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한 몬스터로 영지 디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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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단장
작품등록일 :
2024.08.05 11:52
최근연재일 :
2024.09.1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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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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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감화

DUMMY

 ‘함께 가자.’


 전 중대장이 남긴 말은 릴리안의 마음을 감쌌다. 가슴 속에서 울리는 기쁨은 심장 고동과 함께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기억하고 계셨어.’


 걱정했었다. 부활 후유증이 이토록 심각할줄 몰랐으니까.

 격정에 사로잡혔었다. 혹시나 옛날의 기억을 그가 잊고 있었을까봐. 더 이상 그녀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게 될까봐.


 ‘천사 하리아드시여, 감사합니다. 당신의 권능으로 죽은 자를 되살려 주셔서···그리고 제게 가장 소중한 부분을 남겨 주셔서.’


 부활 후유증으로 사람이 온통 망가지고 온갖 상식이며 예의를 다 잊어버렸지만, 자신과의 추억만은 잊지 않으셨다니. 


 ‘중대장님에겐 죄송합니다···.’


 기쁨의 격류 속에서 회환의 물길 한 줄기가 솟아났다.


 ‘중대장님을 믿었어야 했는데.’


 ‘저는 중대장님이 아닌 제 스스로를 걱정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부활 이후로 가장 힘들었던 건 중대장님 당신이었을텐데.’


 추억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자신이 부끄러웠다. 


 ‘후유증 따위. 물리칠 수 있도록 제가 돕겠습니다.’


***


 병사들은 답답했다.

 중대장님이 근위대장이 될 거라더니 갑자기 변경백이 됐다느니, 중대가 순식간에 공중분해 됐다느니 하는 소문만 돌 뿐 누구 하나 속 시원히 알려주는 이가 없었으니.


 “중대장님이 오셨다!”


 단상에 오르는 호영에게 일제히 경례하는 병사들.


 “쉬어.”


 호영은 갑갑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할 수는 없으니 일단 입을 뗀다.


 “제군들. 그동안 날 따르느라 고생 많았다. 그런데 앞으로는 더 많은 고생이 따를 것이다.”


 뇌 안 거친 생각과


 “···저게 무슨 말씀이지?”

 “보통은 고생 많았으니 당분간 쉬라거나 하지 않나?”


 병사들의 불안한 눈빛과


 “···.”


 그걸 지켜보는 릴리안.


 “그건 아마도 전쟁같은 사망···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다.”


 연병장에 감도는 찬 아침 바람.

 현재 병사들의 교화도는 평균적으로 50 내외. 교화도는 그 존재가 호영에게 가진 우호적 감정들을 종합해서 나타내는 수치다. 


 ‘쫄병들의 교화도라면 아마도 나, 아니 조렌 테이머에 대한 충성심이나 뭐 그런 걸 나타내는 거겠지.’


 정답. 


 ‘빙의 첫날엔 다들 90이 넘었는데. 그새 이만큼 떨어질 줄이야 젠장.’


 매사에 진중하던 중대장이 허공에 대고 상태창이 어쩌니 혼잣말을 하질 않나, 거울을 보며 ‘잘생긴 놈이라 그나마 다행이네’ 같은 소리를 하는 걸 봤으니 무리는 아니다.

 물론, 부활에는 그만큼 큰 후유증이 따르는 것을 그들도 봐왔기에 어떻게든 둘러댈 수는 있었다.


 ‘이제 더는 얼버무리기 힘들 것 같구만.’


 호영은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이 몸의 원주인인 조렌 테이머 씨. 당신은 지적인 카리스마에 언변까지 갖춘 캐릭ㅌ···아니 사람이었지. 그런데 나는 그렇게 달변가도, 배운 사람도 아니오. 그러니 부디 도와줍쇼.’


 게임에서 봐온 조렌의 대사들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것보다는, 조렌에게 진정으로 동화해보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호영은 생각했다.


 ‘당신 부하들의 미래를 정하는 순간이니.’


 그 마음에 조렌의 영혼이 감응한 것인지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주도록.”


 호영의 목소리에 뚜렷한 힘이 실렸다.


 “이미 들은 자들도 있겠지만, 나는 국왕 폐하의 성총을 입어 변방백의 작위를 받게 되었다. 봉토로 아우포킬립스 시를 받았지. 이제는 테이머 영지라고 해야겠지만.”


 서로 불안한 눈빛을 교환하는 병사들.


 “그럼 우리 중대는···저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개중 짬밥을 가장 많이 먹은 상급병사가 질문했다.


 “변방백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중대장의 보직은 사라졌다. 또한 폐하께서는 귀관들에 대한 처결을 내게 맡기시었다.”


 영지에 부임하려면 수행원이 필요할 거란 말과 함께. 그 말에는 호영도 동감했다. 아니, 감사했다.


 ‘하긴 얘네들 아니면 누가 미쳤다고 그 오지까지 따라가겠냐. 한 두명 고용하는 거면 몰라도···. 그러니 존나 고마운 거지.’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썩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희는 중대장, 아니 백작님을 따라 검붉은 땅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까?”


 상급병사의 질문에 모두 웅성거리기 시작.


 “모두 주목. 바로 그 처결에 대해 지금부터 말하려 한다.”


 호영은 담담한 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그 수군거림을 멈췄다.


 “앞서 말했듯 우리 중대에 대한 인사권은 내가 일임받았다. 다만 귀관들의 거취를 정하는 것은···.”


 병사들의 면면을 죽 훑는 호영.

 마음속 한켠에서 연민과 공감이 뭉글뭉글 뭉킨다.


 ‘짜식들아, 나도 안다 알아.’


 그 또한 만기 전역으로 군생활을 마친 K 장병이었기에. 


