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자 세상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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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프
작품등록일 :
2024.08.2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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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초현실이란 무엇인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신은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 아까 들은 그거 아니에요?”

“그게 뭔데?”

“그러니까, 초능력이나 오컬트 같은 거······.”


신은아는 말을 살짝 더듬으며 비둘기의 눈치를 살폈다.

그럴 만도 했다. 눈앞을 보면 거의 사람 허리까지 올라올 듯한 비둘기 하나가 의자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 말인즉슨 눈도, 부리도, 머리도, 날개도 일반적인 비둘기의 크기를 아득하게 뛰어넘는다는 뜻.


비둘기가 날개를 한번 퍼덕이자 방 안에 별로 없어 보이던 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녹색 눈동자가 신은아에게 고정되자 그녀는 히익 하면서 작게 떨었다. 다만 내가 볼 때 위협은 아니었다.


비둘기는 하품하듯 입을 크게 벌리더니 말했다.


“초능력이나 오컬트, 괜찮은 대답이네. 그럼 그 초능력이나 오컬트는 왜 ‘초현실’이 된 걸까?”

“예?”

“그러니까, 사람들은 왜 초능력이나 오컬트를 ‘초현실적인 무언가’로 생각하는 걸까?”


비둘기는 우릴 한번 보더니 흥미 어린 어투로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자고. 초능력은 인류와 함께해온 능력이야. 고대 이집트 시절, 파피루스에 분수 쓰던 시절부터 2차대전 이후 컴퓨터가 위상수학 문제 풀어주는 시기까지 존재하지.”


그렇겠지. 인류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능력일 테니까.


“그리고 과잉기억증후군, 서번트 증후군, 해리성 정체 장애도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존재했던 병들이지.”


서서히, 무슨 말을 할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물론 감이 잡힌다고 해서 안다는 뜻은 아니다. 저 질문은 일반인이라면 생각도 해본 적 없을 테니까.


“그런데 왜 과잉기억증후군이나 서번트 증후군 같은 건 ‘현실’ 이고, 초능력이나 오컬트 같은 건 ‘초현실’이나 ‘비현실’로 불리는 걸까? 둘 다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해온, 모두 현실에 존재하는 현상인데?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리고 나는 일반인이다. 당연히 없다.

그런 게 존재한단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신은아도 마찬가지인지 멍하니 앉아서 비둘기 부리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


“특정한 소수만 사용할 수 있어서입니까?”

“반은 정답이군.”


뒤집어 말하면 나머지 반은 정답이 아니라는 뜻이다.


좀 더 고민해봤지만 만족할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체 뭘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만약 진짜 초능력이 있었다면 인류사 파트마다 유명한 초능력자 명단이 줄줄이 나왔을 텐데.


의식의 흐름대로 말해 보았다.


“마녀사냥 때문입니까?”

“진짜 초능력자면 그런 건 아무 문제도 아니다. 그리고 초현실이 초능력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긴 그렇지. 오컬트면 악령이 나오는 폐건물 같은 것도 포함될 텐데, 마녀사냥이 건물을 단두대에 올려놓는 이벤트는 아닐 거 아냐.


그리고 그 두개를 내놓고 나자 뇌가 멈췄다.

일반인이 오컬트에 관해 생각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법 아니겠나.


머리를 더 쥐어짤까 말까 생각하던 도중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누가 초능력으로 초능력에 관한 사실들을 사람들 머릿속에서 전부 지워버렸다던가······.”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였지만 확실히 들었다.


순간 신은아가 음모론자였나 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다 돌리기도 전에 옆에서 날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슥. 슥. 탁.


“거의 90퍼센트 맞혔다.”


감탄 섞인 목소리.

아니, 진짜로 저게 정답이라고? 무슨 일루미나티야?


어이가 없어서 신은아를 보자 그녀도 별반 다를 것 없는 표정이었다. 아니, 진짜로 누가 사람들 머릿속을 다 지워버린 거라고? 백신 마이크로칩 음모론도 이것보단 그럴듯하겠다!


비둘기는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90퍼센트라는 건 10퍼센트는 틀렸다는 얘기지.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운 건 엄밀히 말하면 초능력자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니까.”

“예?”

“정확히 말하면, 세계에서 초현실적인 부문으로 난다 긴다 하는 집단들이 죄다 모여서 ‘이건 현실이고 이건 초현실이다’를 결정했다. 그게 현실과 초현실을 가르는 경계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비둘기가 날개를 한 차례 휘두르자 책이 펼쳐지더니 페이지가 느릿하게 흘러갔다.


