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검사로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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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엘1111
작품등록일 :
2024.08.30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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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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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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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남부 도시의 어둠

DUMMY

<제10화 남부 도시의 어둠>





[대제국력 5108년]



동부 제국의 남부 도시 서머시스.


황금빛 갈대밭이 우거진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평야. 그 평야를 가로지르며 흘러가는 제국에서 가장 긴 강이라 불리우는 올. 그리고 그 가운데 방벽으로 둘러쌓여 있는 거대한 규모의 도시까지.


누구나 처음 이 도시를 본다면 천국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이 도시의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후우."


하지만 빛의 이면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듯이,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추악함이 드리워져 있기 마련.


"인생 한 번 참 엿같네······."


"어이, 왜 그래?"


대표적으로 이 남자들이 그러했다.


거친 욕지거리를 내뱉은 남자가 시가를 입에 문 채로 말했다.


"소문 못 들었냐?"


"소문?"


시가를 문 남자의 입에서 연기와 한숨이 함께 내쉬어졌다.


"저기 작은 마을 쪽에 갔던 놈들 소식이 또 끊겼다잖아."


"작은 마을이라면······아! 오 년 전에 위에서 거금을 들이고도 실패해서 크게 쪽박 찼다던 그······."


"쉿!"


시가를 문 남자가 황급히 옆에 있던 남자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남자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곤 입을 틀어막은 남자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너 미쳤어? 근처에 듣는 귀라도 있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이 근처는 '낚시터'인거 몰라? 예전에 이 근처에서 윗놈들 험담하다가 걸린 놈들 싹 다 어떻게 됐는지 벌써 잊었어?"


"미, 미안······."


"음~ 이 근처를 낚시터라고 부르는구나."


"그래. 아무리 우리 같은 말단이어도 '별의 눈'은 피할 수 없으니까 항상 조심······응?"


벌레의 날갯짓이 내는 소리의 사이에 청량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조화를 이루지 못한 두 개의 음이 불협화음이 되자 남자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마치 처음부터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사이에 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검은 로브의 여성이 있었다.


'대, 대체 언제부터······.'


언제부터. 그런 의문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저 여성이 언제부터 저기에 서 있었냐는 것이 아닌, 저 여성이 이렇게나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둘 중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가만히 서서 고개를 끄덕이던 여성이 뭔가를 깨달은 듯 손뼉을 짝 치며 입을 열었다.


"좋아! 너희 둘!"


"네, 네?"


얼떨결에 대답해버린 남자들을 향해 여성이 방긋 미소를 지었다.


"너희 같은 애들한테 분량 많이 쓰면 욕 먹으니까 빨리빨리 처리해줄게! 땅이 좋아? 하늘이 좋아?"


"어······어, 어 그게······."


"저, 저는 하늘이 좋습니다!"


그 와중에 옆에 있던 남자가 눈치 없이 손을 번쩍 들며 말하자 시가를 문 남자가 이마를 탁 쳤다.


'저런 병신새끼가······!'


"아하~ 하늘이 좋구나?"


눈치 없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여성이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너희가 하늘이 좋긴 왜 좋니? 뒤지면 다 지옥에서 변명이나 지껄이고 있을 놈들이?"


"······."


"그러니 그냥 얌전히 지하로 꺼지자?"


'······그럴 거면 애초에 왜 물어본 거야.'


더 이상 부드럽지도 않은 여성의 태도에 시가를 문 남자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곤 끝내 체념했다.


"진짜 인생 한 번 존나 엿같네."


자신은 조졌다는 것을.




* * *




"그래서······이놈이 노예시장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고요?"


제자가 내가 묶어온 병신 하나를 가르키며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 입으로는 그렇대. 직접 가본 적도 있다나 뭐라나."


"도착하자마자 또 어디로 사라져서 사고 쳤나 했더니 이번 일은 잘하셨네요. 그런데 한 명 더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아~ 걔?"


나는 해맑게 미소를 지으며 발로 땅을 팍팍 쳤다.


