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야구 천재가 회귀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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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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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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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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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심 패스트볼

DUMMY

오늘은 기필코 우리 조여사의 잔소리를 안 듣겠다는 일념 하에 알람이 울리자마자 득달같이 일어나 씻고 식탁에 앉았다.


눈 앞에 보이는 이 정겨운 식탁이 조금은 익숙해진 걸 보면 이러나저러나 이 거짓말 같은 상황에 적응해 가는 것 같다.


어제 꽤나 열심히 몸을 굴렸는데도 불구하고 찌뿌둥한 것 없이 팔팔한 이 몸도.


“그래 계약은 잘 해결됐어? 역시 양키스로 가는 거냐?”


“아 확정은 오늘 미팅 후에 날 텐데 양키스로는 안 갈 것 같아요. 마지막에 어그러졌거든요. 아마 필라델피아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뭐 그거야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발레로씨는 잘 계시고?”


“네 워낙 활동적이시니까요. 그나저나 두 분 다 여기 남아계시겠다는 결정은 변함없으실까요?”


“얘, 우리가 거기 가서 뭐하니? 니 아빠 팀도 있고 나도 여기 기반 다 있는데. 우리 아직 청춘이다? 뒷방 늙은이 취급하면 섭섭해. 같이는 못 가도 자주 갈테니까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고.”


운이나 한번 떼어봤지만 역시 퇴짜를 맞았다. 전생에도 워낙 완강하셔서 혼자 떠났었다.


하긴 뭐 아직 두 분 다 젊으신데 나 때문에 당신들 삶을 포기하라 강요할 순 없지.


얼른 아침을 먹고 준비한 뒤 서울로 올라가는 M버스에 탔다. 어제 아버지껜 근처 다니던 병원에 간다고 했지만 스킬 때문에 처음 가는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았다.


이전의 내 몸 상태랑 너무 차이 나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아 맞다. 버스에 앉아 멍 때리고 있으니 어제 준혁이 녀석한테 아침에 일찍 나오라 한 게 불현듯 생각났다. 전화를 할까 하다 귀찮아서 그냥 문자 한 통만 보냈다.


「나 오늘 오전 병원간다. 오후에 ㄱㄱ」


뭐 이 정도면 알아서 훈련하고 있겠지. 삐지면... 밥 한끼 사주지 뭐. 이쯤에서 준혁이 생각은 접어두고 핸드폰 켠 김에 가은이한테라도 전화해 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가은이랑은 어제 저녁때 통화했는데 한껏 들뜬 목소리로 가족여행을 간다했다.


미국에 계시던 아빠가 이번에 휴가를 받아서 한국에 들어오셨다나. 조잘대는 가은이 목소리를 듣다보니까 생각났었다. 전생에도 가은이네가 일주일간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었다는 걸.


아마 내 계약이 발표되자마자 돌아왔을 건데 그때 만나서 대판 싸웠었다. 가은이는 뭣 땜에 싸웠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지만 난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제주도 하르방 감귤&백년초 2종 초콜릿 세트.


아니 이건 솔직히 선 넘었잖아! 아무 생각없이 장난으로 툭툭 놀렸는데 가은이가 터졌었다.


예상컨대 임신 후 호르몬 변화에 장거리연애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그동안 쌓였던 서운함이 모여 펑 터진 게 아닐까?


나도 그땐 뭐에 쓰였는지 메이저리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가은이에게 쏟아냈었다.


뭐 이젠 존재하지 않을 일이니까. 이번엔 아주 세상에서 제일 좋은 선물을 받는 리액션을 해줄 거다.


-다음 정류장은 신논현입니다.


잡생각을 멈추고 얼른 버스에서 내려 어제 검사를 받은 병원으로 들어갔다. 예약시간에 맞춰 안내받은 진료실로 들어가자 중년의 의사가 앉아있었다.


“어서오세요. 이진홍 선수 맞죠?”


“안녕하세요. 어제 검사받은 결과 들으러 왔습니다.”


준비된 의자에 앉으니 무의식 중에 다리를 떨고있는게 느껴졌다. 막상 결과를 확인할 시간이 다가오니 초조해진 모양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미국에 가서 스프링 캠프 중에 팔꿈치 인대가 끊어졌으니 원래대로라면 지금쯤은 인대가 너덜너덜 해야 정상이다.


과연 스킬은 적용이 되었을까? 적용됐다면 어느정도나?


“네. 안 그래도 미리 좀 보고 있었는데요. 이것 참 이상하군요.”


