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검사로서 살아가는 법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릴리엘1111
작품등록일 :
2024.08.30 00:59
최근연재일 :
2024.09.15 20:0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04
추천수 :
0
글자수 :
102,365

작성
24.09.07 20:02
조회
21
추천
0
글자
20쪽

제7화 마른 하늘에

DUMMY

<제7화 마른 하늘에>





[대제국력 5108년]



"잡았다! 내가 잡았다고!"


"조심해! 털끝 하나 다쳐도 안 되니까!"


이른 아침,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마을의 시장에 가려진 인적이 드문 뒷골목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이 한 작은 소녀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흐, 흐윽······."


아직도 세상사에 무지한 작은 소녀는 인간의 얄팍한 인간성을 믿고 그저 그만두길 바라며 흐느꼈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저 탐욕만이 가득한 남자들의 시선이었다.


잠시 후, 땅에 닿아있던 소녀의 귀에서 둥둥 울리는 듯한 발걸음 소리가 완전히 멈추고, 소녀를 짓누르던 남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분명 이거 맞지?"


"확실해. 시간이 좀 흘러서 자라난 것 뿐이지 외견상으론 수배서랑 완전히 일치하니까."


"잡담은 거기까지 하고 잡았으면 빨리 담기나 해. 오 년 전의 사태가 또 반복되어선 안되니까."


이해를 할 수 없는 비수 같은 말들에 소녀는 시야가 점점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녀린 어깨가 두려움에 떨리려 하였지만, 어깨를 짓누른 거친 손은 그것마저 마음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서서히 조여오는 공포심이 소녀의 페를 압박하자 소녀의 숨이 살짝 불규칙해졌다. 숨소리가 불규칙해지자 그에 상응하듯 머릿속 또한 불규칙하게 여러 생각들로 가득 찼다.


부정, 수긍, 포기, 분노, 울분, 걱정······수많은 감정들로 뒤섞인 생각들이 번갈아가며 소녀의 몸을 지배하였으나, 끝내 소녀의 머릿속을 완전히 지배한 생각은 다름 아닌······.


'누가······아무나 좋으니까 누가 좀 살려줘······!'


그저 '살고 싶다' 였다.


'제발······!'


"자, 그럼 얌전히 꿈나라로 갈 시간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 소녀 한 명이 없어진다고 해도 멈추지 않는다. 소녀가 기도하고, 기대하는 모든 것이 소녀를 배신해도, 세상은 그저 흘러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리고 잔혹하게도, 세상은 이를 미리 알려주지 않기에 이 어린 소녀 또한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에 소녀는 무지하게 빌 뿐이다.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기적이라는 환상을.




* * *




"에고 두야······어제 너무 마셨나?"


창문을 가린 커튼으로 인해 빛이 바래진 어느 방.


그곳에서 깨어난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침상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평소에는 술에 잘 취하지 않지만 어제는 취할 기세로 마구 퍼 마셨기 때문에 내 목소리에도 머리가 울리는 골 때리는 상황이었다.


다음 날에 숙취로 고생할 때까지 마셨다는 건 그만큼 좋은 일과 혹은 나쁜 일 중 하나가 있었다는 뜻. 물론 내 경우엔 당연히 전자에 가까웠다.


나한테 안 좋은 일이 그리 쉽게 일어날 리가.


나는 침상에서 내려와 옷을 대충 챙겨 입은 다음 시원한 아침 바람을 쐬기 위해 창문으로 다가갔다.


분명 이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면 이제 막 뜨기 시작한 해가······.


촤악!


"······없네?"


이상하다? 분명 날은 밝은데? 요즘은 해가 서쪽에서 뜨나?


나는 창문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악! 씨발! 내 누우우우운!"


괜히 올려다봤다.


나는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바닥에 누워 이리저리 뒹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탁자에 부딪히고 서랍 모서리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내가 그것들을 부술 순 있어도 그것들이 나를 부술 수는 없기에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이래서 사람은 꾸준히 몸을 단련해야 한다.


"내 눈이이이이! 아아아아아악!!"


물론 눈은 단련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예외.


이렇듯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게 하나씩은 있다.


