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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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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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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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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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올곧은 의지 3

DUMMY

구름에 가려져 달빛도 없이 어둑한 골목 속에서 자영이 땀을 흘리며 성한을 말린다. 근처를 이잡듯 뒤지는 놈들이 그들을 찾아내려 혈안이다.


“어쩌시려고 그래요?”


군용 옷을 입은 작은 체구의 자영이 소매로 이마를 닦으며 성한에게 낮게 말한다. 주변을 살피는 그의 팔을 꽉 잡는다.


“어쩔 수 없잖아. 너라도 도망쳐. 빨리!”


함께 돌아가면 될 것을 고집을 부린다. 성한이 슬며시 웃으며 자영을 바라본다. 성한은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해 그나마 방수 소재인 옷도 위아래 모두 너덜 해지고 더러워져 회색에 가깝다.


“자영아. 만난 시간은 짧지만 그래도 덕분에 무섭지 않았다. 고맙다.”


[힐링 스킬 – 전수자 조건이 달성되었습니다. 확인하십시오]


[힐링 스킬 – 전수 조건 인원 제한 0/1]


성한의 목울대가 울렁이며 갑자기 뜬 스킬창을 확인한다.


[힐링 스킬 – 지정한 대상이 전승자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전수하시겠습니까?]


커다랗게 떠진 성한의 눈이 빛이 난다. 자영의 손을 꽉 쥔다.


“아저씨?”


[힐링 스킬 –전승자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전승하시겠습니까?]


[강성한이 힐링 스킬을 전수합니다. 받으시겠습니까? 본 스킬은 시전자 자신에게만 사용 가능한 스킬입니다.]


“어서 빨리!”


울먹이는 자영의 눈앞에 뜬 창이 일렁인다. 단호한 성한의 말이 들린다.


[힐링 스킬을 전수받았습니다. 힐링 스킬 전승자가 됩니다.]


“어서 가. 다시 가서 사람들에게 전해. 난 전수할 수 있는 인원이 1명이다. 모두 그렇지만은 않겠지. 전수자의 조건, 전승자의 조건을 확인해. 알겠지? 이 스킬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어.”


“···”


입을 틀어막아 흘러내린 눈물이 손등을 타고 흘러내린다. 자신은 마음먹으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치면 눈앞의 사람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고 있다. 인정사정없는 그들이 해온 짓을 모를 리 없다.


그나마 자신은 나은 편이었다. 스킬이 생기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외부로 나와 정찰을 감행했다.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흑..”


그가 어떤 심정으로 자신을 보내려는지, 그런 그 결심을 자신의 고집으로 무의미하게 만들 수 없다. 성한의 손을 꽉 잡았던 따뜻한 손이 떨어지며 자영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


철퍽. 다급히 내딛는 발에 밟혀 물이 사방으로 튄다. 고요했던 물웅덩이에 비친 달이 사정없이 조각나 흩어진다.


“허억. 헉..”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른 성한이 이를 악물고 달린다. 건물이 무너져 폐허가 된 구역을 지나자 조금 큰 건물들이 밀집된 곳이 눈에 들어온다. 빠르게 방향을 바꾼다.


좁은 골목길의 새카만 어둠이 손짓한다. 본능적으로 발소리를 줄이며 그 어둠을 파고든다.


탁탁탁


움직임이 용이한 검은 옷을 입은 추적자들의 재빠른 발소리가 목을 조일 듯 가까워진다.


심장이 의지와 다르게 터질 듯 쿵쾅거린다. 촉각을 곤두세운다. 거칠어진 숨소리가 새어 나올까 입술을 깨문다.


시간 벌기를 하며 도망쳤다. 자영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스킬을 쓰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그녀가 멀어질 때까지 심장이 튀어나오도록 뛰고 또 뛰었다.


스킬도 소용없는지 멀어졌다 숨을 돌리면 어김없이 바짝 따라와 쫓기 시작한다. 다시 들려오는 여러 사람의 발소리. 눈을 질끈 감는다. 깨문 아랫입술에 피가 흐른다. 제발 못 찾아내길. 추적자들의 발소리가 뚝 그친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정수리까지 치솟는다.


**


“끄으윽..”


