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요리는 특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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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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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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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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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

DUMMY


“가게를 혼자 운영하시는 겁니까?”


최수현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네. 작은 가게라서 혼자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직 일손이 필요할 정도로 주문이 몰려든 적도 없고요.”


기용은 종업원이 없냐는 물음으로 알아듣고 답했다.


“그래. 사장님이 손이 빠르셔서 혼자 하셔도 될 것 같은데 왜 그래?”


최수현은 금수저에 오냐오냐 자란 늦둥이 외동아들이었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상대방이 무례하게 느낄 법한 질문도 서슴없이 했다.


다른 사람이 하면 미웠을 법한 질문도 최수현은 순수하게 물어서 그런지 미운 느낌은 들지 않는 게 그의 매력이었다.


“아하. 알겠습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최수현은 뭐라 말을 더 덧붙이려다가 말고 핸드폰을 들고 제육 컵밥과 다른 컵밥들의 사진을 찍었다.


기용은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손님들이 식사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건 왜 물어본 거야? 음식이 늦게 나왔다고 생각해서? 이 정도면 빨리 나온 것 같은데.”


이연아는 꼭 기용을 나무라는 듯한 최수현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물었다.


“뭐. 그냥 궁금해서.”


최수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이고는 제 앞에 놓인 제육 컵밥을 숟가락으로 크게 푸고 한입에 넣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는 뜻. 고시반 학생들은 최수현의 이런 화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저들도 개의치 않고 컵밥을 먹기 시작했다.


“와. 소불고기 컵밥도 맛있네.”


민훈은 소불고기 컵밥을 한 입하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조금은 실험적인 마음으로 시킨 메뉴였지만, 기대 이상의 맛이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백반집에서 먹는 뚝배기 불고기와 바싹 불고기 사이의 맛이었다. 바싹 불고기처럼 고기가 담백하고 누린 내가 하나도 나지 않았으며 뚝배기 불고기처럼 충분하고도 달콤한 양념이 밥알 사이사이에 깊숙이 배어 있었다.


5천 원짜리 컵밥인데도 고급스러운 놋그릇에 담긴 비싼 소불고기를 먹는 기분이었다. 고기 맛에 감탄하고 있을 때쯤 치고 들어오는 대파와 양파는 황홀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다들 내 것도 한 입씩 먹어봐. 이상하게 5천 원짜리 컵밥 먹는데 빨리 CPA 합격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맛이다. 합격하면 이런 거 매일 먹으러 다닌다고 하잖아.”


회계사는 출장이 잦고 미팅도 많은 직업이었다. 수려대학교 선배 중 CPA에 합격해서 4대 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회계사가 돼서 가장 좋은 점은 맛있는 걸 많이 먹으러 다닐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감사 나간 회사에 관리자들이 맛있는 음식을 소개해 주기도 했고 법인 자체에서도 일이 워낙 고되니 먹는 건 맛있는 걸 먹으라는 주의라 식대에는 한도가 없다고 했다.


그 선배는 회계사로 일하면서 고시생일 때보다 15kg이나 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겉으로 보기에도 그의 체형은 보통보다는 살집이 있어 보였다.


그 얘기를 들은 후로는 고시반 학생들 모두 맛없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회계사만 되면 살이 찔 터이니 미리 다이어트하는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이 제육 컵밥도 만만치 않아요. 형은 진짜 착하네요. 난 이거 너무 맛있어서 아무도 안 주고 혼자 다 먹고 싶은데.”


김하준이 제육을 입에 가득 담고 웅얼거렸다. 민훈은 고시반에서 제일 연장자로 후배들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누는 게 몸에 밴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성정 때문에 <모든 시간>에도 글을 올렸고. 하지만 민훈은 김하준의 말에 답할 새가 없었다.


후배들이 민훈의 소불고기 컵밥보다는 제가 시킨 컵밥을 먹기 바쁘다는 걸 확인한 후로는 그도 온전히 소불고기 컵밥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가보지도 못한 고급 한정식 가게에서 정장을 입고 찌든 얼굴로 밥을 먹는 회계사가 된 미래의 본인이 마구 떠 올랐다.


지난 치킨마요 컵밥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었다면 이번 소불고기 컵밥은 오지 않은 미래를 꿈꾸게 하는 맛이었다.


“사장님 얼굴만큼 하는 밥이었어···.”


