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자 세상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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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프
작품등록일 :
2024.08.23 19:43
최근연재일 :
2024.08.27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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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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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방금 뒤집힌 책상에 걸려 넘어질 뻔해서 현타가 온 걸지도 모른다.


생각난 김에 좀 더 생각했다.

내가 왜 여기 왔지?


‘속아서.’


음, 이건 너무 단편적이다.

조금만 더 고차원적으로 생각해보자. 의미가 있나 싶긴 하지만 아무튼.


‘허위매물 사기 당해서.’


그럴듯해졌다.

그리고 이 이상 적절한 비유가 생각나지 않는 관계로 그냥 이걸로 대체하겠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대한민국의 공교육 과정을 착실히 이수한 삶.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았고, 부모님이 물려준 유산 덕에 풍족하진 않아도 나름 먹고 살만한 삶이었다.


평탄한 길을 걸어가는 삶.

딱 내 인생을 두고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 삶에 변화가 생긴 건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자네 취직할 곳은 있나?’

‘생각해 둔 곳은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확정짓진 않았습니다.’

‘그래? 그럼 시간 나면 여기 한번 가 보게. 초봉이 쎄더라고.'


평소 교수 눈에 잘 보이려고 애를 써서일까. 취직 제안 중에 특이한 게 섞여 있었다.


‘···연봉 7천만원?’


사기 같았다. 그리고 사기가 맞았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걸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다른 학생들은 죄다 이미 취업 어쩌고 자격증 저쩌고 하고 있었는데, 나는 길을 잃고 방황하던 시기였다.


한마디로 말해,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 와중에 저런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제시받으니, 믿기진 않아도 한번 가볼 수밖에.


그리고 도착한 곳은.


‘···국가정보원이요?’

‘정확히 말하면 산하 기관입니다.’


미친 곳이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무려 국정원이다.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이자, 국내 인지도 탑티어에 꼽히는 정부부처 중 하나.


내 정신이 살짝 혼미해졌다는 걸 간파했는지, 앞에 온 사람은 그 틈을 타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다.


‘연봉은 기본적으로 협상을 통해 결정되지만, 대개 6, 7천만원 정도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업무가 위험하지 않은지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보통 해외에서 임무를 담당하는 분들은 특수부대 훈련을 받은 분들이구요······.’


위험하지 않다. 돈 많이 준다.

이걸 듣고도 넘어가지 않으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 물론 의심 한번 해보지 않으면 그것도 사람 새끼가 아니긴 한데······.


물어는 봤다. 물어는.


‘거기 가면 정확히 무슨 일을 하게 되나요?’

‘아···, 그건, 국가 기밀이라서······,’


여기서 이상함을 눈치챘어야 했다.

고작해야 대학교 4학년 새내기한테 무슨 국가 기밀급 업무를 맡기겠나. 기껏해야 서류 만지작대는 일이겠지!


‘으음, 그럼 뭐 어쩔 수 없고.’


그런데 나는 속았다.

돌이켜보면 국정원이라는 이름값에 긴장했던 것 같다. 젠장. 밤중에 국정원의 살수들이 칼을 디미는 상황을 우려하기라도 했던 걸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회는 한 번이 아니었다.


근로계약서 위쪽에 큼지막하게 쓰여진 직장명이 암만 봐도 뭔가 이상해보였던 것이다.


‘이 이름은 뭐죠? 초현실재해관리청?’


초현실재해관리청.

딱 봐도 그냥 더럽게 이상해 보이는 이름이다. 정상인이라면 여기서 1초 만에 탈주를 결정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문제는 여기가 국정원이라는 것.

그리고 내 앞에 앉은 여자는 이런 의문을 몇 번이나 상대해본 사람이라는 것.


‘아, 그건 국정원 밑에 달린 위장명이에요. 아무래도 방첩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날벌레가 꼬이는 일이 자주 있어서··· 직접 들어가보시면 따로 설명을 들으실 수 있을 거에요!’

‘음, 그렇군요.’


두 가지 요소가 합쳐지니 사회 초년생은 감쪽같이 속았다.

기회는 두 번이었고 두 번 모두 놓친 시점에서 나는 이미 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뒤로 이상한 점은 없었다.

계약서는 지나치게 좋다는 점을 제외하면 평범했고, 근무일수나 시간에 관한 것들도 상식의 커트라인에 걸쳐 있었다.


복지에 관련된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이건 복지비용을 월급에 포함시킨 수준으로 주는 돈이 많았으니까.


계약은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진행되었고, 여름방학이 지나고 보니 나는 어느새 대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그곳에서 일하기로 되어 있었다.


서류면접과 심층면접이 한 번씩 있긴 했지만 형식적인 수준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면접관들조차 뭘 물어봐야 할지 잘 모르는 듯했다.


거기서 이상한 점을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땐 이미 발을 빼기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한 학기가 끝나고.


