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요리는 특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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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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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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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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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DUMMY

-상점 창을 열어보라멍!


기용이 순간 무슨 말인가 싶어 눈썹을 움찔거리다 상태창 안에 있는 상점 창을 떠올렸다.


“어? 뭐야. 이것저것 많이 생겼네?”


상점 창에 들어가 본 기용은 제일 먼저 BGM 항목이 눈에 띄었다. 드디어 이 정신 사나운 노래에서 해방이 되는구나.


“무슨 가격이 이래···. 이건 폭리야.”


<학습 BGM>

[기본-0포인트]

[클래식-100포인트] (미리 듣기)

[재즈-200포인트] (미리 듣기)

[박력-300포인트] (미리 듣기)

[볼륨 낮추기-400포인트]

[볼륨 높이기-10포인트]

[]

[]

[]

···


상점에는 여전히 BGM을 아예 없애는 항목은 없었을뿐더러 볼륨을 낮추는 건 무려 400포인트나 써야 했다.


“이 와중에 볼륨 높이는 건 10포인트밖에 안 드는 게 화나네.”


기용은 그렇게 말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재롱이가 뭐라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용은 재롱이를 바라봤다.


“소리를 키우는 건 쓸데가 없고. 그래도 소리 줄이는 항목이 있는 게 어디야. 재롱이가 상태창에 떠 있을 때는 BGM의 소리가 줄어드니까 저것까지 구매하면 아주 희미하게만 들릴 거야.”


기용은 고민도 하지 않고 400포인트나 투자해서 BGM의 볼륨을 줄였다.


-보글보글. 보글보글.


상점에 들어오면서 뜨는 비눗방울 소리가 전과 비슷한 볼륨으로 들렸다. 기용은 상점 창을 나가본 후 다시 체크해 봤지만, 여전히 BGM의 볼륨은 같았다.


“이거 학습 BGM 항목에서 구매한 거, 언제 적용이 되는 거야?”


-문제가 생겼나, 멍? 재롱이가 해결해 드릴게멍.


재롱이는 그렇게 말하고 한참을 고민하는 듯하더니 빨간 문으로 폴짝 뛰어서 들어갔다가 나왔다.


-재롱이가 해결 못 한다, 멍. 지금 나오는 소리가 볼륨을 한 단계 줄인 거라고 한멍.


“뭐, 한 단계?! 내가 무려 400포인트나 투자했는데 고작 한 단계밖에 안 줄어들었단 말이야?”


-형아~ 노래 소리에만 집중하지 말멍! 다른 것들도 추가 됐멍.


상점의 꽃은 BGM 제거인데 그걸 신경 쓰지 말라니. 기용이 화를 내려다가 상점 창 카테고리에 작게 ‘new’라고 쓰여 있는 항목이 눈에 띄었다.


노란빛을 영롱하게 뽐내며 빛이 나고 있는.


“저건 뭐야?”


‘JR 마트’


빨간 고딕체로 쓰인 글자를 멍하니 바라보니 어느새 재롱이가 캐셔들이 입는 마트 직원 전용 조끼를 입고 두건을 두르고 바코드 리더기를 들고 있었다.


하여튼 컨셉 한 번 잡았다, 하면 코스프레를 기똥 차게 해내는 재롱이였다.


-골멍~! 골멍~!


그리고 정체 모를 소리를 내뱉는 재롱이.


“그게 무슨 말이야?”


-골라, 골라다, 멍. 그것도 모르멍?


시장 호객행위는 또 어떻게 알았는지. 판촉 행사하는 사람은 죄 짬뽕해 놔서는 이제는 짝다리를 짚고 손뼉까지 우렁차게 쳤다.


“별···. 그래서 뭘 파는데?”


-<백반 컵밥>의 음식에 들어가는 식재료를 판멍!


그리고 ‘차라란-’하는 BGM과 함께 인터넷 식자재 사이트와 같은 창이 떴다.


[양파 1개]

[품질: A급/B급/C급/D급/E급]

[포인트: 50/40/30/20/10]


[대파 1개]

[품질: A급/B급/C급/D급/E급]

[포인트: 50/40/30/20/10]


신선도에 따라 다른 포인트. 그나저나, 투자해야 하는 포인트가 제법 높았다.


“에이. 줄 거면 그냥 주지! 얼마 없는 내 포인트까지 가져가냐.”


기용은 재롱이에 대고 하소연했다.


