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에이전트가 다 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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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아리
작품등록일 :
2024.08.10 13:23
최근연재일 :
2024.09.08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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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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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이런 날 저런 날

DUMMY

살다보면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지만, 어제는 잊고 싶었다.


모텔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서로 별에 별 이야기를 다 하고.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 후에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미쳤지.”


멍한 얼굴로 담배에 불을 붙이자 이규리가 킥킥거리며 말했다.


“선배, 힘이 굉장히 좋더라. 정말 마음에 드는 퍼포먼스였어. 전성기 아자르처럼 크랙 기질이 다분하다고 해야 할까?”

“조용히 해.”

“어젯밤에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아? 이거 봐. 새로 산 스타킹이 너덜너덜해졌잖아.”


난 모르는 일이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녀석이 발가락으로 내 등을 두드렸다.


“걱정하지 마. 설마 내가 선배를 따먹었다고 말하고 다니겠어?”


상스러운 말을 들으니 숙취가 확 올라와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일어나자마자 옷도 안 입고 이불만 걸친 채 깔깔 웃어댔다.


“해장 어디서 할까?”

“대충 때워.”

“그럼, 어제 그 국밥집 어때?”

“미쳤냐?”


대충 옷을 입고 내 옆에 앉은 이규리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는 말없이 불을 붙여줬고 녀석은 맛있게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예전에 선배 고객이었던 박태진 선수 있잖아. 인천에서 울산으로 이적한다는 소문이 파다해.”

“걔 실력으로 울산을? 울산 중원에 자리 없을 텐데.”

“응, 없지. 그래도 선수 본인이 비전이 없는 인천보다는 우승을 노리는 팀에서 뛰고 싶다나봐.”

“하긴 걔도 나이가 있으니까.”


벌써 서른 중반을 보는 나이니 많이 뛰지 못하더라도 트로피 하나는 들고 싶을 거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좋은 이적은 아니다.


슬로우 스타터라 경기를 많이 뛰어야 제 기량을 발휘하는 녀석이 로테이션으로 뛴다면 아마 좋은 꼴은 못 볼 거다.


그렇게 되면 주변에서는 노화가 왔다고 말할 테고 자연스레 은퇴의 길로 들어설 테지.


안 봐도 뻔한 스토리였다.


“울산에서 관심을 보이긴 하는데 연봉이 좀 많아서 꺼리나 봐.”

“그럼, 페이컷해야지.”

“선배가 한 건데?”

“그때는 그 연봉을 받을만한 실력이 있었으니까.”

“지금은 없다?”


나는 뿌연 연기를 내뱉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으니까.


“선배, 작년에 인천에서 데뷔한 송도진 알지? 체격 좋고 미친놈처럼 뛰던 애송이 스트라이커.”

“알지. 작년에 8골인가 넣고 신인왕 탔잖아. 이번 시즌도 잘했고. 설마 유럽에서 오퍼 온 거야?”

“응. 최근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유럽 구단에서 영입하겠다고 오퍼가 들어왔나 보더라고.”

“박 팀장이 골치 아프겠어.”

“의외로 선수가 한 시즌 더 뛰고 생각해보려는 것 같던데?”

“군대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오퍼 온 구단이 마음에 안 들었나 봐.”


어제에 이어 오늘도 업계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웠다.


“이번에 서울이 잘해야 출입 기자로서 면이 좀 살 텐데. 아 참! 이거 물어보는 걸 깜빡했네. 김대현 선수는 어떻게 다시 만난 거야?”

“말하면 뭘 줄 건데?”

“김용한 선수 번호 줄게.”


무척 의심스러운 말이었으나 딱히 손해는 없던 터라 대충 뭉개서 말해줬다.


“오. 제법 재미있는 소스네. 나중에 맛있게 요리해도 되지?”

“마음대로 해.”

“땡큐!”


이규리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선배, 김용한 선수 번호는 어젯밤에 선배 폰에 저장해뒀으니 언제든지 연락해도 돼.”


나는 뭐라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추궁해봤자 이득도 없었으니까.


“선배 잠금장치 비밀번호가 생일이더라고 그래서 쉽게 풀었지!”

“바꿔야겠네.”

“그럼, 0427은 어때?”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데?”


녀석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 생일!”


나는 짜게 식은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


다시 찾은 경주 전지 훈련장.


냉기를 머금은 바람 속에서도 선수들은 코칭스태프의 지시에 따라 훈련에 한창이었다.