이연아는 어느새 치킨마요 컵밥을 다 먹고 허공을 보며 혼잣말했다. 치킨마요 컵밥이 나오기 전까지는 부엌에서 조그맣게 보이는 사장님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었는데 먹는 동안은 사장님의 얼굴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 먹고 정신 차려 보니 그제야 사장님의 용안이 떠 올랐다. 치킨마요 컵밥처럼 달콤했던 목소리도.


“어떻게 이런 가게가 아직도 주목받지 못했지?”


진작에 다 먹은 최수현은 팔짱을 끼고 가게를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안 그래도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기용의 얼굴이 잘생겼고 제육 컵밥이 맛있다길래 관심이 갔다.


철저히 투자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최수현은 사업가이자 투자자로 성공한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돈 냄새는 아주 기가 막히게 맡았다.


“제가 먹어봤던 김치 관련 메뉴 중에 방금 먹은 컵밥이 가장 맛있었어요. 어떻게 밥을 살짝 눌러서 주실 생각을 하셨을까···.”


박지현은 다 비운 하얀 그릇을 바라보며 아쉽다는 듯 침을 삼켰다.


“하하. 우리 10분 만에 다 먹은 거 알아? 연아랑 지현이는 우리가 매일 밥 빨리 먹는다고 뭐라고 하더니.”


민훈은 뿌듯한 표정으로 후배들의 빈 그릇을 바라봤다.


“이 컵밥은 제가 살게요. 먼저 나가 계세요.”


최수현이 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대박. 형이 웬일이래요?”


김하준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5천 원이라도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적지 않은 돈.


금수저인 최수현은 기분이랍시고 남들 밥 사 주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지갑을 여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의 가치관도 그럴만한 것이, 금수저라고 마구 지갑을 열어대면 진짜 친구가 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수현은 그래서 금수저인데도 용돈이 짜다는 핑계를 대며 고시반 학생들에게 밥을 잘 사지 않았다.


“난 이 컵밥 하나가 5천 원이 아니라 5만 원이었어도 안 아까웠을 것 같거든.”


최수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지갑 안에서 신용카드와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사장님, 계산할게요.”


먼저 나가 있으라는 최수현의 말에 따라 고시반 학생들은 먼저 문밖으로 나가 있었다.


“맛있게 드셨나요?”


기용은 부엌에서 곁눈질로 학생들이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을 봤는데도 예의상 물었다.


“맛있게 먹은 정도가 아닙니다. 제가 살면서 비싼 제육볶음을 많이 먹어봤는데 이런 맛은 처음이에요.”

“극찬입니다. 감사합니다.”


최수현이 건넨 신용카드로 결제하면서 웃었다.


“그리고 이 가게를 혼자 운영하고 계신다고 하셨죠? 혹시 투자자는 안 필요하십니까?”


최수현은 제 아버지 명함을 기용에게 건넸다.


* * *


최수현이 떠나고도 손님들이 끊임없이 왔다. 최수현이 명함을 건넸을 때도 저녁 시간이 막 시작됐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는 듯이 손님들이 물밀듯이 와서 정신없이 주문을 받았다.


이후 손님들이 왔을 때도 미션 창이 떠서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치킨마요, 참치마요까지는 클리어했는데 다른 메뉴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아마 각 잡고 레시피를 외운 것도 아니고 세 메뉴를 제외한 것들은 충분히 요리해 본 메뉴들도 아니라서인 것 같았다. 기용은 영업을 종료하고 필요한 고기들을 양념에 재워두고 있었다.


“잠깐. Step. 2의 미션이 ‘숙련하기’잖아. 숙련은 꼭 손님들이 주문한 메뉴로만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야? 혼자 해도 될 것 같은데.”


양념을 하루 재워둬야 하는 소불고기 컵밥은 반드시 내일 시도해야 했지만, 나머지 메뉴인 스팸 마요, 김치 볶음, 스팸 김치 컵밥은 집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빨리 양념해 놓고 집으로 가야겠다!”


* * *


가게 안 대청소를 마치고 빌라 안으로 들어가는 길.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지금 퇴근하시는 거예요? 오늘은 좀 늦었네요.”


익숙한 목소리. 또 미영이었다.


“네. 아주머니도 지금 들어오세요?”


아무리 봐도 아주머니로는 보이지 않는 외모였지만, 기용은 또 부르라는 대로 부르다 보니 익숙해져서인지 아주머니라는 호칭이 편했다.


“네. 안 그래도 기용 씨한테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러 가려고 했어요.”

“저요? 이미 트러플 오일도 주셨잖아요.”


기용은 미영의 지나친 호의가 부담스러워서 손사래까지 쳤다.


