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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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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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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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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새로운 세계

DUMMY

그날 김앤창의 공기는 차가웠다.


"이석봉 변호사. 온 지 몇일이나 되었지?"

전수진 선배 변호사의 말은 싸늘했다.


"사개월 되었습니다."


"아직 일년도 안 됐지?"


"그렇습니다."


"일년도 안 된 애가 무슨 패기로 이런 만행을 저지른 건지? 나는 잘 이해가 안 되서 그런데, 설명해 줄 수 있나?"


"죄송합니다."


"하여간, 저질러놓고 죄송하다면 끝이지. 넌 앞으로도 이럴 거 아냐? 일해야 할 때, pc방 가놓고, 고작 하는 말이 '죄송합니다.' 너도 요즘 MZ라 그건가?"


"아닙니다."


"너가 오늘 우리 김앤창의 얼굴에 먹칠을 한 거야. 알긴 알아? 내가 여기 십 년은 넘게 있었는데, 너 같은 애는 처음이야, 처음. 내가 시킨 업무를 못 하는 건 이해를 해. 능력이 안 되겠거니 하니까. 그런데, 너가 한 건 태도의 문제잖아. 얼마나 정신상태가 썩어빠졌으면 그런 짓을 해?"


석봉은 목구멍까지 나오는 말을 애써 삼켰다. 이대로 더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고. 그때 pc방 안 갔으면 돌아버렸을 거 같다고.


"여기가 안 맞으면 그만두고 딴 데 알아봐. 너 눈엔 안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꽤 좋은 곳이고 여기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어. 괜히 자리만 축내지 말고."


"아닙니다."


"뭘 자꾸 아니래, 나도 너 같은 후배 변호사 두기 싫어서 그래. 잘 생각해봐."


전수진 선배 변호사는 대놓고 석봉을 싫어하는 티를 냈다.


--


pc방 사건이 일어난 지 몇 달이 흘렀다. 특히 그 사건 이후로 더더욱 의기소침해졌던 석봉은 이제 표정이 말라비틀어져서 흡사 미라를 보는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이 사무실에 온 김상률 대표가 물었다.


"얜 무슨 일 있냐? 왜 죽어가는 표정이냐?"


"쟤 원래 저래요."


딱-


"야, 원래 저런 표정이면 그냥 냅두냐? 무슨 문제 있냐, 물어보고 해야 하는거 아냐? 내일 죽는 표정인데."


"우리가 그런 거 까지 어떻게 물어요? 어차피 다 회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이인데."


"스쳐 지나가는 사이라도 알 건 알아야지. 쟤 어디가냐?"

이석봉 변호사가 갑자기 어디로 가길래 김상률 대표가 물어봤다.


"화장실 가는 가 보죠, 뭐."

이석봉보다 몇 기수 선배인 황이현 변호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김상률 대표가 가 보니 종이 하나가 뒤집에진 채로 놓여 있었다.


--


석봉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서울 시내 한복판은, 멀리서 보면 평화로워 보였다.


석봉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평화로운 나날.


바람이 분다.


그는 이제 한 줌의 먼지로 돌아가야 겠다고 생각한다.


난간에서 바깥 쪽으로 발을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이 석 봉!!"

누군가가 이석봉 변호가를 크게 불렀다.


"너, 이거 뭐야?"

헥헥거리는 김상률 대표엔 손엔, 한 장의 종이가 들려 있었다.


종이 맨 윗단에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유 언 장



"읽어 보셨으면 아실 텐데요."

이석봉은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저는 더이상 이 세상엔 미련이 없어서. 이만."

석봉은 손을 흔들며 아래로....


***


"안녕하세요. 석봉이 엄마입니다. 김앤창에서 무슨 일로?"


"석봉이가.... 옥상에서 떨어졌습니다."


충격적이고, 상상도 못한 대답에, 양희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서, 우리 석봉이 어떻게 되었나요??"

양희는 다급하게 물어봤다.


"지금 위험한 고비는 넘긴 상태입니다. □□병원으로 오시면 됩니다."


양희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김앤창에서는 석봉이 자살 시도를 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신의 직장 김앤창에서 계속 있기만 하면 인생 성공인데, 자살이라니..


