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자 세상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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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프
작품등록일 :
2024.08.2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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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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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대충 복도를 두 개쯤 지난 것 같다.

사무실이 하도 비정상이라 방향감각이 맛이 갔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느낌상으로는 그랬다.


“조금만 천천히 가주시죠.”

“이것보다 더 느리게 날면 양력이 부족해서 떨어져. 그리고 거의 다 왔다.”


사람은 왜 날개가 없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비둘기가 비둘기 모습으로 다니는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여길 걸어다니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의자와 책상, 컴퓨터, 컴퓨터 부품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무언가, 한때 수첩이라 불렸던 찢어진 종이뭉치들이 바닥에 널린 곳.


그게 이 사무실이다.


내가 오늘 긴 바지를 입고 왔다는 사실에 감사해하며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걸었다. 비둘기 덕에 사무실은 상당히 어두운 편이었다.


복도처럼 생긴 좁은 통로를 하나 더 지나자 마침내 칠흑색으로 도색된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비둘기가 근처 책상다리에 앉더니 날개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열어라.”

“날개근육에 힘이 없으십니까?”

“몸통 박치기를 해도 안 열린다.”

“평범한 비둘기의 무게셨군요. 로봇이면 그것보단 무거울 텐데.”

“사역마라니까?”


끼익.


문을 열자 그 안에는 두 명의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다. 사람이다.


한쪽은 문을 바라보고 앉았고 한쪽은 그 맞은편에서 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다만 문 열리는 소리에 둘 모두 우리를 쳐다보았다.


둘 다 여자인데 외모는 상당히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풍기는 분위기가 땅과 하늘 수준으로 차이났다.


한쪽은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정도의 성숙미를 풍기는 여성이었다. 앉아있는 자세가 상당히 편해 보였는데 아마 방의 주인 아닐까 싶다.


조금 특이한 건 옷 색깔이었는데 죄다 검은색이었다. 그렇다고 정장도 아니다. 그냥 검은색 옷이다. 순수한 검은색으론만 가득찬 옷. 저런 건 대체 어디서 구하는 거지?


그리고 그 앞에 앉아있는 사람은 얼핏 봐도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 많이 쳐줘도 이십대 중반을 벗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앉은키가 작아 보이는 귀염상의 여자였는데 상당한 미인이었다. 다만 외모보다는 표정이 조금 더 드라마틱했다.


두려움과 불안을 반반 섞고 그 위에 체념을 살짝 뿌린 듯한 표정. 저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잠시 생각해보니 처음으로 취직한 곳이 사실 별 괴랄한 비둘기가 날아다니고 사무실은 개판인 허위매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신입사원의 표정과 같았다.


내가 거울 봤을 때 대충 저 비슷한 표정이었던 것 같거든. 물론 깨진 거울이긴 했지만.


자연스레 정체를 추측할 수 있었다.


‘나랑 같은 처지군.’


이제 보니 입사 동기였구나.


약간의 반가움을 느낄 때쯤, 검은색 옷의 여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이번에 새로 오신 분이시죠?”


온화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일단 정상인이란 점에서 플러스 1점.

나 또한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여기서는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했다. 따지는 건 호감상을 박고 시작해도 늦지 않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성민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딱딱하게 인사할 필요 없어요. 다 같이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인데요.”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하더니 시선을 옮겼다. 따라가보니 거기에는 멀뚱히 앉아있는 비둘기가 하나 있었다.


“알렉세이. 신입분을 맞이할 때는 사람 모습으로 가달라고 부탁드렸던 것 같은데요?”

“귀찮은데?”


여자의 눈이 살짝 매서워졌지만 비둘기는 전혀 꿀리지 않고 녹색 눈동자를 치켜떴다. 저 비둘기 눈가에 근육도 있었네.


일단 내 상상 이상으로 미친 비둘기였다.


사람과 비둘기가 눈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진귀한 장면이었지만, 오래 이어지진 않았다.


먼저 포기한 쪽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하아······ 이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죠. 나가서 교육 커리큘럼이나 준비해 주세요.”

“뭐 커리큘럼이랄 게 있나.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야기하는 게 다지.”

“그걸 조금만 체계적으로 해보라고요. 아니, 국정원은 어떻게 당신에게 신입사원 연수라는 직책을 맡길 수가 있죠?”

“그거 그냥 무시하면 안 되나······.”


알렉세이라고 불린 비둘기는 잠깐 구시렁대더니 이내 방 밖으로 나갔다.


보아하니 국정원이 저 비둘기한테 우릴 가르치는 임무를 맡긴 모양인데, 내가 봐도 신기한 일이었다. 국정원장이 치매가 왔나? 사람 이름 잘못 써 넣은 거 아니야?