"조상님이 부르셔서 지옥에 가야 된다길래 내가 보내줬어. 아, 아니다. 걔 조상님은 천국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사신이 불렀다고 해야 되나?"


"······그냥 죽였다고 해요. 뭐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죽일 놈들이었는데 뭘 그리 돌려 말할 것까지야."


"원래 돌려 까는 게 제일 재밌거든."


"스승님은 정말 악질이네요. 하아······."


미간을 살짝 찌푸린 제자가 묶여있던 병신에게 다가가자 나는 슬쩍 옆으로 비켜 길을 터주었다. 그동안 애써 모른 척 해주었지만 사실 제자는 여기까지 오는 내내 쌓인 응어리가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제자는 오지랖이 넓은 만큼, 안에 쌓아둔 것 또한 너무 많다, 그렇기에 설령 분풀이에 불과하더라도 이럴 때 조금이나마 풀어줘야 했다.


제자가 눈탱이 밤탱이가 된 병신의 머리채를 잡으며 물었다.


"즐거웠지? 그동안 죄 없는 사람들을 납치해서 물건처럼 내다 팔고, 그 돈으로 희희낙락하면서 살았을 테니."


"사, 살려주십시오······! 저, 저는 정말로 아는 걸 다 불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절대 한 치의 거짓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나를 마주했을 때보다 겁에 질린 얼굴이 된 병신이 필사적으로 애원하자, 제자가 잡고 있던 머리채를 팍 놓아버리며 말했다.


"안내해."


"네, 네?"


"귀 먹었어? 그 '시장'이란 곳으로 네가 직접 안내하라고."


"아······아, 안 됩니다! 제가 안내했다는 사실이 위에 들키면 저, 전 반드시 죽습니다! 그것만은 제발······."


푸욱!!


"아아아아아아악!!"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병신의 팔에 트라겐이 준 칼을 박아넣은 제자가 차갑게 일갈했다.


"넌 어차피 죽어. 단지 그 시간이 좀 더 빨리 오느냐, 늦게 오느냐의 차이일 뿐."


"흐, 흐윽······."


"너한테 주어진 선택지는 수락과 거절이 아닌 '선택'뿐이야. 여기서 그냥 고통스럽게 죽거나, 아니면 우릴 그곳으로 안내한 다음 조금이라도 편하게 죽거나."


제자의 살벌한 협박에 울상이 된 병신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려보았으나, 나는 제자와 마찬가지로 검을 빼들어 요리조리 흔들며 입을 뻐끔거렸다.


'죽. 여. 줘?'


"······."


그때부터 병신의 눈에는 일말의 희망조차 사라졌다.




* * *




우리는 스승님이 끌고 온 남자의 뒤를 따라 도시 밖으로 나가 숲 속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허튼 수작을 부리는 줄 알았으나 남자의 말로는 노예시장은 함부로 위치를 옮길 수 있는 시장이 아니기에 만들 때 신중히 자리를 잡을 수 밖에 없었으며 그렇기에 도시의 눈을 피할 수 있고 인적이 드문 장소를 선택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내심 안도하였다. 도시의 눈을 피해 인적이 드문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적어도 도시가 뒤를 봐주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니까.


다만 여전히 의문인 점은 수상할 정도로 차갑게 대하던 위병들의 태도인데······.


터벅.


그 의문을 해결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자야."


"알고 있어요."


분명히 사람이 없을 숲 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나와 스승님은 재빨리 남자를 데리고 수풀에 몸을 숨겼다. 발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마력을 탐지해보니 아주 미약한 마력이 둘 정도 느껴졌다.


터벅터벅.


"······."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나는 스승님에게 작게 속삭였다.


"노예시장과 관련된 자들 일까요?"


"허어, 이것 봐라?"


"스승님?"


하지만 스승님은 무언가 눈치챈 듯 헛웃음을 짓더니, 말없이 손가락으로 마력이 탐지되는 방향을 가리켰다.


