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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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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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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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DUMMY

어제 있었던 스파링이 아직도 잘 믿어지지 않았던 백수범은 자신이 몸으로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래야 완전하게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밥도 든든히 먹었고, 미트와 보호대로 만반의 준비를 끝낸 백수범은 강혁이 탈의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몸으로 받아보면 더 확실하게 알겠지.’


스파링도 그렇고 가능성은 확인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스파링으로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더 확실하게 느껴보고 싶었다.

진짜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코치님.”


워밍업이 끝난 강혁이 다가오자 백수범은 기다렸다는 듯 양손에 낀 미트를 팡팡 쳤다.


“콤비네이션부터 몇 개 해보자. 자신 있는 거 있어?”

“기본인 원투 레그킥, 원투 바디 훅 정도?”

“그래 그럼 일단 그렇게 해보자.”


팡! 팡! 쩝!


미트 소리도 좋고 손바닥도 아릿한 것이 정확도나 파워도 괜찮았다.

하지만 어제와 같은 그런 전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던 펀치와 킥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트를 내리고 강혁에게 다시 요구했다.


“지금 내 생각해 준다고 살살 치는 거냐? 어제처럼 제대로 치라고!”


그러자 강혁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동안 스파링을 하며 채기로 기운을 흡수한 것이 진전이 있었다.

어젯밤 서클이 성장하며 크기를 키웠는데, 실낱같았던 서클이 작은 실팔지 정도가 되었다.


바로 힘을 개방하기에는 위험해 적당히 치고 있었는데, 마침 지적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바꿔먹었다.

강혁도 확인해 보고 싶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눈빛이 조금 달라지자 백수범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게 느껴졌다.

맞다.

이런 기분이었다.


‘오, 온다!’


이걸 힘으로 버티려고 하면 안 된다.

초보에게는 타점을 잡아주는 게 좋지만, 강혁은 아니다.


타점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만 슬쩍 움직이면서 미트를 대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미트를 잡는 사람도, 치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퍽! 퍽! 쩌억!


“윽!”


미트에서 나는 소리가 어제와는 또 달랐다.

이전에는 아릿했다면 지금은 마치 손바닥이 뚫리는 것 같아 손등까지 아팠다.


하지만 펀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다리였다.


허벅지에 미트를 차고 있었는데도 다리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이를 꽉 깨물며 참았는데도 신음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직접 맞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제보다 더 강해진 것 같았다.


“끄윽···.”

“코치님?”

“괘, 괜찮네··· 킥이 아주 좋아.”

“코치님 괜찮아요? 안색이 창백한데요?”

“아, 괜찮아. 이 정도로 뭘···.”

“그럼 다시 할까요? 괜찮겠어요?”


전혀 괜찮지 않지만, 강혁의 말은 은근히 자존심을 긁었다.

백수범은 자기도 모르게 호기롭게 대답하고 말았다.


“다, 당연하지! 바로 들어와!”


그런데 다음 콤비네이션에 바디가 있다는 게 생각났다.

훅이야 흘리면 되지만, 바디는 레그킥처럼 미트를 대고 버텨야 했다.


“자, 잠ㄲ··· 커억!”


번개 같은 원투가 지나가고 바디샷이 들어왔다.


뻐억!


미트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리는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자마자 오장육부가 난리를 치는지 속이 메슥거리며 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웨엑! 우웩!”


점심때 무엇을 먹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백수범은 숨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119 부를까요?”


강혁이 119를 부르려고 하자 백수범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급히 말렸다.


“그, 그 정도는 아니야··· 쪽팔리니까 그냥 조용히 있어.”

“예? 아, 네···”


훈련은 그걸로 끝이었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백수범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을 청소하는 아주머니 두 분이 오셨다.


“아이구! 짬뽕에 밥까지 말아 드셨네. 점심을 아주 든든하게 드셨어.”

“그러게. 우리도 오늘 짬뽕 먹었잖아? 그 집인가?”

“북경반점?”

“요 근처에서 거기가 제일 맛나잖아!”

“거기가 맛나긴 해! 호호호호호!”


보통은 인상부터 썼을 텐데, 멘탈이 아주 좋으신 분들이었다.


* * *


소파에 앉아 깊게 몸을 파묻고 있는 천만근의 한숨 소리가 대표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머릿수 채우려고 강혁과 계약을 하긴 했지만, 피지컬만 보고 뽑았다는 것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피지컬이 좋다는 건 분명 장점이었다.


하지만 격투기 경험이 없다는 게 너무 크게 걸렸다.

