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이기는 역대급 바둑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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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쿠키
작품등록일 :
2024.08.0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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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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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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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수

DUMMY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었는가?]





2016년


인공지능을 상대로 이긴 1승은 인류의 위대한 승리였다.


하지만


동시에 인류의 절망적인 패배이기도 했다.





베타고를 상대로 한 앞선 4전의 대국은 모두 완패.


5번기의 대국이 시작되기 이전엔 초일류 프로 기사인 이태석의 승리가 예상됐지만 제 1국을 치른 이후, 여론은 완전히 뒤집혔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베타고가 완벽한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체스나 장기처럼 범위가 한정적인 경우, 수의 계산이 수월하여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은 지 오래됐지만 바둑은 얘기가 달랐다.


방대한 경우의 수를 가진 바둑에선 프로그램이 인간을 이긴다는 건 불가능의 영역으로 취급되었고 실제로 베타고 이전의 프로그램들은 아마추어 고수들조차 이기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베타고의 등장으로 모든게 바뀌었다.


이태석의 제 5국.

베타고에게서 쟁취해낸 1승은 인류가 인공지능에게 승리한 최초이자 최후의 1국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


늦은 저녁 강동구 고덕동의 한 술집에서 이태석과 이동진이 만났다.


“형님!! 잘 지내셨습니까?”


오랜만에 만난 탓에 이동진은 평소보다도 더 격하게 이태석을 반겼다.


“잘 지내기 개뿔···그냥 저냥 지낸다”

“에이 무슨. 지난 몇 달 동안 형 이름이 빠지는 데가 없는데”

“내가 아니라 베타고 때문이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베타고의 회사 딥이매진은 베타고를 더욱 발전시킨 버전을 내놓았고 이제 바둑계는 AI에게 완전한 항복을 선언했다.


그렇기에 유일한 1승을 거둔 이태석 프로가 계속해서 조명되면서 지난 1년 눈코뜰새 없이 바빴던 하루가 지속된 것이었다.


“진짜 형님 대단했습니다. 아직도 그 대국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

“네번지고 한번 이겼다. 그만 띄워라”

“하하!! 그래도 인류 유일한 1승이잖습니까~”


하지만 이태석은 오히려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유일한 1승···말은 좋지만 이제 바둑은 끝났다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지’


바둑에 정답이 생겼다.


바둑으로 논검을 하며 서로의 수읽기를 겨루던 때는 이제 돌아오지 않을것이다.


인공지능을 돌리면 정답이 나오니까.


인류의 업적으로 기록될 1승을 남겼지만 오히려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됐고, 그보다 요즘 학원 일은 잘 되냐?”


인공지능 얘기에 신물이 난 이태석은 화제를 돌렸다.


“하하···뭐 지금 당장은 괜찮은거 같기도 하고.. 형 덕이죠”

“그래 잘 되면 다행이지”


바둑 보급도 시간이 지나면 안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소주 한잔을 입에 털어넣었다.

얼마 전 이동진이 학원을 차린 것을 알고 있어 꺼낸 얘기였다. 그냥 걱정 되서 가볍게 던진 얘기였지만 오히려 이동진은 다른 이유로 이 얘기를 하고싶어했다.


“마침 오늘 형 보자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응? 그래?”

“학원에 대단한 기재가 한 명 들어왔어요”


바둑에선 실력이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특히 최정상급의 바둑기사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기재를 보였다.


“그래? 몇살인데?”

“이제 초6이니까···13살이네요”

“13살에 학원 왔으면 늦은 편이네”


13살이면 이미 프로 입단을 했을 수 도 있는 나이. 입문이 빠른 나이는 아니다.


“그쵸···근데 상관 없을 거에요. 대단한 기재거든요”

“뭐 13살도 포기 할만큼 늦은 건 아니니까, 기재가 좋으면 몇 년 뒤엔 입단할 수 있겠지”


사실 이태석에겐 별로 관심이 없는 얘기였다.

바둑계가 난리인데 이제 막 프로가 되는 애들까지 관심이 미치진 않았다.


이동진도 그런 이태석의 마음이 보이는 듯 질질 끌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제 기재니 뭐니 하는 것도 크게 의미가-“

“저를 이겼어요”


말을 자르면서 까지 들어오는 이동진에게 잠깐 놀랐지만 다시 침착함을 찾았다.


“대단하네? 몇 점이었는데 일곱? 여덟?”


이 녀석이 대단한 기재라고 했으니 잘 쳐줬다. 이제 막 입문한 아이가 일곱점으로 프로 5단을 이겼으면 천재지.


“호선이요”

“그래 그럼 그렇···”


그래 호선, 호선. 호···선??


응? 잘못들었나?


“뭐, 뭐 임마??? 호선??!!!!??!!!”






***




치익 -


재떨이에 담배를 문대어 껐다.