조용히 뒤를 따라가 보자는 의미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먼저 앞서가는 스승님의 뒤를 따라 조용히 기를 죽이고 따라갔다. 조금 앞으로 가자 수풀이 가득 우거진 곳이 나와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 세우려 했으나,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스승님의 모습에 나 또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스승님을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는가.


부스럭.


마침내 수풀을 완전히 벗어나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붉은 흙길이 언덕을 따라 이어졌다. 그리고 그 언덕의 끝으로 보이는 곳에 아까 탐지했던 마력이 느껴지자 나는 뒤에서 조용히 도망갈 각을 보고 있던 남자에게 확인 차 물었다.


"여기냐?"


"히익! 네, 네! 여기입니다!"


역시 노예시장과 관련된 자들이었다.


"제자야."


그때 어느새 언덕의 끝까지 올라간 스승님이 나를 불렀다.


"여기 와서 저것 좀 봐라."


나는 일단 스승님의 말에 따라 남자의 목덜미를 붙잡고 언덕을 올라갔다. 스승님은 언덕을 완전히 올라가지 않고 고개만 살짝 빼꼼 내밀고 있었기에 나도 고개를 빼꼼 내밀었고, 그 위에 펼쳐진 광경은······.


"······허."


내 입에서도 헛웃음이 흘러나오기에 충분했다.


밑에 나무들과는 다르게 기이할 정도로 크게 자라난 나무들,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에 마치 감추려는 듯 가려져 있는 작은 동굴. 마지막으로 그 동굴을 들어가고 있는 어딘가 익숙한 갑옷을 입은 사내 두 명까지.


눈앞의 모든 것이 어이가 없었지만, 그중 가장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바로 갑옷을 입은 사내들, 정확히는 그 갑옷에 새겨져 있는 태양 모양의 문양이었다.


"저 새끼들······그때 그 위병들이잖아?"


"아, 아마 '손님'들일 겁니다."


"손님?"


뒤에 있던 남자의 말에 내가 남자를 째려보자 남자가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네, 네. 저 같은 말단은 잘 모르지만 들려오는 소리로는 각지에서 오는 귀한 손님분들을 상대로 일종의 '사업'같은 걸 하고 있다고······."


"요즘은 이런 곳이 위병들도 손님으로 받아?"


"오, 오히려 위병이라서 더 귀한 손님으로 받는 겁니다. 잘못해서 꼬리가 잡혀도 위병들이 뒤를 봐주면 없던 일로 해주니······."


"······어이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군."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이놈들은 서머시스가 뒤를 봐주고 있는 것은 아니나 그 아래에 있는 몇몇 위병들에게 '사업'이라는 일종의 거래를 통해 꼬리를 잡혀도 금새 없던 일로 만들어준다.


아마 모든 위병이 그런 것은 아닐 테고, 마을을 순찰하는 저런 말단들에게만 사업을 제공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위병들 사이에선 말단이어도 이곳에서 만큼은 왕이 되는 듯한 우월감, 그리고 사업을 통한 재미, 혹은 이익의 추구.


그렇지 않고서야 위병의 신분으로 들키면 최소 사형을 당할 일을 저리 거리낌 없이 할 이유가 없으니.


으드득.


"······그냥 지금 다 죽여버릴까."


"제자야."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스승님이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내게 충고했다.


"나는 저놈들을 단 한 놈도 살려둘 마음이 없어. 그리고 그건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거야. 나는 모든 사람을 구하려고 하진 않아도 쓰레기들을 전부 죽이지 않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명심해라. 저 안에는 구역질 나는 구더기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가 저 안에서 난장판을 만들면 가장 먼저 죽는 건 저놈이 말한 손님도, 쓰레기들도 아닌 바로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다."


"······."


"죽이는 건 구하고 난 이후에도 늦지 않아."


"알고 있어요. 그냥······화풀이로 해본 소리입니다."


나는 스승님의 말에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죽이는 것이 아닌 구하는 것. 그 사실은 별들이 아름다웠던 밤하늘에 나타난 푸른 달을 보았을 때부터 분명 잊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도 이런 사사로운 감정따위에 휩쓸려 쉽사리 변질될 뻔하다니.


