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요리는 특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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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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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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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초

DUMMY

오덕영이 보던 만화에서는 그처럼 사회 부적응자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심 좋은 셰프를 만나고 요리사로 거듭나는 내용.


오덕영은 만화의 주인공에 자신을 투영해 보면서 언젠가 그런 날이 본인에게도 올 수 있지 않을까, 꿈 꿔봤다.


김치볶음밥. 오덕영이 보던 만화는 일본 만화라 김치볶음밥의 레시피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요리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던 오덕영은 미튜브로도 요리 영상만 봤다. 그래서 쉽게 김치볶음밥의 레시피를 떠올릴 수 있었다.


면접에 오기 전에 찾아봤던 <백반 컵밥>의 리뷰들. 거기서 봤던 김치 볶음 컵밥의 사진을 떠올리려 애썼다.


‘인터넷에서 본 사진에서 김치 볶음 컵밥에 달걀 프라이는 안 올라갔던 것 같은데.’


오덕영은 기억을 되짚어 보며 기용의 테스트에 뭔가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손쉽게 김치볶음밥을 해놓길 바라는 건 아닐 거라는 그의 착각.


만화에 너무나도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실상은 그저 기용은 손님들에게 뭐라도 더 대접해 드리고 싶었고 오덕영이 본 리뷰 사진들에는 이미 달걀 프라이를 다 먹은 사람들이거나 달걀을 좋아하지 않아 뺀 사람들이 찍은 사진들이었다. 공교롭게도.


덕영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중국식 달걀 볶음밥을 떠올렸다. 달걀물을 밥에 풀어서 볶는 방식.


이런 식으로 요리하면 달걀이 밥알 하나하나에 잘 코팅되어서 고소하고 맛있는 볶음밥이 완성된다. 오덕영이 할 메뉴는 김치 볶음 컵밥.


밥 위에 달걀을 적당량 풀고 잘 섞어줬다. 달걀물이 흥건하지 않게 적당히 넣는 게 포인트였다.


기용이 미리 잘라놓은 김치를 오덕영이 꾹 짜서 국물이 남지 않게 했다.


‘전에 미튜브에서 봤을 때 이렇게 하면 훨씬 깔끔한 맛의 김치볶음밥이 완성된다고 했어.’


기용은 곁눈질로 오덕영의 요리를 보다가 김치를 짜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덕영은 제가 요리하는 장면을 수십 번, 수천 번을 상상했다.


때로는 허공에 대고 시연해 보기도 했다. 덕분에 요리하는 자세는 능숙해 보일 수 있었다.


“호, 혹시 마, 마가린 있나요?”


오덕영은 김치볶음밥에 마가린을 한 스푼 넣으면 고소하고 맛있어진다는 말도 어디에선가 들어서 물었다. 기용은 놀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냉장고에서 기용이 가져온 마가린을 한 스푼 떠서 식용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녹였다. 그리고 그 위에 김칫국물을 싹 뺀 김치를 올렸다.


달걀물을 푼 김치볶음밥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김치의 맛이 잘 안 날 수 있었다. 덕영은 그것까지 생각해서 김치를 충분히 넣었다.


순식간에 주방 안에 풍기는 고소하고도 맛있는 향기. 김치를 어느 정도 볶고 나서 기용이 잘라둔 양파와 대파를 넣었다.


이후 설탕을 한 스푼 넣고 후추도 적당히 뿌려줬다. 달걀물을 푼 밥을 볶을 때는 밥알 하나하나를 튀긴다는 느낌으로 열심히 볶았다.


‘김치볶음밥을 특이하게 하시네···.’


기용은 옆에서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만 했을 뿐, 다른 말을 더 얹지는 않았다.


요리에 빠져 있는 오덕영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 보였으며, 주방 안에 풍기는 김치 볶음 컵밥의 향이 전과는 다르면서도 굉장히 맛있는 향이 났기 때문이다.


“기, 김치 보, 볶음 컵밥 나오, 왔습니다.”


오덕영이 컵밥에 예쁘게 담은 밥을 건넸다. 달걀 프라이가 없어서 허전해 보였다고 생각해서일까, 어디에선가 통깨를 찾아서 가지런히 뿌려놨다.


