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몰 지구 속 테라스드 하우스
-지이이잉
“아빠. 전화 왔는데?”
“그래? 누구한테 온 거야?”
“잠시만. 어제 찾아왔던 분인데. 아빠한테 부활절 달걀에 대해 묻고 갔던.”
침대에 누워있던 벨랴예프 씨는 그 말을 듣곤 조금 의아해했다. 갈렌드 씨의 비밀 아지트를 찾아내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왜 다시 전화가 온 건가 싶었다.
“다른 정보가 더 필요해진 건가? 아니면 알아보니 영 찾기 힘들 것 같아서?’
그날 주변에 실력자 친구가 있다고 자신하긴 했다. 꼭 찾아 자신에게 보여주겠다고 했을 땐 살짝 설렜기도 했다. 지금까지 알렉산드르 그 일을 머릿속에서 잊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단, 이후 찬찬히 생각해 보니 영 무리지 싶었다. 벌써 10년도 전의 일이라. 괜히 기대했다 실망만 하느니 그냥 잊고 있자 했고.
그리 여겼는데. 음. 일단 연락이 왔으니 받아보기로 했다.
“예. 이안 씨. 다시 전화를 주셨네요. 뭐, 잘 안 풀리는 부분이라도?”
“알아냈습니다.”
“네? 알아내다니요? 뭘요?”
“갈렌드 씨의 비밀 아지트요.”
벨랴예프 씨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그 오랜 시간 궁금해했던 장소를 단 하루 만에 찾아냈다고?
“그게 진짜인가요?”
“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제 곁에 능력자 친구가 있다고요.”
당당한 목소리와 주저 없는 답변. 이 정도면 진짜 알아낸 것도 같았다. 벨랴예프 씨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왔다.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가 아니라 가슴이 절로 벅차 와서.“
“어제 약속드린 대로 꼭 찾아서 다시 병문안 가 뵐게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다만 벨랴예프 씨는 여전히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이 상황이 꿈만 같아서.
이대로 생이 끝나나보다 했는데. 어쩜 오래도록 담아뒀던 아쉬움 하나는 풀고 갈 수 있을지도.
그때 문이 열리며 잠시 다른 일을 보러 갔던 딸이 돌아왔다.
“아나스타샤. 나 휠체어 좀 갖다줄래?”
“왜? 화장실 가고 싶어?”
“아니. 1층 정원에 한번 가보려고. 햇빛 좀 쐬고 싶어서.”
“어머. 웬일이래. 매번 나가자고 졸라도 힘들다며 누워있기만 하더니.”
“그냥 오늘은 왠지 기운이 좀 나네. 좀 전에 받은 전화 때문인가 봐. 얼른 가보자. 정원에 꽃도 좀 피었으려나.”
***
이틀 후, 올빼미 보물 탐사대 사무실 안. 이안과 스텔라 그리고 맥스는 다들 분주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스쿠버 다이빙 수트, 풀 페이스 마스크, 롱 핀까지. 다 준비됐고···.”
“이안, 여기 산소통.”
저번에 스텔라도 그렇게 부르던데. 정확한 명칭은 ‘공기통’이었다. 압축 공기를 담아놓은 거니까. 산소통은 주로 의료나 공업 분야에서 사용되고.
이안은 정정해줄까 하다 그만 뒀다. 여기까지 밀고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괜히 잔소리가 될 것 같아.
“어. 이리 줘봐. 어디 보자. 산소량도 충분하고. 감압 밸브도 잘 작동되네. 아, 이거 하나 더 가져가야 하는데. 비상용으로.”
“그래? 아, 저쪽에 있는 거? 알았어. 얼른 가져올게.”
이안과 맥스가 장비 체크에 나선 사이, 저쪽에선 스텔라가 한창 통화 중이었다.
“집사 아저씨. 말씀드렸던 배는 준비됐나요? 아, 그레이트우즈 강 근처에 정박해 두시면 돼요. 운전은 제가 할 거니까 따로 사람 부르지 않으셔도 되고요. 네. 고맙습니다.”
스텔라가 전화를 끊으며 이안을 향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이후 주차장에 내려갔던 맥스가 이번엔 덩치 큰 장비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이안. 이거. 네가 부탁했던 수중 산소 절단기. 선박 수리하는 아는 형님이 계셔서 거기서 빌려왔어.”
“고마워. 그나저나 이것까지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해당 마을의 건물 구조도는 이미 미널바가 구해왔다. 위성 사진과 항공 촬영 파일을 싹 다 뒤져서. 여기에 입수 포인트와 최단 이동 루트도 짜 주었고.
다만 정확한 개별 건물 상황까지 알 수 없었다. 들어갈 곳이 현관밖에 없는데 도무지 문이 열리질 않는다? 그때를 대비해 요 수중 산소 절단기도 가져가 보긴 할 예정.
