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도플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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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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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작
작품등록일 :
2024.08.19 16:47
최근연재일 :
2024.09.0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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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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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66

작성
24.08.2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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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

DUMMY

"트리스!"

"으아아아!"


트리스가 데스알페라도의 사정권으로 돌격했다.

그가 높게 치켜든 방패에서 오러가 마치 장막처럼 넓게 퍼지고 그것이 겹겹이 층을 이루었다.


꽝!


"커헉!"


데스알페라도의 해머가 방패의 중심부를 때리자 폭발음과 함께 오러의 장막들이 산산이 부서졌고 트리스는 피를 토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으나 데스알페라도의 연쇄적으로 펼쳐지던 공격 또한 방패 앞에 멈춰버렸다.


"감히!"


데스알페라도가 해머를 높이 들어 올리고 다시 준비동작을 취했으나 그 잠깐의 틈만으로도 이미 상황은 역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이언 웹(Iron Web)!"

"프로즌 프리즌 (Frozen Prison)!"


올란드와 에르민의 연계가 다시 한 번 펼쳐지고 놈이 정지하는 찰나의 순간에 주연은 놈의 목 언저리로 파고들었고 클레이모어의 검신이 검붉은 지옥의 불꽃으로 일렁거렸다.

80층의 보스. 혼돈의 사제에게서 얻은 '다크 인페르노(Dark inferno)'의 힘이었다.


"좀 이제 뒈져라."


서걱.


놈의 목이 깔끔하게 잘려나가고 목에서 터져 나온 피는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 무대의 끝을 장식하는 비가 되었다.


"그 끝에 구원은 없으리라... 미망인이여..."


쏴아아아.


그 모습에 팀원들은 환호했고 말이다.


"드디어!"

"꺄아아아!"

"해냈군요!"

"...."


주연은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기 이전에 데스알페라도의 시체로 손을 가져다댔다.


[그림자 복제(Shadow Replication)를 시작합니다.]

[대상 '데스알페라도']

[대상의 '격'이 높습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복제를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는 있었다.

문제는 그 반발력에 의해 주연도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는 것.


[그림자 복제(Shadow Replication)에 실패했습니다.]


퍼벅!


시스템창과 함께 그의 전신이 마치 바위에 균열이 가듯 갈라졌고 그 균열들 사이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크윽!"


반발로 인해 신체적 손상은 물론 정신적인 데미지가 머리를 울렸다.


"형님!"

"괜찮습니까?"


일행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았으나 주연은 머리에 핏대를 세우며 갈라졌던 자신의 몸을 다시 수복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시도.

성공해야만 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소실된 몸체가 회복될 때까지 다시 긴 시간을 낭비해야만 하니까.


[그림자 복제(Shadow Replication)를 시작합니다.]


'제발. 제발...!'


찰나지만 영원 같은 침묵이 지나가고 결국 주연은 본인이 원했던 것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 복제를 완료했습니다.]

[대상의 격이 높습니다. 일부 능력치를 차단합니다.]

[종합능력치가 810 상승했습니다.]

[종합능력치: 5935]

[대상에게 특수능력이 존재합니다.]

[대상의 격이 높아 일부 특수능력을 차단합니다.]

[획득스킬. '암폭(暗爆)']




"100층에는 무엇이 있던가?"


아자긴이 물었으나 주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곳에 현자의 돌은 없더군."

"있었다면 자네는 이미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갔겠지."


술을 벌컥벌컥 마신 주연에게서는 쓴웃음만이 자리했다.


"염병할. 개고생만 실컷 한 격이지."


주연과 일행들은 100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모든 시련을 이겨냈다.

자격이라면 응당 그들에게 충분히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주연은 데스알페라도의 복제를 끝낸 뒤 검을 어깨에 이고 팀원들을 향해 웃었다.


"이제 정말 끝이 보이는 것 같다."


3년. 정말이지 지독한 시간들이었다.


