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도플갱어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헬작
그림/삽화
헬작
작품등록일 :
2024.08.19 16:47
최근연재일 :
2024.09.05 21:08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318
추천수 :
1
글자수 :
92,466

작성
24.08.27 10:00
조회
16
추천
0
글자
12쪽

9

DUMMY

그리고 나머지 칸에 줄을 그어 내밀자 접수원은 사무적인 얼굴로 종이를 받아들어 뒤편의 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에 돌아온 종업원은 조주연이라는 이름 석 자와 'F'라는 글자가 새겨진 신원확인증을 건넸다.


"길드시스템은 아직 모르실테니 간단하게 설명 드릴게요."

"아니요. 설명은 괜찮습니다. 아는 분이 모험가라 잘 알고 있거든요."

"그렇군요. 그럼 의뢰나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 물어봐주세요."

"감사합니다."


주연은 접수원과의 인사를 끝내고는 게시판 앞으로 걸어갔다.

오후에 방문한 터라 의뢰가 그리 많이 붙어있진 않았다.


[산군의 땅 '리워홀'의 토벌]

[레더넌트 국경 지원]

[천공의 새 '요르나리온'의 토벌]

[심해 미궁에 대한 탐사]


게시판에는 제법 굵직한 몇 개의 의뢰가 보였으나 최소 참가등급은 A급.

그밖에도 B급부터 D급까지 다양한 의뢰가 있었으나 주연이 확인할 곳은 게시판의 벽보가 아니라 그 아래 선반에 대충 떨어져있는 종이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대충 집어들었고 말이다.

일정 의뢰를 달성해야 D등급의 승급을 치룰 수 있는 길드의 시스템상 당분간은 지겨워도 싱거운 의뢰들을 도맡아 처리해야했다.

그것을 들고 카운터로 찾아가니 접수원이 내용을 확인했다.


"용병의뢰네요. 자세한 내용은 중개인을 배정 해드릴 테니 그분께 들으시면 돼요. 이쪽으로 따라오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접수원은 라운지 쪽으로 걸어가 테이블에 앉은 중개인에게 용지를 내밀었고 그는 주연을 보며 앞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가벼운 인사도 생략한 채 설명을 시작해나가는 것이 전형적으로 업무에 찌든 사무원의 모습이었다.


"의뢰내용에 대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용병의뢰라고 되어있으나 주로 하시게 될 일은 의뢰인분의 짐꾼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의뢰인이 업무를 보시는 장소까지 동행하신 뒤에 의뢰인께서 업무를 마치시는대로 함께 돌아오시면 되는 겁니다. 일정은 일주일에서 열흘정도이고요. 혹시 궁금하신 점 있으신가요?"

"언제 출발합니까?"

"의뢰인께서는 인원이 구해지는 대로 출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의뢰를 수락하신다면 아마 조금 뒤에 바로 출발할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주세요."


중개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뢰인은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상단건물에 머무르는 중이었고 중개인은 곧바로 의뢰인을 모시러 간 것이었다.


"로말리우스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럼 곧바로 떠나실까요?"


그렇게 주연은 첫 임무를 떠났다.


"저는 마법사길드소속 마법사입니다."


로말리우스는 들판을 걸으며 말했는데 그걸 굳이 밝히지 않아도 고깔모자와 망토가 명함이긴 했다.

모험가는 주연 한 명이 아니었는데 주름이 자글자글한 영감이 한 명 더 있었고 그 영감의 뒤로 수인아이 하나가 따르고 있었다.


"지금 가려는 곳은 밀림입니다. 그곳에서 생태연구를 해야 하거든요. 다만 밀림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캠프를 설치하고 밖에서만 연구를 할 테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법사길드의 생태연구는 밀림 내 마물의 밀집도, 서식지 변화 등 혹시 모를 위협이나 환경연구를 위해 매 분기마다 주기적으로 하는 행사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법사의 말대로 위협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고 만약 위협이 있더라도 주연에게 일반적인 몬스터쯤은 귀여운 수준에 불과했다.


'에효. 술이나 먹고 싶다.'


주연은 출발한 직후부터 따분함을 느꼈다.

등급을 올리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이정도의 의뢰는 수준이 낮아도 너무 낮았다.


'어쩌냐.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것이지.'


한 번에 등급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으련만.

모험가길드는 신원조사 하나 없이 쉽게 모험가로 등록해주는 만큼 오러 마스터의 할애비가 오더라도 처음에는 무조건 F등급부터 시작이었다.

다시 말해 등급이란 실력에 대한 반증이기도 했으나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의 증표와도 같은 것이다.


