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도플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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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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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작
작품등록일 :
2024.08.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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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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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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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DUMMY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무사히 연구를 마칠 수 있었어요."


모험가길드로 돌아온 마법사는 사람 좋은 얼굴로 작별의 인사를 한 뒤 떠나갔고 주연은 카운터에서 의뢰대금을 받고 나왔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소요해 벌어들인 돈은 수수료를 차감하고 총 36실버.


"어후. 썅. 벽돌 나르기의 반값이네."


이미 돈이라면 터틀베어들을 싹 잡아다 팔은 돈이 5000실버가 넘기에 걱정할 것은 없었으나 그래도 영 께름칙한 금액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산할 때 보니 영감은 꽤나 두둑하게 받았던 것 같았는데 아마도 의뢰내용이나 해당 등급도 다를 것이 뻔했다.

주연은 그 뒤로도 F등급의 의뢰를 수행해나가며 지루해서 지난한 시간들을 버텨냈다.

의뢰를 받고 수행을 하고 저녁에는 술을 퍼마시고.

그게 그의 정형화된 일상이었다.

길드에 갈 때면 한 가지 거슬리는 것이 있었는데 영감과 치치가 꽤나 자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길드게시판으로 향하니 영감과 치치가 서있었다.

참으로 이상했다.

주연은 매번 오후가 되어서야 슬금슬금 나오는데 보통은 아침부터 일거리를 받아 떠나지 않나?

그것이 매번 신경 쓰여 이번에는 의뢰를 바로 집어들지 않고 라운지 바에서 발효주 한 병을 주문해 테이블에 앉았다.

직원이 글라스잔과 발효주를 놓고 떠나자 술잔 따위는 옆으로 치워버리고 능숙하게 뚜껑을 딴 뒤에 빈속에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높은 도수에 위장까지 단번에 뜨끈한 기운이 흘러드니 어젯밤의 숙취로 몽롱하던 정신이 살짝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이봐."


옆테이블에서 마찬가지로 술을 마시던 대머리의 남자가 건넨 말이었다.


"지난번에 '로렌의 하프'에서 봤었는데, 나 기억 안 나?"


로렌의 하프라. 거기서 같이 퍼마시던 술주정뱅이들이 한둘이어야지.


"필립이네. 자네도 모험가일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군."

"아, 필립. 그런데 무슨 일이야?"

"같은 술주정뱅이를 보니 반가워서 말이야."


필립은 자신의 술컵을 들어 허공에 맞대는 동작을 취했고 주연도 그에 호응해 허공에 병을 올린 뒤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런데 저 영감님 쪽은 왜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는 거야?"

"그냥. 뭐 하는 건지 궁금해서."

"영감? 아니면 수인?"

"둘 다. 매번 올 때마다 마주친단 말이지."

"그게 궁금했단 말이야?"

"혹시 이유를 알아?"


필립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자신의 빈 술컵을 들었다.

주연이 자신의 술병을 들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고 빈 잔에 주연의 술이 콸콸 채워졌다.


"꿀꺽. 꿀꺽. 크으. 독한 술이구만."

"그거 비싼 거야. 그러니까 이제 얘기해봐."

"저 둘이야 이곳에서 유명해. 저 영감 심술 그득한 거 보이지? 몇 주 전부터 매일 이곳에 찾아와 이곳 길드장을 상대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더군."

"농성?"

"그래. 자기가 의뢰를 나갈 때마다 저 수인을 보조로 쓰고 있는데 왜 몫을 더 쳐주지 않냐는 게 그 이유야."

"줘야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주연은 오히려 길드에서 값을 지불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으나 필립은 부정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이 친구야. 이곳은 모험가길드야. 모험가만이 일을 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정당한 보수를 받는 것이지. 저 영감의 속내가 뭔지 알아? 만약 보조도 보수를 받게 하고 싶다면 같은 모험가등록이 된 보조를 쓰면 돼. 근데 저 영감은 수인을 이용해서 보조에게 지급되는 값마저도 자기가 홀랑 먹어버릴 생각인 거라고. 진짜 저렇게까지 악독한 인간이 또 있을까 싶어."


필립은 신경질적으로 말한 뒤에 술을 들이켰고 그 말을 듣고 보니 주연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인은 모험가등록이 안 돼. 그렇다보니까 몇 주 째 저 수인을 모험가로 등록해달라고 저러고 있는 거야. 어느 날은 길드장실에 쳐들어가서 난리를 치기도 했다더라고. 크큭."


그 이후에도 필립은 영감에 대한 안 좋은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주연이 지난 번 의뢰에서 보았던 것처럼 영감이 수인을 두고 지독하게 굴던 모습을 수많은 모험가들이 보았고 그것 때문에 뒤에서 욕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그 뒤로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이 이어지다 그날 하루가 갔다.


주연이 이번에도 의뢰를 완수하고 돌아가는 길. 거리는 깔끔하고 도로도 타설이 말끔했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행색 또한 제법 화려한 것이 척봐도 부촌이었다.

그가 향하는 여관도 거리만큼이나 시설이 좋은 곳이었는데 먹고 마시고 자는 것에 그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저번 생에는 판자촌과 야만거리에 트라우마가 걸릴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꿀꺽. 꿀꺽.


주연은 가죽주머니에 담은 술을 벌컥벌컥 마시며 휘적휘적 걸었다.


"크으, 술 맛 죽인다."


아무래도 그는 이번 생에는 술주정뱅이가 되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사람 같았다.

눈을 뜨자마자 술을 입에 대는 것은 기본이요 의뢰를 나가서도 틈만 나면 의뢰자 몰래 혼술을 즐겼으니 말이다.


"술이 최고지. 암! 그렇고말고!"


그가 이렇게 된 이유.