애를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아니지? 자살. 아니지?


하지만 석봉을 보자 자신이 완전히 잘못 생각했음을 알게 된다.


석봉은 완전히 의욕을 잃어 있었으니까.


"석봉아. 엄마 왔어."

"가세요. 엄마. 보고 싶지 않아요."

초점 없는 눈빛.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낯빛.


양희는 아들의 이런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당황스러웠다.


"이석봉 환자는 수술이 무사히 마쳐서 몇 주만 있으면 퇴원할 수 있습니다. 수술 중에 고비가 몇 번 왔지만, 다행이 무사히 넘겼습니다."


담당 의사였다.


"19층 높이에서 뛰어내려서 매우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다행이 불법주차한 차 위로 떨어져서, 목숨은 건졌습니다."


소름이 끼쳤다.

만약, 그 자리에 불법주차된 차량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념에 빠져 있는 양희에게

의사는 한 마디 덧붙였다.

" 정신과 면담을 좀 받는 것을 권합니다. 퇴원 후에도 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으니까 잘 봐주시고요."


--


"김은양 선생님이라고 하셨죠?"

단정한 눈매에 똑부러진 코. 김은양 선생님의 모습이 앞에 있다. 자살 시도 후 유일하게 석봉이랑 얘기를 나눠 봤다는 사람.

그래서,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잇는 사람.


"왜 자살했데요? 제가 이렇게 잘 해주고, 김앤창이라는 신의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은양은 조용히 석봉이 쓴 유언장 사본을 펼쳤다.


양희는 천천히 그것을 읽어 내려간다.


그 속에서, 석봉은 마치 자신을 김앤창에서 빼내 달라고 절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신의 직장인 건 석봉에게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건 그에게 빈 껍데기에 불과했으니까.


흐흐흑-


아들의 충격적인 속마음을 알아버린, 양희는 아들에게 미안했다.


"선생님, 이제 전 뭘 하면 되죠?"


"우선, 아드님이 하고 싶은 데로 하게 해 주세요."


양희의 눈에선 눈물이 떨어졌다.


내가 해 주려고 했던 게 아들에겐 다 의미없었구나.

아들을 사랑해서, 눈에 담아도 안 아플 아들을 위해 내가 손수 짜준 그물망이 너한테는 감옥이 되었구나.


엄마가 미안해.


너의 일생을 망쳐놔서.


***


"엄마, 다녀올게요."

활기차며 인사를 하며, 석봉이 가는 곳은 김앤창이 아닌, PC방이다.


양희는 변했다.

쉼 없이 질주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믿었던 양희는 이제는 아들에게 '쉼'을 경험하게 해준다.


자살 건으로 인해 김앤창에서는 파직되었지만, 괜찮다. 아들이 살아있으니까. 그리고, 그가 이제는 괴로워하지 않으니까.


"석봉아."

석봉은 엄마 쪽으로 돌아보았다. 혹시나, 힘들게

내게 온 자유가 빠져나갈까봐 노심초사하면서.


"게임하는 건 좋은 데, 일상이 무너질 정도로 하면 안 되."


몇 일간, 잠도 안 자고, 밥도 제대로 안 먹는 석봉은 속으로 뜨금해했다.


"따라해. 나는 게임을 하는 와중에도 수면과 식사는 반드시 사수하겠습니다."


"나는 게임을 하는 와중에도 수면과 식사는 반드시 사수하겠습니다."


"좋아. 세끼 다 챙겨먹고, 잠도 일곱 시간 이상은 자."

석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지금의 폐인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또 따라해. 나는 으이그 오브 레전드를 할 때, 그냥 막 하지 않고, 철저한 훈련과 전략수립을 성실히 하겠습니다."


"나는 으이그 오브 레전드를 할 때, 그냥 막 하지 않고. 않고.... ?뭐라고 했죠?"


"철저한 훈련과, 철저한 훈련과 전략수립을 성실히 하겠습니다."


"철저한 훈련과, 철저한 훈련과 전략수립을 성실히 하겠습니다."


"그렇지. 말한 내용 꼭 지키고 잘 다녀와."