어릴 적부터 격투기를 해도 어려운 길인데 이제 시작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천만근은 강혁에 대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아예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냥 모델을 시킬까? 몸매 좋지! 얼굴 빠지지 않지! 피트니스 모델부터 시작해서 패션모델이나 가수, 배우 쪽으로 점점 분야를 넓혀 가도 되잖아. 그냥 이참에 매니지먼트 회사를 하나 차려?’


블랙아고라 선수로 계약한 강혁이 걱정된다는 핑계로 본인에게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진로를 결정하고 있었다.

강혁이 들었다면 무슨 개소리냐며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R R R R R···


내선 전화가 울렸다.

더블H 센터에 있는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뭐? 그놈이 갑자기 왜 거기 왔어? 아, 일단 알겠어.”


잘 아프지 않던 조카가 스스로 병원까지 찾아가 링거를 맞고 있었다.

감기 몸살이라도 심하게 걸린 거라고 생각했다.


‘한번 가봐야겠다.’


소파 깊게 묻어둔 거구를 일으키자 겨울잠을 자던 곰 한 마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링거를 맞으며 쉬고 있던 백수범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눈을 떴다.


쳐 놓은 커튼 뒤로 거대한 무언가가 서있었다.

실루엣만 보면 마치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그리즐리베어가 서있는 모습이었다.


“뭐, 뭐야! 시발!”


화들짝 놀라 일어나다 발을 헛디뎌 침상에서 떨어지자, 순간 커튼이 확 치워졌다.


커튼 뒤에 서있던 그리즐리베어, 아니 외삼촌 천만근이 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 뭐하냐?”

“외, 외삼촌? 오면 온다고 소리라도 좀 낼 것이지!”

“이 자식은 걱정되서 왔더니만!”

“아니 덩치도 곰처럼 크신 분이 발에 젤리라도 달았나 왜 이렇게 기척도 없으셔요?”

“곰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냐! 그보다 여긴 왜 온 거야? 어디 아파?”


백수범은 구체적으로 말하기보다 그냥 미트를 대주다가 무리를 했는지 몸이 좋지 않았다고 얼버무렸다.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수석코치인데 미트 위에 바디샷을 맞고 오바이트까지 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강혁에 대해서는 대화가 필요했다.


“외삼촌. 강혁 그놈 도대체 뭡니까? 머릿수 채우려고 영입한 거 맞아요?”


그러자 천만근도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말인데··· 모델을 한번 시켜 볼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예, 예?”


대박 재능이라고!

더블H에 금덩어리가 굴러들어 왔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뜬금없게도 대표라는 작자가 갑자기 모델을 시키자는 말을 하고 있었다.


막아야 했다.

이강혁은 격투 천재라고 말해야 했다.

그런데 노친네의 어이없는 말에 속부터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외, 외삼촌!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뭔데요? 모델이라뇨?”

“생각이 좀 달라졌다. 격투기 경험도 없는 강혁이가 블랙아고라는 뛰는 건 처음부터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어.”

“피지컬이 좋잖아요!”

“맞아. 나도 그것 때문에 생각이 바뀐 거지.”

“예? 그게 무슨···.”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처음부터 내가 홀딱 반한 건 강혁이 몸이란 말이지. 몸이 완전 내 스타일이었어!”


그 말에 백수범의 입이 떡 벌어졌다.

너무 놀란 것이다.


“외, 외삼촌! 지금 나이가 칠십이 넘었는데 커밍아웃을···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데요?”

“뭐라고?”

“아니 이제 살날도 얼마 안 남은 양반이 그냥 죽지 이제 와서 이게 무슨··· 누가 알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래요?”

“뭐,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정신 안 차려?”

“히익!”


정색하며 눈을 부라리자 백수범은 한껏 쭈그러들었다.

칠십 대라고는 하지만 앞발에 맞기라도 하면 교통사고였다.


“헛소리 그만하고 내 말이나 잘 들어봐. 강혁이 그놈 몸이 보통 몸이냐? 생긴 것도 멀끔하고, 모델로 시작해서 배우까지 가는 거지. 이참에 매니지먼트 회사를 하나 차려 볼까 생각 중이다.”

“아, 안 됩니다!”

“음? 뭐가?”

“천잽니다.”

“뭐가 안 된다는 말이야? 천재는 뭐고?”

“그놈은 격투기 천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말을 좀 명확하게 해!”

“강혁이요.”

“뭐?”


백수범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아주 구체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냥 얼버무린 것부터 시작해서 스파링, 킥과 펀치를 직접 받아보고 느낀 것까지 말이다.


