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자 세상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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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프
작품등록일 :
2024.08.23 19:43
최근연재일 :
2024.08.27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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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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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쇼는 다 끝났냐?”


벌컥.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비둘기 하나가 걸어 들어왔다. 다만 사이즈가 달랐다.


“으, 꺄아악!”


신은아의 비명 소리가 울려퍼진다.

비둘기는 아까 봤던 것보다 몇 배는 커져 있었다. 성인 남성의 허리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 정도.


더럽게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박수영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크기는 왜 키운 겁니까?”

“작게 해놓으니까 문이 안 열리더라고.”

“제발 안에 있는 사람도 좀 배려해 주세요.”

“이런 것도 못 견디면 나가서 목매달아야지. 내무팀장으로 한 10년쯤 굴러먹으니까 바깥세상이 어떤지도 잊어버린 거냐?”


시니컬한 말투.

비둘기가 내뱉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말에 박수영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둘 사이를 잠시 관찰하다 분위기를 돌렸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별로 적절한 타이밍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대로 있다가는 둘이 한참 동안 또 눈싸움을 벌일 기세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박수영은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두 분 모두 지금까지 수고하셨어요. 지금부터는 알렉세이 씨가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드릴 거에요.”


그 말에 나와 신은아는 동시에 비둘기를 쳐다보았다.


비둘기는 별달리 반응하지 않고 방을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방 안은 깔끔한 곳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뭐 해? 안 따라오고.”


박수영은 그 말을 듣더니 서랍장을 향해 다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 안에서 카드 두 장이 튀어나왔다.


아니, 카드가 아닌데?


자세히 보니 목걸이끈이 달린 카드였다. 물론 그런 건 없을 테니 저 물건은······.


“사원증이에요. 앞으로 두 분은 관리국의 견습 요원으로서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할 텐데, 이게 도움이 될 거에요.”


그녀는 손수 우리의 목에 사원증을 걸어주었다. 한 장의 증명사진과 이름, 연락처 등이 적혀 있는 일반적인 사원증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두께였는데, 플라스틱 포장을 제외하고도 거의 5센티미터는 되어 보였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길이.


“이건 왜 이렇게 두껍죠?”

“그건 알렉세이 씨가 따로 설명드릴 거에요. 역할이 너무 여러 가지라 지금 설명할 수가 없네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열린 문틈으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빨리 안 와?”


비둘기 목청 한번 더럽게 크네.

그 목소리를 들은 박수영이 웃으며 인사했다.


“잘 가요.”

“수고하셨습니다.”

“어, 어······ 팀장님이 이런 걸 설명해주실 수는 없나요?”


한국어를 구사하는 비둘기와 대화하기 싫었던 모양인지, 신은아가 살짝 주저하면서 물었다.


박수영은 곤란한 듯 고개를 젓더니 책상을 가리켰다.


“······.”


책상 아래쪽으로 서류의 산이 놓여 있었다.


“······안녕히 계세요.”



결국 신은아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방을 나왔다.


일단 한 가지는 알겠다. 여기서 제대로 서류업무를 처리하는 행정직은 내무팀장 정도밖에 없겠구나.


“다 끝났냐?”

“아마도요.”

“그럼 가자. 따로 준비된 곳이 또 있어.”


따로 준비된 곳이라.


비둘기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거기도 제대로 정리된 곳이겠죠?”


신은아는 비둘기를 마주한 순간부터 아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무서운 건지 말도 섞기 싫은 건지 모르겠는데, 표정에 파란색이 조금 섞인 걸 보면 무서운 게 맞는 듯했다.


비둘기는 그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더니 말했다.


“비둘기 기준으로는 살 만한 곳이다.”

“아, 인간 기준으로는 아니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잠시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빗자루는 있습니까?”

“나도 몰라. 너희 서류가방에 휴지 없냐?”

“대체 누가 가방에 휴지를 넣고 다녀······.”


돌겠다.


하긴, 자주 쓰는 곳도 아닐 테니 깔끔히 정리되어 있는 게 이상한 일이리라.


비둘기는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보이는 건지 장애물을 능숙하게 헤치고 나갔다. 저거 올빼민가?


다만 사람은 평상시 단련하지 않으면 밤눈이 별로 좋지 않은 동물 아닌가.


“꺄악!”

“괜찮으세요?”


중간에 좀 문제가 생겼다.

큰일은 아니었지만 작은 일 축에는 들었다.


“아야야··· 어어? 피 나요!”

“으음.”


신은아는 나와 달리 반바지와 치마 사이에 걸친 하의를 입고 출근했다. 덕분에 넘어졌을 때 맨살이 까지기 훨씬 좋은 조건이었다.


유리조각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한데. 책상 모서리에 긁혀도 아픈 건 매한가지다. 피까지 난다면 더더욱.


“비둘기 님, 여기 의약품 없습니까?”

“모르겠다. 뒤져 보면 어딘가엔 있겠지.”


모른다는 소리였다.


피가 많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다친 부위가 하필이면 무릎 근처.


신은아는 일어나려고 끙끙댔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일단 방까지 간 다음 밴드라도 찾아봅시다. 여기서 찾으려다간 반나절은 걸리겠네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암순응이 조금 되어서 그런가, 주변에 널린 박스들이 보였다. 잘 보니 죄다 이삿짐 박스였다.


“혹시 여기 사람들은 정리라는 개념을 모릅니까?”

“네 선배를 그런 식으로 말해도 되냐? 그리고 여기 잘 안 써. 숙소 옆 건물에 간이 회의실이랑 업무실 같은 공간이 있거든.”