‘미친놈···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어제 나눴던 대화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처음엔 장난치는건가 했는데 표정이며 말투며 너무 진지했다.


‘하···씨 이거 오는 게 맞는건가?’


친한 동생 놈이라 일단 오긴 왔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괜한 걸음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이제 막 입문한 초등학교 6학년 짜리가 다섯 번째 대국만에 프로 5단을 꺾는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바둑의 신이 오지 않고서야···절대로 믿을 수 없는 말이다.


‘다섯점에 이겼다고 해도 역사에 남을 기잰데, 호선은 무슨..’


어느덧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바로 앞에는 이동진 바둑 학원이 보였다. 이태석은 불만 가득한 상태로 학원 문을 열었다.


“아 형!! 오셨네요”

“누가 어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하는 바람에 안올 수 가 없더라”

“하하하하!!! 형도 보시면 똑같을걸요?”

“그래 얼른 보자. 보고 얘기해보자”


이동진은 이태석을 데리고 아이들이 있는 대국장으로 데려갔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각각 대국을 두고 있었고 쉬고 있는 애들은 구경을 하거나 구석에서 바둑 만화를 읽거나 했다.


“쟤에요. 말은 해뒀으니까 가서 두시면 됩니다”


이동진이 가리킨 곳엔 혼자서 바둑돌을 놓아보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털썩 -


“반갑다. 꼬마야”


천천히 꼬맹이가 고개를 들었다. 이태석과 눈이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웃었다.


“헤헤 안녕하세요!”


이태석도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녀석 잘 웃네. 이름이 뭐냐”

“진한수에요”

“한수? 좋은 이름이네”


이태석은 굳이 자기의 이름을 밝히진 않았다. 모를 듯 하지만 혹시나 자신의 이름을 들어봤을까봐 그랬다.


반전무인(盤前無人) - 바둑판과 바둑알에만 집중하고 주변 사람, 환경을 신경 쓰지 않아야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내 명성에 수가 조심스러워지면 안되니까’


기재를 보러 온 자리다. 최대한의 실력을 펼칠 수 있게 작은 부분이라도 신경 써서 배려했다.


“돌 가르기는 배웠지?”

“네!! 배웠어요”


둘 넷 여섯 일곱


이태석이 흑.

진한수가 백.


기왕이면 백돌을 잡고 싶었지만 큰 차이는 없다.

오히려 흔들어 보기에 더 좋을 수 도 있다.



‘어디 한번 보자’




진한수의 기재를 보기 위한 대국이 시작됐다.




***



탁 -







‘···시발’




잠시 숨을 골랐다.

손을 목으로 가져가 가볍게 쓸었더니 땀이 묻어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니 온몸이 이미 땀투성이였다.


‘언제 이렇게 땀을 많이 흘렸지?’


세계 최정상급 기사들과 대국할 때가 아니면 좀처럼 긴장하지 않는 이태석이다. 겨우 초등학생과의 대국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건 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탁 -


장고 끝에 나온 이태석의 수에 맞서 진한수가 돌을 내려놓았다.


!!


‘어설픈 수다’


탁 - !!


순식간에 수읽기를 마친 이태석이 노타임으로 응수했다.

실수였는지 아니면 겁을 먹은건지. 이 국면에 어울리지 않는 어설픈 수였다.


‘이러면 확정적이다. 이겼어’


주먹을 꽉 쥐며 확신했다.


원래도 우세한 대국이었지만 방금 수로 인해 이 이상 진행이 무의미할 만큼 기울었다. 너무 큰 자리였다.


그런데 잠깐.





‘이겼어···라고···?’


이겼다고 좋아한건가? 내가?


지금 눈앞에 있는 대국 상대는 그동안 숱하게 겨뤄왔던 최정상 프로기사가 아니다. 저번 주에 바둑에 입문한 초등학생이다.

겨우 그런 상대를 이기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하···’


겨우 초등학생에게 이렇게까지 내몰렸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이태석은 천천히 바둑을 머릿속에서 복기했다.


-포석이 약해. 배운 적이 없으니 세세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감으로나마 좋은 모양을 만들어내고있어.


-좌하귀쪽 전투에서 실리를 많이 챙겼어. 게다가 하변에 손을 돌려 일격을 가하는 수 까지 완벽한 수순이였다. 아마 이곳에서 승부가 많이 기울었겠지.


-그리고 마지막 우상귀에서 변까지 내려오는 대형 전투에서 나온 실착까지.


바둑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태석의 우세였다.

단 한번도 뒤집힌 적이 없었다. 다만.


‘그런데도 긴장을 놓을 수 가 없었어’


이태석은 바둑판에서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봤다.


진한수의 표정은 고요했다.

아까의 그 천진난만한 꼬맹이는 온데간데 없고 승부사만이 남아있었다.


분명 진한수도 형세를 알고 있을 것이다.

방금 이태석의 수로 손쓸 수 없을 만큼 기울었다는 것 역시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이렇게 침착하다고? 초등학생이?’