-그러면 버릇 나빠진다, 멍.


단호한 말투에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는 재롱이.


“나빠질 버릇은 진작 다 나빠졌어. 뭐 어쨌든 상점 창에서 식자재값을 절약할 수 있으니 알바생 월급 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컵밥의 가격은 절대 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용이었다. 물론 여전히 성공도 하고 싶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 상태창만 해도 기용을 성공시켜 주겠다고 하늘에서 그의 부모가 보내준 것 아닌가. 그래도 아득바득 돈만 좇아가며 하는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주변에 힘든 사람이 있으면 좀 살필 여유가 기용에게 생겼으면 싶었다. <백반 컵밥>에서 힘든 이들이 쉬어가고 편하게 다시 쉬러 오길 원했다.


노량진에서 처음 느꼈던 온기를 <백반 컵밥>의 손님들도 느꼈으면. 기용은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이제는 고아인 제 신세를 한탄만 하기보다는 주변에 더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기용은 그래도 살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 해주지도 않았던 고모 내외를 만나서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부족함 없이 자랐다.


물론 심적으로는 부족함이 컸지만, 기용과 같은 신세인 사람 중 경제적, 육체적 고통이 큰 사람도 많았다.


서정과 결혼하고 조금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을 쯤, 기용은 그래도 본인이 고아 희망 편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주변에 힘든 사람이 있으면 돕고 살고 싶다고도. 그렇게 서정과 결혼 후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기부가 어느덧 3년 차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악착같이 손님들에게서 돈을 많이 받아내서 그 돈으로 기부금에 보탠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주변에 있는 힘든 이웃을 외면하는 꼴이 된다. 기용은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었다.


막연하게 성공을 꿈꿨지만, 주변을 아예 살피지 않으면서 하는 성공은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것.


서정은 그런 기용을 보고 그저 약해 빠져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라고 했지만, 기용은 그 신념만큼은 서정에게 져주지 않았다.


“이거 사면 언제 배송돼? 지금 당장 배송되는 건가?”


기용은 상념에 잠시 젖어 있다가 재롱이를 향해 물었다.


-우리 물류 팀이 그 정도는 아니멍. 오후 10시 전에 주문하면 내일 아침에 형이 출근하기 전에 도착해 있을 거멍.


“너희 물류 팀도 있어?!”


기용이 놀라서 물었다. 저번부터 느꼈지만, 이 상태창의 시스템이 은근히 정교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식재료들도 유기농으로 정성스럽게 농부가 키운 농장에서 공수해 오는 거멍. 내일 식재료 상태 보고 놀라지나 말멍.


그렇게 말하면서 재롱이는 어느새 밀짚모자에 체크 셔츠를 입고 있었다.


“뭐 그건 내일 보면 되겠지. 그나저나 내가 방금 샀던 BGM 볼륨 줄이기 항목, 환불해 줄 수 있어? 이건 뭐 효과도 없고 포인트는 포인트대로 날렸잖아.”


400포인트면 A급 양파를 8개나 살 수 있는 양이다.


-환불 가능하멍.


동전이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 들어온 400포인트. 기용은 이제 BGM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상태창은 BGM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뒤이어 초침 소리가 들리고 오른쪽 상단에 시계 모양이 떴다.


“이게 뭐야??“


-키즈락이 걸려 있어서 10시 이후에는 주문이 불가능하멍. 필요한 게 있으면 어서 주문하라, 멍!


시간제한이 있는 게임을 하는 것 같은 BGM 덕에 아주 촉박한 마음으로 주문을 완료했다.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 내일 오전에 만나요!


친절한 말투의 여자 목소리가 들리고 상점 창이 닫혔다. 이제 10시가 지나서인지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가지지 않는 창.


-재롱이가 백기용 형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해 드릴게요!

<신비한 식재료 사전!>


양파와 가지에 이목구비와 팔다리가 달린 캐릭터가 그려진 책. 재롱이가 물고 온 책을 기용의 발 앞에 떨어트렸다.


“이거 완전 애들이 볼 것 같이 생긴 책이네.”


두꺼운 겉표지를 넘기니, 만화가 보였다. 내용은 이런 식이었다.


-너, 뭔데?!


하고 가지가 양파에게 물으면,


-나? 양파. 난 ‘알리신’을 함유하고 있어서 맵고 단 맛이 나. 항산화 작용과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특히 돼지고기와 함께라면 난 피를 더욱 맑게 해주지.


