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위대한 천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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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올
그림/삽화
리스트(1811~1886)
작품등록일 :
2024.08.23 14:31
최근연재일 :
2024.09.19 07:49
연재수 :
9 회
조회수 :
3,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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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글자수 :
56,810

작성
24.09.15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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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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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3쪽

노들섬(1)

DUMMY

“내가 직접 연주할게. 그 계정에서.”


그 순간, 유채아는 고개를 뒤로 훽 돌렸다.

닫힌 방문을 향해.

이내 비스듬히 보이는 옆얼굴로 입술이 벌어지려 한다.


고자질이다, 저거.

고자질하려고 한다, 저거.


“어엄··· 우움!”


반사적으로 뛰쳐가서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14살, 중1이라 그런지 참 치기도 어리다.


“우움, 우우움!”


그제야 습기가 찬 손바닥을 떼어냈다.

눈빛으로 안 그러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확인한 뒤였다.


“어쨌든.”


그리고는 바로 말문을 열었다.

내가 실수한 것과 관련해서, 더 얘기가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연주 할게.”

“···네가? 연주를 한다고?”

“응, 내가.”


그래, 다름 아닌 이 프란츠 리스트가.


13살의 경제지식으론 떼돈을 거머쥐는 법을 쥐뿔도 모른다.

19세기 낭만주의에 살던 프란츠 리스트의 경제지식도 현대에 적용시킬 순 없을 터다.


그렇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통하는 진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 그리고 영향력이 곧 부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프란츠 리스트일 적에 부를 위하여 연주회를 열고 다녔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순수하게 연주하고, 작곡하고, 뜨거운 관심을 받는 그 자체가 즐거웠을 뿐.

그러다 보니 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더라.


그러니, 지금 이 상황에서도 어려울 거 같진 않았다.

유혜성으로 인해 기운 가세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거 말이다.


뭐, 고작 되돌리는 걸로 끝나진 않을 거 같지만.



* * *



다음날, 오전 9시 33분.


부스스하게 눈을 뜬 유채아는 기지개를 켰다.

겨울방학.

덕분에 늦잠을 잘 수 있었다.


“흐아암···.”


유채아는 2층 침대에서 사다리를 타고 사뿐히 내려왔다.

혹시나 밑에 있는 유혜성이 깰까봐서.


‘자고 있겠지?’


마지막 사다리를 딛던 유채아에게 문득 걱정이 엄습했다.

밑에서 동생이 자고 있다는 게 상상이 잘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없을 것만 같았다.


‘잘 자네.’


하지만 다행이도 혜성이는 곤히 잘 자고 있었다.

지그시 감긴 눈.

새근새근한 콧숨소리.

몸을 살짝 웅크린 채 이불에 포근히 안겨있는···.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채아는 이불을 잘 덮어주고는 미소를 머금었다.

사고를 당한 뒤 코마에 빠져있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얼굴이었다.


“···휴.”


유채아가 조심스럽게 방을 나섰다.

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찌개 냄새.

보글보글, 약간 매콤한 향이 섞여있는 걸 보니 김치찌개인 듯했다.


부엌을 봤더니 아빠 유봉재가 앞치마를 둘러메고 요리를 하고 있었다.

퍽 익숙한 그림이었는데, 돈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엄마가 훨씬 많이 벌어오니까.


‘게다가 이제 일도 그만뒀으니, 당분간은 아빠가 계속 요리하시겠네.’


오전 10시에 첫 수업이 시작되는 엄마는 출근 준비로 분주했다.

악보와 수업자료를 허둥지둥 챙기는 모습.

유채아가 슬그머니 어깨를 붙였다.


“···깜짝이야.”

“헤, 왜 이렇게 놀라요. 방금 일어났는데도 이렇게나 예쁜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것도 있지.”


쿵짝이 잘맞는 모녀를 향해, 아버지 유봉재가 딴지를 걸었다.


“얼씨구?”

“뭐요.”

“눈꼽이나 떼고 말해.”

“알고 있는데요.”

“뭐, 이따 국 먹을 때 넣어서 같이 먹게?”

“악! 더러워!”


목적에 달성한 유봉재가 웃음을 터뜨렸고, 유채아가 치를 떨었다.

슬쩍 눈앞꼬리를 쓸어봤더니, 심지어 눈꼽도 없었다.


등을 돌린 유채아가 엄마에게 말했다.


“오늘 혜성이 피아노 연주하고 싶대요.”

“에? 정말?”

“어제 갑자기 나한테 그랬다니까. 유튜브에 우연히 ‘명피아노’ 홍보 채널이 떴는데, 그걸 보더니···.”


갑자기 어딘가에서 뾰족한 시선이 느껴졌다.

흘긋, 봤더니.