천만근은 조카의 말을 들으면서 눈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생각해도 블랙아고라를 뛰지 못할 것 같아 모델이란 방법을 모색한 것이지, 백수범의 말대로 강혁이 격투 천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카가 조금은 가벼워 보여도 거짓말할 위인은 아니었다. 이미 천만근의 머릿속에 모델이나 연예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확인이 필요했다.


“오케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래도 내 몸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그러자 백수범은 눈치를 보며 무언가를 웅얼거리고 있었다.


“외삼촌··· 빈속으로 하세요.”


기어들어 가는 소리라 잘 들리지도 않았다.


* * *


옆구리까지 파여져 있는 나시에 무에타이 트렁크 팬츠를 입고 있는 노인이 케이지 중앙에 서 있었다.


희끗거리는 머리카락과 얼굴의 주름살이 아니었다면 누구도 칠십 대의 노인이라 생각하지 않을 정도의 몸이었다.


바위같이 커다란 승모근과 등에 날개를 단 것처럼 보이는 활배근.

웬만한 여자 허리통만 한 굵기임에도 38선처럼 쫙쫙 갈라지는 대퇴사두를 보면, 평소에도 얼마나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젊었을 적, 무엇을 했을지 과거가 궁금한 노인.

더블H 대표, 천만근이었다.


양손에 미트, 두 다리에도 미트가 채워져 있었다.

얼마 전 백수범의 모습과 같으면서도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백수범은 긴장한 모습으로 강혁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강혁아! 절대 봐주지 마. 대표님 몸을 보면 알겠지만 나랑 달라. 난 사람이고, 저쪽은 거의 곰이라고 보면 된다. 이번 테스트만 통과하면 블랙아고라 경기를 최대한 빨리 잡아줄 수도 있으니까, 그때처럼만 해.”

“예.”


백수범이 케이지 밖으로 나가자 천만근이 미트를 팡팡 두드리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말은 필요 없었다.

강혁이 자세를 잡자마자 밑도 끝도 없이 미트부터 들어 올렸다.

미트를 대면 알아서 잘 때리라는 뜻이었다.


번개 같은 잽이 터지고 다시 창과 같은 스트레이트가 미트에 꽂혔다.

그리고 습관처럼 레그킥을 차고 한 걸음 빠져나왔다.


퍼퍽! 빡! 뻐억!


소리도 엄청났지만, 파워가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레그킥은 대주지도 않았는데 맞았다.


기본 콤비네이션이라 레그킥을 했다고 뭐라 하지도 못했다.

다리에 미트를 찼는데도 꽤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천만근이 내색 한 번 내지 않자 오히려 놀란 것은 강혁이었다.


‘영감님 대단하신데? 조금 더 힘을 넣어봐? 아니다. 지금은 이 정도가 적당해. 그리고 연속으로 맞으면 또 다르지. 후후···.’


다시 자세를 잡자 천만근은 이전처럼 들어오라는 손짓 없이 조용히 미트만 들어 올렸다.


퍽! 퍼퍽! 빡! 퍼퍽! 퍽!


콤비네이션이 시작되고 끝나면 마지막은 항상 레그킥이었다.


뻑! 뻐억! 뻑!


미트를 찼는데도 데미지가 쌓이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천만근은 제자리에 서있어야만 했다.

움직였다가는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근육질의 굵은 다리가 민망해지긴 싫었다.


“그, 그만···.”

“라운드 시간이 아직 남았습니다만?”

“그만하면 되었어, 충분하네.”


천만근이 미트를 벗자 케이지 밖에 있던 백수범이 뛰어 들어왔다.


“대표님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그러자 천만근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최고지! 내가 잡는 미트를 잘 따라오는 걸 보면 거리 감각도 좋다는 소리고, 스파링도 문제없겠는데?”

“그, 그렇죠. 뭐··· 하하!”


그동안 강혁이 스파링 할 때, 맞는 모습만을 봐서 그런가 백수범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물론 강혁이 공격에 나설 때의 임팩트를 보긴 했지만 말이다.


당연히 스파링도 그냥 넘어갈 것 같진 않았다.

천만근은 강혁의 스파링 상대로 누구를 붙여줄지 고민하다가, 체육관에 누가 있는지 쭉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때 작달막한 누군가가 체육관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그도 천만근을 보았는지 손을 들어 흔들었다.


뒤늦게 그를 본 백수범은 표정이 일그러지며 조용하게 속삭였다.


“외삼촌, 저 영감탱이는 왜 또 왔데요?”


그는 블랙아고라 주주, 사채왕 서진상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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