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에이전트가 다 해먹음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동동아리
작품등록일 :
2024.08.10 13:23
최근연재일 :
2024.09.08 23:15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7,464
추천수 :
199
글자수 :
130,534

작성
24.08.20 23:15
조회
649
추천
13
글자
13쪽

프롤로그

DUMMY

“정말로 회사를 그만둘 건가?”

“예.”


말끝나기 무섭게 의자가 끼익 소리를 내며 뒤로 젖혀졌다.


체이슨 에이전시 대표, 제임스 카터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킴, 재고해 줄 순 없겠나?”

“핵심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되었고 이적 시장까지 한참 남았으니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내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안 제임스 카터는 무척 아쉬워하면서도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내심 내가 핵심 고객들을 데리고 독립할까 걱정했던 모양이다.


제임스 카터는 예의의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알겠네. 사표를 수리하지.”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동안 고생 많았고 이만 나가보게.”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자리를 떠났다.


대표실을 나오자 동료들의 시선이 쏟아진다.


아쉬움이 잔뜩 남은 눈빛이다.


아쉬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


이 바닥에서 영영 안 볼 사이도 아니니까.


대충 짐을 챙긴 후 맞은편에 앉은 금발 머리 후배, 세라 핸더슨에게 서류 뭉치를 건넸다.


그녀는 입을 살짝 삐죽이며 서류 뭉치를 받았다.


“인수인계 서류야. 기존 선수들 정보하고 괜찮은 선수들을 정리했으니 잘 활용해 봐.”

“킴, 정말 그만두는 거예요?”

“알잖아. 이젠 돌아가야지.”


세라는 침울해보였지만, 평소에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던 터라 더 붙잡지 않았다.


“언제 한국 들어가는데요?”


나는 빠진 물건 없나 책상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아마 일주일 후?”

“빠르네.”

“가서 준비할 게 많거든.”


세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녁에 술이나 한잔해요.”

“봐서. 난 가볼게. 다들 고마웠고 나중에 만나면 서로 모른 척하지 말자고.”


내 말에 동료들이 피식 웃으며 한 마디씩 던졌다.


종종 놀러 오라는 말부터 일이 잘되길 바란다는 덕담까지.


어떤 녀석은 네가 나가면 회사가 망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회사에 기여한 일이 정말 많았다.


이를 부정하는 동료들은 없었다.


영세했던 체이슨 에이전시 회사를 부흥시킨 사람이 나였으니까.


물론 나 하나 빠진다고 50명이 넘는 고객을 가진 회사가 한순간에 망하진 않을 거다.


처음에는 불편하더라도 녀석들이라면 빈자리를 잘 메꾸겠지.


걱정은 이만하면 됐고.


“가볼까.”


나는 함께 지냈던 동료들을 뒤로하고 정들었던 회사를 나와 하늘을 올려다봤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언제라도 준비되었다는 듯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았다.


지긋지긋한 날씨였지만, 아마 당분간 볼 일이 없을 거다.


물론 머지않아 보게 되겠지만.


상념에서 깨어난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낡은 사무실 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오랫동안 내려앉은 듯 적막감만 흘렀다.


비좁은 공간을 책상과 의자가 전부 차지했고 각종 서류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바닥에는 쓰레기들로 가득 차 발 디딜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담배만 피우며 연기를 내뿜을 뿐이었다.


재떨이에 수북이 쌓인 꽁초들.


대충 빈틈을 찾아 비벼 끄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빌어먹을.”


그냥 욕지거리가 나왔다.


안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야심차게 시작한 에이전트 사업을 대차게 말아먹었으니까.


분명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한국 축구 협회에 중개인 등록을 마친 후 스타 플레이어들에게 접근해 내 고객으로 만들었다.


선수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던 건 내가 가진 커리어 덕분이었다.


7년간 영국 에이전시에서 일하며 구축한 인맥과 네트워크.


비전과 커리어 등이 타 에이전트들보다 압도적이었으니까.


이를 적극적으로 어필하자 다양한 고객들이 내게 모여들었다.


어린 선수도 있었고 전성기를 향해 달리는 선수도 있었으며 전성기에서 내려오는 선수도 있었다.


나는 고개들의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해 서포트했고 예상보다 빠르게 결실을 볼 수 있었다.


부를 원했던 선수들에게는 중동 리그와 중국 리그를.


유럽 무대를 도전하고 싶던 선수들에게는 벨기에 리그와 동유럽 리그 등으로 보냈다.


이러한 성과 덕분에 많은 고객들을 영입했고 회사 직원도 4명으로 늘었다.


개업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마이너스 수입은 흑자로 전환.


전 직장에 비하면 갈 길이 멀었지만, 나름 성공적인 출발이었다.


자신감이 붙자 원래 계획보다 빠르게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싹수가 보이는 어린 선수들, 각 구단의 핵심 선수들, 대표 팀 선수들 등.


마음에 드는 선수가 나타나면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 회사의 핵심 고객들을 내 고객으로 만들었다.


