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영웅이 너무 강함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8프레임잽
작품등록일 :
2024.08.18 17:46
최근연재일 :
2024.09.13 07:55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820
추천수 :
3
글자수 :
173,312

작성
24.09.06 07:55
조회
15
추천
0
글자
13쪽

21. 남자와 대테러부대 대장

DUMMY

“사···살았다···.”


운전실에서 이리 넘어지고 저리 미끄러져 온몸에 피가 찐득하게 묻은 승무원이 말했다.

그것은 혼잣말이었지만, 운전실 안에 있던 이들, 아니 승객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열차는 제때 감속하는 데 성공했다.

척력을 가진 붉은 광선은 열차를 꽉 조여서 바퀴의 회전을 억제했다.

동시에 구속 마법은 열차가 가진 일체의 운동 에너지를 억지로 잠재웠다.

하여, 열차는 원래 안전 속도보다 살짝 더 느리게 급선회 구간을 통과했다.


“이 정도면···”


승무원은 붉은 선이 칠해진 풍경이 다가오는 속도를 헤아렸다.

그리고 속도 계기판의 수치와 비교 및 대조하여 확인하고선 말했다.


“필요 이상으로 감속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목숨은 건졌다.

탈선한 열차가 전복되며 산에 부딪히고, 차량끼리 충돌해 떼죽음이 일어나는 것은 면했다.


“불평은 할 수 없겠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다.

다시 가속을 붙일 동력원이 사라졌다는 것.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아까 그 검은 머리의 남자는 정말로 동력차의 마석을 파괴했다.

고막을 터뜨릴 것 같은 폭음과 함께 열차의 가속이 멈췄던 것을 보면 이는 100% 확실.


“다음 정거장까지는 아직 거리가 꽤 남았죠?”


다른 승무원이 파트너의 머릿속 생각을 대신 말로 옮겨 주었다.


“네. 이대로 열차가 아예 멈춰 버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조금 곤란할 텐데···.”


만약 그리 된다면 다음 정거장에 연락해 긴급 구조대를 불러야 할 테다.

하지만 무려 14칸의 승객 열차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이송하려면 여간 만만찮겠지.


“그래도 사고가 안 난 것만 해도 어디에요. 창문이 다 깨진 탓에 좀 춥긴 하지만, 열차 안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죠.”


안도감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좋아. 이 정도면 챙길 건 다 챙겼지.’


포워드는 남자가 열차를 감속시키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소중하게 챙기고서 일어났다.

이제 자리로 돌아가서 이불로 몸을 꽁꽁 싸매고 푹 쉬기만 하면 된다.

그 뒤에 남은 것은 양념을 잘 친 기사를 써서 특종을 담은 단독 보도를 내는 것뿐.

기자 경력 최고의 고점을 맞이하며 대형 언론사로 이직이 가능할 테다.


‘흐뭇하군.’


포워드는 뿌듯한 만족감과 함께 자리로 돌아가려 발을 걸음을 뗐다.

그러자 덜컹!하고 흔들리는 열차.


“어이쿠!”


포워드는 넘어지진 않았지만 무언가 이변이 하나 더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속도가···올라간다···?”


아니나 다를까, 속도 계기판을 읽던 승무원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남자가 파괴한 마석은 열차 전체의 유일한 동력원.

따라서 지금 와서 다시 열차에 속도가 붙는다는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상식이란 상자 안에 갇힌 채 생각한다면 말이지.’


토토그라피.

남몰래 영창한 주문이 남자의 현황을 그려 주었다.


‘그래. 이럴 거라고 생각했지.’


포워드는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 흡족하게 사진에 찍힌 장면을 해석했다.


‘도대체 무슨 능력인지는 몰라도, 이렇게나 많은 열차를 굴러가게 만든다니. 개인이 가진 힘이라고는 믿기 어렵군 그래.’


바퀴를 멈췄던 붉은 척력이 이번에는 철로를 지지대 삼아 열차를 앞으로 밀고 있었다.


