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요리는 특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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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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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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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

DUMMY

“네! 사장님과 사장님의 직원들을 섭외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곽현준 PD가 반색했다. 보통 이렇게 방송국에서 왔다고 하면 먼저 들여보내 주는 게 인지상정.


곽현준 PD는 빨리 컵밥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보시다시피 저희가 지금은 바빠서요. 섭외는 이따 퇴근하고 해주시고 컵밥을 먹고 싶으신 거면 명부에 대기 손님으로 작성 부탁드립니다.”


기용이 싱긋 웃으며 말했지만, 들어보면 방송국 사람이라고 별다른 특혜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최기수는 옆에서 듣더니 당황했다.


예능에 대해서, 방송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방송국 놈들이 만만치 않은 놈들이라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혹시 이들이 기용에게 반감이라도 가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안절부절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오히려 좋은데?’


고순영 작가는 그렇게 생각했다. 초창기 <너의 요리가 보여!>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부터 전국에 있는 맛집 사장님들이라는 사장님들은 다 만나봤다.


처음에는 기용과 같은 사장들이 주였다. 방송보다 장사가, 요리가 더 중요한 사장들.


하지만 <너의 요리가 보여!>가 유명해지고, 전국에 웬만한 맛집은 다 돌고 그다음 수준의 사장님들께 갔을 때면 다들 그들을 더 대접하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고순영 작가도 그런 대접에 익숙해져 있었고. 하지만 방송국 사람이라고 이렇게 더 대우해 주지 않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역시. 사람들이 <백반 컵밥>에 몰리는 이유를 알겠군요. 네. 다른 분들처럼 대기하고 음식을 먹어야죠. 퇴근은 몇 시쯤 하시나요? 퇴근 후에는 이야기가 가능하실까요?”


곽현준 PD도 고순영 작가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건 음식에 자신 있는 사장님이어야 나오는 당당함이었다.


기용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들을 대하고 있지 않은가.


“네. 퇴근은 저희 직원들도 퇴근하고 나면 8시 정도가 괜찮겠네요.”


기용의 말에 곽현준 PD가 손사래를 쳤다.


“사장님은 <너의 요리가 보여!>에 단독 출연하시는 거고요. 함께 일하는 가족분들은 저랑 고순영 작가가 제작하는 다른 프로그램에 함께 나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분들도 같이 섭외하고 싶은데요.”


곽현준 PD의 ‘가족’이라는 말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상징적인 말이라고만 생각했지, 정말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모르고 기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오늘 가게 마무리를 함께 하고 8시에 PD님이랑 작가님 뵙는 걸로 하죠.”


최기수가 중간에서 상황을 정리했다.


“네. 그렇게 하시죠. 8시에 오시면 직원들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용이 말하니, 그제야 곽현준 PD와 고순영 작가의 얼굴이 핀다.


“넵. 그러면 대기 걸어놓고 이따가 다시 오겠습니다.”


둘은 가게 밖으로 나가 보면대 위에 놓인 공책을 확인했다. 이름과 인원수, 포장 식사인지 매장 식사인지 같은 걸 구분해 놨고 포장은 미리 메뉴 주문을 받으니, 5분 전에 전화하면 메뉴 선택을 해 달라고 까지 적혀 있었다.


“와. 꽤 체계적인데요?”


대기표 중간중간 이 정도는 몇 분이 걸릴 예정이라는 것까지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최기수가 생각날 때마다 나와서 적어둔 덕이었다.


“매장은 아까도 봤고 이따 저녁에도 볼 거니까 포장으로 먹는 게 어때?”


곽현준 PD가 고순영 작가에게 말했다.


“좋아요! 포장해서 차 안에서 먹죠, 뭐.”


* * *


곽현준 PD가 대기표에 제 번호를 적고 있을 무렵, 유영은 가게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가게 앞에 이 많은 인파를 뚫고 기용에게 가서 인원 추가가 되냐고 물어보기 민망했던 탓이다. 게다가 기용이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한다면 상처를 받을 것 같았다.


<백반 컵밥>이 이렇게 잘 되기 전에 손님이라고는 유영뿐이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뭐 이렇게 깊이 생각해? 일단 물어보자!”


유영은 다짐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매장 안에도 손님은 많았다.


“어서 오세요.”


최기수가 웃으며 유영을 반겼다.


“사장님, 지금 바쁘시죠···?”


결심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주눅이 들어 있는 유영.


“어?! 유영아!”