"벌써 지치는 거냐? 에잉, 비실한 놈. 엄살 떨지 말고 잘 따라와!"


걸걸한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바람에 주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가베라는 영감이라고 했나? 인상만큼이나 성격이 더럽구만.'


흰머리와 흰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 수인아이를 타박하고 있었는데 보조라고 부리고 있는 것이 반나절밖에 걷지 않았는데도 벌써 비척거렸으니 여간 답답한 모양이었다.

검은 귀와 검은 꼬리. 그 두 가지가 달렸다 뿐이지 인간과 똑같은 외형을 한 아이를 구박하는 모습이 보기에 영 거슬렸으나 그렇다고 주연이 나설 일이 아니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지 않는가.

이곳에는 이곳만의 법도가 있었고 주연이 여기서 따지고 들어봤자 미친사람소리나 들을 게 뻔했다.


'그래도 그렇지. 성인도 아니고 중학생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아이에게 저래도 되나?'


그런 말을 속으로 삼킬 뿐이었고 흘겨보던 시선도 이내 거뒀다.

분명히 주연의 기준에서 상식적인 광경은 아니었다.

만약 이곳이 원래 살던 세계였다면 길에서 개를 잡아다 괴롭히는 망나니새끼는 경찰에 신고하고 강아지는 입양을 하든 보호센터에 맡기든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다른 세계.

유기견 보호센터같은 곳은 없으며 애초에 수인은 소유물에 불과했으니까.


"에잉,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그 후로도 밀림으로 향하는 내내 영감의 불만 섞인 소리가 종종 들렸다.


총 삼 일간을 걸어 드디어 밀림 앞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주연에게 할 일은 없었으나 반대로 영감과 수인은 도착해서야 더욱 분주하게 움직였다.

영감이 도끼를 들어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패기 시작하는데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속절없이 쓰러진 나무는 토막을 내고 수관의 결을 따라 쪼개내어 판자가 만들어지면 수인이 그 조각들을 주워다가 한쪽으로 옮겼다.

조각을 옮긴 곳에는 세계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높이 솟은 거목 하나가 고고히 서있었는데 도끼질을 끝마친 영감이 이번에는 그 고목에 쇠뇌를 발사해 훅을 걸었고 총 두 발을 발사한 뒤에는 밧줄 하나를 잡아 암벽등반이라도 하듯 줄기를 올라탔다.

전반적으로 능숙하게 진행되는 작업을 보니 그냥 꼬장한 노인네가 아니라 제법 실력 있는 기술자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치치. 판자를 묶어라."


영감이 외치자 아래에서 대기하던 수인이 나머지 하나의 밧줄에 판자를 묶었고 영감은 그것을 끌어올린 뒤에 등에 인 보따리에서 망치와 못을 들어 거목에 박았다.


뚝딱. 뚝딱.


박아놓은 판자들이 흔들리거나 뽑히지 않도록 지지대까지 연결하고 나자 사람 하나는 충분히 누울 공간이 만들어졌고 그곳에 미리 가져온 줄사다리를 박아 바닥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작업은 완료였다.

그 모든 작업이 단 대여섯 시간 남짓으로 끝났고 말이다.


"다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편하게 대기해주세요."


마법사는 사다리를 올랐다.

하늘을 보니 구체 같은 것이 마법사의 머리 위에서 부유하고 있었는데 저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밀림을 관찰하는 것인지 주연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 뒤부터는 마법사가 준비한 육포로 허기를 달래고 거목에 기대있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 따분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아마 주연만이 따분한 시간이었고 나머지는 저들마다 바빠 보이긴 했다.


"치치! 이 망할 녀석! 도끼를 머리 위까지 들어야 한데도! 허리를 사용하고 발 간격은 더 벌려라! 정 중앙에 정확히 꽂아야 돼. 하루 종일 패고 있을 셈이냐!"


아마 이곳으로 몬스터가 온다면 그 원인은 저 영감일 것이 확실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잠이 들기 전까지, 영감은 치치라는 수인을 종일 못살게 굴었으니까.


"와, 미친 영감탱이. 아주 애를 죽여라. 죽여."


예전에 수인에게 못 볼꼴이라도 당했나?

근처에서 그 광경을 그저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여간 곤욕이 아닐 수 없었다.

오죽하면 나무 위에서 영영 내려오지 않을 것 같던 마법사마저도 내려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수인 그냥 제게 파시겠습니까?"

"뭐요? 얘는 파는 애가 아닙니다. 억만금을 줘도 안 팔아요! 마법사님은 신경 끄시고 본인 할 일이나 하십쇼!"