‘······단순히 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대통령 각하와 대등한 전력을 지니고 누구보다 혁혁한 공로를 세운 혁명전사.

하지만 혁명전쟁의 막이 내리는 것과 동시에 모든 보상을 등지고 사라져 버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헛소문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상식이란 상자 안에서 갇힌 채 생각한다면 말이다.


***


“아브닐! 정신 차리세요 아브닐!”


리미나는 거의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아브닐의 작고 둥근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코피를 두 줄기나 줄줄 흘리며 눈을 감은 아브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어떻게 된 거야 저거.”


“저 아이도 열차의 속도를 늦춘 건가?”


“아까 저 아이가 테러범의 움직임도 멈춘 것 같았는데.”


리미나는 고개를 홱 돌려서 수군거리는 승객들을 노려보았다.

피 묻은 칼날 같은 색깔을 가진 눈빛에 모두가 입을 꾹 닫았다.


“어째서···”


리미나는 아브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이런 상황에 대체 어떤 정당성이 있다는 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런 놈들을 위해 아브닐 네가 희생해야 하는 건데···!”


리미나는 아브닐에게 말해 주었다.

이들은 동지가 아니지만 적도 아니라고.

하지만 리미나 본인은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엄마 게는 아기 게에게 앞으로 걸으라고 하지만 자신도 옆으로 걷고 만다.


철컥.

차량 간 연결문이 열리는 소리.


“아브닐은 딱히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한 게 아닙니다. 희생해야 할 의무가 있던 건 더더욱 아니고요.”


남자는 몸 여기저기서 붉은빛을 내뿜어서 마치 거미줄처럼 열차에 연결시키고 있었다.

리미나는 물론이고 다른 승객들도 남자가 열차를 가감속한 주인공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아브닐은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 것일 뿐입니다. 퍽 어린아이다운 선택이라고 해야 할까요.”


남자의 목소리에서는 지친 기색이 푹 묻어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열차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느라 체력을 소진하고 있는 탓이었다.


“저는···저는 아브닐이 정의로운 삶보다는-”


“없어요 그런 건.”


남자는 쓰러진 아브닐 옆에 쓰러지듯 정좌 자세로 앉았다.

그리고 아브닐의 목 위에 다섯 손가락을 살며시 얹었다.


“인간은 모두 자신만의 행복을 좇으며 사는 생물. 정의로운 삶처럼 보이는 것은 ‘정의로워지고 싶다’는 형태의 행복을 추구한 삶에 불과. 정의로운 행동은 그 부산물에 지나지 않죠.”


남자의 손가락에서 아브닐의 목으로 생명만큼 진한 붉은색을 가진 기운이 흘러 들어갔다.


“정의라는 게 실존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실존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삶이라는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겠죠.”


아브닐의 코피가 멎었고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말씀드렸었죠. 만약 아브닐이 싸우는 인생을 선택하겠다고 한다면, 리미나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배웅해주는 것밖에 없을 거라고. 그 앞을 가로막는 것은 구원도 뭣도 아닐 터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아브닐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힘으로 싸웠다.

다만 그 적은 인간의 시대의 승자이자 주인, 강자들이 아니었다.

되레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위험이었다.


“하,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리미나 씨의 안전과 생명을 염려해서 아브닐에게 신경을 끄라고 했다면. 그랬더라면 리미나 씨는 그 말을 잠자코 따랐을 겁니까? 잠자코 따랐더라면 리미나 씨는 진정 행복했을까요?”


리미나는 말문이 턱 막혀서 주먹을 쥐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리미나?”


아브닐이 눈을 떴다.


“괜찮아 리미나? 다친 데 없어?”


너무 큰 힘을 쓴 탓에 코피까지 흘려가며 탈진했던 아이는 자신보다도 리미나를 먼저 걱정했다.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당장 보이는 바로는 신체에 별다른 손상은 없는 것 같군요.”