대략 서른 페이지쯤 넘기자 그 위에 커다랗게 단원 제목이 쓰여 있었다.


[제네바 기준현실 합의규약]


“읽어 봐라.”


딱 봐도 어려워 보이는 제목.


다만 조금 더 살피자 어렵다기보다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내용이 가득 담겨 있었다.


“‘국제마법연구소, 동양술사협회, 세계장막재단 등 유수의 단체들이 192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현실과 관련된 협정을 체결했다. 이를 제네바 기준현실 합의 규약이라 부르며,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가르는 최초의 근대적 기준을 확립했다는 데 그 의의를 둔다······.’”

“어렵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습니다.”

“단순해. 왜 서번트는 현실이고 염동력은 초현실일까? 그건 우리가 정한 내용이라는 거다.”


비둘기가 부리로 책을 드는 시늉을 했다. 그저 시늉일 뿐이었음에도 책은 허공에 떠올라 그 부리가 향하는 대로 움직였다.


“이게 초현실인 이유는, 저 규약에서 이게 ‘초현실'이라고 정했기 때문이란 거. 그게 다다. 그리고 이런 걸 쓸 수 있는 사람이 나올 때마다 저런 기관에서 잡아가니 아는 사람이 없는 것도 당연하지.”

“왜 그렇게 하는 겁니까?”

“좋은 질문이긴 한데, 그걸 설명하려면 여기서 5시간 정돈 죽치고 강의만 해야 해. 내가 하기 싫다.”


나도 듣기 싫다.


“어차피 저기 의의 같은 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냐. 대부분 내무팀장이랑 외무팀장이 알아서 처리하거든. 너희가 해야 할 건 간단해.”


비둘기는 한차례 더 날갯짓을 해서 책의 맨 뒤편 부록을 펼쳤다.


그곳에는 기준현실 합의규약 어쩌고의 조항들 목록이 빼곡히 채워져 있는 페이지가 있었다. 얼핏 봐도 몇만 자는 되어 보였다.


설마?


“그것만 다 외우면 돼.”

“······.”

“그렇게 보지 마라. 내가 아니라 외교 쪽 담당자가 제발 신입 들어오면 이것만 외우게 해달라고 여기서 삼궤구고두례를 한 다음 사인검으로 자기 머리카락을 잘라서 저주를 내렸어.”

“정신이 나간 건가요?”


마지막 말은 내가 아니라 신은아가 했다. 꽤나 진지한 표정이었다.


비둘기는 킥킥 웃었다.


“반쯤 나가긴 했지. FBI랑 전쟁 직전까지 갔었으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걸?”

“우와······.”

“정신이 나갈 만하긴 했군요.”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페이지를 덮었다.

미국의 초현실 담당 기관은 FBI인 모양이었다.


비둘기는 날개를 쫙 펼치며 말했다.


“이걸로 일단 여기서 해야 하는 건 끝났다.”

“···어, 할 게 더 있었나요?”

“이것만 배우고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책 가져가야 돼서 여기 온 거야. 이제 숙소로 가서 마저 이야기해야지. 아직 많이 남았다.”


신은아가 울상을 지었다.

나는 비둘기가 추가로 꺼낸 책 두 권을 이삿짐 박스 속에 몰래 숨길까 하다가 포기하고 비둘기 뒤를 따라갔다.


.

.

.


“벌써 해가 졌군요.”

“너희 올 때 이미 일몰 즈음이었을 테니.”


밤은 깜깜했다.


이곳은 강원도의 어떤 산의 중턱 즈음.


별이 잘 보이는 곳이었다.


1시간 가까이 산을 타자 새 건물이 보였다. 물론 그때쯤엔 완전히 진이 빠져 있었다. 나는 갑자기 소름이 돋아서 물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출근해야 합니까?”


비둘기는 낄낄거리며 말했다.


“걱정 마라. 앞으로 집에 갈 일이 별로 없을 테니 출근할 일도 없을걸?”


순간 육성으로 욕할 뻔했다. 미친 새 새끼가 진짜 나랑 사생결단을 내보자는 건가? 오냐, 내가 그 날개랑 몸통을 찢어서 초거대 새갈비탕을 만들어주ㅡ


“내가 원한 게 아니라, 애초에 근무 규정이 그래. 너 계약서 안 읽어 봤냐?”

“···읽어보긴 했습니다만.”

“외근 자주 나갈 수 있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을 텐데.”

“그게 집에 안 보내준다는 소리일 줄은 몰랐습니다. 설마 지금 당장 해외 출장이라도 갑니까?”

