이상이어야지만 전투인원으로서 큰 전장에 불려나갈 수 있었다. 그 미만은 전쟁에서 큰 도움도 안 되거니와, 개죽음을 당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


하지만 공작의 뜻은 확고했다.


“평범한 2위계가 아니기에 그렇다. 뒤늦게 개화한 네 재능엔 대단한 가능성이 엿보였다. 그 가능성을 하루빨리 꽃피우려면, 사선을 넘나드는 실전경험과 막대한 살업(殺業)이 필요해.”


“······알겠습니다.”


공작의 눈빛에서 거절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기에, 티르는 승낙했다.


“출정은 열흘 후다. 그때까지 네게 3급 이하의 모든 영약을 허용할 테니, 재량껏 복용하여 경지의 증진을 이뤄라. 또한 백표(白豹) 기사단장을 네 곁에 붙여줄 테니, 그녀에게서 지도를 받도록.”


“예.”


“그럼 이만 가보겠다. 쉬어라.”


공작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단장들도 한 명만 빼고 공작의 뒤를 따라 떠났다.


“티르 공자님.”


병실 안에 티르와 단둘이 남은 자, 백표 기사단장이 티르를 불렀다.


“예, 로엘린 경.”


“빌터 공자네 패거리와 맞붙던 그 영상을 봤는데······. 승격한 지 단 10초도 되지 않아서, 처음 써보는 근사(筋絲)의 기예를 그렇게나 출중하게 쓰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허수아비 때리기 기구를 전략적 자원으로 활용하신 센스도 훌륭했고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군요. 도대체 어떻게 영약을 복용한 직후에 그리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겁니까? 영약은 그 효능에 비례하여 복용 시 발생하는 어지럼증이 더 강해지는데 말입니다.”


그건 티르 역시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단번에 하나의 경지를 뛰어넘게 해줄 만큼 창천의 정수는 그 효능이 뛰어났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당연히 어지럼증이 강했어야 정상.


그 역시도 오늘 꾼 꿈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건 저도 잘 모르겠군요.”


당연하게도 그걸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흐음. 역시 그러시군요. 하긴, 이 베이샤 대륙에서는 전례가 드문 일이긴 하지요.”


백표 기사단장, 로엘린은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뭐, 그건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걸로 하고. 오늘은 이만 쉬십시오. 원래라면 조금 더 오래 잠들어 있어야 할 것을, 공작 각하께서 억지로 깨우셨으니. 후유증이 조금 있을 겁니다.”


“어쩐지 머리가 아프더니······.”


티르는 제자리에 누웠다. 그리고는 눕자마자 다시금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 * *


지저분한 옷, 때가 잔뜩 묻은 피부. 거지꼴을 한 소년이, 어느 도시의 뒷골목에서 더러운 빵을 뜯어먹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라, 주변은 눈에 덮여 있고 바람은 차가웠지만.


소년은 두꺼운 옷을 입고 있지 않음에도 별로 추운 기색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눈앞에는 작고 붉은 불씨가 허공에 피워져 있기 때문이었다.


[후우. 이번 생은 부모를 잘못 만났단 말이지. 고아가 뭐야, 고아가.]


소년이 투덜거렸다. 그러면서 눈앞의 불씨에 대고 상냥하게 말했다.


[네 덕분에 살았다. 네가 아니었으면 자칫 열 살의 나이에 얼어 죽을 뻔했지 뭐야.]


주위를 따스하게 덥힘으로써 소년을 살려준 불씨는 바로 정령이었다.


[네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


화륵.


소년의 말에, 불씨가 한 차례 일렁였다. 그에, 소년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나와 계약하고 싶다고? 내게 대단한 정령사의 자질이 있단 말이지? 나야 얼어 죽지 않으려면 올해 겨울 내내 네 도움이 필요하긴 한데······. 으음. 일단 네 요구사항을 말해봐. 그걸 듣고 결정할게.]


화륵.


[정도 이상의 악행을 저지르지 말 것, 절대로 네게 거짓을 말하지 말 것, 너와 한 약속을 절대로 어기지 말 것,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항상 열정을 다할 것······. 내게 바라는 건 그게 전부야? 흐음. 그 정도 조건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 좋아! 계약은 성립됐어.]


화아악!


소년의 말이 끝나자, 불씨의 크기가 전보다 열 배는 커졌다.


[정령과의 정신감응은 이런 식이구나. 네 마음과 생각이 실시간으로 느껴지는걸. 너도 마찬가지겠지? 나에 대해 자세히 알아낸 소감이 어때?]


화르르르륵!!


[아하하.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환생자 처음 봐? 처음 본다고? 그럴 수 있지. 그건 그렇고, 어디 가서 발설하지 말기로 약속해.]


화륵.


[약속한 거다? 좋아, 좋아.]


소년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사실 안 그래도 혼자만 환생하는 게 외로웠는데. 네가 나타난 건 운명이라고 생각해. 이번 생의 목표는, 너와의 계약 상태를 유지한 채 환생하는 것으로 해야겠다. 가장 위계가 높은 정령인 정령왕의 경우, 계약자의 영혼 감지와 그에게로의 공간 이동이 거리의 제약 없이 가능하니. 네가 정령왕이 되면 내가 죽고 환생한 직후에 바로 나를 찾아올 수 있겠지. 그렇게 너는 내 환생의 동반자가 되는 거야. 어때, 좋지?]


* * *


“하아암. 쩝.”


침상에서 깨어난 티르는 눈을 비비다, 근처의 의자에 앉아 손으로 턱받침을 한 채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로엘린을 발견했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티르는 살짝 움찔했다.


“······뭡니까.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아니, 잠자시는 동안 표정변화가 하도 다채로워서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뭐라고요. 저 자는 동안 계속 그렇게 보고 있었던 건 아니겠죠?”


“계속 보고 있었는데요? 한 8시간쯤 됐나? 부동자세를 오래 유지하는 것도 정신수양이 될 수 있거든요. 공자께서 워낙 잘생기셔서 볼 맛이 있었습니다.”


“별······.”


티르는 질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헌데, 그 와중에 갑자기 회색의 무언가가 날아와 티르의 시야 한 켠에 포착됐다.


“······?!”


그것은 허공을 날아다니는 작은 회색 불씨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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