'스승님의 말처럼 나도 아직 멀었구나.'


짜악!


나는 나 자신에게 싸대기를 날렸다. 힘 조절을 하지 않아 뺨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참 더럽게도 아팠으나 그 덕분에 정신은 한층 더 맑아질 수 있었다.


내 정신이 한층 나아지는 걸 확인한 스승님이 내게 물었다.


"준비는?"


"예전에 끝났죠. 하지만 그 전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어요."


"그렇지. 그렇게 해야지."


나는 고개를 내려 내 손에 목덜미를 붙잡힌 남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쨌거나 길은 정직하게 안내했으니 약속대로 편히 보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죽기 싫은 모양인지 내가 바라보자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기야,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남자에게 일말의 자비를 베풀었다.


"고통 없이 보내줄 테니까 고개 들어라. 움직이거나 피할 생각은 하지 말고. 빗맞으면 너만 더 고통스러울 뿐이다."


"저, 저는······."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이제 와서 살고 싶다는 소리는 하지 마라."


하지만 정말로 일말의 자비 뿐이었다. 내가 생판 모르는 이 남자에게 베풀 수 있는 건 오로지 이것 뿐 이었으니까.


나는 남자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너한테도 있었을 테지. 네 손에 붙잡힌 무고한 이들이, 살려달라고 간절히 빌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만약 그들 중 단 한 명에게라도 네가 자비를 베풀었다면, 아니, 최소한 죄를 뉘우치고라도 있었다면. 어쩌면 나는 너에게 기회를 줬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아까 내가 물었을 때, 너는 그저 살기 위해서 변명하기에 바빴지. 죄를 뉘우치지도, 후회하지도 않고 말이야. 물론 살아남으려고 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근데······."


스르릉.


"네가 그런 말을 하기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사, 살려······!"


서걱.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남자의 목을 서슴없이 베었다.


눈물을 흘리던 남자의 머리가 그대로 눈물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고, 목에서 솟구치는 피가 분수가 되어 오로지 쓰러진 남자의 머리와 몸 만을 젹셨다.


나는 남자를 죽였으나, 남자는 자기 자신때문에 죽은 것이 되었다.


촤악!


나는 검에 묻은 피를 한 번 털어내고, 그대로 검을 검집에 넣은 다음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이것은 내게 있어 첫 살인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이 후회는 없었다. 죄책감도 없었고, 오히려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내 첫 살인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분노와 애도를 표한 것이 된 것이니까.


나는 스승님의 앞으로 가 말했다.


"가죠. 이제 진짜 해야 할 일은 다 끝났으니까."


스승님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나 또한 스승님의 뒤를 따라 동굴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겉으로 보기엔 조금 차가워 보이겠지만, 우리 사이에 이 정도 사소한 일로 길게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서로 눈을 한 번 마주치면 그 순간, 우리는 대화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사소한 일······그래, 사소한 일이야.'


앞으로 있을 수많은 일들에 비하면.


나는 점점 어두워지는 동굴 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남부 도시라는 빛에 가려진, 남부 도시의 어둠이란 이면을, 나아가 세상의 추악한 일면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 * *




동굴은 끝이 없는 미로처럼 끊임없이 이어졌다.


중간중간 누군가가 박아놓은 횃불이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었으나, 그 횃불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어둠에 시야가 익숙해질 쯤에도 동굴의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이 동굴은 어디까지 깊이 이어져있는 것일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지칠 때쯤에, 스승님이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섰다.


"스승님?"


"으음? 오호? 아하~?"


나는 갑자기 멈춰 선 스승님을 불러보았으나 스승님은 무언가에 빠진 듯 알 수 없는 감탄사만 연신 흘리며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위로 들었다 반복할 뿐이었다.


이 인간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건 한 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이럴 때마다 스승님의 머릿솟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드는 것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참을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주시하던 스승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자야, 느껴지니?"


