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들이 내 펜션을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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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HRAN노란
작품등록일 :
2024.08.3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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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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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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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랭크 헌터 하은설

DUMMY

일단 ‘7억’부터 시작하는 세단.

천천히 관리인실 앞에서 차가 멈춰섰다.

짙게 썬팅 된 차라서 내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어렴풋한 실루엣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윽고 창문이 스르르 내려가고.

눈에 들어온 것은 낯 익은 얼굴이었다.


“어라?”

“하, 하흐흐하.”


주혁 씨였다.

남주리의 오빠이자, 설한 길드의 B랭크 헌터.

그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발발 떨면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아니, 주혁아. 이거 네 차야?”


지난번에 말을 놓았기에 편히 말을 걸자 그는 황망한 기색으로 말했다.


“제, 제 차 아님다.”

“어?”

“부길드장님 차인데, 제가 운전사 역할로······.”


설한 길드의 부길드장.

하은설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근데 그 사람이 여길 왜 와?’


분명히 지난번에 예약을 거절했는데?

어리둥절한 얼굴로 창문 안을 들여다보니 뒷자리의 상석에 한 명의 여자가 앉아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사진으로 몇 번이고 본 적 있는 얼굴.

설한 길드의 부길드장이며, S랭크 헌터인 하은설이 뒷자리 상석에 앉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하은설이네.’


말했듯 이미 그녀의 예약을 거절했다.

게다가 조금 있으면 기프트박스 엔터의 숙박객들이 우르르 몰려올 시간 아닌가.


‘근데 주혁이랑 같이 온 걸 보면, 설마 아는 얼굴을 데려오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한 건가?’


괘씸하다는 생각에 눈살을 찌푸리던 와중.

뒷자리에 앉은 하은설이 입을 열었다.


“이미 기프트박스 엔터의 황 이사님께 말씀하고 허락받았습니다. 단합대회에 동석해도 되냐고요. 그분이 허락해주셨고요.”

“예? 아, 그렇군요.”


황 이사가 내가 생각하는 그 이사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정석 씨가 ‘이사님’과 통화를 하며 이곳을 단합대회 장소로 정하지 않았던가.


‘하기야 설한 길드와 기프트박스 엔터가 서로 협력하는 사이니만큼 고위층끼리는 알고 지내겠지.’


부길드장, 그리고 이사.

서로 간에 할 말도 많으리라.

아무튼 윗선에서 이미 다 이야기가 된 거라면 나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아무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푹 쉬다 가세요. 그리고 주혁아. 오늘은 차가 많이 올 것 같으니까, 오늘은 주차장에 주차하는 게 좋겠다.”

“네, 넵, 형님.”


주혁이는 아직도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떨고 있었다.


‘나 같아도 저러겠다.’


무려 기본 옵션이 ‘7억’인 차가 아닌가.

보아하니 부길드장 대신 운전해서 온 모양인데, 나였으면 운전하다가 그대로 토했을지도 모른다.


‘실수로 긁기라도 하면 그대로 파산일 테니까.’


어지간한 주택, 아파트 한 채가 도로 위를 쌩쌩 굴러다닌다고 생각해보라!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이야기인가!


아무튼 주차장 이야기가 나오자 뒷자리에 앉아있던 하은설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주혁 씨, 주차하고 올라와.”

“넵! 부길드장님!”


하은설이 차에서 내리자 7억짜리 차가 입구 아래쪽에 있는 주차장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차에서 내린 하은설은 주변을 느긋하게 둘러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좋은 곳이네.”


혼잣말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펜션 칭찬이다.


“감사합니다.”


작게 대답하자 문득 이쪽을 바라본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 아시죠?”

“······예?”


얼마 전에 설화 씨는 ‘저 모르세요?’하고 묻더니 하은설은 당연하다는 듯이 ‘저 아시죠?’란 말인가.

왜 당연하게 아는 게 전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분하게도 정말로 그녀를 알고 있다.

그것도 제법 많이.


“예. 압니다. 설한 길드 부대표님이시죠.”


부대표님, 이라는 말에 하은설이 작게 웃었다.


“역시 아시는군요, 형준 씨.”


그녀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이름을 입에 담자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주혁이한테 내 이름을 물어본 건가?’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다.

하지만 의문인 건, 고작 펜션 사장에 불과한 내 이름을 어째서 그녀가 주혁이한테 물어봤을까.

그 의문에 잠기기도 전에 하은설이 내뱉은 말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태양 길드, 마케팅 매니지먼트 팀의 3팀장······. 이었던가요? 여기서 뵙게 되니 반갑네요, 강 팀장님.”


슬슬 귀에서 떨어져 가려던 귀에 익은 직함.

갑작스럽게 들려온 그 이름을 듣고, 그녀의 기억력이 비상하다는 사실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듣기론 한번 보고 들은 것도 전부 기억한다던가.


‘완전 기억 능력이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있었지만, 그건 실제로 학계에 보고된 사항이 없고······. 그래도 기억력이 아주 좋다, 그건 명백한 사실.’


그렇기에 하은설은 나를 기억하고 있는 걸까.


“······저를 아시는군요.”


하은설은 태연하게 답했다.


“알죠. 태양 길드의 서창연 헌터, 도라희 헌터, 그 이외에도 많은 헌터들의 마케팅과 매니지먼트를 도맡아 하셨던 분이잖아요. 우리 설한 길드에서도 팀장님을 꽤 눈여겨 보고 있었거든요.”


그렇게까지 기억한다고?

약간 소름이 돋았다.