남자는 아브닐의 몸에 흘려보냈던 붉은 광선을 회수하고 해독했다.


“···저기, 말씀하신 음식을 가져왔는데요.”


급한 대로 닦았지만 옷 곳곳에 핏자국이 밴 승무원이 음식이 담긴 카트를 끌고 왔다.

그리고 마치 미리 짜놓기라도 한 듯 남자의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우렁차게 났다.


“아, 감사합니다. 이 정도로 힘을 쓰는 건 하도 오랜만이라서, 당 떨어지네 진짜.”


남자는 지갑을 꺼내다가 아브닐을 보고선 말했다.


“아브닐 너는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아저씨가 너희 엄마랑 꽤 친한 친구였거든. 뭐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줄 테니 말해 보렴.”


승무원은 지폐를 꺼내는 남자를 보고선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남자는 뭐든 제값을 지불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며 로시스의 얼굴이 그려진 지폐를 내밀었고, 승무원은 생명의 은인에게 돈을 받을 순 없다며 한사코 사양했다.


“그러면 제가 사는 걸로 하죠.”


“저, 저도요! 이분 덕에 저도 제 아이도 목숨을 건졌으니.”


“이 아이의 아이스크림과 도시락은 제가 사도록 하죠.”


결국 주변 승객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나서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걸.”


제29특수임무대대 대대장 세리오 오네트는 역으로 천천히 진입하는 열차를 보며 미적지근하게 마음을 놓았다.

창문이 죄다 깨져서 엉망인 꼴이긴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존경하는···존경했던 동지의 소행은 아니라고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트로넬라 대장님의 짓이었더라면 열차가 피클처럼 조각조각 썰려 있었겠지.”


세리오는 그렇게 말하고선 헉!하고 자기 입을 막았다.

그리고 혹시나 이 혼잣말을 들은 사람이 없을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부하들은 다들 열차의 정지 및 검문에 바빠서 그럴 여유는 없던 듯했다.


“정신 차려라 세리오 오네트. 그 인간은 지금 네 대장이 아니라 적이라고···!”


지금 ‘대장’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겨우 33세의 나이로 중령 계급장을 단 자신이다.

3급 혁명전사의 훈장에 부끄럽지 않게, 반역자이자 변절자인 트로넬라 네이시스를 생포해야 한단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분이 계신 건가? 저 열차 안에···?”


열차에 탑재된 통신기로부터 전해진 소식은 이미 들었다.


폭발 마법을 사용하는 테러범이 승객들을 습격했다.

그 테러범을 검은 머리의 남자가 제압했다.

그러나 테러범은 마지막 순간에 기관사 두 명을 살해했고 그 여파로 열차는 폭주했다.

하지만 테러범을 제압한 검은 머리의 남자는 동력차의 마석을 파괴하고 열차를 제어했다.


붉은 광선의 형태를 한 정체불명의 능력으로.


“설명만 들으면 완전히···”


오직 단 한 명의 인물만이 떠올랐다.

세리오가 트로넬라 ‘대장님’만큼이나 믿고 따랐던, 그랬기에 종전 후 자취를 감춘 것에 못내 서운함을 느꼈던, 그 소년.

12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선 소년이 아니라 남자가 돼 있겠지만.


“오네트 중령님은 직접 만나뵌 적이 있으신가 보군요?”


정보기관 소속 요원이 세리오 옆에 다가와선 그를 성으로 불렀다.


“아, 오셨군요.”


세리오는 남자를 떠올리자마자 그 즉시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에 연락을 취했다.

베헤른처럼 로시스가 남자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웠던 동지라면 누구나 남자를 보고 싶어 할 것이라 확신했다.

물론 로시스도 포함해서.


“맞습니다. 전쟁터에서 그분만큼 믿음직한 아군도 별로 없었죠.”


요원은 세리오의 향수를 읽고선 선글라스를 고쳐 쓰는 척하며 미소를 숨겼다.


“트로넬라 네이시스가 예고한 테러는 앞으로 3일 뒤이던가요.”