“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니.. 문제라기보단 팔꿈치와 어깨 모두 너무 깨끗합니다. 마치 한번도 팔을 쓰지 않은 사람처럼요. 근데 이진홍 선수는 분명 야구선수잖아요? ...그리고 강도와 탄력성 수치가 좀 많이 높아요. 완전 비정상적이지는 않지만 제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수치입니다.”


됐다! 그래도 명색이 악마라고 불량품을 주진 않았나 보네.


와 근데 1레벨 스킬 효과부터 죽여주는데? 공 던지는 내내 말썽을 일으켰던 팔꿈치랑 어깨가 이 정도로 좋아지다니.


이러면 정말 메이저리그 정복 가능할지도.


“그럼 다른 문제는 없다는 거죠, 선생님?”


“네. 관리 잘하시고 불의의 사고만 당하지 않으신다면 충분히 롱런하실 수 있을 겁니다.그리고 이제 하실 계약도 아주 성공적이겠군요. 모르긴 몰라도 제가 스카우터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거거든요.”


눈을 찡긋이며 덕담을 하시는 선생님을 뒤로한 채 검사지를 챙겨 수원의 트레이닝 센터로 돌아왔다.


늦을까 싶어 센터 앞 분식집에서 점심을 때우고 피칭 연습장으로 오니 입을 댓 발 내밀고 수비 연습을 하는 준혁이가 보였다.


“나왔다.”


“야! 지금이 몇 신 줄 알아? 나보고는 일찍 오라 해놓고 지는 이제서야 기어나와?”


“뭐래, 문자 했잖아. 미안해.”


“문자만 띡 보내면 끝이냐! 내가 너 때문에···.”


“이따 저녁때 밥 사줄게. 저기 옆에 소고기 무한리필집에서!”


“진짜? 진짜지? 너 무르기 없기다. 이번에도 튀면 진짜 절교야.”


“알았어. 이제 그만하고 공 좀 받아주라, 마누라.”


빠르게 몸을 풀고 떨리는 마음으로 투수판 위에 섰다. 비록 제대로 된 마운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피칭을 하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내가 마지막에 어깨 수술받고 한 시즌 내내 재활을 하다 실패했으니 아마 1년쯤 된 것 같다. 이렇게 쌩쌩한 몸으로 던지는 건 8년쯤 됐고.


지금부터 던질 공은 포심 패스트볼이다. 우리 말로는 직구. MVP 시즌엔 당당히 구종가치 1위를 거머쥔 내 근본이었다. 부상 당한 뒤로는 배팅 볼 신세였지만.


야구라는 스포츠가 존재한 이래로 피칭 매커니즘은 언제나 단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발전해왔다.


제구도, 로케이션도 아닌 ‘구속’.


와이? 아주 간단하다. 구속이 높을수록 안타를 덜 맞으니까.


그 간단하고도 명확한 통계 때문에 마치 창을 던지듯 몸을 뒤로 뺏다가 던지는 올드 스쿨 투구 폼은 사장되거나 특정 선수만의 전유물로 전락했고, 견갑의 수축과 상하체 분리에 따른 강한 회전력으로 올드 스쿨 폼보다 10퍼센트 이상 높은 구속을 만들어내는 현대의 투구 폼이 대세가 되었다.


이 변화는 놀랍게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40km대 초반이었던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을 150km대 중반까지 올려놓는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냈고, 이는 기존의 선수들이 도태되거나 빠르게 뉴 스쿨 폼으로 변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도 당연히 이 뉴 스쿨 폼으로 던지는 선수였다. 전성기 때는 평균 구속이 100마일을 넘었었고.


하지만 이 폼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팔꿈치에 너무 많은 부하가 걸린다는 점이다. 마치 복싱의 스트레이트처럼 더 짧은 가속구간에서 더 강한 힘으로 가속시키다 보니 당연히 팔꿈치가 혹사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서 주워들은 바로는 마지막 레이트 코킹 동작에서 팔꿈치에 걸리는 중량이 25kg이라고 하는데 짧은 순간이지만 쌀 한포대 이상의 부하를 주는 동작을 하루에 100번 가까이, 4~5일 마다 계속한다고 생각해보라. 팔꿈치가 남아나겠는지.


그래서 옛날 투수들보다 현대의 투수들의 수명이 짧아지고 특히 팔꿈치 수술을 받는 선수가 급증한 거겠지.


안 그래도 내구성이 약한 나는 더 빨리 퍼져버렸고.


물론 올드 스쿨도 완전히 안전한 투구 폼은 아니다. 두 번째 토미 존 수술에서 구속을 잃어버린 내가 변형해서 사용했던 이 폼은..