나는 방문을 닫고 먼저 와 있던 신입사원의 옆자리에 앉았다. 옆에서 힐끔힐끔 시선이 느껴지는데 일단 앞에 상급자가 있으니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여자는 잠시 얼굴을 손으로 몇 번 마사지하더니 다시 온화한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두 분 모두 반가워요. 저는 초현실재난관리청 내무팀장 박수영이라고 해요. 관리청에서는 사무업무 대부분을 총괄하고 있죠.”


내무팀장.



내 생각보다 대단한 분이셨다.


그렇게 작은 조직도 아닌 것 같은데 이런 곳의 최고위 관리직이면 상당히 파워가 세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으려니 박수영은 책상 가장자리에 있던 커다란 종이 몇 장을 다시 한가운데로 가져왔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옆에 앉은 사람을 보며 말했다.


“으음, 다시 설명해야 할 것 같은데, 은아 씨는 괜찮으신가요?”

“저는 상관없어요. 사실 아까 제대로 집중하질 못해서, 아하하······.”

“그럼 더 잘됐네요.”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 만한 이야기.

뭔가 불안해졌다.


그녀는 다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두 분 서로 인사라도 하시는 게······?”


아, 그렇지.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성민입니다.”

“아, 저는 신은아라고 해요. 이번에 새로 들어왔는데··· 잘 부탁드려요!”


신은아는 처음으로 살짝 밝아진 얼굴이었다.

자기랑 같은 처지의 사람을 봐서 그런가? 아마 지금 내 표정도 어지간히 굳어 있을 것 같은데, 표정관리 좀 해야겠다.


박수영은 책상 위의 자료를 몇 번 넘기더니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두 분 모두 이번에 국정원에서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하셨을 테니 다시 말하자면, 저희는 말 그대로 초현실적인 존재로부터 발생한 재해(災害)를 다루고 관리하는 기관입니다.”


초현실적인 존재?


“여기서 초현실적인 존재란 말 그대로에요. 오컬트, 초능력, 마법, 주술, 그 외 잡다하고 기이한 능력을 사용하는 존재들 또는 그런 물건들을 일컫죠.”


오컬트, 주술, 초능력, 마법?


왠지 현실세계랑 백만 년쯤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다.


내가 멍청이가 된 것 같은 느낌에 옆을 흘끔 쳐다보자 신은아도 뭔가 이해가 될 듯 말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해를 못한 게 나 혼자만이 아니었군.


왠지 시선이 느껴져서 앞을 봤다. 박수영이 우리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픽 웃더니 말했다.


“이렇게만 말하면 다들 못 알아듣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특별히 교육용 자료를 구해왔죠.”


그녀가 가볍게 손짓하자 옆의 서랍장이 열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쟁반이 천천히 떠올라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밑에 프로펠러가 있나 해서 봤는데 없었다. 물론 쟁반이니만큼 날개도 달려 있지 않았다.


일단 다른 건 몰라도 초능력은 알겠다. 여기 눈앞에 초능력자가 있었구만. 사이코키네시스면 에스퍼 타입이신가?


이내 쟁반이 책상 위에 착지했다. 위에는 적당한 크기의 밧줄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조금 꼬여서 매듭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 복잡해 보이진 않았다. 시간으로 잴 것도 없이 잠깐만 공들이면 풀 수 있는 정도?


하지만 다음 말을 듣는 순간 그 생각은 고이 접어 쓰레기통에 보내야만 했다.


“일련번호는 H - 36. 별명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이에요. 엄연한 초현실적 밧줄이죠.”



고르디우스의 매듭.

듣기만 해도 절대 못 풀 것 같은 이름이다.


수천 년 동안 아무도 못 풀었다고 전해지는 그리스 신화 속의 매듭. 결국 알렉산드로스가 칼로 깍둑썰기한 다음 이게 푼 거라고 박박 우겼다지.


하지만 저건 그렇게 복잡해 보이지 않는데.


박수영을 쳐다보자 그녀는 약간은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번 풀어보시겠어요?”

“······제가 해볼게요.”


먼저 나선 것은 신은아였다.

아마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란 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 아닐까 싶었다.


그녀는 잠시 밧줄을 관찰하더니 이내 손을 대고 천천히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손놀림은 자연스러웠고 딱히 흠잡을 것도 없었다. 네다섯 번 정도 꼬아서 만들어진 밧줄이었는데 그중 두 개를 풀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장애물 없이 술술 풀렸다.


한 번 꼬아서 만든 옭매듭.


8자 모양으로 꼬아서 만든 8자매듭.


뭐지? 그냥 겁주려고 말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 때쯤.

신은아의 손이 이상하게 움직인 건 그때쯤이었다.


“!”


순간 뭐 하냐고 말할 뻔했다.