나는 마침내 겉으로는 평범해보이는 한 폐쇄된 상가의 지하실로 내려갔다. 물론 그 건물에는 지하실이 없었다.


그럼 어떻게 내려가나 싶을 수 있는데 방법이 참 기가 막혔다.


‘2층과 3층을 동시에 누르세요. 그럼 안내음성으로 엘리베이터가 정지했으니 관리실 호출벨을 누르라고 나올 텐데 그때 닫힘 버튼과 1층 버튼을 동시에 누르면 지하로 가게 될 겁니다.’


남자의 로망을 긁어주는 내용이랄까.

물론 정석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평범한 대화문 속에 기밀 암호를 숨겨놓는 거지만 이것도 제법 그럴듯했다. 특히나 일반인이 보기에는 더더욱.


그래서 이 장대한 대사기극의 결말은.


“뭐 하냐? 빨리 안 와?”


저 앞에서 사람 말을 하는 비둘기였다.


“······.”


비둘기다. 진짜 비둘기.

앵무새도 아니고 올빼미도 아니고 비둘기.


비둘기가 왜 사람 말을 하느냐 하면, 나도 모른다. 그딴 걸 알면 마법사로 전직했지.


나는 어디까지나 일반 상식선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건물로 들어오자마자 저 비둘기를 보기 전까지는.


‘···초현실재해관리청이 무슨 뜻입니까?’

‘그거? 여기 이름.’

‘······위장명이 아니라요?’

‘그 개소리는 여기 오는 애들마다 하는구만. 레퍼토리가 똑같아.’


처음에는 반발했지만, 또박또박 한국어를 내뱉는 비둘기를 보니 초현실이란 단어는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재해? 그건 나도 모르고.


‘말 그대로 초현실적인 재해를 관리하는 곳. 나중에 어차피 알게 될 건데?’


나는 인내심이 깊고 침착한 편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공포게임을 할 때도 놀란 적이 잘 없고, 조별과제를 할 때도 화낸 적이 드물··· 아니 이건 좀 예외고. 인간 본연의 빡침을 유발하는 곳인데.


아무튼 협곡에 갈 때도 욕설로 신고 한번 당해본 적 없는 사람. 그것이 나다.


하지만 이건 내 한계를 벗어난 일이었다.


‘씨발 저 나갈 겁니다.’

‘그러냐? 어차피 문은 잠겨 있을 테니까, 나중에 외근 나가서 밧줄로 목 매달아 봐. 확실히 나가게 될 거다.’


다시 생각해봐도 참 개같았다.


이런 대화를 3분 정도 하니 뭐라 논리적으로 항의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대신 다른 점이나 확인했다.


‘연봉은 확실히 지급되는 겁니까?’

‘그건 내 이름을 걸고 장담하마. 근데 어차피 부수입이 훨씬 많을 거라서 연봉은 별 신경쓰지 않아도 될걸?’


그나마 내가 여길 떠나지 않는 이유.

돈은 확실히 준다니까······. 일단 알아나 보고 나가자는 생각.


그게 지금 비둘기 뒤꽁무니를 쫓아가는 이유였다. 자본주의는 지옥과 동기동창 아닐까?


잡생각 하다 보니 넘어질 뻔했다.


‘뭐야 이거. 거울이 깨진 건가?’


자세히 보니 깨진 유리조각 같은 것에 옅은 불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돈은 둘째 치고 사무실 환경이 개판이었다.


‘문 닫아라. 빛 들어오잖아.’


말하는 비둘기의 첫마디였다.

비둘기 눈에 강한 빛이 안 좋다는데 그걸 시발 내가 어떻게 알겠나.


덕분에 사무실은 어두컴컴했고, 더불어서 책상과 의자, 컴퓨터와 서류, 각종 용품들도 잡다하게 어질러져서 개판 오분전이 되어 있었다.


불은 다섯 개 걸러 하나꼴로 켜져 있었고, 사무실 상황답게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비둘기한테 물어보니 다들 외근 나갔다고 한다. 미치고 환장하겠네. 여기식 외근은 죄다 해외 장기출장인가?


아무리 그래도 어지른 사람은 있을 거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비둘기 아닐까 싶지만······ 따로 말하진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 텐데 뭐.


구조도 꽤나 복잡한 편이었다.

국가기관식 부패형 날림공사의 전형 아닌가 싶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구조가 개판일 리 없다. 분명히 길 자체는 좁은데 더럽게 꼬불꼬불해서 지금 5분째 걷고 있었다.


“빨리 좀 오라고.”


너는 시발 날아다니잖아.


무시하고 그냥 천천히 걸었다. 빨리 걷다 넘어지면 나만 손해다.


초현실적인 비둘기에게 따지는 건 애저녁에 포기했다. 이제는 그냥 이 길의 끝에 책임자가 있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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