발버둥 칠 힘조차 남지 않아 축 늘어진 남자. 짐짝처럼 질질 끌려 내동댕이 쳐진다.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진다. 김은효가 인상을 쓰며 부하를 쳐다본다. 짙은 녹색의 정장 위에 걸친 검고 얇은 코트 끝이 펄럭인다.


“적당히 좀 하지.”


“···”


쯧. 혀를 차며 부하를 노려본 은효가 남자를 내려다본다.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올린 까만 머리를 기울인다. 그가 발밑에 엎어져 몸을 비틀며 꿈틀대더니 뭔가를 퉤 뱉어낸다.


“으으! 독한 놈이네.”


남자가 토해낸 피가 자신의 검은 구두에 튈까 질겁을 하며 한발 물러난다.


“그냥 죽여.”


성한이 벌러덩 몸을 돌리더니 김은효를 노려본다.


“버텨봐야 소용없어. 고통이라도 없는 게 낫지 얼른 스킬을 쓰면 되잖아. 멍청하게 버티긴. 다 알고 있다니까? 광고하고 다녔잖아.”


성한이 고통에 쿨럭이며 몸을 이리저리 비튼다.


“쉽게 죽여주지도 않을 거야. 강성한. 어서 힐링 스킬 써보라니까?”


건조한 말을 하는 은효를 노려보지만 맞은 부위가 쿡쿡 쑤셔온다.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선택한 길이었다. 안전지역을 알리면서 만난 사람들과 스킬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아왔다.


“틀렸어. 난 아니야.”


“그럴 리가. 연우야. 네말이 맞니? 얘 말이 맞니?”


근처에 서있던 부하들 중 지명을 하며 손가락을 까닥인다. 은효에게 다가오는 연우의 걸음이 머뭇거린다.


“틀림없습니다. 힐링 보유자로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보스의 물음에 연우가 잽싸게 대답한다. 은효가 벌벌 떠는 연우를 보며 입꼬리가 올라가며 피식 웃는다.


“이상하네. 다치면 치유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얜 왜 못하는 거지?”


“글쎄요. 무슨 제약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커먼 그림자처럼 뒤에선 키 큰 비서가 차분히 말한다. 내용을 듣더니 미간을 좁히며 고민에 빠진다.


“다리라도 부러 뜨러봐.”


여럿이 성한을 잡아 포박한다. 입에 천 쪼가리가 거칠게 쑤셔 넣어진다.


콰드득!


“끄아아아!!”


[힐링 스킬 – 부상을 입었습니다. 자동으로 복구합니다.]


스킬창이 눈앞에 뜨며 자동으로 발동하자 결국 눈을 꾹 감는다. 다리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순간 몰려온 고통의 감각은 기억에 새겨진다.


끅끅거리며 겨우 숨 쉬는 소리가 새어 나오지만 김은효를 노려보는 성한을 감흥 없는 눈으로 바라보며 비서에게 말한다.


“맞네. 그분에게 조만간 찾아뵙겠다고 연락드려라.”


“네.”


**


“안 됩니다.”


“왜 안되는데요? 갑자기 이렇게 막아서면 곤란한데요?”


엉망이 된 3구역 시설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민영의 눈썹이 올라간다. 처음 안내를 해준 검은 반팔의 근육남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상당한 체격과 풍겨지는 위압감은 여전하다.


“어디로 가십니까?”


“그걸 왜 궁금해하시는데요?”


“저희도 가겠습니다.”


“그게 무슨..”


해인도 옆에서 바짝 긴장하더니 민영의 뒤로 살짝 숨는다. 경계심이 극도로 날이 서서 남자들을 바라본다. 여자도 몇몇 눈에 띄지만 그래도 경계를 늦출 수 없다.


“그렇게 보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 여기서 그의 지시를 받고 일했던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요?”


처음에 말을 편히 했던 사람이 존대를 하니 어색하지만 일단 넘어간다. 잠깐이었지만 적대심은 없었던 사람이라는 것은 기억한다.


“그게.. 테스트하던 날 봤습니다. 그 슈트 같은 거 입으시고..”


“아.. 근데 지하에도 갈 수 있었어요? 거기 정해진 인원만 들어갈 수 있는 데라고 영운이 그랬었는데요?”