"스승님이 미쳐있다는 건 이미 아주 잘 느끼고 있습니다만."


"농담하지 말고. 앞에 뭐가 느껴지냐고."


"앞이요?"


나는 스승님의 말에 천천히 눈을 감고 마력 탐지에 모든 신경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눈을 뜨고 스승님에게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다.


'······잠깐만, 아무것도?'


하지만 그때, 나는 내가 했던 생각에 모순점이 있다는 걸 깨닫고 다시 눈을 감고 마력 탐지에 집중했다.


우우웅······.


결과는 역시나 라고 해야 할까, 여전히 내 마력 탐지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다.


'불가능한 일이야.'


작은 동물이건, 작은 벌레건, 심지어 나무와 물 같은 자연의 일부분에도 모두 마력을 가지고 있다. 마력 탐지는 인간의 마력만을 '탐지'하는 기술이 아닌, 근처의 마력을 모두 탐지하고 '구분'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인간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건 그렇다 쳐도, 본래라면 느껴졌어야 할 자연의 마력 조차 느껴지지 않는다고?


어딘가에 고여있을 지하수든, 돌 틈에서 자라나 있을 작은 이끼든, 심지어 벽에 걸려 있는 횃불의 불에서조차 느껴져야 할 마력이 일체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뭔가 잘못됐어.'


나는 일단 스승님에게 내가 느낀 것을 솔직하게 말했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네요. 사람의 마력도, 자연의 마력도."


"역시, 그런 원리구나."


스승님의 동굴의 벽으로 다가가 벽을 쓸어 만지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건 고도의 마법으로 이루어진 결계인 모양이야."


"결계요?"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리는 대충······루프 같은 느낌인 것 같네. 우리는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제자리를 '돌고' 있었던 거야. 아마 이 결계의 주인이 허가된 자 이외의 침입자를 배제하는 방식이겠지.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 이 공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별도의 공간이라서 그런 거고."


"그게 가능한 일에요?"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내가 대꾸하자 스승님이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했다.


"'일반적인' 마법이라면 불가능하겠지."


"일반적인······설마?"


나는 스승님이 생각하고 있는 걸 깨닫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생각해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으나, 만약 생각하고 있는 게 맞다면 이 공간에 대한 모든 것이 단 한 단어로 설명이 된다.


그리고 이 일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훨씬 위험해지겠지.


"제자야."


스승님이 긴장을 풀라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은 억측일 뿐이야. 일단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최악'으로 가정하자고."


"······네."


스승님이 허리춤에 있는 검을 빼들며 말했다.


"일단 이 공간부터 뚫어볼까?"


"어떻게요? 스승님이 말씀하신 대로면 이 결계는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계속 같은 곳을 돌게 될 텐데······."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지."


"······."


아, 설마.


우우우우웅!


내가 말리기도 전에 스승님의 검이 마력을 머금으며 푸른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강한 힘은······."


"자, 잠까······!"


"더 강한 힘으로 찍어 누르면 그마아아아아안!!"


콰아아아아아앙!!!


아.


이거 확실히 조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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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11화 발상의 전환이라고 24.09.15 20 0 17쪽
» 제10화 남부 도시의 어둠 24.09.14 22 0 19쪽
10 제9화 다음에 만날 때는 24.09.13 24 0 22쪽
9 제8화 옛 친우들 24.09.08 21 0 16쪽
8 제7화 마른 하늘에 24.09.07 21 0 20쪽
7 제6화 내가 걸어야 할 길 24.09.06 21 0 20쪽
6 제5화 제게 알려주세요 24.09.01 20 0 21쪽
5 제4화 시리도록 아름다운 24.08.31 21 0 18쪽
4 제3화 나의 제자가 있었다 24.08.30 28 0 22쪽
3 제2화 오늘부터 너는 24.08.30 24 0 21쪽
2 제1화 세상이 참 더럽다 24.08.30 32 0 22쪽
1 제0화 전쟁의 나라 24.08.30 50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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