 ‘나도 그런 적 있으니까. 최전방에서 힘들게 뺑이 치다 복귀해서 꿀 좀 빠나 했는데, 갑자기 격오지에 파견  보냈었지. 멘탈은 탈탈 몸은 골골.’


 그렇기에 일방적으로 자신을 따라오라고 명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내가 바보짓 하는 건 아닐까.’


 한편으로는 이게 맞는 건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이들은 정예 병력이자 중요한 노동력. 영지 재건, 아니 창건에 크게 필요할 인적 자원이니까.


 ‘까라면 까는 거라고, 교화도든 나발이든 떨어지더라도 일단 몽땅 데려가는 게 옳은 선택일까.’


 “···중대장, 아니 백작님?”


 말을 잇지 못 하는 호영을 걱정스럽게 보는 릴리안.


 “귀관들의 거처를 정하는 것은···”


 짧지만 격한 갈등 끝에 호영은 마음을 굳혔다.


 “바로 그대들 자신이다.”


 커지는 눈동자들.

 고생길이 훤한 곳에 사람들을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었다. 비록 게임속 캐릭터들이라곤 하나 눈앞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 그것도 자신을 철썩같이 따르는 부하들.


 “나를 따라오는 자들은 초대 변방백의 가신으로 맞을 것이다. 이 경우 세상 사람들이 비웃을지도 모른다. 마물 소굴에 유배가는 걸 따르다니, 가신이 아닌 병신이라고. 벌써 많은 귀족들이 내 처지를 비웃었다.”


 어전을 나오며 받았던 동정의 눈길과 실소들.


 『그러게 왜 근위대장 자리를 걷어차서 스스로 무덤을 파누.』

 『평민 출신 기사 주제에 군공 좀 세웠다고 눈에 뵈는 게 없었는지.』

 『땅 파도 시체밖에 안 나오는 그런 영지 따위, 지나가던 오크도 비웃겠다.』


 그놈들이 하필, 게임 내에서 거지같은 퀘스트만 주던 NPC들인 것도 열받는 점이었다.


 “그러니 나를 따라오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나로서는 귀관들이 나를 따라오지 않기를 바라고도 있다.”


 호영의 말에 동요하는 병사들.

 릴리안 또한 커진 동공으로 그녀의 상관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근위대장 직을 거절하셨습니까?!”

 “그건···.”


 호영은 잠시 뜸을 들였다.

 ‘죽기 싫어서’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거 맡으면 나는 ㅈ될 운명이거든.’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나 혼자 부귀영달을 누려서 뭘 하겠는가!”


 그래서 그는 외쳤다.


 “내가 근위대장직을 맡았다면 호의호식할 수 있겠지. 하지만 여러분은? 계속해서 마물을 토벌하러 나서며 풍찬노숙할 것이 아닌가!”


 병사들의 마음에 뜨거운 기운이 솟아났다.


 「병사들이 플레이어 님의 말에 감동했습니다. 중대원들의 교화도가 소폭 증가합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함께 동고동락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호영은 열정적으로 주먹을 들어올렸다.


 “시민보다 마물이 많은 곳. 털 게 없어 고블린조차 발 돌리는 곳. 나라에 내는 세금보다 받는 조의금이 더 많은 곳. 모두 아우포킬립스 시를 가리키는 수식어다.”


 게임속에서 손꼽히는 고난도 지역인만큼 호영도 잘 알고 있었다. 자원도 병력도 적은데 온갖 몬스터가 쉴새없이 뛰쳐나오는 미친 곳.


 “따르는 자들을 가신으로 삼는다고는 했지만, 급여가 많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니, 급여를 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몇 푼 안 되는 월급과 분대장 지원비를 털어서 후임들의 간식을 사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훗날 반드시 그대들의 노고에 보답할 것이다. 번듯한 생활은 커녕 빠듯한 생존을 할지라도, 아늑한 집 대신 아득한 굴을 헤맬지라도! 그럴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노라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플레이어 님의 웅변에 병사들이 감화되었습니다. 중대원들의 교화도 최소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상태창의 알림에 맞춰 쑥쑥 올라가는 교화도.

 호영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 했지만, 그가 스스로를 주체로 삼은 화법이 병사들의 마음을 울렸다.

 대게는 수동형으로, 이를테면 ‘그대들의 노고는 보답받을 것이다.’는 식으로 말하는 반면 호영은 ‘나는 보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를 굳게 따르던 부하들로서는 한결 신뢰가 가는 어법.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땅을 지켜내자! 나아가, 더러운 마물들이 대륙에 발 붙지 못 하도록 남김없이 몰아내자. 건국왕 폐하께서도 갖지 못 한 땅을 그대들이 가지는 것이다!”


 국토 사수, 남자의 열망.

 개척 정신, 남자의 로망.


 “나를 따라줄 이들은 나오라!”

 “따르겠습니다!”


 릴리안이 가장 먼저 나섰고


 “저도 따르겠습니다!”

 “변방이 아니라 대륙 끝까지라도 따라가겠습니다!”

 “변방백 만세!”


 그 뒤를 따라 전원이 앞으로 달려나왔다.


 「능력 레벨 상승! 패시브 스킬 <감화>의 레벨이 1에서 2로 올랐습니다.」


 100여명의 가신. 그들 모두의 교화도가 100이 되는 순간이었다.


[3화 - 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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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협상의 기술 24.08.05 131 7 12쪽
4 어벤죄수 +1 24.08.05 140 6 12쪽
» 감화 24.08.05 144 6 10쪽
2 부관 릴리안 24.08.05 161 6 12쪽
1 변방백이 되었다. 24.08.05 225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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