음... 그래, 팔꿈치에 가하는 부하를 어깨와 허리에 분산시켜 받는 형식이다. 때문에 과거 투수들은 팔꿈치 부상 대신 어깨부상이 잦았던 거고.


내 마지막 어깨부상도 마찬가지 이유로 발생했다. 그래도 5년이나 더 던질 수 있었으니 올드 스쿨 투구 폼엔 유감은 없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내가 굳이 회귀 직전의 투구 폼을 쓸 이유가 없어졌다는 거다.


내 팔꿈치와 어깨가 저렇게 활골탈태했다면 강력한 구위로 삼진을 펑펑 잡아댔던 전성기의 폼으로 쭉 던져도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관리는 해야겠지만.


따라서 내가 지금 던질 것은 내 전성기의 투구 폼으로 뿌리는 포심 패스트볼이다.


먼저 길쭉한 검지와 중지로 4개의 심(seam)을 교차하게 얹은 뒤 큰 손으로 공을 뭉개듯이 꽉 그러쥐었다.


다음엔 힘차게 와인드 업을 하고 오른발을 앞으로 강하게 내딛는 거다. 그와 동시에 마치 뒤집어진 W(인버티드 W)와 같은 팔동작을 통해 힘껏 견갑을 수축해준 뒤 앞으로 나가며 있는 힘껏 공을 뿌린다.


공을 뿌리기 직전까지 상체는 1루쪽을 바라보게 하다가 마지막에 상체를 강하게 회전시키며 마지막 팔로우 스루까지.


우와 이게 얼마 만에 던져보는 제대로 된 포심이냐. 자 어떠냐 준혁아, 이 형님의 끝내주는 직구가.


“어어.. 야 너 어디로 던지는 거야! 왜 이래? 얘가 아직 몸이 덜 풀렸나.”


홈 플레이트를 한참이나 벗어나는 내 투구에 준혁이는 일어서며 한 소리를 했고, 나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안하단 제스쳐를 보냈다.


음. 역시 너무 오랜만이라 제구가 잘 안되네. 이거 잡으려면 또 죽어나겠구만.


“미안, 피칭이 오랜만이라 제구가 완전 나갔네. 며칠만 좀 도와줘라.”


“도와주는 건 도와주는 건데, 너 이거 밥 한 끼로는 안 되는 거 알지? 각오해라.”


“걱정마라. 곧 있으면 부자 되는데 내가 돈 떼먹고 튀겠냐?”


그 뒤로 50구 정도를 던지며 직구를 점검하고 마무리 운동과 웨이트까지 한 뒤에야 밥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소고기를 산처럼 쌓아놓고 굽고 먹는 신기를 보여주면서 준혁이가 피칭에 대해 물었다.


“야 근데 너 다른 공은 왜 안 던져? 너 슬라이더랑 커브있잖아.”


“아 그거. 그냥 다른 구종 익혀보려고. 일단 여기선 패스트볼만.”


“그래, 그래야겠더라 직구가 아주 폴폴 날아다니는 게···.”


“너 이 자식이. 그래도 힘은 있었잖아!”


“그래. ‘힘’은 있었지. 힘만 있어서 문제지. 그건 그렇고 다른 구종은 왜? 니 변화구도 괜찮은데.”


넣어둬 준혁아. 그거 아니야. 너한테나 괜찮지 저기 미국에선 먼지나게 털린단다.


커브는 아예 경기에서 하나정도 쓰고 슬라이더는 싹 바꿔야 한다는 게 내 계획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 다음에 추가할 구종은 저 둘이 아니다. 아마 스프링 캠프나 가서야 가능할 것 같지만..


내 포심과 영혼의 단짝, 무수한 전문가들이 입 맞춰 페드로 이후 최고라 부른 그 공!


서클 체인지업이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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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스프링 캠프(2) +2 24.08.14 3,020 65 9쪽
9 스프링 캠프(1) +1 24.08.14 3,096 66 10쪽
8 1년만 꿇자 +3 24.08.13 3,135 70 9쪽
» 포심 패스트볼 +1 24.08.13 3,173 61 11쪽
6 계약 +1 24.08.12 3,228 66 9쪽
5 회귀 +3 24.08.12 3,267 65 10쪽
4 유희 작당(2) +3 24.08.11 3,342 54 11쪽
3 유희 작당(1) +5 24.08.11 3,568 60 9쪽
2 가은 +1 24.08.10 3,662 57 8쪽
1 절망 +2 24.08.10 3,944 6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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