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해서 미국 탑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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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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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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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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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서미 스트리트

DUMMY

1n2n3n4n

원.앤.투.앤.쓰리.앤.포.앤


요한의 생체 메트로놈이 다시 작동하며 힘있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단 0.1초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박자가 끝없이 이어졌다.

보통 초보들이 시작은 그럴싸하게 해도 연주를 이어갈수록 저도 모르게 빨라지거나 느려지기 마련인데, 요한은 그런 것도 없었다.

요한에게는 자기 귀에만 들리는 무적의 생체 메트로놈이 있었다.

다리우스도 바보는 아니었다.

벌써 스틱을 쥐는 자세부터가 다른 요한의 레귤러 그립을 보고 다리우스는 자신이 요한의 꾀에 속아 넘어갔음을 깨달았다.

요한은 두 자루의 드럼 스틱이 번갈아 가며 일정하게 스네어 드럼을 두드렸다.


“쳇.”


다리우스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요한의 칼 같은 박자는 전혀 흐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리우스는 이제부터 그가 싫어하던 신입생들에게 피자를 8판이나 사줘야 했다.

선배의 위엄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큰돈의 지출로 속이 꽤 쓰릴 것이다.

그러나 다리우스가 패배를 선언한 이후에도 요한은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하지? 언제까지 잘난 척하고 있을 생각이야?”


계속 연주를 이어가는 요한에게 다리우스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요한은 잘난 척을 하기 위해 연주를 멈추지 않은 게 아니었다.

요한이 연주를 멈추지 않은 이유는 다리우스에게 아직 그의 시련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자신을 노려보는 다리우스에게 요한은 빙긋 웃으며 한마디 했다.


“더블 타임.”


“뭐라고?”


더블 타임이란 현재 연주의 빠르기를 두 배로 하라는 음악 용어였다.

요한은 곧장 8비트였던 박자를 쪼개 16비트 스트로크 연주를 선보였다.

연주 도중에 빠르기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은 드럼 초보자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묘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면서도 박자가 밀리거나 꼬이지 않고 여전히 칼 같은 정박을 유지했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스네어 드럼을 16비트 빠르기로 두들기며 요한은 다리우스의 안색을 살폈다.

다리우스는 더할 나위 없이 굴욕스러운 표정으로 요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요한은 다리우스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원래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둥글둥글 지내는 걸 선호하는 성격이었지만, 먼저 시비를 걸어온 사람을 너그럽게 용서해줄 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결국 요한은 대기실에 모인 모두가 납득할 만큼 오래 정확한 박자로 16비트 싱글 스트를 연주한 뒤에야 연주를 멈췄다.

굴욕감에 표정이 일그러진 다리우스에게 요한은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피자는 감사히 먹겠습니다. 다리우스 선배님.”


그날 신입생 숙소에서는 피자파티가 열렸다.

요한의 기지로 맛있는 살스 피자가 무려 16판이나 생겼기에 신입생들 모두 실컷 피자를 먹을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만에 먹어보는 살스 피자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실로 감탄할만한 맛이었다.


“오늘의 피자파티를 있게 해준 요한을 위해서 건배!”


맛있는 피자를 먹고 신이 난 올리는 콜라가 담긴 자신의 플라스틱 컵을 치켜들며 선창했다.

신입생들도 다 함께 건배를 외치며 저마다 요한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요한에게는 정말로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신입생들 모두가 기뻐하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의 피자파티를 있게 해준 진짜 공로자인 다리우스는 지금쯤 텅 빈 지갑 때문에 속이 쓰려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테지만.

모두가 맛있는 피자로 즐겁게 파티를 즐기고 있을 때, 요한은 조금 다른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36비트까지도 갈 수 있었는데···.’


사실 그게 원래 계획이었다.

살스 피자 36판을 사게 만들어서 다리우스를 완전히 파산시켜 버리자는 작전이었다.

요한의 생체 메트로놈이 있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메트로놈 소리를 듣고 드럼을 쳐야 할 요한의 두 팔이 너무 연약하다는 사실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요한은 하이틴 시트콤에 그대로 출연해도 될 만큼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의 동양인 범생이였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운동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고, 국수 가락처럼 얇고 힘없는 두 팔로는 운동을 시작하기도 힘들었다.