신은아의 손은 매듭을 푸는 대신 아까 풀었던 8자매듭으로 다시 꼬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뭔가 싶어서 박수영을 보니 그녀는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마치 저게 당연한 일이라는 듯.


신은아가 8자 매듭을 다시 만들고 한 번 더 꼬아서 옭매듭까지 만들었을 때쯤, 드디어 눈치챈 듯 중얼거렸다.


“······어?”


명백히 당황스러운 눈치.


“부, 분명 거의 다 풀었었는데?”


혼란에 빠진 듯 다시 매듭을 뒤적거리는 손놀림.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은데?


박수영은 그 모습을 보더니 내게 말했다.


“어떤 것 같아요?”

“······.”


혹시 최면어플 쓰셨나요?


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

다행히도 박수영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은아 씨, 이제 그만하셔도 돼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애초에 풀 수 없는 매듭이에요.”


그 말에 신은아는 손을 멈췄다.

박수영은 장난스러운 어투로 내게 말했다.


“성민 씨도 해보실래요?”

“···사양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커터칼은 있었는데 저게 커터칼로 잘릴지 의문이었을뿐더러 일반적인 손으로는 절대 풀 수 없으리란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무렴 좋다는 듯 웃고는 신은아에게 물었다.


“은아 씨, 어땠어요?”


신은아는 한참이나 말을 고르더니 대답했다.


“그냥······ 잘 모르겠어요. 분명히 푸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 꼬여 있더라고요.”

“정확해요.”


박수영은 앞에 놓인 종이더미를 몇 차례 펄럭이더니 그중 한 장을 우리에게 건네줬다.


“읽어보시겠어요?”


「일련번호 : H - 036

등급 : 격리 필요

별명 : 고르디우스의 매듭


격리 절차 : 없음 (박수영 내무팀장 개인관리품)


특징 : 영매듭을 제외하고 총 5개의 매듭으로 구성되어 있는 약 2미터 길이의 밧줄이다. 2개의 옭매듭과 3개의 팔자매듭으로 이루어져 있다.


2개 이상의 매듭을 풀려고 시도할 시, 시도자의 감각을 조작하여 이전의 매듭 형태로 복귀하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현재까지는 시각과 촉각 이외의 조작 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


[실험 기록]


실험 기록(1)

제안 : 그거 칼로 자르면 되는 거 아냐?

결과 : 박수영 내무팀장에 의해 시도 중단됨. 해당 물체는 교육용으로 사용하기로 결정.」


여기까지 읽고 나자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제 감각을 조작했다고요?”


굉장히 당황한 듯한 말투였는데, 박수영은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맞아요. 이런 게 우리가 관리하는 것들이죠.”


그녀는 매듭을 다시 쟁반 위에 올려두었다.


“초현실(超現實).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범주를 넘어선 물건이나 사람 혹은 현상 등등. 이건 아주 일부분의 예시에 불과해요.”



쟁반이 천천히 떠올라 다시금 서랍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아는 세상은, 일반인들에게 허용된 세상은 대단히 좁죠. 우리는 그 밖에서 온갖 위험천만하고 기괴한 것들과 맞서 싸우고 파괴하고 격리하는 일을 합니다.”


그녀는 서류를 가져가 파쇄기에 넣었다.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건 고작 매듭이지만, 만약 매듭이 아니라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시각과 촉각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 볼까요. 세상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파쇄기 옆에 놓인 리모컨을 집어들더니 몇 차례 조작했다. 그러자 천장에 놓인 작은 빔프로젝터가 광선을 쏘아내더니 우리 앞에 영상을 송출했다.


불은 아주 자연스럽게 꺼졌다.


선명한 영상 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이게 뭐야? 최면 어플?

-네크로노미콘? ···저주할 사람을 고르고 여기 적힌 대로만 하면 된다고?

-으아··· 으아아아! 사람 잡아먹는 개구리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사람, 낡은 고서적을 뒤적이는 사람, 미친 듯이 도망치는 사람.


초현실적힌 재해. 혹은 오컬트적인 물건을 입수한 사람들.


3분할된 화면 속의 풍경이 완전히 뒤바뀌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에게 뛰어들어 휴대폰 화면을 내미는 사람. 사이비 종교를 만들고 그 위의 수장으로 군림하며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신공양에 희생시키는 교주. 건물을 무너뜨리고 사람을 잡아먹는 개구리.


그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핵전쟁으로 멸망한 세계. 내란과 전쟁에 휩싸인 한반도. 무너지고 불타는 도시, 죽어가는 사람들.


넋 놓고 보던 우리에게, 박수영이 문득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시 한번 환영해요. SD 관리국에 입사하신 것을.”


Surrealism.


초현실적인 모든 것을 관리하는 곳.


영상이 끝난 뒤에도, 우리는 한동안 영상이 송출되던 벽을 바라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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