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치킨이 더 강한 먼치킨을 낳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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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탄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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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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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DUMMY

8화.


분해.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지만, 무슨 맥락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너인가?

-무슨 말이지?


검은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검의 말에 따르면 가상 공간에서 수련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힘을 소모하기 때문이란다.


다행히도 현재는 의사소통은 가능한 모양이다. 시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검에게 시안은 지금의 상황을 묘사했다.


-그런 게 보인다고?


검 역시도 황당하다는 듯한 반응이다. 따지고 보면 제일 신비한 존재인 주제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니 시안으로서는 한숨만 나올 수밖에 없었다.


-‘권능’은 함부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또 그 남자의 수작인지도 모르겠군.

-그 남자?

-나를 과거로 보낸 이 말이다.


시안은 그에 대해 떠올렸다. 사기를 당했다는 말, 시간을 되돌려 검을 보냈다는 이야기. 마법으로 유명한 골드하트 가문이나 시튼하임 마도왕국에서 듣는다면 코웃음도 치지 않을 이야기였지만, 아는 게 없기에 오히려 쉽게 믿을 수 있었다.


-그 남자는 마법사인가?

-음, 아마 내가 본 마법사 중에선 최고일 거다.


정확히 밝힌 적은 없지만 ‘최소치’를 9성으로 잡아야 할 수준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 위력만 강한 게 아니었다. 그의 마법은 천재적일 정도로 효과적이면서 효율적이었다.


그런 영역에 들어간 마법사라면, 어쩌면 무슨 수단을 썼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시험해 보는 수밖에 없겠군.


시안은 딸랑이를 향해 살금살금 걸어갔다. 레이첼이 좋아하는 물건을 ‘분해’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별수 없다. 그리고 이거, 이래뵈도 일단은 아기용 장난감이다. 시안 자신의 것이니 괜찮지 않냐는 마음을 품게 된다.


시안은 긴장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딸랑이에 손을 얹는다.


[발광형 딸랑이 021번 모델]

[‘분해’의 권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예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시안은 동의를 표하려고 했으나- 검의 목소리가 그런 시안을 방해했다.


-잠깐만, 글자가 허공에 나타난다고 했지?

-그렇다.

-읽어봐라.


간단한 명령이라고 생각했다. 엄밀히 말하면 명령은 아니지만, 시안의 사고구조가 그랬다. 마치 명령이 입력된 기계처럼 자연스럽게 글자를 읽으려는 찰나- 시안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읽을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읽고 있었다.


그 모순에 혼란이 머리를 감싼다.


-역시 정신에 작용하는 것인가 보군.


저 글자들은 아직 시안의 지식 밖에 있는 것들. 검의 지적은 예리했고, 시안은 할 말을 잃었다.


-내 정신에 문제가 생긴 건가?

-그건 해보면 아는 일이겠지.


시안은 검의 말대로 ‘분해의 권능’을 사용하겠다고 답했고, 그 순간 시안의 손끝에 붉은 입자가 모여들었다. 붉은 입자들은 시안의 손짓에 따라 반응했고, 시안이 손끝으로 딸랑이의 끝부분을 가리키자, 그곳으로 벌떼처럼 달려든다.


분해


그 말에 걸맞게 딸랑이의 손잡이는 갉아 먹히는 것처럼 분해되기 시작했다.


다만, 문제는 그 속도가 너무나도 느리다는 것이다. 한참을 가져다 대고 나서야 부서진 흔적이 남는 수준이었다. 더욱이 분해를 지속할수록 머리가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끼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시안은 본능적으로 분해를 중지시켰다. 붉은 입자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갉아 먹힌 듯한 손잡이의 뒷부분. 사실 제대로 살피지 않는 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장난감 틀어줄까? 색깔 예쁘지?”


다가온 사람은 레이첼. 시안은 혹시 망가지진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나비의 날개는 변함없이 환하게 빛났다. 아무래도 아티펙트의 표피만을 분해한 듯했다.


‘권능’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되면 큰 의미가 있나 싶었다. 쓸모있는 능력은 아니다. 그렇게 결론내린 순간, 기다렸다는 듯 또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딸랑이의 파편]


시안의 눈에 보이는 건 정사각형 형태로 굳혀진 아주 자그마한 물질. 시안이 그것을 인지한 순간 손바닥 위에 먼지처럼 생겨났다.


다행히 레이첼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발견해 봐야, 먼지가 묻은 정도로 생각할 게 뻔했다. 그만큼 작고 하찮아 의미가 없어 보였으니까.


여기까지만 보면 그렇다.


