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들이 내 펜션을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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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HRAN노란
작품등록일 :
2024.08.3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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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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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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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 펜션

DUMMY

[송화 펜션]


“됐다. 이제 좀 깨끗하네.”


벽에 붙은 현판에 광이 난다.

조금 전만 해도 먼지에 거미줄이 그득했는데.

지금은 새것처럼 뽀득뽀득 닦아놨다.


‘어릴 땐 여기서 자주 놀았었지.’


아버지가 젊을 때부터 운영하시던 펜션이다.

젊을 때부터 자연인처럼 사시던 분이었고, 그 기질을 끝내 버리지 못하셨다.

하기야 시골에서 나고 자란 분이셨다.

그런 분이 어쩌다가 천생 도시 여자인 어머니를 만나 결혼까지 하셨는지.


‘결국 기질 차이인지 나를 낳고 이혼하시긴 했는데, 그런데도 간간이 연락은 하고 지내셨지. 어머니는 서울로 가고 아버지는 여기 시골에 남았는데도.’


아메리카 스타일인가 싶다.

뭐, 어머니도 굉장히 프리한 분이시고 아버지도 굉장히 호탕한 성격이었으니 가능했던 거겠지.


그리고 ‘사람은 일단 큰물에서 놀아봐야 한다’는 어머니의 주장으로, 어린 나는 어머니와 서울로 올라갔었다.

아버지는 그냥 껄껄 웃었다.

서울살이에 지치면 언제든 내려오라 말씀하시며.


‘그래도 서울살이는······. 잘 맞았지.’


어렸기에 적응도 빨랐다.

학교도 서울에서 나왔고, 친구도 서울서 사귀고, 첫 직장도 당연히 서울이었다.


나랑 잘 맞았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니, 잘 맞는다고 생각한 것뿐이지.’


우울증이란다.

나도 모르게 속에서 새까만 무언가가 곪고 썩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직장에서 그렇게 시달렸으니.


‘하지만 이곳에 오니까 기분이 좀 낫네.’


어릴 때 여기서 놀았던 추억 탓인 건지.

맑은 공기를 마셔서 그런 건지.

추가 달린 것처럼 묵직하던 가슴이 가볍다.


피식 웃으며 깨끗이 닦은 현판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숲.

이곳, 송화 펜션은 산 중턱의 펜션이었다.


“풍경 좋다아.”


마침 불어온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을 괜히 헝클어뜨리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한동안 여기서 푹 쉬자. 다시 서울로 올라갈지, 그러지 않을지는 고민을 좀 해보자.’


다행히 모아둔 돈은 있다.

당분간 굶진 않겠지.

즐길 거리도 많다.

이 근처에는 계곡이 있고, 강도 있다.

차를 타고 나가면 마트도 있고.

그리 생각하며 빙그레 웃는 와중이었다.


“자네는 누군가?”


느닷없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흠칫하며 돌아보니, 웬 할아버지 한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무슨 산신령 같은 외모다.

새하얀 머리칼에, 눈을 덮는 새하얀 눈썹에, 옷까지 새하얀 도포 같은 것을 걸치고 계셨다.

그런데 팔 한쪽에는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안겨있어, 뭐 하시는 분인가 싶다.


‘설마 저분이······.’


이곳으로 온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가 말씀하신 게 있었다.

펜션에 있다 보면 산신령 같은 어르신이 종종 놀러 오실 거라고.

그분께서 이 산의 주인이라고 말이다.


“어르신께서 산주(山主) 되십니까?”


그 물음에 어르신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뭐. 그런 셈이지. 그러는 자네는, 오호라. 그렇군. 자네가 두식이 아들이로군?”


아버지가 진작 나에 대해 언질을 주신 모양이다.

얼른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땅 주인한테 예의를 보여서 나쁠 건 없다.


“안녕하십니까, 강형준입니다. 아버지에게 어르신에 대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많이 못 들었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다.

그래도 어르신은 좋게 들으신 듯했다.


“허허허. 그래, 반갑네. 나도 두식이한테 훌륭한 아들이 있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네. 그나저나 서울에서 살다가 온 모양이지?”

“예, 그렇습니다. 20년쯤 살았지요.”

“그래? 서울이 거의 고향 같겠군.”


그 말에 쓰게 웃었다.


“아뇨.”

“허? 칼 같구먼.”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와 보니 아니군요. 어릴 때 여기서 놀던 기억이 계속 나는 걸 보니 여기가 고향인 모양입니다.”

“허허허! 그거 듣기 좋은 말이로군.”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던 어르신이 말했다.