“그거야 몰래 내려갔죠. 소개가 늦었네요. 저희 모두 전직 군인들입니다. 지금이야 뭐 용병 비슷한 거라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그리고 가시는 곳으로 함께 가는 것으로 모두 동의했습니다.”


“아.. 그래요.”


숨이 섞인 민영의 대답을 들으며 어색한 듯 웃는 근육남을 보더니 빙긋 웃는다. 역시 신경 쓰인다.


“아저씨. 그냥 편하게 해요. 처음에 안 그랬잖아요.”


웃는 민영의 얼굴을 보더니 굳어진 남자의 표정이 조금은 풀린다.


“크흠. 그래. 난 장석준. 여긴 최승희, 이정후. 셋이서 군인들을 모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저기 일어난 난리 통에 힘없이 죽을 뻔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있을 수만은 없더라고..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다 보니 여럿이 모이게 되었다. 열 명 조금 넘네.”


승희와 정후가 손을 한 번씩 들어 보이며 웃는다. 거친 생활을 해온 사람들 치고 그들의 밝은 표정을 본 민영도 같이 웃는다.


“김민영이에요. 잘 부탁해요.”


민영이 성큼 다가가며 손을 내밀자 석준이 웃으며 두꺼운 손으로 작은 손을 감싸 쥔다.


“내 생각이지만 네가 가는 방향으로 뒤따라가마. 연락은 이걸로 하고. 어차피 우리는 무리 지어 다니니 괜찮지만 일반인이 섞여 있으면 여러모로 눈에 뜨일 것 같아서.”


“괜찮네요. 5구역으로 먼저 이동할 생각이에요. 8구역까지 가려고요.”


그가 건넨 이어폰 두 개를 받으며 끄덕인다. 하나는 해인에게 넘겨준다.


“이동 중에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시고요. 정보 얻으시면 공유 부탁드려요. 저도 그렇게 할게요.”


“내가 할 말을 다 해버리네. 하하.”


껄껄 웃는 석준을 보며 민영이 그럼 가요 손을 흔들어 보이며 멀어진다. 코트 자락이 펄럭이며 사라진다. 소매 사이에 반짝이는 은색 빛이 그들의 눈에 새겨진다. 민영을 따라 해인도 꾸벅 인사를 하더니 빠르게 움직인다.


“재밌는 친구네.”


정후가 석준의 옆에서 고개를 까닥이며 웃는다. 험상궂게 생긴 자들을 앞에 두고 일반인 보 듯하는 민영의 맑은 모습이 생소하다.


“그때 다들 저 친구 싸우는 걸 봤어야 돼..”


“안 봐도 알겠다.”


아쉽다는 투로 중얼댄 정후의 등을 최승희가 찰싹 때리며 지붕을 가리킨다.


“저거 보면 모르겠냐?”


“어휴···그때 못 보고 넘어갔으면 아마 우리도···흠흠”


석준과 정후 둘이 몰래 움직여 지하 5층의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왔던 날 사색이 된 둘의 얼굴을 보고 모두 걱정했던 게 엊그제다. 그가 이마에 맺힌 땀을 살짝 닦더니 둘을 돌아본다.


“푸훗.”


“하하핫!!”


답지 않게 은근 긴장을 했던 대장의 모습을 보자 정후와 승희가 동시에 파핫 웃는다.


“왜들 이래 이거. 너넨 뭐 나보다 더했으면서. 쯧.”


괜히 부끄러워 한마디 쏘아대며 혀를 찬다.


석준이 걸음을 재촉하는 민영의 앞을 막아설 때 둘은 한참을 떨어져서 지켜본 것은 사실. 놀리던 둘이 입을 꾹 다물며 차에 오른다.


“5구역으로 이동하자.”


석준의 말에 나머지 인원들이 각자의 트럭에 몸을 싣는다.


**


5구역 시설까지 최단 경로를 확인한 두 사람이 비어있는 건물 안에서 잠시 쉰다.


“누나. 이거 연구 기록 관련 내용인데.”


“연구?”


“응. 퀀텀 테크 프로토타입으로 쓰여있어.”