“다들 준비는 잘 되고 있니?”
그때 사무실 문 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벤틀리 다니엘 경이 양손에 간식거리가 잔뜩 든 채 서 있었다.
원래는 이번 탐사에 할아버지도 모시려 했다. 당연히 참여하시겠지 했는데 의외로 고사하셨다.
“올빼미 보물 탐험대의 첫 발굴 작업이잖니. 이런 의미 있는 건은 주역 멤버 셋이 뭉쳐 해내야지. 대신 다음번은 나도 꼭 끼워줘야 한다.”
이런 말씀을 남기신 채. 이안도 알겠다고 했다. 아직 에콰도르 탐사의 여독이 다 풀리지 않으신 듯했고. 전당포도 손님이 너무 많아져 정신없이 바빴고. 이번에 우리끼리 다녀온 게 여러모로 좋을 듯했다.
아, 할아버지는 아직도 미널바가 그냥 성능 좋은 최신형 컴퓨터 정도인 줄 아시는 중. 몇 번 설명해 드리긴 했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말씀하곤 했다.
‘거참. 요즘은 세상 참 좋아졌구나. 이런 것까지 척척 알려주는 걸 보니.’
다른 집 컴퓨터도 다 저 정도인 줄 아시는 듯했다. 하긴. 휴대폰도 달랑 전화와 문자 기능만 쓰시는 옛날 분이라.
“와. 다니엘 할아버지. 그거 다 저희 주시려고 사 오신 거예요? 일단 다 저한테 주세요. 몽땅.”
“맥스. 얘 또 흥분했다. 무슨 애가 먹는 것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린대. 좀 진정해.”
맥스와 스텔라가 투닥거리는 소리가 사무실 안에 경쾌하게 퍼져나갔다. 셋이 함께 나서는 첫 발굴 작업. 그것만으로 벌써 추억이 가득 쌓여가는 중이었다.
***
다시 이틀 후. 그레이트우즈 강 하류. 스텔라가 운전대를 잡은 플라인트 956 모델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스텔라. 그냥 모터보트 하나 구해와도 됐는데. 이거 배가 너무 고급인 거 같은데?”
“바다가 아니라 강을 다닐 거라. 아빠 소유 배 중 그나마 제일 작은 걸로 가져온 거야.”
스텔라가 이안을 보며 나름 변명을 했다. 뭐, 좋긴 했다. 솔직히 폼도 좀 났고. 맥스 역시 보트가 마음에 드는지 여기저기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한 5분쯤 더 이동했을 때 손목에 찬 다이빙 컴퓨터가 삐! 하고 울려댔다.
아, 다이빙 컴퓨터는 스쿠버 다이빙용 디지털 디바이스 중 하나. 수심. 수온, 잠수 시간. 이동 속도 등을 화면을 통해 알려준다. 여기에 무감압 한계 시간이나 산소 중독 여부까지 체크해 주고.
당연히 미널바도 이 기기에도 접속해 있는 중. 지금 이 지점이 사무실에서 검토했던 입수 포인트란 걸 알려주는 중이었다.
이안은 그 소리에 맞춰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이미 다이빙 수트와 기본 장비는 다 착용한 상태. 등에 잠수용 공기통을 매고 한 번 더 테스트에 나섰다.
이후 일체형 마스크를 쓴 다음 선상 후미 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서 롱 핀을 발에 끼웠고. 마지막으로 바닥에 내려놔 둔 수중용 라이트를 들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숨 한번 크게 내쉬기. 그런 다음 맥스와 스텔라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준비 완료를 알렸다.
“이안. 조심해야 해. 뭔가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바로 밖으로 나오고. 알았지?”
“산소량 잘 체크하고. 뭐 문제 있으면 미널바 통해 신호 보내줘. 그럼 우리가 나설 테니.”
막상 물속에 들어가려 하니 다들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맥스와 스텔라가 번갈아 가며 한마디씩 당부를 건넸다. 이안은 알았다는 표시로 둘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첨벙
오늘을 디데이로 정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미널바가 댐 제어 시스템에 이미 접속해 분석을 마쳤다. 그 결과 내일 일주일 만에 댐에서 물을 아래로 흘려보낼 예정. 그 얘기인즉슨 오늘이 수심과 유속 모두 가정 안정적인 날이란 뜻이라.
[10m]
오른손 손목에 찬 다이빙 컴퓨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원래는 이런 기능이 없는데. 미널바가 수심이 10미터씩 깊어질 때마다 알려주는 중이었다.
[▶ ▶ ▶]
이후 전자식 나침반 화면이 방향 전환을 알려왔다. 이안은 천천히 몸을 틀어 오른쪽으로 이동해 나갔다.
[20m]
시야 확보를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수질이 괜찮아 보였다. 수중용 라이트까지 켜둔 덕에 예상보다 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유속, 수압, 시야 모두 안정권. 이 정도 조건이면 오늘 탐사에 큰 난관은 없을 듯했다.