다행히도 유영은 컵밥을 내오던 기용과 마주칠 수 있었다.


“사, 사장님!”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가운 표정으로 기용에게 다가가는 유영.


“컵밥 먹으러 왔어? 손님이 많아졌지? 대기는 했어?”


역시 기용은 유영에게도 예외는 없는 모양이었다. 대기했는지를 물어보는 걸 보면.


“대기표는 작성했어요. 근데 아까 보니까 저희 순서가 거의 다 됐던데 지금 인원 추가해도 되나요? 대기표에는 중간에 인원 추가가 안 된다고 단호하게 쓰여 있어서요···.”


최기수가 혼란을 줄이기 위해 중간에 메뉴 변경이나 인원 추가는 불가능하다고 아주 큰 글씨로 써 놨다.


“유영이는 가능하지. 대기 안 했다고 하면 몰래 몇 개 찔러 주려고 했어.”


기용이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귓속말했다. 유영은 기쁘고 설레는 나머지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친구가 가게에 손님이 한 명도 없을 때부터 매일 와서 제 말동무가 되어줬거든요. 유영아, 여기는 <백반 컵밥> 운영 도와주시는 최 회장님이셔.”


기용이 최기수에게 유영을 소개했다.


“아! 이유영 손님, 맞으시죠?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성함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최기수가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메뉴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유영은 서둘러 권민철 교수와 학보사 기자들에게 주문을 받았다. 다들 기다리던 <백반 컵밥> 음식이라 그런지 답장도 빨랐다.


“김치찌개 컵밥, 소불고기 컵밥, 그리고···.”


김치찌개 컵밥의 첫 주문이었다.


* * *


[메뉴명: 김치찌개 컵밥]

[완성도: 8/10 판매 가능!]

[부족한 재료: 두부, 어묵, 돼지고기]

[부족한 맛: 씹는 맛이 부족합니다.]

[Tip! 오늘 배송 온 어묵을 김치찌개 컵밥에 넣어 보세요. 김치찌개에 어묵을 넣으면 감칠맛과 씹는 맛이 생겨요.]


-빠빠빠빠밤. 빠빰. 빠빠빠라빠라밤.


“어묵을 넣으라고?”


전날 직원들에게 주기 위해 만든 김치찌개는 상태창의 미니게임과 함께했기 때문인지 완성도가 8점이나 됐다.


하지만 씹는 맛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지금 들어가는 재료에서 씹을 거라곤 양파와 대파, 김치가 전부였다.


참치는 국에 넣으면 풀어지니 씹는 맛을 내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기용은 어디에서도 어묵을 넣은 김치찌개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두부도 시키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다가 말고 어제 주문도 재롱이가 해줬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일단 어묵을 넣어서 만들어 보자!”


상태창을 믿기로 했다. 어묵을 넣은 김치찌개를 상상해 봤을 때 그리 나쁘지도 않은 것 같고.


“덕영 님은 김치찌개에 어묵 넣어서 먹어보셨나요?”


옆에서 참치마요 컵밥 플레이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덕영을 향해 물었다. 기용의 말에 깜짝 놀랐는지, 참치마요로 하트를 만들다가 삐끗했다.


“플레이팅에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어차피 포장 주문이면 가지고 가는 동안 흐트러질지도 모르는데.”


덕영이 힘들어 보이자, 기용이 옆에서 말을 보탰다.


“그, 그래도요···. 저, 제가 보니까요.”


하지만 단호한 오덕영이었다.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부분에서도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때 진정한 장인 정신이 나온다고 만화책에서 그랬다.


“······.”


기용은 그런 오덕영의 답에 감동했다. 오덕영이야말로 정말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아. 기, 김치찌개에 어, 어묵을 넣고 먹어본 적은 어, 없습니다.”


오덕영은 그렇게 말하고 참치마요 컵밥을 내갔다.


“김치찌개에 어묵, 괜찮겠지···?”


* * *


수려대학교에 있는 권민철 교수의 연구실 안. 생각보다 컵밥이 바로 와서 이른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됐다.


고상현 교수는 여전히 <백반 컵밥>의 음식을 의심의 눈초리로 째려보고 있었다.


“자자. 앉자고. 자네 것은 소불고기 컵밥, 내 것은 김치찌개 컵밥을 시켰는데 반씩 나눠 먹는 건 어떤가? 나도 소불고기 컵밥은 한 번도 안 먹어봤거든. 김치찌개 컵밥은 신메뉴라고 하길래 시켜봤어.”