“맞습니다. 정확히는 ‘3일 이내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입니다만.”


“정부가 테러범의 요구 따위를 들어줄 이유가 없죠. 오히려 그 3일이라는 기한은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한 속임수라고 보는 게 합당할 터.”


“······아뇨.”


세리오는 혁명전쟁 때부터 거의 13년을 함께해 온 사슬 목걸이를 어루만졌다.

그 중앙에 달린 큼직한 마석에는 아픈 기억과 아린 추억이 모두 담겨 있었다.


“트로넬라 네이시스라면, 반드시 3일 후에 습격해 올 겁니다. 그 사람은 그런 성격이니까요.”


“······.”


요원은 뭐라 토를 달고 싶은 듯했지만 입보다 눈이 먼저 움직였다.

검문을 위해 줄을 선 승객들의 대열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자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총 네 명.


보라색 머리를 가진 남자, 백발을 가진 여자,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있는 아스카인 여성.


“웬 거동수상자가···”


요원은 그들을 테러와 연관된 불순분자로 본 듯했다.

하지만 세리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는 시력이 무척 좋았기에, 보라색 가발 밑에 있는 얼굴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던 것이다.


와장창!


세리오는 탁자 위 컵을 엎으면서 통신기를 집어 들었다.


“0지점에서 13지점에 전한다! 0지점에서 13지점에 전한다! 현재 울타리 쪽으로 이탈자 4명 발생! 신속하게-”


신속하게 제압할 것.

이 아니라


“모실 것! 반드시 0지점으로 모셔 올 것!”


저분만

저분만 같이 계셔 준다면

두려울 것은 무엇 하나도 없다.


세리오는 간만에 가슴에 불이 붙는 것을 느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은둔 영웅이 너무 강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매일 오전 7시 55분 업로드됩니다. 24.08.31 10 0 -
28 28. 남자와 구토 24.09.13 4 0 13쪽
27 27. 남자와 증오심 24.09.12 5 0 15쪽
26 26. 남자와 신문 24.09.11 8 0 13쪽
25 25. 남자와 갈굼 24.09.10 10 0 14쪽
24 24. 남자와 조건 24.09.09 8 0 13쪽
23 23. 남자와 구슬 24.09.08 9 0 13쪽
22 22. 남자와 각하 24.09.07 10 0 13쪽
» 21. 남자와 대테러부대 대장 24.09.06 16 0 13쪽
20 20. 남자와 선택 24.09.05 11 0 13쪽
19 19. 남자와 폭주 열차 24.09.04 12 0 13쪽
18 18. 남자와 얽매임 24.09.03 10 0 15쪽
17 17. 남자와 암살자 24.09.02 11 0 16쪽
16 16. 남자와 부수적 피해 24.09.01 14 0 15쪽
15 15. 남자와 구원 24.08.31 19 0 13쪽
14 14. 남자와 옛 친구의 딸 24.08.31 21 0 16쪽
13 13. 남자와 아이를 동반한 아스카인 여성 24.08.30 22 0 14쪽
12 12. 남자와 경찰청장 24.08.29 29 0 12쪽
11 11. 남자와 신앙심 24.08.28 23 0 13쪽
10 10. 남자와 오답 24.08.27 25 0 13쪽
9 9. 남자와 죄인의 자식 24.08.26 29 0 13쪽
8 8. 남자와 기억을 엿보는 여자 24.08.25 30 0 15쪽
7 7. 남자와 낙인 24.08.24 32 0 15쪽
6 6. 남자와 데뷔전 24.08.23 34 0 13쪽
5 5. 남자와 혁명전사 24.08.22 44 0 13쪽
4 4. 남자와 협상 24.08.21 45 0 13쪽
3 3. 남자와 싸움 24.08.20 61 1 15쪽
2 2. 남자와 의족 +1 24.08.19 91 1 12쪽
1 1. 남자와 취객 24.08.18 187 1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