"끄으으으으······."


겨우 눈깔을 추스른 나는 바닥을 짚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하루에 몸을 두 번 일으키는 날이라니, 대체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이 답답하고 짜증 난 기분을 어디다 풀까 고민을 하던 와중······.


"······그러고 보니 우리 제자는 어디로 갔을까아~요?"


아침이 되도 날 깨우러 오지 않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방치한 내 제자가 번뜩 떠올랐다.


"내가 분명히 해가 뜨면 무슨 사정이 있어도 깨우러 오라고 했는데, 지금은······어머머머! 해가 중천이네??! 요즘은 해가 중천에서부터 뜨나?? 우리 제자. 말 잘 듣고 밥도 잘 하던 우리 예쁜 제자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만나면 너~무 귀여워서 대가리를 콱 물어버리고 싶네?!!"


구궁······.


"······어머."


내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집 전체가 조금이지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내 집을 내가 부술 수는 없는 법. 나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후우."


이상하게도 방금까지 불같이 타오르던 머리에 차가운 물을 끼얹은 것처럼 삽시간에 마음이 차분해져갔다.


이로써 또 한 번 돈은 사람의 마음조차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개 같은 자본주의 세상 같으니.'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는 정녕 완성될 수 없는 것인가.


꼬르륵.


"······일단 밥부터 먹어야겠네."


나는 지랄발광하던 것을 멈추고 문을 열어 방을 나섰다. 제자가 나를 깨우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래도 항상 해놓던 아침 밥은 가지런히 놓여진 수저와 함께 식탁에 차려져있······.


"······지가 않네?"


깨끗하다.


아니, 이것은 깨끗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외견만으로는 마치 방금 새로 산 가구처럼 광택이 나다 못해 식탁이 스스로 빛을 내고 있지 않은가?


나는 크게 눈을 뜬 채로 조심스럽게 식탁에 손을 올려보았다.


미끌!


대체 나무로 된 식탁을 얼마나 열심히 처 닦았으면 나무가 무슨 얼음마냥 이리도 미끄럽게 변하는가? 이 정도면 마법으로 재질을 바꿨다고 해도 믿을 정도인데.


'자,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해보자.'


아침인줄 알고 일어났더니 시간은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 있고, 날 깨우지 않고 어딘가로 사라진 제자는 늘상 차려놓던 아침밥까지 안 하고 튀었다. 심지어 그 와중에 식탁은 청소를 해놓다 못해 아예 새 것을 만들어버렸고.


식재료? 식재료는 저기 산 속에 있는 빙고(憑庫)에나 있지, 여기에는 없다. 그마저도 어제 제자가 아침밥과 점심을 만드느라 다 써버려 새로 사야 하는 상황이다.


자, 그럼 지금 내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해보자면.


"없네?"


아침밥이 없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밥'이라 불리울만 한 것은 이 자리에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먼지 한톨 없이 깨끗한 식탁과 기만이라도 하는 듯 꼴 받게 가지런히 놓인 의미 모를 수저뿐.


"아하~ 그러니까 나는 산 속에 처 들어가지 않는 이상 아침을 굶어야 하는구나?"


다시 한 번 상황이 파악된 나는 이 의미를 모를 식탁처럼 방긋 미소를 지었다. 다소 어색하게 말려 올라간 입꼬리가 찢어질 기세로 더 올라감과 동시에 내 안의 무언가도 뚝— 하고 끊기는 느낌을 받은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야 이 빌어처먹을 제자새끼야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앙!!!


내 사자후와 함께 결국 견디지 못한 오래된 집이 뻥! 하고 터져나갔으나 나는 오히려 그 폭발의 반동을 이용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한순간이지만 새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내게 현실을 직시하라는 듯 집의 파편들이 내 눈앞으로 날아왔다. 이제는 아무 것도 아닌 나무 쪼가리들에게서 어째서인지 '한탄스럽도다' 라는 환청이 들려왔으나······.


"저리 꺼져!!!"


나는 그것들을 남 일 인 것 마냥 한 손으로 퍽 처내곤 공중 제비를 세 바퀴 돌며 땅에 착지했다. 그야말로 십 점 만 점에 백 점.