“한데 두식이는 잘 도착했다던가? 자네도 오고 하니, 그동안 못 다닌 여행이나 다녀야겠다면서 들뜬 것 같던데.”

“하하, 아까 낮에 듣기로는 이제 막 강원도에 도착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거기서 온 산을 돌아다닐 거라고 하시던데요.”


우리 아버지는 보통 자연인이 아니다.

허허 웃은 어르신이 말했다.


“그렇군. 그 친구, 산에게 사랑받는 친구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어르신이 말을 이었다.


“자네, 서울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왔는가?”

“그냥, 직장 다니다가 왔습니다.”

“그냥 직장?”


어르신이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뭐, 사실은 ‘그냥 직장’이 아니기는 했다.

헌터 길드의 사무직이었으니.


“그냥······. 헌터 길드에서 일했습니다. 거기서 일반 사무일을 했었죠. 아, 헌터는 아시죠?”

“그야 알지. 한데 길드의 사무직이라. 헌터는 아니고?”

“아니었습니다. 각성도 못 했으니까요.”


어르신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럼 자네, 여기를 물려받는 건가?”

“예? 물려받는다고요?”

“두식이가 그러던데. 물려줄 거라고.”

“어······. 아버지가 그러셨나요.”


서울로 올라갈지, 올라가지 않을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만약 서울로 다시 가지 않더라도 이 근방에서 달리 일할 곳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펜션 사장은 생각해본 적 없는데.’


뭐, 이것도 아버지 재산이고 사업이고 하니까 내가 물려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건 먼 미래에나 생각할 거리다.

당장 물려받는다고 들으면, 글쎄.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는 가운데, 어르신이 끌끌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천천히 생각해보게. 급할 것 없으니. 아무튼 또 놀러 옴세. 만나서 반가웠네.”

“예, 어르신. 살펴 가십시오.”


빙긋 웃은 어르신이 느긋이 걸음을 옮겼다.

그리더니 잠깐 멈추고 말했다.


“그래, 내 이름은 송화(松花)일세. 또 봄세.”

“예, 송화 어르신. 조심해서 가십시오.”


어르신은 다시 휘적휘적 걸어갔다.


‘근데 어디로 가시는 거지?’


저긴 올라가는 길인데.

잠깐 산을 둘러보고 가시려는 건가.

아니면 위에 집이 있으신가.


‘뭐, 당연히 나보다 이 산을 잘 아실 테니까 걱정할 필요 없겠지.’


산은 빨리 해가 떨어진다.

아직 시간이 그리 늦지 않았는데도 슬슬 해가 떨어지는 걸 보며 관리인실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일찍 쉬자. 청소하랴, 짐 정리도 하랴 슬슬 피곤하네.’


관리인실로 들어가자 커다란 책상, 그리고 벽에 기대진 간이 침상, 책꽂이 등이 눈에 들어왔다.


“와······. 여기도 옛날 그대로네.”


어릴 때 여기서 낮잠 자고 했었는데.

시간의 흐름을 전혀 겪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그때보다 낡긴 했지만.


‘책꽂이에는······. 우와, 이게 뭐야.’


농사직설(農事直說), 금양잡록(衿陽雜錄).

무슨 한자로 적힌 농사 책이다.

이외에도, 농사 관련 책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고 보니 구석에 텃밭도 있었지. 아버지 취미이려나.’


근데 내가 텃밭에 손댈 일이 있긴 할까?

피식 웃으며 책상으로 다가갔다.

바로 앞에 작은 창문이 달린, 관리인실에서 사용할 법한 책상이다.


‘어디 보자. 이건 장부고.’


사무직 하던 놈은 제 버릇 남 못 주고 자연스레 장부를 펼쳐봤다.

그리고 느낀 소감.


‘아버지, 사업에는 소질이 없으시구나.’


펜션 마지막 예약 고객이 무려 2년 전.

씁쓸하게 웃으며 책상을 훑어봤다.


‘맞다, 아버지가 펜션에 머물면서 도움이 될 내용을 적은 수첩이 책상 위에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책상 위에 수첩은 없었다.

서랍 안에 있었다.


‘아오, 아버지.’


그나저나 도움이 될 내용이라.

무슨 내용이려나.


‘슬슬 피곤하니까 누워서 읽어야지.’


간이 침상을 설치하고 누웠다.

그리고 수첩을 차근차근 읽어봤는데.


[형준아 보아라.]


일단 아버지의 인사말로 시작하는데.

내용이 뭔가 좀 이상하다.


[야외 바비큐장 숯값.]