선수들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이번 전지훈련 결과에 따라 내년에 있을 친선 대회와 아시안컵 예선전에 소집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빨리! 더 빨리! 좋아!”

“그렇지! 좀 더 강하게!”


역시 가장 눈에 띠는 선수는 김용한이었다.


김용한이 공을 잡을 때마다 뜨거운 시선이 쏟아졌고 녀석은 기대에 걸맞은 퍼포먼스로 화답했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형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퍼포먼스를 펼친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했다.


다른 선수들이 못하는 게 아니다.


그저 김용한이 뛰어날 뿐이었다.


나는 숙취를 간신히 이겨내며 녀석의 퍼포먼스를 머리에 담았다.


흐릿하게만 보였던, 막연히 잘한다고만 느꼈던 부분을 분석해서 파고들었다.


‘몇 번 보니 보이네.’


김용한의 플레이 성향, 선호하는 스타일, 위기 상황에서 어떤 퍼포먼스로 벗어나는지, 약점이 무엇이고 고칠 수 있는지.


패턴이 조금씩 눈에 익었다.


물론 고작 이틀만으로 김용한이 가진 전부를 파악할 수 없다.


괜히 세계적인 스카우터들이 선수 한 명에게 몇 년을 공들여 관찰하고 추적하는 게 아니다.


특히 어린 선수들은 하루가 다르게 가파른 성장을 보이기도 하고 갑자기 고꾸라지기도 해서 완벽하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지금 당장 김용한이 잘한다고 앞으로도 잘할 거란 보장은 없다.


수많은 포스트 메시들이 등장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절대적인 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녀석처럼 경기 흐름을 바꾸는 선수들은 성공할 가능성이 무척 높은 편이었다.


다시 돌아와서 지금 중요한 건 김용한이 유럽에서 통하느냐다.


김용한은 다른 유망주들과 다르게 수비 가담도 잘해주고 전방 압박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본인이 한 발 더 뛰어 뒷공간을 커버하는 움직임은 절로 박수가 나올 정도였다.


“보는 눈이 달라.”


경기를 읽는 눈이 매우 훌륭했다.


성인 선수들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삑삑삑!


휘슬과 함께 미니 게임은 어나더 퍼포먼스를 보여준 김용한의 팀이 5대1로 격파하면서 끝이 났다.


코칭스태프들은 재빨리 패딩을 가져와 선수들에게 건네주었다.


선수들의 표정을 무척 밝았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김용한도 희미한 미소로 무리에 섞여 이야기를 나눴다.


“슬슬 일어나야지.”


누가 알아보기 전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조용히 훈련장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무도 지나다니질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차에 올라탔다.


올라타자마자 조수석 문이 열리며 이규리가 앉았다.


“으으. 너무 춥다. 선배, 히터 좀 틀어봐.”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히터를 틀었다.


뜨뜻한 바람이 나오기 시작하자 녀석은 이제야 살 것 같다며 안전벨트를 맸다.


“아, 오늘 저녁은 뭐 먹지?”

“내일 출근 안 해?”

“편집장님께 큰 건 잡았다고 하니까 연차 써도 좋다던데? 아, 참! 선배 폰 줘봐.”


나는 말없이 스마트폰을 건넸다.


이규리는 잠금 화면이 나오자 호기롭게 번호를 눌렀다.


진동과 함께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문구가 나왔다.


“어? 왜 안 되지?”

“뭐 눌렀는데?”

“내 생일.”

“그러니까 안 되지.”


이규리는 헤픈 웃음을 지으며 내 스마트폰을 마음껏 조작했다.


“선배, SNS는 하지?”

“당연히 하지.”

“아니, 회사 말고. 개인.”

“개인적으로는 안 하지.”


SNS는 회사 업무용으로 필요해서 썼지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 반응을 본 녀석은 그럴 줄 알았다며 새 아이디를 만들었다.


“이 아이디로 김용한 선수와 연락하면 돼.”

“아버지의 감시를 피하려고 DM으로 연락하는 건가.”

“정답! 팔로우 맺었다. 이제 연락하면 돼.”


이규리에게서 스마트폰을 받은 나는 조심스레 인사부터 건넸다.


[안녕하세요. 김용한 선수. JW 코퍼레이션 대표 김진우입니다.]


답장은 바로 왔다.


[안녕하세요. 김용한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훈련 정말 인상 깊게 봤습니다.]


어떤 점이 좋았는지 상세하게 적어 보내자 김용한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이모티콘을 보냈다.


“요즘 애들은 이러냐?”

“왜? 난 귀엽기만 한데.”