수몰 지구 탐사 허가를 어렵사리 받아낸 터. 한 번에 꼭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 ◀ ◀]
지시 표시에 따라 다시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때 라이트 불빛 저 아래로 마을 건물이 얼핏얼핏 드러났다.
[27m]
이안은 목표 수심에 도달하자 하강을 멈췄다. 이후 이번에는 앞쪽으로 전진해 나갔다. 아래로 차례차례 아이들 놀이터, 단층 주택, 2층짜리 상가, 차량 도로가 스쳐 지나갔다.
[1km··· 900m··· 800m··· ]
다이버 컴퓨터의 또 다른 화면이 목표 지점인 테라스드 하우스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중.
[···500m··· 400m··· 300m···]
도착지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눈에 익은 건물이 보였다. 미널바가 입수한 10년 전 구글맵 거리뷰를 통해 이미 봐왔던.
‘어, 저기. 나란히 서 있는 2층짜리 상가 건물 4동 보이네. 저길 지나면 1층짜리 단독 주택 단지가 나올 거고. 오호! 좋았어.’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테라스드 하우스와 만날 수 있을 듯.
-징~ 징~ 징~
손목에서 이번엔 아까와 다른 진동이 느껴졌다. 예상 지점에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신호. 수중 손전등을 돌려보니 역시나 아래쪽에 바로 그 건물이 나타났다.
‘찾았다!’
이제 다시 하강 모드. 이안은 몸을 아래로 밀며 테라스드 하우스 쪽으로 더 가까이 접근해 나갔다.
‘플랫 4’. 1층 맨 끝 집. 이안은 한 손을 건물 외벽에 댄 채 계속 전진해 나갔다. 플랫 1··· 플랫 2··· 플랫 3··· 드디어 플랫 4, 도착!
일단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힘을 주어 당겨봤지만 역시나 잠겨있는 상태. 이안은 다이빙 수트 왼쪽 어깨 쪽에 달린 지퍼를 열었다. 자물쇠를 열 도구를 넣어둔.
영국의 경우 열쇠 하나만 달랑 달린 주택도 여전히 흔했다. 물론 요사이엔 CCTV나 경보 시스템을 설치한 집도 늘긴 했지만.
이 테라스드 하우스의 경우엔 위아래로 두 개의 열쇠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안은 양손에 송곳과 끌처럼 생긴 공구를 하나씩 들고 이리저리 손을 움직여 보았다.
요건 수중 탐사에 대비해 요번에 새로 연마한 스킬. 열쇠 전문가가 운영하는 자물쇠 푸는 유튜브 영상을 열심히 시청했다. 여기에 미널바가 각각의 원리에 대한 친절한 추가 설명도 더해주었고.
손재주 역시 뛰어난 이안이라 실전에도 강했다. 덜컥! 벌써 하나 열었고. 다시 몇 분 후 끼이익! 다른 하나마저 풀어냈다. 이제 열고 들어가기면 끝.
그래야 했는데. 어? 문이 꿈쩍도 안 했다. 아무리 힘을 줘봐도 마찬가지. 힌지가 녹슬어 굳어버렸거나 아니면 뭔가 안에서 걸려버린 모양이었다.
‘안 되겠다. 다른 입구가 있는지 찾아봐야겠어.’
이안은 출입문 쪽은 포기하기로 했다. 다른 곳을 탐색해 보기로. 만약 길이 없어 보이면 아쉽지만 철수하는 걸로. 다음에 수중 산소 절단기를 가지고 다시 내려오는 편이 나을 듯했다.
일단 집 외벽을 빙 돌면서 들어갈 곳을 물색해 봤다. 앞쪽은 창문이 다 잠겨있었다.
오른쪽 어깨 쪽 주머니에 유리를 깰 수 있는 비상용 망치가 들어있긴 했다. 다만 잘못했다간 파편이 자신한테 날아올 수 있었다. 이쪽도 포기.
이제 남은 건 건물 뒤쪽. 이안은 벽을 천천히 밀면서 그쪽으로 향해 헤엄쳐 나갔다.
‘어!’
다행히 뒤쪽 창문이 1/3쯤 열려있었다. 얼른 다가가 보았다. 이쪽도 문제는 있었다. 그 상태로 딱 고정된 채 움직이질 않았다. 여기도 창틀이 녹슬어 굳어버린 모양이었다.
이안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공기통 등 장비를 다 벗은 후 몸을 어떻게든 접으면 들어갈 수도 있을 듯했다. 진입이냐 철수냐. 그중 하나를 결정해야 했다.
‘한번 해보자!’
도전 쪽을 선택했다. 이왕 내려온 거 최선은 다해봐야지. 1단계. 스쿠버 다이빙에서 이번엔 2단계 프리 다이빙으로. 진입 작전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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