‘기본적으로 센스가 있는 사람이네.’


“우와. 맛있겠는데요. 고생 많으셨어요.”


기용은 그렇게 말하고 손님께 음식을 내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 김치 볶음 컵밥은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만든 건데요, 한 번 맛보고 시식 평 남겨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 이 김치 볶음 컵밥은 공짜입니다.”


마지막 손님에게 기용이 음식을 내갔다. 제일 마지막 손님이라 오래 기다린 것도 있지만, 기용이 대기 줄을 관리할 수 없어서 이 손님이 다음에 오는 손님들에게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일일이 이야기해 줬다.


음료수 서비스도 드린 후. 기용은 더 고마움을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오덕영이 등장한 것이다.


“어머!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저희가 다 느끼한 치킨 마요, 참치 마요 컵밥을 시켜서 김치 볶음 컵밥을 하나 더 시킬까, 했거든요. 주방에서 김치 냄새가 맛있게 나기도 했고요.”


여자는 웃으며 김치 볶음 컵밥을 받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달걀물을 입힌 밥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냥 일반 김치 볶음 컵밥처럼 보였다.


“달걀은 밥과 함께 풀어서 넣었습니다.”


기용은 옆에서 본 오덕영의 조리 과정을 설명하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왔다.


“요리 경력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손님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로 작게 물었다.


“어, 없습니다.”


빨개지는 오덕영의 얼굴. 기용에게 인정받은 느낌이라 좋았다. 그때였다. 카운터를 거쳐 주방 쪽으로 오는 마지막 손님.


어딘지 모르게 화난 것처럼 보이기도, 벅차 보이기도 한 표정이었다. 그 얼굴을 보자, 오덕영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한 줄 알아서. 달걀 껍데기가 들어갔나, 간을 실수했나 제 지난 조리 과정을 되짚어보고 있을 때쯤.


“사장님, 이거 누가 만드신 거라고요? 제가 생전 먹은 모든 볶음밥을 통틀어서 가장 맛있어요. 씹을 때마다 달걀의 고소한 향이 나면서도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있어서 씹는 맛도 있더군요.”


제가 먹은 감상평을 감격에 겨워 쏟아내는 손님. 그도 그럴 것이 중국집에서 먹는 고급 달걀 볶음밥에 김치로 맛있게 간을 한 맛이었다.


한 번도 먹어 보지 않은 조합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낯설지도 않은. 자꾸만 손이 가는 맛이었다.


“이분이 하셨습니다.”


기용이 오덕영을 웃는 얼굴로 소개하자 오덕영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비결이 뭐예요? 저도 집에 가서 해 먹어보고 싶어서요. <백반 컵밥>의 줄이 하도 길어서 말이죠. 어떻게 하셨어요?”


여자는 정말 맛있던 건지 집요하게 물었다. 오덕영은 기용에게 가까이 가서 귓속말했다.


“비, 비밀이라고 전해주세요.”


만화를 하도 본 오덕영. 이 마지막 손님이 업계 스파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다음에 다시 오시죠. 그때도 손님께는 특별히 무료로 이 김치 볶음 컵밥을 드리겠습니다.”


대답 대신 서비스로 응하는 기용이었다.


* * *


드디어 모든 손님이 다 나가고 오늘 종일 분투한 최기수와 김태원은 매장에 털썩 앉아 있었다. 나중에 가서는 오덕영도 지친 최기수 대신 설거지를 하기도 하고 부족한 재료를 썰기도 했다.


확실히 칼질의 경우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을 때와는 달랐다. 날카로운 칼날에 베일까봐 걱정하는 마음이 자꾸 들었기 때문일까, 상상 속에서 오덕영은 빠르고 정확하게 칼질했는데 실상은 아니었다.


천천히 최대한 일정한 크기로 써는 데 집중하느라 속도를 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최기수와 김태원은 하도 힘들어서 새로 들어왔다는 오덕영에게 말을 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오덕영은 그 점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세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으나, 함께 일하는 합이 좋아 보였고 제법 가까워 보였다.


‘이 가게, 정말 내가 꿈꿔오던 그곳이야···!’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면접에 올까, 말까 고민하다가 나온 스스로가 대견했다. 언제 느껴봤는지도 모를 성취감도 일었다.