수첩 첫 페이지를 펼쳐 건네준다. 큐브 박스를 처음 풀던 날 본 이름과 같다. 숫자는 없지만 관련 내용이 맞다. 민영이 몇 장 넘겨보더니 다시 앞쪽을 유심히 살핀다.


“이거 손으로 적어 둔 건데, 꽤 오래되어 보이네.”


“2035년. 퀀텀 프로젝트 시작. 2045년 퀀텀 이볼브, 2055년 레디에이션 퀀터밍 마스터, 2065년 퀀터밍 휴먼. 대체로 10년 단위 연구기획이었나.”


시간 흐름으로 적어둔 큰 틀을 확인한 민영이 해인을 바라본다.


“아주 어릴 때였나? 어렴풋이 기억나. 학교 다닐 때도 아주 어수선했었는데.”


그의 말에 민영도 당시에 시끌시끌했던 기억이 스친다.


그 결과가 지금 자신이 두르고 있는 퀀텀 테크다. 프로토타입이라 칭하고 고도의 기술까지 인간의 마음대로 조종하려 든 연구라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다.


“퀀터밍 휴먼은 대체 뭐야. 기분 나쁘네.”


해인도 민영과 같은 표정을 한다. 운 좋게 마실 물을 구해 조금 홀짝이더니 민영에게 건넨다.


“난 괜찮아. 양산형이 나올 가능성도 있겠어. 이 정도 연구면 충분히 연구에 착수했을 것 같지 않아?”


필요하면 얘기하라며 물병을 가방에 챙긴 해인이 끄덕인다.


“그럼. 그러고도 남을 거야. 아니 상상 이상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지금 누나가 입고 있는 거잖아?”


“아..”


탄식이 절로 흐른 민영이 얼굴을 감싼다. 영운의 말이 귀에서 울린다. 시도했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던 모습도. 스멀스멀 덮어뒀던 분노가 피어오른다.


“누.. 누나!”


스르륵 빛이 흐르더니 핸드 아머가 덮인다. 이내 헤드 아머까지 생겨버렸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헤드 아머 이마에 솟은 다섯 가닥의 뿔이 왕관 같다. 머리의 윗부분을 제외하고 귀를 막은 아머 위로 짙은 갈색 머리가 살짝 흘러내린다. 눈 위치에 금색으로 라인이 그려지더니 갑자기 붉은색을 번쩍인다.


“허어···”


<앗!!>


해인의 한숨소리를 들은 민영이 깜짝 놀란다. 해인이 이마를 탁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거 제어부터 해야겠네.”


“으응···”


헤드 아머를 재빠르게 풀어낸 민영의 얼굴이 붉어진다. 짤막한 단발머리를 괜히 이리저리 만진다.


**


“누나. 이쪽은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왜? 표식에 문제없다며?”


“그.. 좀 그냥. 감이랄까. 기분이 좀 그래서.”


“그럼 다른 루트는? 조금 돌아가는 게 나으려나.”


별 의견 없이 해인의 말대로 다른 루트를 고민해 보는 민영에게 물을 건넨다.


“괜찮아도 조금이라도 마셔둬. 나쁠 거 없잖아.”


슬쩍 웃으며 말없이 받아 들더니 조금 마시고 다시 건네준다.


-으아아아악!


“!!”


멀리서 들린 비명소리에 해인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민영도 커진 눈으로 해인을 보더니 주변을 살핀다.


“이쪽으로.”


해인이 먼저 민영의 팔을 잡아끈다. 무너진 건물들 뒤편으로 어둑하게 그림자 내린 곳으로 몸을 숨긴다.


“근데, 이래도 돼?”


“누군지도 모르고 유인하려는 미끼일지도 모르는데 괜히 마주쳐야 좋을 거 없어. 초롱아귀가 왜 초롱불을 달고 있겠어?”


“···”


몸을 쪼그려 앉아 해인을 살핀 민영이 입술을 말아 문다. 판단력과 행동력을 인정한다.


“으아아악!”


철퍼덕.


가까운 곳에서 비명을 지른 남자가 철퍼덕 뒹구는 소리가 난다. 부릉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점차 커진다. 한두 대가 아닌 여러 대가 동시 내는 소리.


“아.. 안돼.. 사···살려”


그리고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봤던 요란한 목소리로 과장하며 웃어대는 특유의 신경 긁는 소리. 기시감이 든 민영의 미간이 확 좁아진다.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안색이 변한 민영을 본 해인이 놀란다.


