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이기는 역대급 바둑천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밤하늘쿠키
작품등록일 :
2024.08.05 11:03
최근연재일 :
2024.09.03 22:40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9,437
추천수 :
162
글자수 :
192,792

작성
24.08.05 18:15
조회
405
추천
3
글자
9쪽

19년

DUMMY

첫인상은 평범하고 해맑은 아이였다.


인사성이 바르고 웃음이 맑았다.



“바둑은 집을 많이 만드는 사람이 이기는거야”



바둑을 가르칠 때 상대가 누구든 호선으로 가르쳤던 건 일종의 내 교육 신념이었기에 바둑 규칙과 돌을 가르는 법을 알려주고 대국을 준비했다.



첫 번째 대국은 특별할 게 없었다.


바둑을 처음 배우는 다른 아이들과 같은 실수를 했고 바둑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그저 귀여운 돌 놓음의 놀이일 뿐이었다.


두 번째 대국에선 조금 신기했다.


다음날의 둔 대국에서 포석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아직은 미숙하고 헛점이 많았지만 바둑의 원리를 이해한 형태였다.


세 번째 대국으로 아이를 알아갔다.


고요했다.

악수를 두어도 변명하지 않았고 만회하기 위해 다음 수에 지나친 무리수를 두지도 않았다.

아이의 힘든 가정 환경이 만들어낸 성격일까 궁금했지만 따로 묻지는 않았다. 아픈 상처가 될 수도 있을테니.


네 번째 대국은 놀라웠다.


전날의 대국과 다른 사람이었다.

프로기사를 상대로 공격적인 전투를 걸어왔다. 곳곳이 혼전이었고 대마를 공격하려는 시도도 거침없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대국에서, 프로인 나를 이겼다.


지도기로 시작했었다.


하지만 중반 이후 생각보다도 아이의 수가 탄탄함에 위기를 느꼈고, 그때부터는 최선을 다했다.


탁 -


탁 -



대국이 끝나고 결과가 나왔다.



“허허..”



내 반집 패였다.



***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를 두고도 독설을 내뱉는 이태석을 보고 이동진은 놀라 넘어질 뻔 했다.


“혀, 형 빠, 빨리 나와봐. 빨리!!”


이태석이 진한수와 얘기를 마치자 마자 서둘러 이태석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미친거야?? 형 뭐라고 한거야!!”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급한 목소리로 이태석을 추궁했다.


“뭐긴, 다 들은 거 아냐?”

“들었지. 들었으니까 미쳐버리겠지. 재능이 없어? 쟤가?? 입문하고 다섯 번째 대국만에 프로를 꺾는 놈이?”

“그거야 너도 대충했을거 아냐. 어린애를 상대로 전력을 다해서 둔 것도 아닐텐데”

“시발.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 !!”


이태석의 태연한 반응이 오히려 이동진을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이태석이 아닌데 계속 말장난을 하는 모습에 분이 터졌다.


“아, 아니 지금 빨리 이해되게 설명해봐. 왜 쟤한테 재능이 없다고 그러는거야”


납득이 가는 대답을 들어야한다.

아무리 이태석이라도 이건 말이 안된다. 한수의 기재를 알아보고 더욱 크게 키우기 위해서 데려온 형이 오히려 애를 짓밟고 있으니 이해가 안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흥분한 이동진을 보고도 이태석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차분해졌다.


이태석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동진아. 너는 기세가 뭐라고 생각하냐”



기세.

기백, 승부수


저 프로기사는 기백이 강하다.

승부수가 날카롭다.

기세를 탔다.


바둑에서 흔히 쓰이는 말들이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이동진도 조금은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말 그대로 기세지. 기세가 좋으면 무리한 수를 뒀을 때도 타개가 좋고, 상대도 잘 못 받아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맞아. 그게 우리들의 상식이었지”


하지만 기계에는 기세가 없다.


“그런데 베타고와 대국할때,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무감정


기계니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평생을 인간과 대국해온 사람에게 그건, 당연하게 다가오는 일은 아니었다.


초일류 기사인 자신이 형세 판단조차 이성적으로 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진한수의 수는 베타고를 닮아있다.


‘진한수의 지금 기량으로는 예상하지 못했을 절단, 수싸움, 행마’


당황하는게 당연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위축되고, 기세에서, 기백에서 눌린다. 자신의 수가 잘 보이지 않게 되고 실수가 생긴다.


모든 기사들이 그런 과정을 겪게되고, 이겨낸 자들만이 정상을 두고 다툴 자격이 생긴다.


하지만 진한수는 그저 둔다.


전투에서 패배한 직후에, 다른 전투로 손을 돌린다.

이번엔 치욕스러운 침투를 당했음에도 가만히 대응한다.


그게 진한수의 바둑이었다.