하고 양파가 답하는 방식. 허접한 구성의 만화 형식인 게 집중을 흐트러지게 했지만, 내용 자체는 꽤 의미 있는 게 많았다.


기용은 <신비한 식재료 사전!>을 훑어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제 식재룟값도 해결되었으니 걱정 없이 아르바이트생을 구할 때다.


-어떤 동료가 왔으면 좋겠멍?


동료라니. 기용은 마치 게임에서 던전을 함께 떠날 동료를 구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고민에 잠겼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기용은 늘 자신이 누군가에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 누구와 함께 일하고 싶은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늘 급여를 받는 입장이었다면 당연한 사고방식. 기용은 이것저것 따져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일에 대한 열정만 있었으면 좋겠어. 요리를 못 해도 좋고 사회성이 조금 부족해도 좋아. 나도 상태창이 없으면 요리를 못 하는걸.”


-그러니까 더욱 요리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 거 아니멍!!?


재롱이가 황당하다는 듯 두 손을 들고 외쳤다.


“난 능숙한 사람은 별로인 것 같아. 대기업에 다닐 때도 능구렁이같이 굴면서 승진하는 사람들, 나는 별로더라.”


기용만의 이상한 철학이었다. 지나치게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타입은 그만큼 본 업무에 소홀할 것 같았다.


적어도 기용이 봤던 외향적인 사람들은 그랬다. 아부와 아양은 잘 떨었지만, 업무 능력은 좀 떨어졌다.


-후회할 텐멍···.


재롱이의 의미심장한 말을 뒤로 하고 기용은 <알바 대박> 앱에 구인 공고를 올렸다.


[함께 성장할 주방 보조를 구합니다.


근무조건: 평일, 토요일 10시~19시 (휴게 시간 1시간)

근무 기간: 3개월 이상


지원 조건: 성별 무관

연령 무관

학력 무관


우대조건: 유사 업무 경험


접수 방법: 문자 남겨주시면 면접 시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유사 업무 경험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함께 성장할 사람을 구합니다.


사교성이 그리 좋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서비스하고 손님 응대하는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다만, 음식에 대해, 요리에 대해 열정이 있는 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요리를 사랑하시는 분을 원합니다.


좋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솔직 담백한 글이었다. 상태창에 뜬 ‘친구’를 찾으라는 말.


재롱의 말이 맞았다. 기용은 친구가 없었다. 그동안은 미우나 좋으나 서정과 함께 있었고 이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친구 사귈 생각을 못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일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재롱이가 안정을 주니, 서서히 말동무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기회에 좋은 친구를 만들어서 함께 성장하며 <백반 컵밥>을 키워 나가고 싶었다.


“많이 지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지멍.


* * *


오늘도 방구석에 처박혀서 만화책을 보고 있는 오덕영. 밥이라고는 하루에 한 끼, 배고파서 정말 죽을 것 같을 때 한 번 방 밖으로 나가서 먹는 게 전부였다.


만화책에서 묘사하는 음식의 맛과 현실에 존재하는 음식의 맛의 괴리가 크다고 느껴져서이다.


“오덕영, 너 점심 안 먹을 거야?”


덕영의 엄마는 울화통이 터진다는 듯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덕영은 그런 엄마의 외침이 익숙하다는 듯 두꺼운 헤드폰을 꼈다.


덕영이라고 이렇게 일도 하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으며 방구석에 있는 삶이 좋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이, 사람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 당장 일을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어떤 알바 공고가 올라오나, 싶어서 <알바 대박> 앱을 깔았다.


덕영의 지역에 맞게 알고리즘은 관련 공고들을 보여줬다. 그때 한 공고에 시선이 꽂혔다.


‘너, 내 동료가 돼라.’


환청이 들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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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면접 +4 24.09.05 2,323 65 12쪽
25 찬미 +3 24.09.04 2,538 6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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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재미 +3 24.09.02 2,872 7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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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편견 +2 24.08.27 3,571 81 11쪽
16 전화 +4 24.08.26 3,668 85 11쪽
15 장인 +4 24.08.25 3,807 88 11쪽
14 재롱 +2 24.08.24 3,757 86 11쪽
13 치즈 +3 24.08.23 3,748 96 11쪽
12 미각 +2 24.08.22 3,819 89 11쪽
11 명함 +3 24.08.21 4,027 9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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