‘일단 이 허약해 빠진 몸뚱이를 어떻게든 해결해야겠군. 한시라도 빨리 체력을 길러야 해. 드럼은 다른 악기보다 체력이 중요한 악기니까.’


피자파티가 끝나고 마칭밴드 숙소에서 보내는 첫 번째 밤이 찾아왔다.

모두가 잠든 시각, 검은 그림자 몇 개가 은밀하게 소리를 죽이며 신입생들의 숙소에 나타났다.

누가 봐도 흉계를 꾸미는 중인 것처럼 보이는 그들은 셰이머스 고등학교 마칭 밴드의 선배 부원들이었고, 그중에는 다리우스도 있었다.


“소식 들었다. 다리우스. 이번 신입생들한테 완전 털렸다며?”


“닥쳐!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다리우스를 변호하자면, 이번 신입생 중 하나가 예상외로 대단하긴 했어. 그 요한이라는 놈.”


신입생 숙소에 몰래 숨어든 선배들은 목소리를 낮춰 요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녀석은 드럼을 어떻게 그렇게나 정확한 박자에 칠 수 있는 거지? 심지어 프로 뮤지션조차 아주 작은 틈은 생기기 마련인데.”


“연주 실력도 실력인데, 나는 그 녀석이 다리우스한테 전혀 겁먹지 않았다는 게 더 신기해. 여태껏 신입생이 다리우스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 겁먹지 않은 적이 있었나?”


“그러게. 어딘가에서 한주먹 할 것처럼 보이던 놈이 그랬다면 차라리 이해하겠는데. 요한 그 녀석은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말라깽이잖아? 그렇게 허약해 보이는 녀석이 어디서 그런 깡이 나오는 거지?”


“뭔가 믿을 만한 구석이 있으니까 입단 첫날부터 우리한테 대든 거겠지. 진짜 드럼 초보자라기에는 그런 실력은 말도 안 되는 거고.”


선배들은 요한이 자신의 정체를 숨긴 모종의 실력자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 착각을 할 만한 게, 그렇지 않고서야 입단 첫날부터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진짜 정체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선배들은 요한에게 다른 신입생들처럼 섣불리 시비 거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리우스. 요한에 대해서 단장님에게 뭐 들은 건 없어?”


“단장님에게 들은 건 아무것도 없지만, 단장님이 우리한테 중요한 사실을 숨긴 게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이제 다들 조용히 해. 시간 되었으니까.”


선배들은 숨을 죽이며, 신입생들이 잠을 자는 침실로 들어왔다.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선배들은 갑자기 자기 악기를 꺼내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방 안에 울려 퍼지는 느닷없는 소음에 신입생들은 깜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났다.

선배들은 처음 대기실에서 한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악을 써서 신입생들을 깨웠다.


“뭐, 뭐야?”


요한도 느닷없는 고성방가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잠에서 깨자마자 눈앞에 보인 것이 다리우스의 험악한 얼굴이어서 요한은 두 번 놀라고 말았다.


“일어날 시간이다. 요한.”


“뭐···. 이게 다 뭐 하는 짓이에요?”


요한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항의하며 머리맡의 탁상시계를 살펴보았다.

아직 4시밖에 안 된 새벽이었다.

요한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돌아보았지만, 다리우스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운동복 갖춰 입고 밖에 정렬하는데 10분 준다. 빨리 움직여.”


요한은 하는 수 없이 툴툴거리며 이제 겨우 익숙해진 침대를 떠나야 했다.

그나마 요한은 이 군대식 문화에 비교적 익숙한 편이었지만, 집에서 애지중지 자랐을 다른 신입생들은 그러지 못했다.

특히 올리는 아직도 잠이 덜 깨서 비몽사몽이었는데, 요한이 대신 옷을 입혀줘야 했다.

루스는 의외로 요한보다도 더 능숙하게 이 상황에 적응했는데, 그녀는 별다른 불만 없이 벌써 옷을 전부 챙겨입고 간단하게 세수와 양치질까지 하고 있었다.

요한이 신기하게 쳐다보자 루스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히스패닉 가정의 자녀로 태어났다면, 엄마에게 찬클라로 얻어맞지 않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신입생 전원이 지각하는 일 없이 운동장에 모였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어서 어둑어둑했고, 신입생 대부분은 이런 시간에 일어나 본 적이 없는 녀석들이었다.