“그럼 그냥 거기 가면······.”

“사원증이 있어야 갈 수 있단다.”

“이런 시발, 그럼 내무팀장님은 왜 여기서 일하는 겁니까?”

“몰라. 뭔가 초상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긴 하더라. 거기 엄청 넓은 것 못 봤냐?”


보긴 했다.


어지간한 집 수준으로 넓고, 각종 서랍으로 가득 차 있던 장소.


비둘기는 장애물을 교묘하게 지나치며 말했다.


“그 서랍에 들어있는 것들이 뭔가 영적으로 건물을 봉인하고 있을 거다. 잘은 모르지만.”

“여기 괴물이라도 있어요?”

“있지. 여기가 얼마나 오래됐는데. 일제강점기보다 더 전에 지어졌을걸?”


그리고 그 봉인의 핵심축이 내무팀장이고.


무슨 퇴마사 같은 이야기에 정신이 어질어질해졌다. 내가 지금 풍수지리론을 듣고 있는 건가?


“내무팀장이 초능력을 가지고도 서류업무만 처리하는 이유가 뭐겠냐. 이 건물을 떠날 수가 없으니까 그런 거지.”

“행정직군으로 가고 싶었던 게 아니라요?”

“그 정도로 이기적인 인간이면 요원 말단에서 머물렀겠지. 그게 훨씬 더 쉽고 편하거든. 아까 서류로 언덕 만든 거 못 봤냐?”


하긴.

그걸 처리할 바에야 적당히 괜찮은 곳에 파견 나가는 게 낫겠다. 사흘 밤낮을 카페인 빨면서 일해도 다 못할 업무량이던데.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 사이 어느새 제법 멀쩡하게 닫혀 있는 문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다.”


우리는 곧바로 문을 열고 불을 환하게 켰다.


“야!”

“적응하세요. 여기 인간은 둘이고 비둘기는 하납니다.”


안은 제법 깔끔했지만, 확실히 내무팀장의 방보다는 못했다.


씩씩대는 비둘기는 무시하고 방안을 자세히 살폈다. 신기한 점이 하나 있었다.


“먼지가 별로 없네요.”

“···여기가 왜 신입사원 연수실이겠냐. 저기 봐라. 환풍구가 있는 몇 안 되는 방이다.”


왼쪽 천장에 작은 거 하나 있었다. 하긴 지하실이니까 어딘가에는 환풍구가 있어야겠지.


책상이 가로로 기울어진 것만 빼면 완벽할 텐데. 저기 보드마카가 죄다 엎질러져 있는 화이트보드도 포함해서.


복도보다는 덜할지언정 개판이 난 방을 보고 있자니 비둘기가 날개로 나를 가리켰다.


“좀 치워봐라.”

“제가요?”

“그럼 너 말고 누가 해?”


신은아는 다쳤고, 비둘기는 비둘기니까 결국 방을 깔끔하게 치우는 것은 내 역할이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박스 더미를 구석으로 밀어놓고 책상과 의자 몇 개를 중앙에 놓고 나니 나름대로 그럴싸해지긴 했다.


거기까지 10분이 넘게 걸렸다는 게 사소한 문제점이었고.


신은아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못 도와드려서.”

“편하게 쉬고 계세요. 다친 사람한테 일 시켜먹을 만큼 쓰레기는 아닙니다.”


일단 신은아는 인성은 괜찮은 것 같았다.


“네 선배들도 다 했던 일이야.”


그에 반해 저 비둘기는······ 날개는 구워먹고 몸통은 삶아먹고 싶단 생각이 절로 솟구치는 것이 보신탕을 떠오르게 만드는 인성이었다.


대체 나이가 몇 살이길래 저렇게 싸가지 밥말아먹은 태도를 보이는 걸까?


“120살.”


잘못 들었나?


“농담이시죠?”

“더 많긴 하지. 내가 태어난 게 19세기 중엽이었는데 자세히 기억은 안 나거든.”


올해가 2020년이니, 19세기 중반ㅡ1800년대라면 최소로 잡아도 121살 이상이었다.


나는 머리를 꾹꾹 누르다가 말했다.


“혹시 하이랜더 되십니까?”

“비둘기에 빙의하는 놈한테 나이가 의미있을 거라 생각하냐? 군소리 말고 앉아.”


그것도 맞는 말이다.

비둘기, 더 큰 비둘기, 좀 작은 비둘기, 좀 더 작은 비둘기에게 차례차례 빙의하면 거의 무한대로 사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눈앞에 영생불사의 존재가 있는 셈이다. 비둘기라는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진시황이 울고 가겠군.


잡생각을 하는 사이 비둘기는 벽에 놓인 고풍스런 서재에서 책자 두 권을 꺼내 우리 앞에 내려놓았다.


“뭡니까 이건?”

“너희가 일주일 동안 공부해야 할 교과서.”


표지에는 [2011 신입 요원 교육도서] 라고 쓰여 있었다.


참으로 모범적인 관료주의 적폐식 제목이긴 한데, 그래도 너무 오래된 거 아닌··· 가?


“서류업무 하는 게 팀 하나밖에 없는 곳에 뭘 바라냐?”

“아 참, 그랬지.”


제발 망했으면 좋겠다.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둘기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뭐, 그건 됐고. 너희 여기 올 때 뭐 들었냐?”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저도요······.”


다시 생각해봐도 열받네.


국정원만 뒤지게 강조하면 단가. 암만 봐도 여긴 내가 생각한 그런 일을 하는 곳이 아닌 것 같은데.


비둘기가 말했다.


“너희, ‘초현실’의 기준이 뭔지 알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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