공격적인 확장에 기존 에이전시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상도덕이 없다. 싸가지가 없다.


어린놈이 욕심이 많다. 오만하다.


네가 다 먹으면 우리는 뭐 먹고 사냐.


온갖 비난의 말이 쏟아졌으나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뵈는 눈이 없던 때라 개가 짖는다고 생각했으니까.


구단 사장들도 내 눈치를 볼 정도였으니 오죽했으랴.


오만에 가득 찬 나는 불만 가진 놈들을 불도저처럼 밀어냈다.


한국 시장을 제패하고 세계로 나갈 생각에 사로잡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나아갔다.


그러자 앙심을 품은 에이전시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나를 압박했다.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한국 시장을 거의 먹어 치운 터라 의미 없는 짓이라 여겼다.


“다 이겼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들은 내가 가지지 못한 무기가 존재했다.


바로 학연, 지연, 혈연이었다.


협회, 언론, 구단을 움직여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나를 아니꼽게 본 자들이 전부 달려든 것이다.


처음에는 견딜만했다. 내 고객들이 큰 힘이 되어주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매우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주변을 흔들어 정신없게 만들었다.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공세를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나름대로 반격을 가하며 치명타를 안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걸 잊고 있었어.”


공세만 신경 쓰느라 선수들을 제대로 케어해주지 못한 것이다.


에이전트의 본분을 망각하자 불만을 품은 몇몇 고객들이 이탈을 선언했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탈 속도는 빨라졌고 적들의 노림수라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렇게 100여명에 가까웠던 고객들이 모두 회사를 떠났다.


직원들도 침몰하는 배에 남지 않고 빠르게 탈출했다.


결국 버티지 못한 나는 패배를 선언하고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직원 전무, 협력 업체도 전무, 고객은 달랑 한 명.


마지막 고객마저 계약 기간이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오만했던 자에 걸맞은 최후였다.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야 하나.”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았다.


유럽과 중동 네트워크는 아직 살아 있었으니까.


5년 만에 유럽 복귀라.


“모르겠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습관적으로 메일함을 확인했다.


잘나가던 시절에는 새 메일로 꽉 차 있었는데 지금은 광고 메시지밖에 없었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전부 휴지통으로 보냈다.


깔끔하게 사라지는 줄 알았는데 메일 하나가 남아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삭제하기를 눌렀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계속 눌러도 그대로였다.


“신종 바이러스인가.”


신고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제법 흥미로운 제목이 내 시선을 끌었다.


“이건 또 뭐야?”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고?


이상하게 누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광고 문구였다.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바이러스에 걸리면 컴퓨터 하나 버리는 셈 치면 된다.


묘한 기대감을 안고 마우스를 클릭했다.


딸깍.


“어?”


나를 반긴 건 백지였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 말이다.


속았다는 생각에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드래그 했고 숨어 있던 글자들이 드러났다.


[실패한 당신에게 드리는 특별한 갱생 기회! 이제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겁니다!]


“와! 이것마저 낚시야? 진짜 어이가 없네.”


나는 그대로 전원을 꺼버리고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미팅 시간이 가까워진다.


마지막 남은 고객님의 연봉 협상이니 최선을 다해야지.


나는 선수 프로필과 이번 시즌 분석 자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서류가 매우 얇아서 읽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름] 안우현

[나이] 25살

[신장] 184cm [몸무게] 83kg

[주발] 오른발

[포지션] 풀백,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병역] 만기제대

[20시즌 출장 경기] 2경기 2교체

[부상 이력] 사타구니 부상, 발목 염좌, 햄스트링 4번, 몸살감기.


올해 뛴 시간은 총 10분.


사실상 잉여 자원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고객이 원하는 요구 사항은 현 소속팀에서 방출되지 않고 현 연봉을 동결시키는 것.


“현실과 동떨어지는 요구지.”


물론 안우현은 괜찮은 선수였다.


멀티 자원이고 병역도 해결했고 전술 수행 능력도 괜찮은 데다 기본기도 꽤 나쁘지 않았다.


유리 몸이라는 큰 단점이 있지만, 후보로는 괜찮은 자원이 맞았다.


주전 선수들의 배터리 역할, 내가 만든 세일즈 포인트였다.


하지만 흘러가는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현 구단에서 새 감독을 선임하고 살생부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안우현은 프로 무대에서 두각을 보이지 못한 망한 유망주.


내가 프런트 직원이라면 당연히 살생부 명단에 넣었을 거다.


“아무래도 이적해야겠는데.”


마지막 남은 고객이라 고평가를 한 거지, 냉정하게 말하자면 1부 리그에서 뛸 자원은 아니었다.


경쟁력이 매우 부족해 진작 구단을 떠났어야 했다.


고객님이 굳이 남아서 경쟁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에이전트는 고객의 말을 최우선으로 들어줘야 했으니까.


“물론 예전이었다면 어떻게든 길을 만들어줬겠지만.”


지금은 하부 리그 이적밖에 답이 없었다.