권민철 교수는 컵밥의 뚜껑을 열고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 지난번에는 제육 컵밥을 먹었다. 소문으로는 소불고기 컵밥이 굉장히 고퀄리티에 맛도 좋다고 했다.


“뭐. 그러든지.”


고상현 교수는 맛있어 보이는 컵밥의 비주얼과 향을 맡아도 별 감흥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가 크게 안 좋은 건 없어 보였지만, 맛본다면 어떨지 모르는 일이다.


“원래 같았으면 나도 각자 메뉴 두 개씩 시켰겠지만, 여기가 주문이 워낙 밀려 있어서 우리 두 사람 것도 학보사 편집국장 유영이 통해서 추가할 수 있던 거야. 고맙게 생각하라고.”


권민철 교수는 고상현 교수의 표정이 어떻든, 연구실에 있던 앞접시에 음식을 덜고 군침을 삼키기에 바빴다.


“자. 이제 정말 먹어보세. 5천 원짜리라고 해도 양은 넉넉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고상현 교수는 권민철 교수가 허겁지겁 소불고기 컵밥을 먹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작게 쉬고 소불고기 컵밥을 한 입 먹었다.


동료 교수가 애써서 사 온 것을 거절하기도 뭣하고 저녁까지 일을 하게 될 텐데 지금 먹지 않으면 배고파서 힘들 것이다.


‘그냥 눈 한 번 딱 감고 먹고 나서 화장실에 자주 가면 되는 거야.’


고상현 교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안에 들어온 소불고기 컵밥의 은은한 불 향과 달큰한 양념을 느끼며 천천히 씹었다.


“어···?”


고급 한정식 가게를 좋아하는 그이니만큼 유명하다는 소불고기는 다 먹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싼 소불고기들과 비슷한 맛이 나면서도 <백반 컵밥>만의 킥이 있었다. 적당히 고기를 눌러서 감칠맛을 살렸고 좋은 고기를 썼는지 누린 내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고기의 질감도 꼭 소고기가 아니고 부드러운 생선의 식감과 같았다. 그만큼 씹을 때 뭐 하나 걸리는 것 없이 깔끔했다.


양념은 또 얼마나 정성 들여서 만든 건지, 밥과 함께 먹었을 때 간이 딱 적당했으며 자꾸만 손이 갔다.


‘괜히 줬다.’


고상현 교수는 이 맛있는 걸 권민철 교수와 반을 나눴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하나를 다 혼자 먹겠다고 할 걸 그랬다.


“맛있지?! 방금 김치찌개 컵밥도 먹어봤는데 이것도 무척이나 맛있네. 김치찌개에 어묵을 넣었는데 이것 참 별미야! 어서 들어봐.”


권민철 교수는 신이 난다는 듯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김치찌개 컵밥을 먹고 있었다.


‘내 것의 반을 가져간 게 미안해서 저러는 건가?’


고상현 교수는 어쩔 수 없이 소불고기 컵밥의 아쉬움을 김치찌개 컵밥으로 달래려 손을 뻗었다. 국물 중간중간 보이는 참치와 다진 마늘.


“김치찌개 맛은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고상현 교수는 그렇게 말하고 어묵과 함께 김치찌개 국물을 한 입 먹었다.


“······!”


일주일 전에 먹었던 술이 해장 되는 맛이었다. 깔끔하고도 담백한 김치찌개의 맛. 김치찌개를 잘못 먹으면 간도 잘 되어 있지 않고 묵은지 특유의 누린내가 나서 먹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김치찌개는 아니었다. 김치찌개 특유의 짭짤한 맛을 잘 살렸으며 어묵이 쫄깃쫄깃해서 씹는 맛이 배가 됐다.


김치찌개 컵밥 안에 들어가는 밥도 어찌나 잘 지었는지, 국물 안에 있었는데도 퍼지지 않고 밥알이 살아 있었다.


“어때? 맛있지?!”


권민철 교수는 고상현 교수에게서 처음 보는 얼굴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맛있는 정도가 아니네. 이거야말로 연구 대상이야.”


* * *


“사장님, 지금 나가도 될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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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도착 +7 24.09.13 1,626 63 11쪽
33 귀가 +5 24.09.12 1,765 60 12쪽
32 확장 +3 24.09.11 1,778 5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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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편견 +2 24.08.27 3,572 81 11쪽
16 전화 +4 24.08.26 3,669 85 11쪽
15 장인 +4 24.08.25 3,808 8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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