하지만 땅에 착지했음에도 여전히 내 집이었던 것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우수수 쏟아지자 나는 결국 실성하여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핳!! 하늘에서 집이 내려오네! 하하하하하핳!!"


집? 요즘 같은 시대에 돈이 있어도 집을 구하는 게 더 어렵기에 물론 중요하다.


가구? 당연히 가구도 하늘에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니 중요한 건 매한가지다.


돈? 이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밥 내놔라! 이 못난 제자새끼야아아아아!!!!!!!"


제자가 해준, 제자의 '밥'이었다.


나는 절망에 가득 찬 미소로 내 집하곤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는 마을을 향해 굶주린 짐승처럼 네 발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딱히 큰 이유는 없었다. 그냥 이렇게 뛰면 왠지는 모르겠지만 더 빨랐기 때문이다.


우다다다다다!


물론 중간중간 나무와 바위가 날 막긴 했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바위와 나무를 부수며 전진했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어!!!!"


마른 하늘에 날짐승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 *




쿠우우우웅!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기적을 낳는다.


그러나 현실은 그 기도마저 차갑게 저버린다. 세상에는 너무나 간절한 마음이 많고, 기적은 그 모든 마음을 들어주기엔 힘이 부족하다.


기적이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일이 눈앞에 일어나는 마법 같은 힘이기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기도를 이뤄준다면 그것이 기적이 아니기에.


하지만 오늘.


"꺼허헉!"


아직 세상을 이해하지 못해 슬피 흐느끼던 가녀린 소녀의 기도는······.


"이제 괜찮아."


지금, 확실히 닿았다.


가녀린 소녀의 눈동자가 자신을 구해준 이를 향해 빛을 비춘다. 그 빛이 닿는 곳에는 검은 장막이 내리깔려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단 한 가지.


검은 장막마저 가리지 못한 새하얀 보석만은, 그 어둠 속에서 찬란히 빛났다.


"이 새끼가!"


나는 나를 향해 칼을 휘두르는 남자의 팔을 살짝 밀친 다음, 그대로 남자의 면상과 복부에 동시에 주먹을 꽂았다.


퍼버벅!


종잇장처럼 구겨진 남자의 얼굴이 그대로 피를 흩뿌리며 몸과 함께 날아가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지켜만 보고 있던 다른 남자들도 하나 둘씩 품 속에서 칼을 빼들었다.


"풉."


"······?"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병신같아서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왜 이 새끼들은 항상 같이 싸울 생각을 먼저 안 하고 한 명이 당하고 나서야 같이 싸울 생각을 하는 걸까.


조금이라도 쪽수가 많은 게 지들한테 더 유리한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뭐, 그래도 웃기긴 해."


사실 이런 상황에선 쪽수가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지만. 왜 항상 사람들은 유리함만을 먼저 찾고 현명함은 뒤늦게 깨닫는 것일까.


나는 나를 향해 개떼처럼 달려드는 남자들을 향해 과거에 보았던 '어떤 모습'을 한번 재현시켜보았다.


퍼억!


한 놈.


퍼버벅!


그리고 또 한 놈.


빠아아아악!


한 놈, 한 놈을 때려 눕힐 때마다 나는 기분이 매우 오묘해졌다.


'와, 이게 되네.'


스승님이 보여주신 것과는 한참 느리고 미숙했지만, 그럼에도 지금 내 몸은 그 미친 짓을 겉보기라도 흉내 낼 수 있다.


이것은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으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일 또한 아니었다.


"들어라."


나는 그냥 패고만 있자니 분위기가 너무 싸한 것 같아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이 아이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지. 왜 그랬을까? 모습이 다르고 성별이 달라도 이 아이 또한 너희처럼 피와 살로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이 세상에 단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마음'이란 것이 있는데. 어째서 너희들은 자신 이외의 모든 인간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것일까?"


물론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내 공격을 막느라 정신이 팔려 무어라 반박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 또한 이 사실을 알기에 크게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이 병신들이 들으라고 하는 말도 아니다.