하나,


[획득한 파편을 통해, 권능 ‘합성’으로 물질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조건과 수량은 대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설명은 거기까지였다. 머릿속으로 직접 전달된 그 메시지에 시안은 굳어버렸고, 검의 연속적인 질문에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요약하자면, 시안에겐 두 개의 권능이 주어진 셈이다. 하나는 분해, 다른 하나는 합성. 분해의 권능으로 물질을 분해해 합성의 권능으로 물질을 강화한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는 차차 알아봐야 할 문제다.


처음엔 분해의 권능이 전투와 관련된 권능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어머, 여기가 긁혔네? 미샤, 이거 뭘로 만든 거야? 이거 좀 봐봐.”


레이첼의 감각은 일반인과는 차원이 달랐다. 두 번째 작동하는 것만으로 그 미세한 무게감의 차이를 느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장난감을 돌려 보더니 손잡이 끝부분이 조금 망가졌다는 것까지 찾아낸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미샤는 놀란 얼굴로 손잡이를 확인했다. 레이첼의 말마따나 끝부분이 갈라져 있었다. 긁힌 건지 뭉게진 건지 애매한 상태. 작동하는 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왠지 사기라도 당한 기분이다.


“이거 아티펙트인데···.”


아티펙트, 마법이 깃든 물건. 아무리 간단한 마법이라도 마법이 부여되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특히, 이 딸랑이는 골드 하트 가문 소속의 회사에서 만든 것. 마법과 아티펙트 제작으로는 대륙에서 손꼽히는 유명 브랜드다.


“아티펙트는 보통 금속으로 만들지 않아?”

“그렇죠. 이것도 가볍지만, 금속의 일종이고요.”


금속은 간단한 조치만으로 마력을 보존하기 쉬웠기에 아티펙트의 재료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런 금속이 망가진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의도적으로 망가트렸다기에도 묘한데.”

“그러게 말이에요. 차라리 마법을 시전하다가 멈춘 듯한···.”


두 사람의 추리는 꽤 구체적이었고, 시안은 범인이 된 듯한 느낌에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뭐, 내부 작동 오류 같은 거 아니려나?”

“일단 주세요. 괜히 사고라도 생기면 안 되니까.”


미샤는 잔뜩 따질 것이라며 벼르기 시작했고, 시안은 담당자에게 소리없는 사과를 보냈다.


어쨌거나, 이 권능으로 뭘 할 수 있는지는 확인한 셈이다.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해서 시안은 딸랑이의 파편을 소환했다가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대체 뭘 위한 능력인지 모르겠군.


그걸 바라보던 검의 총평. 일단은, 시안 역시 마찬가지인 심정이었다.


**


그 용도가 드러난 것은 점심 식사 때였다.


시안의 손아귀 힘은 상당히 늘어, 이젠 포크를 들고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직 통제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또래의 아이들보다는 확실히 발달이 빨랐다.


제법 능숙하게 빵을 찍어 입에 넣는 시안. 아직 맛에 대해서는 둔하지만, 배를 채워야 성장할 수 있기에 식사는 꼬박꼬박 골고루 먹고 있었다. 뭔가가 먹기 싫다는 투정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다.


덕분에 손이 갈 일이 준 것은 사실이나, 왠지 재미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당근, 피망, 양파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다. 매운 걸 먹어도 울거나 짜증을 내기보단 매워서 눈물을 글썽이면서 꼭꼭 씹어 삼킨다.


“매우시면 뱉으세요.”

“괜차나.”


어설픈 발음으로 미샤의 말을 거절한 그.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제대로 클 수 있는 법. 미샤의 식단은 전문적이었고, 시안은 철저히 할당량을 처리하고 있었다.


질린 얼굴이 된 미샤를 뒤로하고 시안은 문득 손에 들린 포크를 바라보았다. 성인용이 아닌 유아용. 아티펙트 같은 건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디자인치고는 꽤 섬세한 세공이 들어간 물건이다. 미샤가 공들여 구매했을 게 분명한 물건, 물론 시안이 그 노고를 알아줄 리는 없다.


단지 ‘이 정도 도구는 이제 다룰 수 있구나’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시안이 포크를 명확히 인지한 순간, 하나의 메시지가 떠 올랐다.


[유아용 포크]

[강화 가능]

[강화 필요재료: 금속 재질의 파편 50개 이상]


어?


시안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불쌍한 미샤는 그게 그녀가 만든 오렌지 샤베트를 먹고 시안이 반응한 것이라 착각했다.


시안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샤베트를 꿀꺽 삼키고는 떠오른 메시지에 주목했다. 모르는 단어는 많지만, 권능과 관련된 용어들은 모두 이해가 가능한 개념으로 바뀌어 입력된다.