“하하. 그렇죠. 그건 제값 치른 거 맞아요.”


기용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의 컵밥 말고는 기용은 근래에 미영에게 이렇다 할 호의를 베푼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SNS에 기용 씨가 주신 참치마요 컵밥 사진을 올렸거든요. 그 덕분에 100만 팔로워가 됐어요! 뭘 해도 99만을 못 넘었는데!”


미영은 감격에 겨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 그래서 아까 SNS에서 입소문을 탔다고 상태창이 떴구나.’


기용은 SNS를 하지 않아도 100만 팔로워가 얼마나 많은 숫자를 의미하는지는 알았다.


“아주머니, SNS에서 유명하셨군요. 제 덕분이 아닐 겁니다. 어떻게 고작 참치마요 컵밥 사진 하나 올렸다고 팔로워가 만 명이나 늘겠어요.”


기용이 웃으면서 공을 미영에게 돌렸지만, 미영의 생각은 달랐다. 참치마요 컵밥의 맛깔나는 비주얼과 5천 원이라는 가격, 대학가에 있는 가게라는 특이 사항 그 모두가 중첩돼서 게시글의 관심이 폭발했다.


SNS의 알고리즘을 타고 미영의 팔로워가 아니었던 사람들도 미영의 게시글을 보게 됐고 자연스럽게 팔로워가 늘었다.


“아니에요. 기용 씨 SNS 안 하시죠? 이 세계가 은근히 복잡한 알고리즘 하에 이뤄진답니다. 특히 요즘은 SNS에서 맛집을 소개해 주는 게 유행이에요. 그 알고리즘에 기용 씨가 만들어준 음식 사진으로 제가 업힌 거죠.”


미영은 업히는 시늉을 하고서 기용을 잡아끌었다.


“지난번에 가려고 했던 김치찌개 가게, 같이 가시죠! 정말 맛이 있어서 그래요.”


미영이 이렇게까지 하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기용은 내심 김치찌개의 맛이 궁금하기도 했다. 미영이 하도 극찬해서도 있지만, 어쩌면 상태창에 떴던 ‘하’ 수준이었던 미각을 올릴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요. 그 김치찌개 가게가 어딘지 저도 궁금해졌어요.”


기용이 싱긋 웃으니, 그 웃음에 매료되어서 미영은 저도 모르게 기용을 잡아끌던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흠흠. 마음 같아서는 더 비싼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그 집이 정말 맛집이라서 그래요. 저만 따라오시죠!”


미영을 따라 도착한 김치찌개 가게는 정말 유명한지 저녁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김치찌개라는 친근한 메뉴에 맞게 내부 인테리어 또한 수더분했다.


“여기는 김치찌개만 팔아요.”


메뉴판을 보니 돼지고기 김치찌개, 참치 김치찌개, 스팸 김치찌개 그리고 계란말이가 메뉴의 전부였다. 가격은 차례로 만 원, 9천 원, 8천 원, 7천 원.


“사장님, 돼지고기 김치찌개 두 개랑 계란말이 하나 주세요!”


미영은 시원하게 주문을 마쳤다.


“라면 사리도 추가하면 맛있긴 한데 저녁이니까 가볍게 계란말이만 먹어도 괜찮죠?”


식단을 조절하고 있는 미영이었다. 이 시간에 김치찌개도 무리한 선택.


“그럼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치찌개가 바로 나왔다. 반조리로 자리에서 끓여먹는 방식이었다.


“끓으면 바로 드시면 돼요.”


메뉴에는 김치찌개만 있고 아주 빨리 나오는 걸 보니 미리 부엌에서 대량으로 준비해 놓는 모양이었다.


“자신감이 느껴지네요.”


투박한 양은 냄비 안에 가득 담긴 김치찌개를 보니 입맛이 막 돌았다. 김치찌개 특유의 짭조름하고 텁텁한 향기가 코로 들어왔다.


“제가 자타공인 미식가이거든요. 젊었을 때부터 비싸고 맛있는 음식은 다 먹어봤어요.”


미영이 막 끓기 시작한 김치찌개를 국자로 뒤적였다. 기용과 자신의 앞접시에 김치찌개를 덜고는 손을 마구 비볐다.


“저도 이 시간에 이 가게 김치찌개 먹는 거 정말 오랜만이에요. 한동안 관리한다고 저녁에 음식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거든요. 어서 드셔보세요!”


미영이 숟가락을 들고 먼저 김치찌개를 맛봤다. 기용도 냄새에 못 이겨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고 입에 털어 넣었다.


“음······?”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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