"세상에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스스로 눈을 멀게 하여 길을 잃은 인간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이 중에서 대부분은 십중팔구 구제불능한 병신이야. 그래서 나는 너희 같은 병신들을 설득하는 대신 똑같이 사람으로 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너희들도 똑같은 입장이 되어본다면 알게 되겠지. 설령 끝까지 깨닫지 못해도 내 알 바는 아니다. 그래봤자 내 인생이 아니니까."


여전히 병신들은 듣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한 명. 뒤에 있던 아이만큼은 내 이야기를 경청하듯 나를 물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거면 족했다.


"세상에는 너희 말고도 구해야 될 사람들이 너무 많다. 부모에게서 버려진 이들, 사람에게 배신당해 상처 입은 이들, 세상에 버려진 이들까지.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이었고 본래라면 그렇게 죽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을 만나고 나서 내 운명은 바뀌었지. 아니, 어쩌면 내가 바꾼 걸지도 모르겠고."


누구도 그들을 구하지 않았다.


누구도 그들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


누구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가 제 목숨의 가치를 너무 뼈저리게 알고 있었기에. 모두에게 소중한 존재들이 하나씩은 있었기에. 그 사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서.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아무도 구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그들을 향해 손을 뻗어주지 않는다면, 끝내 그들마저도 그렇지 못 한다면.


세상에 버려진 이들에게 다시 세상으로 이끌어줄 사람이, 구원이 필요하다면······.


"이런 나라도 그들의, 그들만의 영웅이 되겠다고."


나는 버려진 이들의 영웅이 될 것이다. 마왕을 무찌른 용사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 찬란히 빛나지 못하더라도, 모두를 위해 싸우는 영웅이 되지 못하더라도.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는 별이 아닌, 가장 낮은 곳에서 빛나는 등불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등불은 영원히 빛나진 않겠지만, 사람과 사람을 통해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처음엔 하나였던 것이, 두 개로, 열 개로, 백 개로.


그렇게 점점 늘어나다 보면 언젠가······.


"그렇게 된다면 세상에 버림받는 이들은 사라지겠지."


언젠가는 반드시.


퍼어억!!


마침내 마지막 남은 한 놈까지 쓰러지고, 나는 손가락에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실을 뽑아내어 남자들을 한 데 모아 묶고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이 이상으로 내가 저놈들에게 소비할 시간은 없었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구하는 것'이니까.


나는 이제 시선을 소녀에게로 고정시켰다. 겉보기에는 크게 다친 곳은 없으나 분명 마음에는 큰 상처가 생겼을 터. 일단 소녀의 경계를 풀기 위해 쓰고 있던 로브의 후드를 벗으려는 순간······.


"매······매튜 오빠······?"


"······응?"


소녀의 눈이 나와 마주치며 꽤나 익숙한 이름과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후드를 완전히 벗고 소녀를 좀 더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나와 소녀 둘 다 서로가 누구인지 확실히 깨달아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너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재회에 소녀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야!"


갑자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응?


소리?


'하늘에서?'


"—끼야!!"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야이 제자 새끼야!!!"


그리고 곧 그것을 후회했다.


뻐억!!


내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갑작스레 하늘에서 떨어진 스승님의 발이 그대로 내 안면을 강타했다. 안면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통증에 목구멍 끝까지 비명이 차올랐지만, 내 입을 막고 있는 스승님의 발 때문에 그 비명이 터져 나오는 일은 없었다.


순식간에 내 얼굴에서 내려온 스승님이 그대로 내 목을 팔로 걸고 머리를 구타하며 말했다.


"아침에 깨우지도 않고!"


퍽!


"아침밥도 차려놓지도 않고!"


퍽!


"그, 그만······."


"그것도 모자라서 집도 날아가 버리고!"


아니, 집은 또 왜 날아갔어??


"멋대로! 네 밥 없이! 살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 놓고! 도망쳐?! 어?!"


퍽! 퍽! 퍼억! 퍽!


"아우! 진짜!"


결국 나는 참다 못해 스승님의 팔을 잡고 역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럼 식재료라도 주던가! 빙고에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아무것도 없이 음식을 만들어요?! 재료 정도는 스승님이 사오기로 약속 했으면서!!"