지나질 정도로 사무치는 외로움이 그 이유라면 누군가는 이해해줄 것인가.

처음 이 세계에 떨어질 때도 외로움은 있었으나 그때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고 그것이 희망으로 작용했었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진한 우정의 동료들을 얻었고 그들과 생사고락을 넘나들며 의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

함께하던 이들의 부재는 나아갈 힘을 잃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나누면서 회의를 나누는 건 어떨까요?"

"그래, 지난번 마탑공략의 실패원인을 서로 공유해보자고."

"좋습니다. 누님!"


주연은 발길을 우뚝 멈춰 세웠다.

익숙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소나와 에르민, 올란드와 트리스가 함께 길을 거닐고 있었다.

그들은 주연을 모른다. 당연하다. 지난 회차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혼자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주연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 것은 그들이 알아볼까봐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마음에 대한 방어기제일 뿐이었다.

그들은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 주연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주연은 잠시 그렇게 서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혹자가 그의 행동을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인생 아자긴을 처음 만나 그간의 이야기들을 풀었듯이 그들에게도 똑같이 다가가면 되지 않겠냐고.

그러나 아자긴과 그들은 염연히 달랐다.

아자긴은 그저 지나가는 말벗에 불과했고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든 말든 혹은 별안간 서로 험한 말이 오가거나 심지어 적이 되더라도 별 상관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저들은 가족이었다.

엄밀히 따져서 지난 1회차의 동료들이 가족이었으며 주연이 생각하기에 2회차에서 보이는 저들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모든 추억을 공유했던 그들은 이미 죽었다.

이해할 수 있겠나? 마치 도플갱어를 마주한 것과 같은 그 간극에서 오는 이질감을.


터벅. 터벅.


주연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걸었다.

그리고는 다시 골목길로.


우뚝. 하고 멈춰선 곳은 조금 전 그들이 들어간 식당 앞.

주연은 다시 걸었다.

골목으로 들어서고 모퉁이를 돌고 그리고는 다시 골목길로.


우뚝!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주연은 다시 골목길로 들어서다가 멈춰선 뒤에 신경질적으로 술을 입에 댔다.


벌컥. 벌컥!


이제 보니 술맛이 더럽게 좋지 않았다.

그는 한참이나 우뚝 멈춰서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한참동안을 멍하게 땅만 쳐다보았다.


"..."


그러던 그가 갑자기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식당이었고 이어서 한숨을 푸욱 내쉰 뒤에는 문을 벌컥 열어버렸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저 취기가 올라서일 수도 있겠으나 지금 하는 모든 행동들은 다분히 충동적일 뿐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문을 너무 세게 열어서 일까.

식사를 즐기던 사람들 몇몇이 주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이 보기에 그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러 가는 꼴처럼 보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에르민도 함께였다.


우뚝!


주연은 그들의 앞에 멈춰섰다.

이내 넷의 시선이 모두 주연에게로 쏠리고.


"난..."


주연은 무언가 말하고 싶었으나 입을 떼지 못했다.

뭐라고 말해야할까. 인사부터 할까?

그 다음에는. 어떻게.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려면 지난 일들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차분히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말을 할까?

미친놈으로 보진 않을까?

그러나 이런 모든 걱정들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에르민이 주연에게 안겼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주연은 놀랐으나 뿌리치기보단 가볍게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편안했다. 반가웠다. 지금껏 가슴을 짓누르던 거북한 모든 것들이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주연은 웃었다.

그리고 첫 마디를 꺼냈다.


"내가 너무 늦었지? 반가워."


다섯은 그날부터 함께했다.

주연에게 안겼던 에르민. 그녀의 행동에 주연은 놀랐었고 혹시나 지난 회차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으나 아쉽게도 기억하는 이는 없었다.

그렇다면 에르민은 왜 안겼던 것인가.

그것은 그날 저녁 테이블에 앉은 다섯 모두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당신, 이상하게도 오래 전부터 알던 것 같단 말이지."


소나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연을 살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물이 나올 만큼 반가운 마음이라고 해야겠지만.'


소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고.


"형님! 어? 아니. 이상하게 형님이라는 말이 입에 착착 감깁니다. 혹시 저보다 형님이십니까?"


트리스는 머리가 고장 난 것처럼 행동했으며.


"초면에 친근감을 심어주는 마법이라. 고대 주술사들이 향수의 형태로 만들어낸 아티팩트를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만..."


올란드는 상황을 논리적으로 이해해보려 노력했고.


"..."


에르민은 주연의 옆에 꼭 붙어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기억은 없어졌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느꼈던 감정들은 고스란히 남아있으니.

오크통의 포도주가 모두 비워졌더라도 향기는 남아있는 것처럼 주연은 그들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기억을 잃은 회귀자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주연은 이러한 광경에 입술을 씰룩거리다 이내 웃음이 터져버렸고 말이다.


"당신! 뭐가 웃기다고 웃는 거약!"


소나가 버럭 화냈으나 주연은 배꼽까지 잡아가며 한참이나 웃었다.


"아, 미안하다. 너희들이라면 이렇게 반응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한 치의 오차도 없어서 말이야. 크큭."

"형님! 혹시 저희를 어떻게 알고 계신건지 말씀해주실 수 없습니까?"


트리스는 형님이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물음에 주연은 웃음을 그치고는 똑바로 그들과 눈을 맞췄다.


"지금부터 내가 해줄 이야기는 믿기 힘들 지도 몰라. 하지만 장담할게. 너희들에게 해줄 말은 거짓말이 아니야.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무려 3년 전..."


그들은 그날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지새도록 마신 술은 달콤했으며 그 뒤에는 며칠간 같은 여관에 머물며 함께 식사하고 함께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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