문을 열고 나온 석봉의 마음은 따뜻했다. 당장 김앤창을 가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게임 폐인은 되지 않을 거니까.


"여보."

아들이 나가고 시간이 한참 지나,

석봉의 아버지, 이만흥이 아내를 불렀다.

차가운 말투로.


"우리 석봉이, 저렇게 둬도 되겠어? 맨날 일도 안 하고, 게임만 하고. 저러다 게임 중독자로 낙오자 신세로 사는 거 아냐?"


"여보, 쟤 일만 하다가 우울증 와서 죽으려 한 애야. 일단은 일 그만두게 해야지. 그리고, 게임 중독자는 안 될거야. 내가 방금 해놓은 게 있거든."


"뭘 했는데?"


"그건 비밀."

양희는 미소를 지었다.


--


"석봉아, 오늘은 늦게 왔네."

PC방에 도착하면, 항상 반갑게 인사하는 애가 있다.

그의 이름은 도준열이다.


"석봉아, 으이구 오브 레전드 한판 해야지."

"좀 있다 할게. 먼저 하고 있어."


석봉은 수첩을 펴서 뭔가를 적는다.


"그거 뭐야?"

낯선 행동에 준열은 석봉의 수첩을 들여다본다.

어두운 PC방 안에서.


"게임 계획.

다른 사람거 관전 시간. 3시간.

최적 공격책 찾아보는 시간. 2시간.

캐릭터 분석 시간. 2시간.


이거 대체 뭐야?"


"오늘 목표량이요."


"무슨 목표량이 있어?"

준열은 헛웃음을 친다.


"그냥, PC방에 오면 죽치고 게임만 열심히 하다 가면 되는 거야. 분석, 전략수립. 뭘 이렇게까지 해?"


"이렇게까지 해봐야 느끼는 게 있을 거 같아서요. 뭔가 깨달아야, 게임 생활 관두고 딴 걸 하더라도 이어질 거 같거든요."


!


준열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의 인생은 다음을, 내일을 생각하기에 그는, 너무나 많이 망가져있으니까.


그는 문득 과거를 회상한다.


5년 전, 지금과는 달리 파릇파릇했던 준열은 그때까지만 해도 당당하게 고시를 준비하던 수험생이었다.


매일 똑같은 소량진 길거리를 다니던 그에게 어느 날, 길거리에 있던 PC방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


그의 직감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랜 수험생활로 지겨웠던 그는 호기심에 한 번 들어가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으이구 오브 레전드를 켜게 되었고, 딱 한 판만 하고 가야지 하던 그의 다짐과는 달리 하루종일 있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은 지나갔고, 연거푸 낙방하게 되었다.


그는 결국 시험을 포기하게 되었고 그에게 남은 것은 게임 뿐이었고, 다음이란 말은 그의 머릿속에서 없어졌다.


여기가 그의 마지막이었으니까.


--


석주는 스마트폰으로 지도 검색을 하며, 선생님이 알려준 동호회가 활동한다는 배드민턴장을 검색한다.


"아잇. 대체 어디있는 거야?"

아직 스마트폰 다루는 것도 어색한 데다가 길치인 석주는 눈앞에 있는 건물을 찾느라, 10분 동안이나 헤메다가 들어갔다.


간신히 안으로 들어간 석주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학교에서 봤던 배드민턴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우선, 사람들의 눈빛부터가 달랐다. 셔틀콕을 바라보는 눈빛이 반짝반짝 했다.


게다가 장비가 학교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좋았고, 형형색색의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아저씨들이 땀을 비오듯 흘려가면서도 지치지도 않고, 계속 친다.


그들의 기세에 잔뜩 쫄은 석주였지만, 선생님이 제시해 준 미션을 떠올린다.


'가목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서 남들만큼 배드민턴 칠 것.'


석주는 무서운 마음을 뒤로 하고, 쉬고 있는 사람이 보이면, 쪼르르 달려가서 한 판 하자고 한다.


하지만, 고인물들이 많은 동호회에서 석주가 뚫어야 할 벽은 높기만 했다. 아무도, 석주랑 배드민턴을 쳐주지 않은 것이다.


구석에서 그녀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채윤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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