그 말에 스승님이 뜨끔한 듯 식은 땀을 흘리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건······내가 어제 진짜 사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눈앞에 맛있어 보이는 술집이 보여서······."


"그래서 또 술을 그렇게 퍼 마시셨다?"


그리고 나는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쇄기를 박아 넣었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스승님을 말싸움으로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맨날 술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처 먹다 기절해서 내가 데리러 오고!"


푹!


"아침, 점심, 저녁도 다 내가 차리고! 집 안 청소부터 시작해서 집안일이란 집안일은 다 내가 하고!"


푹! 푹!


"그럼 하다 못해 재료라도 사오겠다는 약속은 지켜야지! 그것도 안 지켜서 결국 내가 재료 사오 게 만들고!"


푸욱!!


"그러면서 뭐? 아침밥을 안 하고 도망쳐? 아이고, 내가 속이 터져서 못 살겠네! 어른이라면서 아직 애인 나보다 하고 있는 일이 대체 뭐에요?!“


내가 끝내 마지막 쇄기까지 박아넣자 스승님이 조금 풀이 죽은 듯 빌빌 기는 목소리로 슬쩍 대답했다.


"······쌈박질?"


"자랑이다! 아유, 진짜! 내가 하산을 하든가 독립을 하든가 해야지!!"


'하산'과 '독립'이라는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자마자 안색이 창백해진 스승님이 급하게 내 옷자락을 붙잡고 성급히 말했다.


"제, 제자야. 그 얘기는 어제 끝난 거 아니었니?"


"누가 끝났데요?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지. 그리고 전 아직 포기 안 했거든요?"


"너 없으면 내가 이제 어떻게 사냐? 응? 그러지 말고······."


"그게 대답이에요?"


내가 가늘게 눈을 뜨며 눈치를 한 번 주자, 잠시 생각에 빠진 스승님이 그제서야 꼬리를 내린 강아지처럼 축 처진 대답을 하였다.


"······잘못했어.“


”······하아.“


나는 그 모습에 결국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푹 숙인 스승님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어주었다.


"그래요. 그래도 이번엔 저도 아침밥 안 차려준 건 잘못한 게 맞으니까 셈셈이로 칠게요.“


내가 이렇게 마음이 약하다.


스승님도 그런 내 손길이 싫지만은 않았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어쩌면 이제는 내가 스승님의 시야보다 더 높아진 게 한 몫 한 걸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평소에 이렇게 얌전하면 좀 더 좋을 텐데.


스승님한테는 무리한 부탁이겠지.




오 년.


결코 짧지 않은, 그러나 인생에서 그리 긴 시간도 아닌 이 시간 동안 나는 정말로 많은 것이 변했다.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움직임을 지금은 할 수 있고, 이전에는 볼 수 없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으며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변하는 게 있다면 변하지 않는 것도 있기 마련. 스승님은 나와 다르게 오 년 전과는 단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사고를 치고, 나는 그런 스승님을 오늘도 적당히 봐준다.


이런 관계만은 도저히 변하지가 않았다.


'이래서야 누가 애고 누가 어른인지.‘


시야가 더 높아졌다고 나이까지 스승님보다 더 많이 먹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

.

.

나는 이런 관계가, 이런 스승님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검사로서 살아가는 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제11화 발상의 전환이라고 24.09.15 20 0 17쪽
11 제10화 남부 도시의 어둠 24.09.14 22 0 19쪽
10 제9화 다음에 만날 때는 24.09.13 24 0 22쪽
9 제8화 옛 친우들 24.09.08 21 0 16쪽
» 제7화 마른 하늘에 24.09.07 22 0 20쪽
7 제6화 내가 걸어야 할 길 24.09.06 21 0 20쪽
6 제5화 제게 알려주세요 24.09.01 20 0 21쪽
5 제4화 시리도록 아름다운 24.08.31 21 0 18쪽
4 제3화 나의 제자가 있었다 24.08.30 28 0 22쪽
3 제2화 오늘부터 너는 24.08.30 24 0 21쪽
2 제1화 세상이 참 더럽다 24.08.30 32 0 22쪽
1 제0화 전쟁의 나라 24.08.30 50 0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