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요리는 특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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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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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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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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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 * *


“웬 밥이 이렇게 많아?”


최기수가 식탁에 앉자마자 부엌에 있는 가정부를 바라보고 물었다. 평소에도 반찬 가짓수는 많았지만, 덮밥이 많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작은 앞접시에 네 가지의 덮밥이 담겨 있었다.


“일단 앉아서 드셔보세요.”


수현이 미소를 지으며 최기수에게 말했다.


“당신도 아는 일이야?”


최기수가 수현의 엄마에게 묻자, 그저 눈썹을 올리며 어깨를 들썩일 뿐이었다.


“일단 먹자.”


최기수는 여전히 의문을 품은 채로 식탁 앞에 앉았다. 막 포장해 왔는지 음식에는 아직 열기가 남아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매콤한 제육볶음 향, 소불고기 향, 김치볶음밥의 향 그리고 짜장의 향 그 사이로 트뤼플의 향이 아주 진하게 느껴졌다.


“이건 뭐냐?”


최기수가 사천 짜장을 검지로 가리키며 수현에게 물었다.


“사천 짜장밥입니다. 한 번 드셔보세요.”


수현은 최기수에게 아침에 컵밥 이야기를 했기에 컵밥을 포장해 왔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괜히 최기수가 편견을 가질까 봐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트뤼플 향도 나는 것 같은데.”


최기수는 아침에 수현이 말했던 5천 원짜리 컵밥 가게에서 밥을 사 왔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무려 고급 트뤼플 향이 나지 않는가.


기용이 트뤼플 오일을 많이 넣어서 향이 더욱 진하게 났다. 수현은 사천 짜장 컵밥 가득 느껴지는 트뤼플 향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최기수는 밥과 짜장 그리고 달걀 프라이를 적당히 버무리고 트뤼플 향이 느껴지는 사천 짜장밥을 한 숟가락 가득 펐다. 최기수는 늘 같은 시간에 아침과 점심, 저녁을 먹는다.


그래서 끼니때가 되면 무척이나 배가 고팠다. 게다가 눈앞에 있는 정체 모를 음식에서 아주 맛있는 향기가 나니 참을 수 없던 것.


“······!?”


짭짤하면서도 매콤한 맛. 적당히 반숙으로 익혀진 달걀 프라이의 노른자가 밥알 하나하나를 코팅해서 부드러웠다.


익히 아는 짜장의 맛이었다가 매콤함이 올라와서 느끼하고 무거운 짜장의 맛을 잡아줬다. 심심할 때쯤 씹히는 돼지고기와 그 사이로 느껴지는 트뤼플의 향.


고급스러웠다. 돼지고기도 좋은 고기를 쓰는지 씹을 때마다 질긴 기색 없이 부드러웠다.


계속해서 손이 갔다. 짜장 소스가 그렇듯 한 번 맛을 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다.


최기수는 뭐라 음식에 대한 평을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사천 짜장에 흠뻑 빠져 있었다. 흔히 맛보는 짜장 소스의 맛이 아니었다.


어딘지 모르게 깊었고 재료 본연의 향이 전부 느껴졌다. 신선한 파와 양파 그리고 고추기름까지.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고급 중식당에서 밥을 먹어본 적이 있던 최기수였다. 하지만 이 음식은 그것들과 달랐다.


재료와 맛이 고급스럽기는 여타 중식당과 비슷했지만, 거기서 한끝이 달랐다. 이 요리에서는 정성이 느껴졌다.


먹는 사람을 배려한 음식.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요리한 느낌이 아니다.


“아빠, 다른 메뉴도 맛있으니까 드셔보세요.”


최기수와 다르게 수현의 엄마는 소불고기 컵밥을 먼저 맛본 후, 다른 것들도 차례로 먹었다. 물론 그녀도 <백반 컵밥>의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접시에 코를 박고 말이다. 늘 교양 있게 살려고 노력했던 그녀였다. 그녀도 밑바닥에서부터 최기수와 함께 올라온 위인.