바다처럼 깊고 고요한 바둑.


아무리 돌을 던지고 두들겨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하고 잔잔한 바다.






“아···! 베타고는 기계니까 그렇겠네”


베타고는 오로지 ‘수’ 만을 본다.

이동진도 이해한 듯 대답했다.



문득 오래전 들었던 선배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바둑에 신이 있다면, 승부수니 기세니 하는 말들은 전부 가소로울 것이라고, 신에겐 오로지 정수와 악수 뿐이라는 말”


기세니 승부수니 하는 것들은, 결국 인간과 대국 해서 얻게 된 것들이다. 감정에 치우쳐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지고, 무리수를 기세라고 포장해서 둔다.


그런 잘못된 수 들이 점점 쌓여 이성적인 판단 자체를 흐트러뜨린다.


“그러니까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오랜시간, 사람과 대국하지 않고 AI 랑만 대국한 천재가 있다면.


다시 한번 닿을 순 없을까?




***




정신이 나갔다.

미친게 분명하다.


대화를 마치고 학원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서 생각해봤다.


[내가 딥 이매진으로부터 베타고 인피니트 라는 최상위 바둑 AI를 선물로 받았거든. 더 이상 학습할게 없는 완성된 프로그램. 그걸 줬어]

[왜 거짓말을 했냐고? 사람과 대국 하면 안돼. 그러면 다 망가져. 그러니까 프로는 안돼. 밟을 수 밖에 없었어]


베타고 인피니트


이태석이 대국한 베타고에서 더 발전시킨 베타고 마스터가 곧이어 나왔고 그 뒤엔 베타고 제로까지 완성됐다고 한다.

베타고 제로부터는 세간에 내보이지 않아 정확한 실력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베타고 인피니트.

한 줄의 기사조차 내지 않은 최후의 AI.


지금의 정상급 기사들은 베타고 마스터조차 꺾지 못한다. 베타고 제로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베타고 인피니트는 베타고 제로보다도 뛰어난 바둑AI 프로그램이다.


[석점 깔아도 못이겨]


이태석의 경험으로 나온 대답. 그 대답이 의미하는 바는 이동진도 알고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석점이다]


신과의 기력 차이를 묻는 질문에 과거 대선배님이 했던 말. 하지만 그 말도 이젠 옛말이 되었다. 바둑 신과의 기력 차이는 석 점보다 크다.



베타고 인피니트는 실존하는 바둑의 신이다.



이태석은 이 베타고 인피니트를 불과 3일전에 받았다고 했다. 베타고 초창기 버전을 상대로 분투를 보여 준 이태석에게 보내는 딥이매진의 선물이었다.


‘이게 우연일까’


우연히 일주일 전 진한수가 학원에 왔고, 어제 이태석을 만나 한수에 대해 애기했으며, 베타고 인피니트가 그로부터 이틀 전에 이태석에게 들어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어, 어 한수야”


진한수가 마침 학원을 나오고 있었다.


한수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일주일 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바둑에 빠지기 충분한 시간이었기에 충격이 컸을 겄이다.


‘태석이 형은 미쳤어’


평생을 AI와 두도록 해서 압도적인 기량 향상을 꾀한다는 이태석의 생각은 미쳤다. 인간성이 빠져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막아서 무슨 의미가 있지?


어차피 이 아이는 자력으로 바둑 교육을 받을 수 없다. 내 능력으로는 이 아이의 후원자를 찾아 줄 수 도, 내가 가르칠 수도 없다.


“가보겠습니다 원장님. 감사했습니다.”


한수는 이동진을 향해 꾸벅 인사를 마치곤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오늘이 마지막이었기에 이제 학원에 올 일은 없다.


“한수야”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에 손을 넣어 닫히는 걸 잠시 막았다.


“네??”


진한수가 의아한 눈빛으로 올려다봤다.


“언제나 즐겁게 하렴. 바둑은 즐거운 거란다”


웃으며 마지막 말을 건네고 다시 손을 뺐다.

엘리베이터가 곧이어 천천히 닫혔다.



바둑을 평생 안하게 될 수도 있고, 태석이 형의 뜻대로 바둑 기계가 되서 다시 바둑계에 돌아올 수 도 있다.


다른 어떤 말도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이대로 그냥 보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치없지만, 그래도 바둑을 좋아하길 바란다.



그리고 19년이 흘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AI이기는 역대급 바둑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 차혜정 24.08.08 318 6 12쪽
5 기원초출 +3 24.08.07 334 6 14쪽
4 이겼다 +1 24.08.06 355 5 13쪽
3 진한수 +1 24.08.05 372 5 16쪽
» 19년 +1 24.08.05 406 3 9쪽
1 신의 한수 +2 24.08.05 502 4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