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발해국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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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아르
작품등록일 :
2024.08.1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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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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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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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프롤로그 -7년. 은호사냥(완)

DUMMY

-


호흡한다.


숨결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서리가 앉은 입김이 얼어붙으며 주위를 얼린다.


그러나, 신체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 뜨겁다.


마치 불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전생에 비유하면 대구에라도 간 것 같았다.


백단이 제가 든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궤적에 따라 유려하게 땅이 갈라지며 얼음의 꽃이 피어났다.


호흡할수록 주위의 자연지기가 순환하며 꽃과 나무를 피운다.


내뱉는 냉기가 그가 피워낸 꽃과 나무를 얼린다.


얼음의 밀림 사이 불의 검을 든 백단이 은호를 바라봤다.


그제야 은호는 그가 볼만하다는 듯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백단이 손을 뻗어 땅에서 자라나 얼어붙은 나무를 잡아 꺾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은호 역시 얼어붙은 대지를 짓밟으며 그의 앞에 선다.


그렇게 몇걸음.


서로 앞니와 검을 들고 마주한다.


이번엔 열기와 냉기가 아니라, 냉기와 냉기가 맞부딪히며 허공에서 얼음조각이 튀었다.


서로의 영역. 서로의 간격 사이.


“고마워.”


백단이 말했다.


그는 은호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상관없다는 그에게 말했다.


“너는 내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줬던 거구나.”


은호 어떤 마음으로, 어떤 운명을 읽어 이곳에 왔는지. 백단은 몰랐다.


다만 은호는 백단이 이곳에 찾아오길 기다렸다.


끝내 그의 앞에 당당히 서 이(검)을 드러내길 간절히 바라고 있던 것이다.


“네 덕분에 나는 더 강해질 수 있었어.”


―――더 나아간 삶을 살 수 있었어.


“나를 살려줘서, 지켜줘서 고마워.”


백단은 진심으로 은호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미안해.”


백단이 검을 양손으로 잡으며 검날을 가로로 눕혔다.


“너를 죽이게 되어서.”


“으르렁.”


은호는 그저 짧게 으르렁거리며 마찬가지로 상체를 숙였다.


백단이 무릎을 굽힌다. 은호가 발톱을 드러내며 전신의 근육을 수축시킨다.


서로 한 수를 장전한 채 눈치를 본다.


서부극에 비유하자면 마치 두 총잡이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상태.


먼저 움직이면 도리어 상대가 먼저 자신을 베어 물거나 죽인다.


일촉즉발의 상황. 생과 사의 경계 속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백단이었다.


스윽―――.


아무렇지 않게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 은호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민다.


백단은 한걸음 내디디며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가로 베기.”


불꽃과 함께 얼음의 궤적이 그어진다.


은호가 그 공격을 인지한 순간 귀신같은 속도로 몸을 뒤로 뺐다.


백단의 검이 은호의 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치며 지나간다.


은호가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그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대로 덮쳐 목을 베어 물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내 덜컥! 하고 그의 신형이 멈췄다.


“크헝?”


은호가 처음으로 당황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그의 네 다리가 바닥에 얼어붙어 고정되어 있었다.


“냉기를 얼리는 냉기. 한 수 배운다.”


처음 한 수는 눈속임. 은호라는 영물이자 괴물의 발을 묶기 위한 수.


백단이 검날을 세우며 검을 치켜세웠다.


검끝에서 하나의 궤적이 기어나더니 만개의 궤적이 피어난다.


이윽고 구백구십구개의 궤적이 시들고 가장 아름다운 단 하나의 궤적만이 남는다.


“심검 5장. 검사현현.”


―――세로 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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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격이 그어진다.


조준은 정중선. 노리는 것은 은호의 두개골 정중앙.


오직 ‘벤다.’라는 의념이 담긴 극한의 예기가 은호에게 작렬한다.


검기조차 튕겨내는 은호라고 할지언정 검사에는 베인다.


그대로 은호를 반으로 갈라버릴 듯 쏘아지는 단 하나의 참격을 보며 은호는 전신의 근육에 힘을 줬다.


“크헝!”


그리고 몸을 옆으로 튕겼다.


발이 얼어붙어도 상체는 움직일 수 있다.


어떻게든 그의 머리를 조각낼 기세로 쏘아지는 참격을 피해 몸을 옆으로 기운 은호.


단 하나의 아름다운 궤적을 그린 베기가 빗나간다. 아슬아슬하게 오른무릎의 일부를 잘라내며 땅으로 내리꽂히는 참격에 은호는 이를 드러내며 백단의 옆구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베어 물려는 순간.