운동장에는 한 남자가 미동 없이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다. 학생 여러분. 예술가의 아침은 보통 사람보다 일러야 하지.”


남자는 성량이 풍부하면서도 엄격한 목소리로 신입생들에게 말했다.

요한은 그를 가만히 살펴보며, 적어도 그가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추측했다.

이 정도는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살던 곳에서 새벽 4시는 아침이 아니라 아직 한밤중이라고 불렀는데···.”


여전히 잠이 깨지 않은 얼굴로 올리는 툴툴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말했다.


“내 이름은 데이비드 플레처다. 하지만 너희들은 내 이름을 부를 기회가 없을 거다. 너희들이 부를 수 있는 내 호칭은 오직 ‘단장님’ 뿐이며,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네, 단장님’뿐이다. 알겠나?”


“네! 단장님!”


무거운 기세로 신입생들을 휘어잡는 플레처 단장을 보고 요한은 다리우스가 후배를 겁주는 방법을 누구에게 배웠는지 알 것 같았다.

엄격한 표정으로 뒷짐을 지고 플레처는 신입생들 앞에 섰다.


“자네는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이 누구지?”


“커트 코베인입니다! 단장님.”


“오, 너바나!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록스타였지. 그는 얼터너티브 록의 판도를 바꾼 천재 음악가였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칭찬하는 플레처의 말에 그 신입생은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요한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플레처가 신입생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가장 존경하는 가수를 물어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면 자네도 산탄총으로 자살할 계획인가?”


“예?”


“산탄총 말이야. 총구를 입에 물고 빵! 커트는 그런 식으로 자기 집 벽을 새로 칠했지.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이 있듯이 자네도 그런 식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게 아닌가 해서 물어봤지.”


“단장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니야? 그러면 헤로인 같은 마약에는 관심이 많은가? 유명한 록스타가 되어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그런 마약들을 공짜로 구할 수 있다는 거지. 난 사실 유명한 록스타일수록 약을 많이 빨아야 한다고 생각해. 자신들이 원히트원더 밴드라는 사실을 잊으려면 말이야.”


“그만 하세요!”


요한은 이제 이 마칭밴드의 패턴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찌 보면 플레처는 다리우스보다 더 악랄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리우스가 신입생 본인의 인격모독에 그쳤다면, 플레처는 신입생이 가장 좋아하는 우상을 모독하고 있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기 욕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모욕을 더 굴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다리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플레처도 한 사람씩 신입생의 자존심을 꺾었다.

플레처가 비틀스 맴버인 존 레넌의 복잡한 사생활을 비난하기 시작하자, 올리는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인 표정이 되었다.

음악을 하겠다고 모인 신입생들답게, 다리우스에게 인신공격을 당했을 때보다 더 충격받은 표정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플레처는 요한의 앞에 멈추어 섰다.


“자네는 존경하는 뮤지션이 있나?”


요한은 당황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이 비난당하는 일을 앞두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요한은 좋아하는 뮤지션이 없었다.

요한은 음악에 깊게 빠지기 시작한 지도 오래 지나지 않았고, 그는 특정 뮤지션을 선망하기보다는 드럼 연주 자체에 꽂혀서 음악의 길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유명한 뮤지션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에 가까웠다.


플레처가 이미 눈앞에 와 있으니 요한도 더 이상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무슨 대답이라도 빨리 해야 했다.

요한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밴드의 이름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건 절대로 지금 상황에서 올바른 대답이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침묵이 길어지며 플레처의 미간이 불쾌하게 꿈틀거렸다.

하는 수 없이 요한은 대답했다.


“일렉트릭 메이햄입니다. 단장님.”


요한이 밴드의 이름을 내뱉는 순간, 운동장에 모인 모두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일렉트릭 메이햄은 미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밴드였다.

하지만 그랬기에 오히려 이런 상황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밴드였다.

요한을 노려보던 플레처는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일렉트릭 메이햄이라고?”


“예. 단장님.”


“자네 지금···. 세서미 스트리트에 나오는 퍼펫 인형 밴드를 말하는 건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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