“괜찮아?”


“응. 괜찮아. 그냥 좀 두통인가 봐. 하하.”


“···”


애써 웃어 보인 민영에게 더 묻지 않고 그냥 가만히 지켜본다. 옆머리를 꾹꾹 눌러대는 모습에 해인이 어깨를 짚으며 슬쩍 웃는다.


“신경 쓰이면 누나가 해결하던지. 할 수 있잖아?”


별거 아닌 듯 웃어 보이며 얹어온 그의 손이 따뜻하다. 어둡고 음습했던 누군가의 모습이 지워지고 해인의 얼굴이 자리 잡는다.


“그래도 돼?”


“아니 왜 나한테 물어보는데. 하핫.”


엉뚱하게 물어오는 민영의 반쯤 멍한 얼굴을 보며 파하 웃는다. 해인이 민영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다녀올게. 잠시만 기다려.”


“아, 누나. 그.. 살살해.”


“응.”


망설임 없이 대답하며 그림자 속에서 나가는 뒷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본다. 여러 가지 걱정이 몰려온다. 정말 여러 가지로.


**


[경고 : 중립자는 사냥할 수 없습니다. 빈사상태가 될 시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주요 사망원인이 킬링 스킬로 판정될 경우도 같습니다. 페널티는 랜덤입니다.]


몇 차례 뜬 경고 창을 보며 민영이 목을 주무른다. 아주 불편하다.


쫓기던 남자에게 잠시 피해있으라 말한 민영은 몰려든 놈들을 죽지 않을 만큼 만들어놨다. 눈치 빠른 자들은 바닥에 얌전히 무릎을 꿇고 민영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바닥만 보며 벌벌 떤다.


실신해 누워있는 자들을 제외하고 앞에 주르륵 꿇어앉아 한마디도 못하는 놈들을 하나씩 노려본다.


“사람을 왜 쫓은 거지?”


머리 위에 떨어지는 서늘한 목소리에 모두 어깨가 쪼그라들며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깊은 한숨을 내쉰 민영이 주황색 머리를 지명한다.


“너. 네가 대답해 봐. 대장 맞지?”


“···네에..”


말꼬리가 늘어지는 꼴이 한심스럽다.


“사냥감이라서···”


“저 사람이 사냥감이라서? 그럼 네가 사냥꾼이야?”


“···네에..”


같은 톤으로 대답하는 대장의 목소리에 인내력이 올라간다. 살짝 놀림을 담은 듯한 말투와 계속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는 시선. 작은 틈만 보이면 어떻게든 해보려는 동작. 무엇보다 감추지 못한 살기.


“그래. 꼴에 사냥꾼이라 이거지. 너네 다 사냥꾼이야? 아니잖아? 근데 왜 너 혼자 안 하고 몰려다녀?”


“그야.. 재밌으니까..”


어딘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 순간 스쳐간 해인의 얼굴을 떠올린다. 여기서 이러면 해인이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문득 든다.


“너네 여기 그대로 있어. 어차피 도망도 못 갈 거야. 넌 날 따라오도록.”


몇 대 맞아 비척비척 일어나 민영의 뒤를 억지로 따라간다. 실신했다 일어난 놈들부터 무릎 꿇고 있던 놈들까지 민영이 돌아서자마자 냅다 도망치려고 했으나 그녀의 말대로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난다.


한 건물 모퉁이를 지나 모두의 시야가 차단되자 느릿느릿 걸어오던 주황 머리를 확 끌어당긴다.


“!!”


억, 소리도 못 내고 허공에 몸이 들려 민영이 돌아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다.


콰득!!


뭔가 부서지는듯한 소리가 나고 민영이 바로 돌아온다.


“대장은 이제 없다. 너희들은 빨리 꺼져”


움직이지 않던 몸이 풀리자 숨을 파학 내쉬더니 잽싸게 타고 온 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후다닥 사라진다.


그들이 사라지자 도망쳤던 남자가 슬며시 나오며 민영의 눈치를 본다. 해인도 멀찍이서 지켜보다 빼꼼히 나온다.


콰쾅!! 퍼퍼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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