살짝 열린 방문틈 사이로 유혜성이 서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보더니?”

“···아아, 보더니 연주를 너무 잘한다고, 자기도 연주를 하고 싶다고, 유튜브에 업로드 하고 싶다고.”


끄덕-

몰래 지켜보고 있던 유혜성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정말?”


되묻는 배명선의 얼굴이 화색이 되었다.


“이러다 유튜브 떡상해서 막 엄청 유명해지면 어떡하지?”


당연히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피아노를 배울 적에 재능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연주를 쉰 지가 무려 3년일 뿐더러, 화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지. 배운 기간도 얼마 안 됐었고.’


그리고 그 재능이란 것도 어쩌면 고슴도치가 제 새끼는 함함하게 보이는 게 섞여있을지도 모르지.


“떡상까지 바라는 건 좀···. 그냥 추억삼아 한번 올려보는 거지.”


유채아도 비슷한 생각이었는데, 지금도 문틈 사이에 서있을지 모를 유혜성이 괜히 부담으로 느낄까봐 현실적으로 얘기했다.


다만, 마주본 그들이 흐뭇해하고 있는 것은, 막 깨어난 유혜성이 열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려는 그 자체였다.

의식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데,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얼마든지.


“그럼 유튜브 영상도 찍을겸, 간만에 혜성이랑 밖에 산책이나 갔다 와. 야외에서 연주하는 거 찍으면 그림도 더 잘나올 거 같고.”

“어, 그럴까?”


원래는 엄마 학원에서 찍을 생각이었지만, 방금 계획이 바뀌었다.

엄마 말마따나 햇살도 쬘 겸 그 편이 나을 거 같았다.


“어디 보자···.”


유채아가 휴대폰으로 ‘서울 야외 피아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오, 검색해보니 ‘Piano Seoul’이란 프로젝트가 있었다.

일상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즐기자는 취지로서, 시민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끔 서울 곳곳에 피아노를 설치해놓았다고 한다.


그때였다.


“하암···.”


능청스럽게 하품을 하며 나오는 유혜성.

꼭 방금 일어났다는 것처럼.

유채아는 속으로 피식하고는 장소 목록을 보여주었다.


“이중에서 어디 갈래?”

“음, 제일 사람 적은 곳.”

“참 나···.”


유채아는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혀를 찼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하게 직접 연주하겠다고 하더니, 막상 당일이 되니까 인파가 몰린 곳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면, 영상 촬영이 어려울 테니까.”

“······.”


근데 저게 무슨 말이지.

유채아는 일순 사고가 멈췄다.

그러길 잠시.


“···설마 네가 연주하면 사람들이 다 가던 길을 멈추고 몰려들 거란 얘기야?”


유혜성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저, ‘당연한 거 아닌가?’란 표정으로 씨익- 웃더니 소파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유채아가 눈을 깜빡깜빡거리는 사이, 주방장이 목청껏 외쳤다.


“우리 아들 폼 미쳤다!”


유채아와 유혜성이 한심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정적.

무안해진 유봉재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이럴 때 쓰는 말 아냐?”

“엄마 출근할게.”

“다녀오세요.”

“네, 다녀오세요.”

“······.”



* * *



[이번 정류소는 노들섬입니다. 다음 정류소는 노량진역입니다.]


치이익-, 문이 열리고.

유채아와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명동이나 홍대보다는 그래도 노들섬이 인파가 적을 거야.”


뭐, 그런 이유로 노들섬을 향하게 되었다.


“네 말대로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면 곤란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혼자서 쿡쿡 웃는 유채아였다.

무모한 자신감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듯했는데, 나야 뭐 아무래도 좋았다.


“···여기도 사람이 적지는 않네.”


정류소에서 5분쯤 걸으니 노들섬에 도착했는데, 유채아가 행인들을 보고선 혀를 내둘렀다.

토요일 오후 1시에 걸맞는 다양한 구성원들이었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냐···.”


유채아가 광활한 잔디밭을 보며 길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이내 휴대폰을 꺼내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디로 가라고요.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알맹이는 하나도 없이 뭔 헛소리만 씨부리고 있어.”


그런데 뭐가 잘 안 풀리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아니, 피아노 위치 알려준다 해놓고선 갑자기 노들섬 역사가 왜 나와···!”

“진정해 봐.”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자, 귓가에 흐릿하게 맴돌던 곡률이 차츰 선명하게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작은 별.”


스스로를 아마데라 칭했던, 볼프강 모차르트가 작곡한 곡이다.

사실 연주라기보다는 볼프강의 반려묘도 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 제1주제를 뚱땅뚱땅거리는 중이었다.


음, ‘Seoul Piano’ 프로젝트 취지에 맞춰 유치원생이 건반을 누르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고양이일지도.