"수인이어도 아이인데 너무 심하신 건 아닌지..."

"너무 비실해서 피죽도 못 얻어먹을까봐 그럽니다! 남의 일 신경 쓰지 말라니까요?"


깡패가 따로 없었다.

어쩌면 야만 거리의 인간들보다 더 악랄한 축에 속하지 않을까?

마법사는 몇 번 더 말려보다가 이내 포기한 채 다시 올라갔고 영감은 그 뒤로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청을 올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꼴도 며칠 뒤면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애초에 마법사가 밀림을 조사하는 일정은 이틀이었으니 내일이면 다시 돌아갈 것이고 그 기간만 참아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주연은 처음으로 수인과 대화를 나눴다.


수인 아이가 낮에 열심히 팬 나무는 땔감이 되어 모닥불을 지폈고 영감은 목청을 울리느라 지쳤는지 그새 잠이 들어있었다.

치치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멍하게 있었고 말이다.


"힘들어?"


주연이 건넨 첫마디였다.

이미 낮에 죽을상을 하고 있는 것을 봤는데도 이런 말을 꺼내다니.

그는 사실 빈말로라도 누군가를 위로해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아이가 측은해 말을 걸긴 했으나 영 어색했고 말이다.

치치는 그런 주연의 물음에 흠칫 놀랐다가 이내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어색한 물음에 형식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침묵.

괜히 말을 걸었다가 분위기만 이상해져버렸다.

주연은 답답한 공기에 가죽주머니를 꺼내 벌컥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것은 이곳으로 향할 때 챙겼던 술주머니였기 주연은 현생에서는 이미 알콜중독자나 마찬가지가 되어있었다.


"한 잔 할래?"

"괜찮습니다."


그래. 애들은 마셔서 좋을 게 없지.

주연은 다시 한 모금을 마신 뒤 입가를 소매로 닦았다.


"크아. 죽이는 맛인데 말이야."


주연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반짝이는 모래들을 검은 캔버스에 뿌려놓은 모양새였다.


"너는 고향이 어디야?"

"... 없어요."

"고향이 없다고?"

"저는 태어난 곳이 야만 거리의 철집이었다고 했어요."


철집이란 투기장의 수인들을 가둬놓는 우리의 속어였다.

주연은 정확히 철집이 무엇인지는 몰랐으나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쩝. 저 영감이 그래?"

"아니요. 제 원래 주인님이 말해주셨어요."

"주인님은 무슨."


태어나서부터 노예 신분이었기에 그런 것일까.

치치에게서는 현재 본인의 신세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지금 삶에 만족해?"


치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대답할까. 대책 없는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주연은 치치가 원한다면 영감에게서 구해줄 생각이 있었다.

임무가 끝나고 마을로 돌아가면 영감이 잠에 들었을 때 치치를 집에서 빼오는 것이다.

지금의 주연에게 그쯤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남쪽 사막에는 수인들만 사는 땅이 있다고 들었으니 이것을 계기로 남쪽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만족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건 제 삶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가베님께 실망시켜드리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이에요."


지금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너무 괴롭힘을 당하더니 뇌가 살짝 간 것일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정신적 고통을 겪다보면 그 상황들을 합리화하기 시작한다고.

예를 들어 고통을 양식처럼 받아들인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너는... 쩝."


너는 지금 착각을 하고 있는 거야.

주연은 그런 말을 하려다 이내 술주머니를 들어 한 모금에 말을 삼켰다.

주제넘은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주제넘은 소리가 맞는지도 의문이었으나 옛 말에 이런 말이 있었다.

'해도 되나' 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지 말고 '해야 되나' 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말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연은 그 뒤로는 치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취기를 베게삼아 잠에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회귀자는 도플갱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17 24.09.05 3 0 11쪽
17 16 24.09.04 6 0 13쪽
16 15 24.09.03 5 0 13쪽
15 14 24.09.02 6 0 12쪽
14 13 24.08.30 8 0 11쪽
13 12 24.08.29 8 0 12쪽
12 11 24.08.28 11 0 12쪽
11 10 24.08.27 12 0 11쪽
» 9 24.08.27 17 0 12쪽
9 8 24.08.26 16 0 11쪽
8 7 24.08.25 15 0 12쪽
7 6 24.08.24 21 0 12쪽
6 5 24.08.23 20 0 13쪽
5 4 24.08.22 24 0 11쪽
4 3 24.08.21 26 0 12쪽
3 2 24.08.20 30 0 13쪽
2 1 24.08.19 43 0 11쪽
1 프롤로그 24.08.19 48 1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