한 마디 해주려다가 김용한의 메시지를 읽었다.


[어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셨다는 말을 들었어요. 어떤 말을 나눴는지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으셨는데 대표님을 꽤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좋지 않은데.”

“내가 아버지와 가까워져서?”“응.”


이규리는 이러다가 만나지도 못하고 퇴짜를 맞게 생겼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왜 나보다 녀석이 더 난리인지 모르겠지만,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의 기대에 억눌려 소심하게 반항하는 아들, 스포츠에서는 매우 흔한 이야기다.


적절한 조치만 취하면 자연스레 풀릴 문제였다.


[그렇군요. 아버님과 좋게 끝난 것 같지 않은데 잘 말씀해주셨나 보네요. 사실 그것보다는 김용한 선수에게 물어볼 게 있는데요.]


바로 화제를 돌려 축구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지, 외국 감독들과 있었던 사건들, 나만 알고 있는 스타의 비밀을 알려주면서 조금씩 가까워졌다.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이었다.


특히 해외 스타플레이어들의 이야기에 부쩍 관심을 보였다.


같이 찍은 사진을 보내주자 김용한은 무척 부럽다는 표정을 짓는 이모티콘을 연달아 붙여 썼다.


[와! 규리 누나가 대표님이 유럽에서 꽤 잘 나가던 에이전트였다고 말했는데 사실이었나 봐요!]


나는 말없이 이규리를 봤다.


“뭐? 왜? 나 아직 28살이거든?”

“내가 뭐라 했냐?”

“짜증나!”


녀석의 따가운 시선을 무시한 채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분위기는 괜찮았고 소소한 소득도 있었다.


‘유럽 진출에 관심이 있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야.’


[혹시 좋아하는 선수 있어요?]

[조금 진부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는 이태건 선배님을 존경해요!]


“아, 맞다. 김용한 선수는 이태건 선수를 롤 모델로 삼고 있었지. 미리 말해줄 걸 그랬나.”

“아니야. 됐어.”


나는 메시지를 보내며 이태건을 떠올렸다.


이태건은 K리그와 네덜란드 리그를 거쳐 웨스트햄에서 2년 정도 뛰다가 한국인 최초로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한 선수였다.


당시 웨스트햄에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할 때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떻게 알고 있냐면 체이슨 에이전시에서 진행한 마지막 프로젝트가 이태건 이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쉽지 않은 이적이었다.


첫 시즌에 엄청난 활약으로 리그 3위로 웨스트햄을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시켰다.


두 번째 시즌에는 리그 준우승과 챔스 8강, FA컵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당연히 오퍼가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명문 재건에 열을 올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추천했지만, 녀석은 맨체스터 시티를 택했다.


그 때 들먹인 이유가 가관이었다.


‘하늘색 유니폼이 예쁘잖아요.’


실상은 자신을 택한 웨스트햄에게 막대한 이적료를 안겨주고 싶은 마음에 택한 거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태건은 선수들의 귀감이 될 만한 선수였다.


나와 다르게 훌륭한 성품을 지녔고 구설수 한 번 오른 적이 없을 정도로 깨끗했으니까.


김용한이 알고 말한 건지 모르겠는데 내 패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말하는 게 어때? 바로 넘어오지 않을까?”

“나중에.”

“선배도 참 이상한데서 고집을 부린다니까.”


지금은 아니다. 극적일 때 써줘야 더 효과적으로 먹히는 법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계약 맺기 전까지는 너무 가까워지기보다는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 성공 확률이 높았다.


아, 사카타 소우 건은 예외다.


그건 아주 특수한 케이스니까.


다음에 연락하자는 말을 남기고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화장을 고치던 이규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너무 빨리 끝난 거 아니야?”

“이 정도가 적당해.”

“특종이 물 건너갔네.”

“계약이 무슨 배달 음식이냐? 바로바로 되게?”

“아무튼 전지훈련 기간 안에는 끝낼 거지?”


나는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핸들을 잡았다.


“상황 봐서.”

“안 돼! 반드시 끝내야 해!”

“그걸 왜 네가 정하는데. 됐고 저녁 뭐 먹을래?”

“고기가 땅기는데 레스토랑 가서 스테이크 썰까?”


에어 고기를 써는 시늉으로 어필하는 이규리.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뭔 스테이크야.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나 하자.”

“그것도 나쁘지 않지! 내가 잘하는 집 아는데 거기로 갈래?”


어째 녀석의 말에서 기시감이 드는 이유가 뭘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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