합성의 권능이 의미하는 물질의 강화. 그것은 무기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마치 생체골렘을 강화하는 것처럼, 입고 쓰는 도구를 강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전생에 사용했던 드레이크 단검을 강화할 수 있다면? 권능의 힘을 이용해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을 가져올 게 분명했다.


생체골렘처럼 자신의 몸을 포기한다는 대가를 치를 필요도 없다. 적절한 소재를 분해해, 그걸 강화의 재료로 삼으면 되는 일이니까.


“뭐가 그렇게 재밌어?”


허공을 보며 눈을 불태우는 아들의 모습에 레이첼이 의문부호를 띄웠고, 시안은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을 선택했다.


방긋 웃는 아이의 얼굴은 그 자체로 무기인 법. 꽤나 인위적으로 만든 미소였지만, 레이첼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듯 시안을 귀여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샤도 타박하는 대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저 목석이 드디어 미샤의 작품에 반응했으니까!


그런 두 여성만큼이나 흥분한 시안이다. 과연 강화는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시안이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떠올려 본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상급 사제들의 무기. 그것들은 분명 시안의 주무기였던 드레이크 단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예리함이나 마법적인 힘이 깃들어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런것보다도 더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건 역시-


‘홍련.’


그렇지만, 검집에 들어있는 상태로는 권능이 반응하지 않았다. 역시 전신을 볼 필요가 있다.


**


기회를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보통의 부모라면 아이가 날붙이에 다가가는 걸 저어하겠지만, 레이첼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검귀라 불리는 아트라 검가의 핏줄이 어디에 가는 건 아니다. 자식이 검을 보겠다는 데 더구나 그녀의 목적은 시안에게 힘을 주는 것. 시안이 검에 관심을 가지는 걸 막을 이유가 없다. 그녀에겐 시안이 다치지 않도록 막을 힘도 있었으니까.


물론, 시안이 나이답지 않게 지나치게 침착한 탓도 컸다. 그런 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더 보이고 싶고, 느끼게 하고 싶은 게 보통이다.


레이첼은 직접 검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미샤가 그래도 그건 위험하니 수련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말했다. 레이첼도 묘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보고 싶으면 눈에 힘을 잔뜩 주라고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시안은 레이첼의 수련을 멀찍이서 지켜보았다. 미샤가 시안을 끌어안고 있었지만, 애초에 품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었다. 그의 눈은 이미 레이첼의 검이 그리는 선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19호 때도 견식한 적이 있는 검술이고, 실제로 그녀와 싸워본 적도 있었다. 하나,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던 그때와는 수준 자체가 달랐다. 지금 그녀의 검에선 불길이 새어나오진 않았지만, 애초에 오러라는 게 겉으로 드러나는 힘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오러코어가 약동하고, 코어에서 발생된 힘이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근력, 지구력, 내구력, 신체 전반에 대한 능력치가 비상식적으로 치솟았다.


전력을 다한 게 아님에도 시안의 눈으론 홍련은커녕, 레이첼의 모습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시안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움직였고, 레이첼의 동작들을 눈에 담고자 노력했다.


시안의 무의식적인 염원에, 그의 단전에 잠재된 코어가 일렁였다. 실낱같은 오러의 힘이 상반신을 지나쳐 눈으로 향한다.


조금 더 빨라진 눈, 흐릿하게 보이는 그녀의 잔상. 그 하나하나의 움직임은 한 동작을 길게 늘여놓은 듯 자연스러웠으며, 빨랐다.


강맹함, 힘.


검을 통해 재확인한 19호의 움직임과는 상반된 이미지. 시안의 뺨이 흥분으로 발갛게 물든다. 저 검의 움직임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장난감이 그려냈던 화려한 빛 따위와는 비할 수 없다.


허공을 가르는 긴 칼날. 홍련이라는 이름처럼 선명한 적빛의 칼날.


시안은 빨려들어갈 것 같은 그 아름다움을 간신히 외면하며 홍련을 인식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안의 시선이 검에 집중되고, 시안의 이성이 검을 명확히 인식한다.


그리고 그 작용에 시안에게 각인된 권능이 반응했다.


[대상을 분해할 수 없습니다.]

[권능이 부족합니다.]

[대상을 강화할 수 없습니다.]

[권능이 부족합니다.]


‘역시.’


내심 쓴웃음을 짓는 시안. 하지만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권능은 강화할 수 있다.’


그리고 권능이 강화된다면, 더 강력한 물건도 건드릴 수 있다.


**


그리고 시간은 흘러 시안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 권능을 제대로 활용할 기회가 찾아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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