“가고 싶냐? 최소한 2주는 가르쳐야 니 머릿속에 지식이란 게 좀 박힐 텐데.”

“가고 싶단 게 아니라! 그냥 집에 가고 싶다고!!”


마지막 항의는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두고 봐라. 내가 언젠가 저놈의 깃털을 뽑아서 비둘기털 점퍼를 만들고 말리라.


“그··· 성민 씨.”


신은아는 뭔가 나를 위로해주려는 기색이었지만, 딱히 말이 떠오르지 않는지 머뭇거렸다.


계속 꽁해 있는 것도 웃기는 일이어서, 그냥 어깨만 한번 으쓱해보이고 걸어갔다.


어차피 집에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뭐. 여기서 새로운 인연이나 만들 수 있다면 좋겠구만.


.

.

.


틀렸다.


인연은 지랄. 빨리 여길 나가야 한다.


“이··· 이게 다 뭐에요?”


혼란에 빠진 목소리.


“뭐긴 뭐겠냐. 너희 선배들이 개판 쳐 놓은 흔적이지. 보아하니 몇몇은 상태가 진짜 안 좋은 모양이군.”


심드렁한 비둘기 소리.


그륵. 그륵. 그르르륵······.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기괴한 울음소리.


이미 이곳은 반쯤 지옥이었다.


“조금 심각하긴 하군. 지하 1층이 이 모양이라면 아래는 더 개같을 텐데.”


저 비둘기가 걱정조가 섞인 말을 한다는 것부터가 상황이 어떤지를 보여준다.


누구의 것도 아닌 그림자가 벽면을 타고 오른다. 빛이 주기적으로 깜박일 때마다 주변이 흐려지며 기이한 생명체가 보일 듯 말 듯한다. 종종 천장이 일그러지며 기괴한 이빨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무언가를 씹어 삼키고 싶어 안달난 듯.


이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 복도로 내려오자마자 벌어진 상황이었다.


“씨발······.”


욕밖에 나오지 않는 상태.


복도에 어질러진 책상 같은 것이 쌓여 있지는 않았지만 어찌 보면 그것보다 더 심각했다. 거기선 최소한 생명의 위협은 없었지 않은가.


비둘기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결국 한숨을 내쉬며 선언했다.


“너희들 교육할 동안만이라도 내가 1층에 머물러야겠군.”

“진짜 목숨이 위험한 겁니까?”

“그건 아니지. 근데 너희 이런 데서 마음 편히 잠들 수 있겠냐?”


글쎄다.

감정 관련 호르몬을 죄다 거세해버리면 가능할지도.


신은아는 아예 비둘기를 만났을 때보다 얼굴이 더 새파래져 있었다. 아마 내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비둘기는 혀를 쯧쯧 차더니 날개를 휘둘렀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천장이 제자리를 되찾고, 불빛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림자는 비명을 지르는 듯 꿈틀거리다가 순식간에 소멸했다.


“혹시 퇴마사십니까?”

“지랄 말고 잠이나 자라. 내일부터는 진짜 빡세게 굴러야 할 테니까.”


진지하게 물은 건데.


그건 그렇고, 빡세게 구른다는 게 뭔 뜻이지? 여기 책을 다 외우라는 건가?


“그게 뭐가 구르는 거냐. 그런 걸로 요원 일을 다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요원은 실전으로 배우는 거라고.”

“갑자기 불안해집니다만.”

“예리하구나. 내일부터 바로 모의 훈련 들어갈 테니까 푹 자둬라. 요원 쉬운 거 아니다.”

“저는 서류 업무 쪽으로 갈 겁니다.”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 모의 훈련이라 죽지는 않겠지만 다칠 수는 있다. 잡소리할 시간에 1초라도 더 자는 게 좋을 거다.”

“아니 씨발, 보직 이동 못 해?”

“여기가 무슨 법무법인으로 보이냐? 관리국의 주 업무는 각종 초현실적인 존재를 격리하고 파괴하는 거다. 거기에 서류처리가 끼어들 자리가 어디 있어?”

“내무팀장님은 했잖아!”

“그놈은 정치인들 상대하는 게 주 업무니까 그렇고. 너 금뺏지 단 인간들이랑 말싸움해서 이길 자신 있냐?”


이런 미친.

서류업무를 보고 싶으면 정치인이랑 국K-1 그랑프리를 붙어서 이기라고? 이게 무슨 정신나간 하드코어지?


우리는 영혼이 반쯤 나간 채로 방 두 개를 잡았다.


침대에 누우며 속으로 기도했다.


초현실이고 나발이고, 그냥 나가고 싶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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