“심검 3장. 반전.”


백단의 검이 허공에서 정지한다.


“일위도강一葦渡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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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검이 무게를 잊는다.


한순간 0g에 가깝게 가벼워진 검을 근육의 힘으로 억지로 멈춰 세운 백단이 이어 검날을 가로로 눕혔다.


“가로 베기.”


|

|!

|!

|!

|!

|!    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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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て二二二ニニニニ===―


ㄴ자를 그리며 검로劍路가 직각으로 꺾인다.


은호의 앞다리가 모조리 잘려 나가며 호랑이의 신형이 한순간, 허공으로 붕 뜬다.


백단은 찰나 허공으로 붕 뜬 은호의 신형을 보며 중얼거렸다.


“삼재三才 합기合技.”


그가 ㄴ자를 그린 검을 한바퀴 손안에서 굴렸다. 그 반동으로 검을 뒤로 당긴 백단이 팔을 전력으로 내질렀다.


“방점傍點.”


글자의 마지막에 점을 찍는다.


ㄴ자를 그린 검로 사이로 찌르기가 작렬한다.


은호의 옆을 스친 세로 베기. 이어 그의 앞다리를 모조리 잘라버린 가로 베기.


마지막으로 그의 목을 찌른 검.


그가 익힌 삼재, 그 전부를 쏟아붓는다.


은호의 신형이 검에 뚫리여 등 뒤에 나무에 처박힌다.


성인보다 커다란 호랑이의 신형을 검으로 목을 꿰뚫어 나무에 박아버린다. 백단의 머리 위로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 은호의 목에서 흘러나온 피였다.


백단이 울 것 같은, 혹은 환희에 가득한 얼굴로 은호를 올려봤다.


“안녕. 내 전생.”


―――안녕. 내 유년기.


은호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애초 동물이기도 했으나 이상하게 그 얼굴에는 음영이 가득했다.


꼭 억지로 표정을 가리려는 것처럼 말이다.


은호는 그렇게 마지막 숨을 토해내고 죽었다.


백단이 검을 놓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나무에 박힌 은호는 미동도 없이 고정되어있었다.


백단이, 승리한 것이다.


“이, 겼다.”


그의 신형이 허물어졌다.


“오빠!”


희령이 기겁하며 그에게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하라도 달려와 그의 등을 받쳤다.


여동생과 소꿉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백단은 그저 웃었다.


“내가 이겼어.”


백단은 주먹을 들어 하늘로 치켜올렸다.


저 하늘의 해가 마치 주먹에 담긴 것 같았다.


“내가 이겼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전생이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이겼어.’


―――내 전생보다 나아갔어.


‘그러니까 이제 쉬어. 내 미련.’


백단은 그제야 제 전생의 그림자가 이전생에 대한 미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이전생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평온했던 순간,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제2의 인생을 얻게 된 지금,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의 전생은 역설적으로 그의 미련으로 남아버린 것이다.


전생보다 더 나아간,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는 목표가 전생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백단은 그의 전생의 한을 푸는 데 성공했다.


-


백단이 그렇게 웃고 울며 자신을 추스르고 난 뒤 그들은 은호의 시체를 앞에 두고 속닥였다.


“그런데 내단은 어디 있는 거야?”


“글쎄? 듣기로는 아랫배에 있다고 들었는데?”


“보통 영물의 내단은 간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지요. 한번 그쪽을 갈라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럴까?”


백단은 손에 기를 집중시켰다.


그러자 손에서 피어 오르는 날카로운 기의 형상.


수기手氣를 피워올린 백단이 은호의 아랫배를 꿰뚫었다.


“오! 있다.”


백단은 은호의 배에서 내단을 꺼냈다.


은호의 내단은 과연, 그의 털만큼이나 희었다.


마치 투명한 수정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안에는 백단조차 경악할 정도로 정순한 화火氣가 집약되어 있었다.


마치 얼어붙은 불을 보는 것 같았다.


“세상에···. 어머니도 더 냉기를 잘 다루는 영물의 내단이 극양極陽의 내단을 품고 있었다니.”


“그 냉기를 다루기에 화기를 축적한 걸까요? 역설도 이런 역설도 없군요.”


희령과 하라는 백단의 손에 들린 내단을 보며 경악했다.


그들도 ‘그’ 은호가 설마 극양의 내기를 품은 내단을 가지고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


“아무튼 잘됬네! 오라버니! 구음절맥에 극음의 영약은 상극인데 극양의 영약을 얻다니!”


“그야말로 운명. 하늘이 게세르를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하늘이 도와준다. 인가.”


백단은 묘한 표정으로 은호의 내단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바라봤다.