지난날의 업보로 인해 K1 구단들과는 사이가 좋지 못했으니까.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현실을 깨닫게 해줘야 할까.


네 자리는 없다는 걸?


적절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과거의 영광으로 남은 외제 차를 타고 미팅 장소에 도착했다.


미팅 장소는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FC 인천 클럽 하우스.


대충 빈자리에 주차하고 나오자 머리를 짧게 깎은 건실한 청년이 뿌연 입김을 뿜어내며 다가왔다.


“진우 형!”

“언제 왔어?”

“나? 조금 전에. 얼마 안 됐어.”


말과는 다르게 밖에서 오래 기다렸는지 손이 굉장히 차가웠다.


나는 괜히 미안해서 녀석의 등을 가볍게 때리며 말했다.


“추우니까 안으로 들어가자.”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와 복도를 걸으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요즘 벌이부터 축구계 사건, 각종 신변잡기 등이 주를 이었다.


그러다가 아무도 없는 테라스에서 자판기 커피를 홀짝였다.


뜨거운 커피를 찬물처럼 마시던 녀석이 슬쩍 나를 보며 묻는다.


“형, 내 요구 사항은 기억해?”


나는 담배를 꺼내며 대답했다.


“현실을 외면하는 요구라면 잘 알고 있지. 결말이 뻔히 보여서 협상 테이블에 앉고 싶지도 않아.”

“말본새하고는. 아무튼 두 가지만 지키면 내가 형하고 2년 더 한다. 아니, 평생 함께해줄게!”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앗! 들켰나. 하하하!”

“의리 없는 자식.”


나는 녀석의 옆구리를 가볍게 때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뿌연 연기가 찬바람에 실려 머나먼 곳으로 사라졌다.


나는 아직도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녀석에게 현실을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우현아, 우리 협상이 잘...어?”

“형! 왜 말을 하다 말아? 뭔데?”


맑은 음성과 함께 내 눈앞에 이상한 글자들이 떠올랐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에이전트 도우미가 활성화됩니다.]

[안우현이 고객으로 등록됩니다.]

[현재 등록된 고객 수 : 1]


내 눈이 잘못됐나.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녀석을 바라봤다.


반투명한 화면에 딱딱하고 사무적인 문장들이 빠르게 떠올랐다.


[‘날개를 펴지 못한 유망주’ 안우현의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고객의 정보를 열람하시겠습니까?]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안우현의 정보들이 쫙 펼쳐졌다.


[이름] 안우현

[나이] 25세

[신장] 184cm [몸무게] 83kg

[포지션] 풀백

[주발] 오른발

[종합 능력] 103/146

[특성] 2/3

*인간 투석기(C)

다른 선수들보다 좀 더 길게 던질 수 있습니다.

*유리몸(A)

-부상 위험도가 매우 높습니다. 부상당할 시 영구적으로 능력치가 하락할 수 있습니다.

[정보]

*안우현은 현재 K리그2에 어울리는 실력을 갖춘 플레이어지만, 충분히 성장한다면 유럽에서 뛸 수 있는 잠재 능력을 지녔습니다.

*분위기 메이커입니다.

*당신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메시지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새로운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긴급 미션을 발동합니다.]

[안우현과 재계약을 맺으십시오. (현재 남은 계약 기간 86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재 에이전트가 다 해먹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를 중단하려 합니다. +1 24.09.10 51 0 -
공지 매일 밤 11시 15분에 연재됩니다. 24.08.29 192 0 -
22 투 트랙 +4 24.09.08 169 9 13쪽
21 이런 날 저런 날 24.09.07 194 7 13쪽
20 우연은 없다. +1 24.09.06 220 7 14쪽
19 아드님을 제게 주십시오 24.09.05 231 5 14쪽
18 초고교급 유망주 +1 24.09.04 251 7 13쪽
17 원하는 거 있어? +1 24.09.03 254 6 15쪽
16 제 고객입니다만 24.09.02 265 7 13쪽
15 화려한 쇼케이스! 24.09.01 273 7 13쪽
14 그의 은밀한 취미 24.08.31 283 9 13쪽
13 이코노미로 24.08.30 287 8 14쪽
12 대표님이 맞춰주셔야죠. 24.08.29 329 10 13쪽
11 유럽에서 온 메일 +1 24.08.28 347 10 12쪽
10 업보다 업보 24.08.27 359 10 13쪽
9 채운호 대표 24.08.26 364 10 14쪽
8 오퍼가 왔는데요. 24.08.25 375 10 13쪽
7 두 번째 고객 24.08.24 403 11 11쪽
6 원 포인트 레슨 +1 24.08.23 422 11 14쪽
5 시즌 1호 이적 24.08.22 432 11 13쪽
4 이게 왜 돼? 24.08.21 425 10 14쪽
3 새로운 팀 찾기 24.08.20 455 11 13쪽
2 예정된 결말 24.08.20 474 10 12쪽
» 프롤로그 +2 24.08.20 650 13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