곡이 흐르는 곳을 따라 걸었다.


“그쪽 확실해?”

“아마도.”


유채아의 궁시렁거리던 소리는 피아노의 울림이 뚜렷해지면서 사라졌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 찍었어.”

“···대박이네.”


귀가 예민한 것은 음악적 소양과는 크게 상관없었다.

으스댈 필요도 없었고, 놀랄 필요도 없는 거였다.


다만, 도착했더니 유치원생도 고양이도 아니라는 점은 좀 놀라웠다.


“여기? 아, 딱 여기다. 아닌가, 여긴가.”


유채아가 혼잣말을 하며 삼각대를 고정하기 시작했다.

피아노에 앉아있던,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성이 엉거주춤하게 일어났다.


“아, 촬영하시게요?”


그러고선 자리를 비켜주려고 하자, 유채아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저희 기다렸다가 촬영하면 돼요.”

“어차피 이제 칠 수 있는 곡 없어요.”

“아아···.”


남성이 삼각대에 고정된 카메라와 나를 한 번씩 바라봤다.


“우와, 촬영하는 거 보면 혹시 피아노 전공생이에요? 아직 나이는 어려보이는데.”


유채아가 아까보다 더 격렬히 손사래를 쳤다.

내쪽으로도 바람이 일 정도였다.


“아뇨아뇨. 그냥, 그냥, 추억제작용···?”


기대하지 말라는 듯한 투였다.

남성이 부스스 웃었다.


“오호, 추억제작이라. 남매끼리 너무 보기 좋은 거 아녜요?”

“아하하···.”

“이 참에 저도 구경이나 하다 가야겠어요. 자기도 괜찮지?”

“응응, 시간 붕 떠있었는데 잘됐다.”


음, 조금 심기가 거슬렸다.


‘구경이나?’


구경, 이나?


어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따로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해는 말로 하지만, 깨달음은 음악으로 전한다.

말은 공기 속에서 울리지만, 연주는 마음 속에서 울린다.


말보다는 연주가, 내게는 익숙했다.


“오오, 연주 촬영하나 봐.”

“유튜브 촬영인가?”

“우리도 잠시 구경하다 가자.”

“안 돼. 영화시간 거의 다 됐어.”

“에이, 3분만 보다 가면 되지.”

“여러분들···! 제발 기대하지 마세··· 요오···.”

“와, 근데 어린데 되게 잘생겼다.”

“화이팅!”


벌써부터 사람들이 조금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으음, 한 대여섯 명?

연주가 끝나고 뒤를 돌았을 땐 몇 명이 서있을지.


그들의 시선을 만끽하며.

나는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건반을 슥- 훑었다.

손끝으로 타고 오르는 차가운 감각.

겨울 공기가 스민 건반.


심장이 고동친다.

다시 연주할 날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하나의 건반을 지그시 눌러본다.

설렘이 동반된 손의 온기를 묻힌다.

따스한 봄이 찾아온 듯 건반이 녹아내린다.


당시에 내가 연주했던 에라르와는 조금 다른 음색을 지녔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잊지 않았다.


“······하.”


의미를 알 수 없는 외마디가 터진다.

하얗게 피어오른 입김이 건반에 닿아 비산한다.


손바닥을 쫙 펼쳤다.

그 상태로 오므리기를 몇 번 반복했다.

아직은 성장이 끝나지 않은, 작은 크기의 손.


그러나, 상관없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프란츠 리스트의 손이 거인처럼 큰 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었다.


나의 손은 딱 9·10도가 소화 가능한 크기.

그럼에도 드넓은 아르페지오와 몰아치는 스케일이 가능했던 것은.

손의 크기가 아니라.


자유자재로 옮겨다니는 운지법이었다.

로테이션에서 손가락만을 이용하지 않고, 팔꿈치와 손목을 부드러이 쓰는 기교였다.

즉흥적으로 뒤바뀌는 타건의 유연함이었다.


그러니, 이 어린손으로도 아무런 상관없었다.

그것이 만약, 나의 곡이라면 더더욱.


무슨 곡을 연주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위해, 눈을 지그시 감는다.

감긴 시야로 하나의 장면이 펼쳐진다.


샹들리에.

어스름한 조명이 무대를 비추고, 향수와 가죽의 묵직한 향기가 공기 중에 감돌고, 귀족들과 왕족들의 기대감 어린 숨소리가 장내를 메운다.


그 무대의 가운데, 내가 서있다.


1851년, 4월.

바이마르 궁정 극장.

그날은 곡 초연이 있는 날이었다.


건반 위로 손을 살포시 올리자,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다.


그날로 돌아가, 나는 첫 음을 누른다.


―Franz Liszt, Mazeppa


마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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