‘언어 특전에 이어 영약 특전이냐.’


그는 이 상황이 너무 작위적이라고 느꼈다. 마치 누군가가 그를 위해 안배를 해둔 것 같달까.


그렇지 않다면 이 상황은 말이 안 된다.


그때, 백단은 처음으로 어떤 운명을 느꼈다.


‘어?’


그가 무의식적으로 남서쪽을 바라봤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그저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어떤 인력 같은 것이 그의 고개를 억지로 붙잡고 돌린 것 같았다.


“······.”


무언가 서쪽에 있다. 그는 그렇게 느꼈다.


“오빠?”


“게세르님?”


희령과 하라가 침묵하는 그를 보며 의아해하며 그를 불렀다.


백단은 한참 동안 남서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털며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단지 기분 탓이겠지.’


그는 이 기묘한 느낌을 털어버리며 가부좌를 틀었다.


“얘들아. 잠시 호법을 서줘.”


“응! 우리만 믿어!”


“걱정하지 마십쇼. 게세르.”


희령과 하라가 검과 단검을 치켜들고 그의 왼쪽과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백단은 그들의 든든한 등을 보다가 불을 품은 내단을 삼키고 숨을 들이켰다.


그러자 위에서부터 거대한 화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뜨거워.’


마치 용암을 삼킨 것 같은 뜨거움이 그를 휘감았다.


백단은 서서히 그 기운을 유도해 혈도를 통해 순환시켰다.


‘먼저 속도를 붙인다.’


백단은 늘 하던 대로 혈도로 화기를 순환시키며 끊임없이 육체를 따라 흐름을 그렸다.


혈도를 따라 순환하는 화기는 점차 속도가 붙으며 빠른 속도로 그의 전신을 순환했다.


호흡에 따라 흡입되는 기들도 그 흐름에 끌려가더니 이내 화기에 불이 붙으며 폭발적으로 증폭하기 시작했다.


‘압축되어라.’


백단은 끊임없이 증폭되는 화기를 더욱 빠르게 회전시켜 초고압으로 압축하기 시작했다.


압축하고 또 압축해 더 이상 압축해도 기존 혈도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화기를 백단은 아홉 대맥으로 흘려보냈다.


쿠웅!


“쿨럭!”


처음으로 아홉 대맥을 틀어막은 한기寒氣가 흔들리며 그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백단은 피를 토하면서도 입꼬리를 올렸다.


‘뚫린다!’


아홉 대맥을 단단히 막은 한기는 그야말로 만년설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그가 300번의 시도 끝에 아무리 용을 써도 금은커녕 흠집도 안났던 그 한기가! 처음으로 금이 간 것이다.


백단이 다시 한번 화기를 순환시켜 아홉 대맥으로 화기를 흘러넣었다.


폭발적으로 가속한 화기가 또 한 번 아홉 대맥과 충돌했다.


몸의 내부에서 지진이라도 난 듯 거대한 충격이 퍼지더니 코에서 코피가 터지고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아직도 부족해.’


방금의 충돌로 다시 한번 금이 간 아홉 대맥. 그러나 그 경도는 아직도 굳건하다.


백단은 화기를 순환시키며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번째 충돌! 드디어 철옹성 같은 아홉 대맥이 무너져내리더니 그 사이로 어마어마한 한기가 새어 나왔다.


한순간에 백단의 전신이 얼어붙었다.


그러나 백단의 혈색은 분홍빛으로 따듯했다.


겉에는 한기가, 몸 내부에는 화기가 도는 것이다.


그의 겉과 내부가 음양을 그리며 화기와 한기를 순차적으로 순환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뚫린 아홉 대맥은 기존의 혈도와 비교해 도리어 더 얆았으나 그가 한기와 화기를 순환시키니 얼고 녹더니 점점 질겨지고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의 칠공七孔에서 흐르는 피가 점점 검어지기 시작했다.


아홉 대맥에 쌓인 탁한 기운이 한꺼번에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후우우.”


번쩍! 그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이내 그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한기와 화기가 음양의 순환을 그리며 그에게 흡수되고 분출되기를 반복하더니 이내 모든 기가 그의 안으로 들어갔다.


곁에서 호법을 서던 희령과 하라는 그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서, 설마!”


“허. 허어!”


그녀들은 지금 백단이 이룩하고 있는 경지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환골탈태!””


쩌적! 그의 전신에 금이 가더니 그가 얼음을 깨고 손을 뻗었다.


그가 팔을 아래로 내리긋자 전신을 얼린 얼음이 부서지며 그가 땅에 발을 대었다.