[소짜-3만 원]

[중짜-4만 원]

[대짜-5만 원]

[숯 추가-1만 원]


여기까진 여느 펜션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

그런데 밑에 설명이 따로 있었다.


[숯가마는 텃밭 뒤에 보면 있다.]

[아침 일찍 보면 숯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있을 테니까 그걸 쓰면 된다. 그리고 나올 때 반드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하고, 과자나 주전부리 같은 걸 놔두고 나오면 된다. 꼭 지켜야 한다.]


뭐지?

나폴리탄 괴담인가?

그리고 다음 내용.


[펜션 매점 이용법.]

[가격표는 거기에 다 붙어 있다.]

[판 물건은 낮에 보면 자동으로 보충되어 있다. 그런데 물건 판 날에는 꼭 물건 중 하나를 열어서 바닥에 내려놓고 나와라. 마실 거든 먹을 거든 상관없다. 근데 술은 안 된다.]


진짜 나폴리탄 괴담인가?

아무도 없는 산 중턱 펜션의 관리인실에 혼자 앉아 이런 걸 읽고 있으니 괜히 소름이 돋는다.


[손님이 객실을 이용한 후 청소.]

[입실은 오후 3시, 퇴실은 오전 11시다. 그 사이에는 객실로 들어가면 안 된다. 문만 닫고 기다리면 청소가 되어 있을 거다.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


당장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으허허, 형준아. 무슨 일이냐?

“수첩 뭐에요? 겁주려고 적어둔 거죠?”


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아닌데? 진짠데?

“아버지!!”

-으허허허! 녀석아, 진정하고 들어라. 딱히 너 겁주려는 건 아니고, 그냥······. 크흠! 한번 겪어보면 너도 알 거다.

“대체 뭘 겪어보라는······.”

-녀석아, 절대로 위험한 건 아니야. 아비가 되어서 아들한테 위험한 걸 덥석 안겨줬겠냐?


그때 휴대폰 너머로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흠, 바둑 두는 사람 어디 갔나?

-아이고, 죄송합니다. 어르신. 그럼 형준아, 당분간 펜션 좀 잘 부탁한다. 끊는다.

“아버지! 아버······. 하.”


말했듯 아버지는 천생 자연인이다.

심각한 자기 페이스를 가졌다는 뜻이다.


‘······거짓말을 할 분은 아닌데.’


아버지가 위험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면, 그건 정말로 위험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봐온 아버지라면, 확실하다.


‘어휴, 아무튼 그럼 다음은······. 텃밭?’


[텃밭]

[상추 심어놨는데 다른 거 심고 싶은 거 있으면 알아서 심고 따 먹어라. 잘 자란다.]


다행히 텃밭의 설명은 평범했다.

그 이외에도 계곡이 의외로 깊으니 혹시 물에 몸을 담그려면 조심하라느니, 요즘 강에 피라미가 많아 매운탕이 좋다느니.


그런 평범한 내용에, 아버지가 대충 적어둔 설명을 찬찬히 읽다 보니 슬슬 피로가 몰려온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운전해서 오기도 했고.

불을 끄고 간이 침상에 누운 채로 몸을 뒤척거리면서 조용히 다짐했다.


‘내일 매트리스 하나 사자.’


펜션 사장도 펜션에서 살진 않는다.

따로 집을 두고 지내지.

하지만 나는 요양차 이곳에 왔으니 공기 좋고 물도 좋은 이곳에 머물면서 쉬고 싶다.


‘잠은 중요하지. 잠은.’


그러니만큼 간이 침상이 아니라, 푹 잘 수 있게 푹신한 매트리스라도 하나 사둬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던 형준은 어느새 작은 숨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평소의 형준은 늘 얕은 잠 때문에 잠꼬대를 웅얼대곤 했는데 말이다.


* * *


한편, 관리인실의 외부 창문 턱에 올라선 채 안을 들여다보는 그림자가 있었다.

손가락 크기의 그것들은 저마다 안을 들여다보면서 소곤거리고 있었다.


-차후?

-차후후훗!


소곤거리던 그림자들은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방으로 뽈뽈 흩어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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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첫 손님 +5 24.09.05 920 30 12쪽
5 어서오세요 +3 24.09.04 939 31 14쪽
4 앞으로 잘 부탁해 +4 24.09.03 1,026 31 14쪽
3 안 하던 짓을 하게 되네 +4 24.09.02 1,116 30 12쪽
2 매점에 뭐가 있어요 +6 24.09.01 1,298 38 13쪽
» 송화 펜션 +10 24.08.31 1,578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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