"형님! 이제 원래 사시던 세계로 돌아가실 수 있겠군요."


트리스는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으나 한편으로 짙은 아쉬움이 묻어나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

주연은 아자긴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듯이 이들과도 속사정에 대한 것들을 모두 공유했고 그렇기에 그들 또한 그를 위해 더욱 열심히 달려온 처지들이었다.


"왜들 또 울상이야. 말했잖아. 내가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이 있다면 이곳으로 돌아올 방법 또한 존재할거라고. 그냥 잠깐 다녀올 거야. 그러니까 다들 서운해하지마."


녀석들. 주연은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힘들었고 또한 가장 행복했다.

연고 없는 땅에 안착해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곤 여기 있는 네 명이 유일했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그는 원래 살던 세계의 사람들보다 이곳과 이들이 더 좋아졌다.

다만 그가 원래 살던 세계로 가려는 것은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 나도 갈래."


에르민이 주연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녀석. 자기 감정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애가 이렇게 적극적이라니.

주연은 에르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비록 머리에 피가 잔뜩 엉겨붙어있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아이고 아가씨. 따라와서 감시라도 하시려고? 나 혼자 갔다 올 테니 언니랑 있어."

"그게 아니라..."

"알아."


그는 에르민의 볼을 살짝 꼬집는 것으로 수즙은 칭얼거림을 막았다.

본인이 원하는데 같이 가도 되는 거 아니냐고?


"..."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에르민은 아니었다.

예부터 말수가 적으면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이라더니.

에르민은 예쁘게 표현하면 소악마.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눈이 돌아갈 때 본성이 깨어나는 또라이였기 때문이다.


'눈돌아갈때마다 마탑이었으니 다행이지. 마을 안이었으면 대재앙 그 자체였을 거야.'


"그럼 나도 같이 갈까?"

"저도 그럼 같이 가겠습니다. 형님!"


아니야. 그거 좋은 생각이 아닌 거 같아.

소나와 크리스가 손을 번쩍 들었으나 주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는 주연씨가 이곳으로 돌아올 거라 믿고 있습니다. 이제 100층의 문을 개봉해보시죠."


올란드가 말했고 주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문으로 향했다.

이제 정말 끝이다.

주연은 문과 가까워질수록 태연한 걸음과는 다르게 가슴의 두방망이질을 견뎌야했다.

기어코 발걸음이 멈추고, 그의 눈앞에는 최종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간소한 목제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꿀꺽.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주연은 조심스럽게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고 숨 한 번 크게 들이킨 뒤 문고리를 돌렸다.


드득, 드드득. 끼익-


몇 백년간 삭았을 낡은 경첩이 뻣뻣하게 굴었으나 이내 방 안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주연의 첫 감상평은.


"응? 아. 씨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열 평 남짓의 빈방이 그를 맞이할 뿐이었다.

그의 반응을 뒤에서 지켜보던 동료들은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 채고 하나 둘 안쪽을 살폈다.


"응?"

"이게... 이래도 되나?"


그 뒤로는 방 안에 들어가 샅샅이 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고 말이다.

지난 3년간의 세월이 부정당하는 기분.

팀원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주연은 동태눈깔이 되어 초점 없이 허공을 배회하다 이내 머리를 부여잡았다.


"염병.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좀 편하게 가자. 억까좀 그만 쳐하라고!"


주연은 바닥에 주저앉았고 트리스가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형님, 우리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이곳까지 도달한 사람들입니다. 이깟 난관쯤이야 다시 극복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소나도 거들었다.


"아쉽지만 돌아가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우리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진득한 동료애. 그래. 이 맛에 주연은 지금껏 버틸 수 있었다.

동료들이 이렇게 말하는데 혼자 무너져서야 쓰겠나.

주연은 먼지를 털고 일어났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지금껏 고생했는데. 근데 왜 아무것도 없는 거지?"


주연의 의문에 마법사인 올란드는 한 가지 가정을 말했다.