한기와 화기. 얼음과 불 속에서 제련된 그의 육체가 몸을 일으켰다.


“후하!”


땅에 오롯이 선 백단이 숨을 몰아쉬었다.


‘전신이 가벼워.’


백단이 조용히 팔을 들어보았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근육질로 가득 찬 육체가 보였다.


‘육체가 한 단계 진화했다.’


백단은 가볍게 제자리에서 뛰어보았다. 그것만으로 그는 수미터를 공중에 떠오르더니 땅에 내려앉았다.


‘이게 환골탈태?’


느껴지는 기분으론 몇 년은 젊어진 것 같다.(육체 나이는 원래도 어렸지만 어쨌든 기분은 말이다.)


아마 그가 추측하기론 수명이 거의 100년은 늘어난 것 같았다.


“단순한 육체의 힘만으로도 검기를 부술 것 같은데.”


지금의 그라면 앞선 은호와 힘 싸움으로 이길지도 모른다.


그는 가볍게 숨을 들이켜보았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기가 그의 체내에서 순환했다.


그러자 주위에 풀들이 자라더니 꽃을 피웠다. 근처에 떨어진 가지에서 뿌리가 뻗더니 순식간에 6~9년은 묵은 나무로 자라났다.


아홉 대맥이 뚫리면서 기의 유동이 늘어난 탓에 단순한 운기조식만으로도 주위에 영향을 끼치다 못해 식물의 생장을 가속할 정도가 된 것이다.


(단전이 없는 백단만의 특이점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그랬지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가 빨라졌다.


“얘들아! 성공했어!”


백단은 자신의 성장에 기뻐하며 호법을 서준 여동생(같은 아이)과 소꿉친구를 바라봤다.


“응?”


그런데 그들의 얼굴이 어딘가 이상했다.


그들은 빧빧하게 굳은 채로 얼굴이 새빨개진 채 눈동자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얘들아?”


백단이 의아해하며 한 걸음 내딛자 그들이 펄쩍 뛰어오르며 검과 단검을 백단에게 향했다.


“히익?!”


“움직이지 마십쇼! 게세르!”


“어어? 왜 그래?”


백단은 제 목으로 향하는 검과 단검에 당황하며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그, 그그! 그그그!”


“게, 세르. 그 일단···. 하초를 가리십시오.”


“어, 응?”


백단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


그러자 그의 알몸이 보였다.


환골탈태하면서 그의 옷이 찢겨나간 것이다.


설화령과는 달리 은호와 싸우면서 넝마가 된 옷. 거기다가 한기와 화기로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다 보니 넝마가 된 옷이 버티지 못한 것 같았다.


그가 붉어진 얼굴로 다급하게 다리를 오므리며 두 팔로 아래를 가렸다.


“이, 이건! 오해다! 내 고의가 아니야!”


“알겠으니까! 으으! 아무거나 좀 걸쳐봐!”


“알고 있습니다. 게세르. 그러니까 제발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렇게 세 명이 끼약! 꺄악! 으악!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울 때 저 멀리서 거대한 기운이 그들 사이로 내려앉았다.


“희령아!”


“꺄악!”


“어, 어머니?!”


섬광처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설화령이 하라를 내치며 희령의 어깨를 잡았다.


그녀는 희령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다친 곳은 없는 여실히 살폈다.


“다친 곳은 없느냐?”


“저, 저는 멀쩡한데요···. 그보다 아까 하라를 밀쳤···.”


“저런 천한 보우(샤먼) 따위는 무시해라! 너만 무사하면 되었다.”


“······.”


희령은 어머니의 걱정에 감사해야 할지, 그녀의 안하무인에 슬퍼해야 할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하라는 이런 취급은 익숙한지 아무렇지 않게 옷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그보다 너를 꾀어 은호를 사냥하러 간 그 쓸모없는···, 아니 하찮은···, 아니 백단이는 어디 있느냐? 벌써 먹히기라도 한게냐?”


“그게···.”


희령이 검지를 뻗어 화령의 뒤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 화령의 고개도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녀는 백단의 알몸을 보았다.


“어···. 안, 안녕하세요. 궁주님?”


“······.”


설화령은 잠시 백단을 보다가 희령을 보았다. 잔뜩 붉어진 희령의 얼굴.


그녀는 고개를 돌려 하라를 바라봤다.


하라 역시 아무렇지 않게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볼만큼은 감출 수 없었는지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백단을 바라봤다. 그는 알몸이었다.


“어, 그러니까 말이죠. 이건···.”


“이···. 이···!”


백단이 싸함을 느끼고 그녀에게 설명하려던 것보다 설화령이 더 빨랐다.