없이 살았던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허겁지겁 먹지 않았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집에서도 식사 예절을 가장 중시하며 천천히, 꼭꼭 그리고 조용히 먹는 걸 늘 생각했다.


하지만 소불고기 컵밥을 맛보자마자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수현의 말에 그녀의 엄마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수현은 그런 두 사람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흠흠. 그래. 다른 것들도 있었지?”


최기수의 말에 수현의 엄마도 초점이 풀렸던 눈에 힘을 주고 다시 고상하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사실은 그릇을 들고 그릇 바닥에 묻은 소스까지도 핥아서 먹고 싶었지만.


“수현이, 너는 안 먹어?”


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스스로를 위해 시야라도 이리저리 돌리고 있던 수현의 엄마는 수현의 밥그릇에 시선이 닿았다.


“전 두 분 드시는 것 보고 먹으려고 했어요.”


한 번 맛보는 순간 끊을 수 없다는 걸 수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걸 대체 어디서 가지고 온 거냐? 어떤 셰프가 만든 거야? 돈이라면 얼마든 줄 테니 집으로 데려오너라.”


최기수는 이 음식을 만든 셰프를 갖고 싶었다. 요즘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서 무료했던 나날도 이런 음식을 삼시세끼 매일 먹으면 행복한 날들이 될 것 같았다.


“사장님이 이미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 우리 집 전담 셰프로는 안 오려고 하실 거예요. 아빠, 이 음식이 제가 아침에 말했던 <백반 컵밥>의 5천 원짜리 컵밥이에요.”


수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묘한 쾌감이 이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 아침부터 아빠의 일장 연설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수현은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도 아빠처럼 돈에 관한 감각이 있다고, 아들을 믿어봐도 된다고 말이다.


“이, 이게 5천 원밖에 안 한다고?!”


최기수는 믿을 수 없었다. 사천 짜장 컵밥의 경우는 호텔에 있는 고급 중식당에서 먹었던 짜장면보다 맛있었다.


고급 중식당의 음식보다는 자극적인 맛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계속 먹고 싶었다. 자꾸 당겼다.


먹고 있자니 자극적인 길거리 음식이 떠오르다가도 식재료가 좋아서 그런지 다시 맛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최소 3만 원은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5천 원이라니. 최기수는 식탁 위에 있던 밥의 양을 떠올렸다.


최기수가 먹은 양이 적긴 했지만, 세 개로 나눌 수 있었으니 아주 적은 양도 아니었다.


“이게··· 이렇게 팔고 마진이 남는 거야?”


최기수는 의문스러웠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남는 게 없을 것 같았다.


돼지고기의 질은 어떻고 새우의 식감은 또 어떤가. 그 어디에 내놓아도 견줄만한 음식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투자해서 사장님의 배를 불려줘야지요. 어때요? 아빠, 이제는 좀 구미가 당기시나요?”


수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침에서처럼 장사꾼이라면 무릇 그래야 한다느니 같은 소리를 한다면 <백반 컵밥>의 사장은 확실히 장사치는 아니었다.


“단언컨대 이 음식을 먹고 투자를 안 하고 싶어 하는 꾼은 없을 거다. 수현이 네 말대로 이 컵밥으로 우리나라에 컵밥 열풍이 일게 할 수 있겠어.”


최기수는 한동안 불었던 요식업계의 바람을 기억했다. 밥버거, 도시락, 토스트.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는 컵밥 열풍이 불 때라고.


* * *


기용은 <백반 컵밥>을 마감 중이었다. 오후에 유영이 와서 학보사 기자들 것까지 사천 짜장 컵밥을 8개나 포장해서 갔는데도 인사를 제대로 못 했다. 그 정도로 바쁘고도 이상한 날이었다.


특별히 진상 손님이 많은 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만큼 손님이 늘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어디든 손님이 늘면 그만큼 이상한 손님도 많아진다. 전에는 진상 손님도 오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가게 밖을 쓸었다.


상태창의 성취도는 아직 43%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진상을 만났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기용은 버틸 수 있었다. 대기업에서 당하던 처사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 수준.


적어도 아침에 사가를 부르지 않아도 되고 퇴근할 때 큰소리로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됐다.