짜릿한 감정이 오덕영의 전신을 돌았다.


“다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남은 재료들로 컵밥을 만들어 왔어요. 메뉴당 하나씩 만들어 봤는데 너무 많을까요?”


총 8개의 컵밥을 세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로 나르며 기용이 걱정했다.


“아니요. 적당해요.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최기수가 고개를 저었다. 눈빛에 총기가 생겼다. 드디어 사천 짜장 컵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수현이 포장해온 걸 먹었을 때는 하나의 컵밥을 세 사람분으로 나눠서 조금밖에 먹어 보지 못해서 감질났다.


“나는 사천 짜장 컵밥 먹어도 되지?”


이미 사천 짜장 컵밥을 제 앞에 두고 오덕영과 김태원에게 묻는 최기수.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기수가 사천 짜장 컵밥을 바라는 눈빛이 아주 간절해 보였고 그는 여기서 연장자였다. 그가 먹겠다는데 가로막을 수는 없는 노릇.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김태원의 물음에 오덕영이 잠자코 김치 볶음 컵밥을 바라봤다. 제가 한 것과는 다르게 달걀 프라이가 반숙으로 올려져 있는.


“전 소불고기 컵밥이 궁금했거든요. 여기요.”


김태원은 오덕영이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고 생각했는지 김치 볶음 컵밥을 그의 앞으로 건넸다.


“따뜻할 때 먹으니까 더 맛있네요.”


최기수는 이미 사천 짜장 컵밥을 반 이상 먹은 상태. 입가에 짜장 소스가 묻어있는 줄도 모르고 먹는 데 열중했다.


종일 일하느라 배가 고프기도 했고 지난번에 먹었을 때는 사천 짜장 컵밥이 조금 식은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갓 나온 컵밥.


아주 뜨겁고 맛이 있었다. 게다가 기용이 남은 재료를 탈탈 털어서 넣느라 짜장 소스와 소스 안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도 많은 상태.


최기수는 끝에 가면 알싸하게 느껴지는 매콤한 향에 취해서 주변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맛있게 드셔주시니 다행이네요.”


오덕영은 아직도 김치 볶음 컵밥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서 드세요! 그리고 내일부터 출근 가능하신가요?”


오덕영은 나름대로 기용이 숟가락을 들 때까지 기다리던 것. 그 와중에 출근 확정 소식을 들으니 깜짝 놀라서 작은 어깨가 떨렸다.


“헙. 저, 저요?”

“네. 아까 김치 볶음 컵밥도 무척이나 잘 만들어주셨고, 말씀해 주신 것처럼 요리에 대한 열정은 저 못지않으신 것 같아서요. 저와 함께 일해보시겠어요?”


오덕영에게 다시 들리는 환청.


‘너, 내 동료가 돼라.’


“가, 감사합니다!!”

“어서 드세요. 저도 먹을게요.”


기용은 참치마요 컵밥에 손을 뻗었다. 김태원도 무아지경으로 소불고기 컵밥을 먹고 있었다.


최기수가 왜 그렇게 기용에게 집착했는지 알 것 같은 맛이었다. 더불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사람과 종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만큼 맛있었다. 고단한 하루 끝에 먹는 밥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씹을 때마다 적당히 나오는 육즙과 소불고기 소스 그리고 하도 부드러워서 밥과 함께 사라지는 고기가 아쉬울 정도였다.


컵밥은 빠르게 바닥이 났다. 기용은 더 고생한 세 사람을 위해 참치마요 컵밥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세 사람의 몫으로 남겨뒀다.


남으면 싸 줄 생각이었는데 남는 것 하나 없이 전부 다 먹은 그들.


“오늘 세 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세 분이 아니었으면 저 도망갔을지도 몰라요. 회장님께서는 제게 어떤 용무가 있어서 오신 건가요?”


기용은 명함에서 봤던 최기수의 직함을 떠올리며 물었다.


“<백반 컵밥>에 투자하고 싶다고 말하러 왔습니다. <백반 컵밥>을 프랜차이즈화하고 싶어서요. 경제적인 조건은 최대한 사장님께 맞춰드리고 싶습니다. 대신.”


최기수의 눈빛은 비장했다.


“절 써주시죠.”

“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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