"아마 마탑을 뒤덮었던 100층의 강대한 기운은 이미 오랜 세월동안 흐르고 흘러 결국 사라져버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500년 동안이나 형태를 유지한 채 기운을 흘린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안지요. 정말 마법사의 돌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주연은 영 찝찝하지만 그의 말에 수긍했다.

부정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대로 주저 앉아버리는 것 또한 그의 성격에 맞지 않았으니 허탈해도 기운을 내야했다.


"그래. 까짓것 뭐. 다시 해보자고. 근데 이제 어디서 방법을 찾지? 다른 곳을 공략하러 가야되나?"


주연이 묻자.


"조금 더 신뢰성 있는 던전을 파악하기 위해 왕국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올란드가 의견을 말하고.


"저는 글부터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트리스가 무식함을 자랑했으며.


"에휴, 트리스는 돌대가리래요."


소나가 그를 놀렸다.


"아앗, 저 돌대가리 아닙니다! 누님!"

"..."


에르민의 과묵함은 덤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탑을 내려왔다.

오랜만에 보는 바깥풍경. 거의 10개월 만에 맡아보는 공기가 폐 안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그간 마탑에서 쌓인 정신적 피로가 날아가니 부정적인 생각들마저 휘발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바깥에 나오니까 기분은 좋네."


산들바람이라. 그는 로덴 영지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마탑의 매캐한 공기에서 벗어나 다 같이 세상을 유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간다면,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으나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를 생각한다면 이마저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도 좀 나아지는 것 같았고 말이다.


"우리 일단은 왕국도서관이고 나발이고 휴양지나 가볼까? 생각해보니까 주점에서 술 마시는 거 빼면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형님, 저기 뭔가 이상한데요?"

"응? 뭐가?"


트리스가 가리킨 곳으로 일행의 눈이 향했다.

지평선 끝으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니, 하늘에 태양이 떠있는데 저건 뭔..."


그것은 폭발이었다. 그것도 모든 대지를 집어삼키는 초월적인 폭발.

그것이 몸집을 불려 일행들이 있는 곳까지 번져들어 일행들을 집어삼키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젠장. 그렇게 죽었다고 생각했더니 이곳 마탑 5층에서 되살아나는 거 아니겠어?"


꿀꺽. 꿀꺽. 주연은 술로 병나발을 불었다.

그의 속상한 마음이 어느 정도일지 아자긴은 감도 잡기 힘들었으나 간접적으로나마 전달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저나 폭발이라.


"혹시 폭발의 원인에 대해 짐작이 가는 것은 없나?"


아자긴의 물음에 주연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전혀. 우리는 마탑에만 관심을 두었지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했으니까."


그나저나 지평선 끝에서부터 뒤덮어오는 폭발이라니.

그런걸 인간이 만들어 낼 수나 있을까?

적어도 아자긴의 지식수준에서 보자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 년 전에 존재했다는 고대병기일까? 아니면 신의 징벌이라도 될까.

그 어느 것 하나 현실성 없는 추측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불가했다.

그리고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 폭발은 예견되어있다는 것.


"그 폭발을 찾아 막지 못하면 3년 뒤 똑같은 일이 벌어지겠군."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주연은 취기가 오르는지 바닥에 반쯤 뉘인 몸을 이리저리 휘적거렸다.


"소나랑 에르민은 지금쯤 마탑의 어딘가에서 두 손 꼭 잡고 다니고 있겠지. 트리스녀석은 지방에서 상경하고 있을 테고. 올란드는 가문 어르신들과 작별을 나누고 있으려나."


주연은 허탈하게 웃었다.

회귀는 그저 과거로 돌아왔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세계로 처음 떨어졌을 때처럼, 이곳에서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독해도 너무 지독한 이별이었다. 생생한 추억들이 머릿속에 가득한데 그 기억들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가봐야 냉랭한 시선이 돌아올 테니까.

다른 건 다 견뎌낼 수 있으나 그 시선만큼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저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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