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초등학생이면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할 나이다.

하지만 그런 상식을 부정하듯 여전히 미동조차 없는 상대였다.


그리고 곧이어 그 차분한 표정이 천천히 풀리고.


“졌습니다”


진한수가 돌을 던졌다.



담담한 패배선언.

나이에 맞지 않는 성숙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태석은 그때 깨달았다.





***





승부욕이란게 없는건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나이 답지 않은 담담함이었다.

바둑인들은 당연하고 어린애라면 승부욕이 더욱 강할 때일텐데 진한수에겐 그런 모습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무서웠다.


“바둑이 좋으냐?”


돌을 던진 후에도 바둑판에 집중하고 있는 녀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진한수는 고개를 들어 이태석을 보곤 대답했다.


“네!! 정말 좋아요!!”


어느새 진한수는 다시 승부를 시작하기 전 어린애로 돌아와 있었다. 마치 다른사람인듯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이겠지만···”


진한수는 풀 죽은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어제 이동진이 한 얘기를 떠올렸다.


[기재만 보면 무조건 프로기사를 해야하는데, 문제는 애 집안이 많이 안좋아···그것 때문에 망설여지네]


진한수의 집이 기초생활수급자 집 이라고 들었다.


바둑 학원에 일주일이라도 올 수 있었던건, 이동진이 학기 초 무료 이벤트를 열었기 때문일 뿐이고 오늘로써 체험은 종료된다.


‘기재는 대단하다’


바둑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도 이런 기재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천재가 확실하다.


허나, 고꾸라지는 천재들을 이태석은 수도 없이 봤다. 재능이 온전히 빛을 발할 거라고 단언할 수 없다.


그리고 두번째, 이제 ai바둑의 시대가 도래한다. 모든 정석이 뒤집어질 것이고 이전과는 달리 노력으로 기재의 상당 부분을 따라잡을 수 있다.


‘물론 얘는 해당되지 않을테지. 차원이 다른 재능이니까’


이 기재라면,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역사상 최고를 다툴 재능인 이 애라면, ai바둑 안에서도 다른 기사들보다 앞서갈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다.


초일류의 기사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정말 만약에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 이 아이의 삶이 고달파진다.

상금을 타지 못하면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바둑 기사에게 상금이란 반드시 취해야만 하는 생존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렇기에 대단한 후원자가 지원해주는게 아니라면, 쉽게 권유할 수 없다. 이동진도 그걸 알고 있기에 고민했던 것이다.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이동진이 자신을 데려온 이유, 아마 스스로 판단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해 정확한 기재 파악을 위해서가 하나, 그리고 될 수 있다면 초일류 기사인 자신의 추천으로 후원을 받게 끔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해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결정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내려졌다.


“그래도 언젠가 다시 바둑을 둘 수 있겠죠? 프로 바둑 기사도 도전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가정형편상 지금은 안된다는 걸 이 아이도 안다. 그럼에도 바둑을 좋아하기에 미래를 기약하고자 하고 있다.


나도 이 아이의 미래가 궁금하다. 정말로.



“아니, 프로는 될 수 없겠구나”



대국 중엔 무서울 정도로 담담했고 대국 중이 아닐 때엔 천진난만했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일주일밖에 안됐지만 벌써 바둑과 사랑에 빠졌구나.



“네 기재론 프로가 될 수 없다. 그냥저냥 평범한 수준이야”



일부러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어차피 초등학생이다.

바둑을 잘하더라도 말 속의 허실을 가리기는 힘든 나이다.


나를 알고 있었다면 나의 권위를 통해서 기재를 밟을 수 있고, 나를 모르고 있었다면 나의 실력을 낮춰 말해 밟을 수 있다.


진한수는 연속되는 말에 충격을 먹은 듯 고개를 떨궜다.


“온종일 바둑에 전념해도 겨우 될까 한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미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듯 하지만 일부러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품 속에선 작은 USB 하나를 꺼냈다.


그 속엔 딥이매진으로 부터 받은 작은 선물이 들어있었다.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프로그램. 사실상 바둑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최상위 바둑 AI



[베타고 인피니트]가 있었다.




‘아까 이 녀석한테서 느꼈던 긴장감, 그건 베타고와 대국할 때의 느낌이었어’


어떤 감정도, 기세도 읽을 수 없는 수. 인간과 둔다고 느껴지지 않는 수를 진한수가 두었다.


그러니까 진한수라면


‘역사상 최고의 기재가 ai에게 배운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AI를 이기는 인간 바둑 기사의 모습을 한번만, 한번만 더 보고싶다.




작가의말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들어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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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차혜정 24.08.08 318 6 12쪽
5 기원초출 +3 24.08.07 334 6 14쪽
4 이겼다 +1 24.08.06 355 5 13쪽
3 진한수 +1 24.08.05 371 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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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한수 +2 24.08.05 502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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