한순간 분노에 잠식당한 설화령은 손에 강기 다발을 피워올리며 백단을 향해 휘둘렀다.


“이! 은혜도 모르는 잡것이 감히 음행을 저지르려 들어!”


“아. 씨발.”


백단은 강기를 보며 눈을 감았다.


‘좋은 인생이었다.’


그래도 전생보단 나아간 삶을 살았잖아.


백단의 몸을 강기 다발이 휩쓸었다.


-


당연하지만 백단은 살아남았다.


필사적으로 희령과 하라가 변호해준 덕분이었다.


-


척박한 산맥.


기암괴석과 풍화된 암석이 가득한 곳에서 한 소녀가 고개를 돌렸다.


“으응?”


소녀는 왜 자신이 그곳을 바라봤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녀의 고개짓에 비단과 같은 분홍빛 머리카락이 사르르 어깨 사이로 흘러내렸다.


이내 한참을 ‘북동쪽’을 바라보던 소녀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몸을 일으켰다.


“신기한 기분이로고. 본녀의 관심을 끄는 무언가가 있다니.”


얼굴 만면에 미소를 띤 소녀의 곁으로 한 노인이 다가왔다.


그러자 소녀의 안색이 찌푸려졌다.


“소교주님. 교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아아. 그 늙은이가 또 부르는가?”


소녀는 지루하다는듯 걸음을 옮기다 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대는 처음 보는데 누구인가?”


“오늘부터 소교주를 모시기로 한 독마. 위···.”


“아아. 됐다. 이름을 들을 필요는 없으니.”


“예?”


“그대는 이미 죽었지 않은가?”


소녀는 마치 소악마와 같이 웃으며 독마라고 자칭한 노인을 보며 말했다.


“왜 여즉 목이 몸에 붙어있느냐?”


“그게 무슨···.”


투욱, 그 순간 독마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눈동자를 굴리는 머리를 조막만한 발로 밟은 소녀는 손에 피워올린 강기罡氣를 가라앉히며 몸을 돌렸다.


“아아. 또 죽이고 말았구나. 왜 본녀를 모시는 자들은 이리도 약한지.”


소녀는 지루하다는 듯 하늘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북동쪽을 바라보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대는 강할까?”


소녀는 깔깔 웃으며 궁으로 걸어갔다.


“다가올 운명이 기대되는구나.”


-


이때의 소녀는 몰랐다.


설마 백단이 운명을 비틀어버릴 줄은.


무림인이 제 나라를 건국하겠다고 무림 바깥으로 나갈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멋진 무협에서 대체역사를! 위해 열심히 쓰는 작가입니다.

어서 하루 빨리 주인공의 나라를 보여주고 싶군요.

온갖 편의주의적 전개(...?)와 무공 만능 주의를 보여주고 싶은 작가입니다.


무림인이 세운 나라는 여러모로 어메이징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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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프롤로그 완. 이주Migration +2 24.08.28 76 2 27쪽
23 프롤로그 1년. 그동안의 준비와 만남, 그리고 운명 24.08.27 72 2 31쪽
22 프롤로그 -5~-1년. 인생의 목표, 야망 24.08.26 71 1 18쪽
21 프롤로그 -5년. 백룡의 꿈, 흑룡의 꿈(완) 24.08.26 67 1 24쪽
20 프롤로그 -5년. 백룡의 꿈, 흑룡의 꿈(3) 24.08.23 72 1 20쪽
19 프롤로그 -5년. 백룡의 꿈, 흑룡의 꿈(2) +2 24.08.22 71 2 22쪽
18 프롤로그 -5년. 백룡의 꿈, 흑룡의 꿈 24.08.21 70 1 12쪽
17 프롤로그 -5년. 무림 초출 24.08.21 72 2 20쪽
16 프롤로그 -5년. 검강劍罡 24.08.21 76 2 30쪽
15 프롤로그 -7년. 백단의 청 24.08.20 72 2 12쪽
» 프롤로그 -7년. 은호사냥(완) +2 24.08.20 85 1 19쪽
13 프롤로그 -7년. 은호사냥(2) +2 24.08.19 84 3 23쪽
12 프롤로그 -7년. 은호사냥 +2 24.08.19 89 3 29쪽
11 프롤로그 -11년. 심검心劍 24.08.18 92 2 16쪽
10 프롤로그 -11년. 검기상인劒氣傷人, 삼매진화三昧眞火 24.08.16 100 2 29쪽
9 프롤로그 -11년. 늑대 24.08.16 104 2 26쪽
8 프롤로그 -12년. 삼재三才 24.08.15 109 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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