퇴근 인사는 심지어 사무실에 아무도 없을 때도 해야 한다고 했다. 갓 입사했을 때는 군기가 바짝 들어서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대고 꼭 인사하고 퇴근했다.


혹여나 누가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 습관은 새끼 코끼리 발에 걸린 족쇄처럼 연차가 쌓이고서도 계속됐다. 기용은 나중에는 그게 이상한 줄도 몰랐다.


그러다가 기용의 상사가 50대의 나이에도 빈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인사하고 퇴근하는 걸 보고 정신이 번뜩 들었다.


“어휴. 그때 비하면 오늘 있던 일들은 양반이다, 양반.”


기용은 그렇게 혼잣말하면서 비질하고 있을 때였다.


“폐지 있어~?”


노파의 목소리에 돌아보니 작고 왜소한 할머니가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폐지요?”


폐지를 줍는 노인 같은데 기용은 오늘 처음 본 노인이었다.


“네. 잠시만요.”


기용은 그렇게 말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종이 상자라면 매일 나왔다. 식재료를 살 때 상자째로 받기 때문이다.


매일 퇴근하기 전에 폐지를 내다 버려서 많지는 않았다. 오늘도 할머니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폐지를 주지 못했을 것.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어느새 할머니는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가게를 두리번거리며 훑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용은 제 할머니가 떠올랐다. 기용을 아주 아껴주던.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기용이 혼자가 됐을 때 유일하게 마음을 기댈 수 있던 가족이었다.


“식사하셨어요?”


기용의 말에 할머니는 화들짝 놀란다. 제게 이런 친절을 베풀 줄은 몰랐다는 듯.


“흠흠. 아직 안 먹긴 했는데.”

“그럼 식사하고 가시겠어요?”


미션 진행과는 상관없이 기용의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한 행동이었다. 할머니가 떠올라서.


살아생전에 기용이 만든 음식을 한 번도 대접해 드린 적이 없었다. 그게 아쉽다가도 상태창이 뜨기 전 요리 실력을 생각해 보면 다행이기도 했다.


“메뉴 한 번 천천히 보시고 원하시는 음식 있으면 바로 만들어 드릴게요.”


이미 주방 청소도 모두 마친 후였지만, 청소야 다시 하면 된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아직 끼니를 먹지 못한 할머니가 더 걱정됐다.


할머니는 부담스러운지 쉽사리 메뉴를 선택하지 못했다. 몇 분이 흐르고, 기용은 더 기다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시간은 7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할머니께 음식을 해드리고 다 드시는 것까지 본 후 다시 정리하고 집에 들어가면 9시는 되어야 할 것이다.


기용은 제가 만든 메뉴판을 바라보다가 할머니의 마른 몸을 보고 고기를 생각해 냈다. 제육은 매울 수도 있고 치킨이나 참치 마요는 느끼할 수 있다.


“턱관절과 치아가 괜찮으시다면 소고기가 들어간 소불고기 컵밥을 대접해 드려도 될까요?”


기용의 말에 할머니가 흠칫 놀란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기용은 싱긋 웃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마침 어제 재워둔 고기가 남아 있었다. 그것도 많이.


‘오늘 할머니를 대접해 드려야 하는 날이었나 보네.’


기용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설거지를 다 해서 말끔히 닦아놓은 팬을 들었다. 그러자, 익숙한 상태창 BGM이 들렸다.


-빠빠빠빠밤. 빠빰. 빠빠빠라빠라밤.


-형, 잘 생각했멍! 나도 할머니의 배가 고파 보였멍.


어느새 상태창 안에 나타난 재롱이가 기용의 시야에서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 눈앞에 돌아다니는 노란 게 거추장스러워서 기용은 고개를 저었다.


“그만 들어가 줄래. 형 요리하는데 정신 사납다.”


기용의 말에 재롱이는 들어가는 대신 시야 구석에 몸을 한껏 쭈그리고 앉았다.


소불고기 컵밥이 완성되자, 상태창의 요란한 BGM은 사라지고 잠시 정적이 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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