설마 주혁이한테 내 이름을 듣고 따로 조사해본 건가 싶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그때 하은설이 지갑을 꺼내더니 명함 한 장을 꺼내서 나에게 내밀었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태양 길드에서의 일을 그만두신 것 같네요. 생각 있으시다면 연락주세요.”


살다 보니 하은설의 명함도 받아보는구나.

명함을 받아 살펴본 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면 꼭 연락드리도록 하지요. 그리고 죄송한데, 저는 아직 명함이 없어서요.”

“괜찮아요. 펜션 번호가 있으니까요.”

“하하······. 근데 말입니다.”

“네?”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저 영입하려고 오신 건지······?”


그러려고 꾸역꾸역 기프트박스 엔터의 이사에게 연락까지 하면서 찾아온 거 아니냐.

그 물음에 하은설은 여전히 태연히 답했다.


“아뇨. 그냥 뭐 좀 알아볼 겸 온 것뿐이에요. 강 팀장님이 계시는 줄은 전혀 몰랐고요.”

“그렇군요.”


헛다리를 짚었군.


‘그나저나 기억력 진짜 무섭네.’


길드 소속의 유명 헌터도 아니고 일반 사무 직원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무튼 그런 목적이 아니라면 나도 한결 편안히 그녀를 대할 수 있었다.


“그럼 편히 쉬다 가세요. 자랑을 조금 하자면, 우리 펜션이 풍경이 좋아서 푹 쉬다 가기 좋거든요.”


하은설이 작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안 그래도 어제 막 던전 공략이 끝나서 오늘 하루 휴가를 냄 참이거든요. 그간 피로가 꽤 쌓였는데, 잘됐네요.”


그런 거라면 우리 펜션이 또 기가 막히지.

그리고 주차를 마친 모양인지 주혁이가 기가 다 빨린 얼굴로 터덜터덜 다가왔다.


“부길드장님. 여기 키랑 가방이요.”

“아, 고마워요. 주혁 씨.”


하은설에게 키와 핸드백을 넘겨준 주혁이가 이쪽을 보며 말했다.


“휴, 그나저나 형님.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인가? 아직 며칠 안 되지 않았어?”

“그냥 하는 말이죠.”


킬킬 웃은 주혁이가 괜히 펜션 입구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형님, 기박 엔터에서는 언제쯤 온대요?”

“기박 엔터? 아, 기프트박스 엔터? 선발대가 점심 이후쯤 온다고 들었고 본대는 3시 입실 시간은 돼야 도착하지 않으려나.”

“어우, 아직 시간 좀 남았네요.”


주혁이가 배를 슬슬 쓰다듬었다.


“제가 아침을 못 먹고 와서요.”

“어?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휴게소 한번 안 들르고 바로 왔어?”


슬슬 점심시간인데?

그때 주혁이가 나를 바라보면서 하은설이 있는 방향을 슬쩍 눈짓했다.


“하하, 빨리 오고 싶어서 막 달렸죠.”


눈동자 굴러가는 꼴을 보니, 본심은 ‘부길드장이 휴게소 안 들러도 된다고 했거든요!’이리라.

운전자가 하급자일 때 일어나는 슬픈 일이다.


길드네 헌터네 하지만 결국 그것도 조직 사회.

그리고 여기서 이야기가 더 길어지면 훗날의 주혁이만 피곤해질 뿐이다.


“그래? 그럼 뭐 좀 먹어야겠네.”


슬쩍 매점을 눈짓하며 말했다.


“뭐 좀 먹을래?”


이럴 때도 발휘되는 나의 영업혼(營業魂).

다행히 주혁이는 나의 영업질을 눈치 못 챘는지 오히려 반갑다는 듯 말했다.


“좋죠. 컵라면 있죠? 아, 핫바나 삼김은······.”

“핫바나 삼김은 없고.”

“아쉽.”


매차후가 만든 음식은 장기 보관이 용이한 것에 한정되는 모양이다.

다른 것도 만들 수 있는지 딱히 물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나중에 한번 물어볼까.’


아무튼 관리인실에서 열쇠를 꺼내 매점 문을 열고, 주혁이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가득 눈에 들어오는 차후표 음식들.


“어디 보자, 뭐 먹······. 엥?”


주혁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물건들이 다 똑같네요?”

“어어. 그냥 아무거나 고르면 돼.”

“근데 이거 어디 거예요? 처음 보는 것들인데.”

“요 근처 공장에서 내가 따로 발주 넣은 것들이야. 맛은 좋으니까 걱정하진 말고.”

“오오, 그래요?”


주혁이가 괜히 고민하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어차피 컵라면 먹을 거잖아.’


애초에 식사가 될 만한 게 컵라면뿐이다.

결국 주혁이는 컵라면을 집었다.

그런데 세 개나 집었다.


“세 개나 먹게?”


주혁이가 소곤소곤 말했다.


“하나는 부길드장님 드려야죠······.”

“아.”

“이참에 점수 따려고요. 라인 타야죠.”


씩 웃은 남주혁이 컵라면 하나를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하나는 형님 거.”


그러면서 만원을 꺼내는데, 그러고 보니 저번에 소고기에 양주까지 얻어먹었던 게 떠올랐다.


“됐어. 저번에 저녁도 대접받았는데.”

“에이, 괜찮아요. 여기······.”

“에헤이, 넣어둬.”


그런 유치한 실랑이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주혁이가 컵라면을 들고 매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뒤통수에 박히는 시선.


‘음, 역시 칼 같은 녀석.’


선반 구석에 매차후가 웅크린 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기에, 얼른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돈 상자에 넣었다.


-차후후훗!


빵끗 웃는 차후에게 손을 흔들어준 후 매점에서 나오자, 객실 앞의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있는 하은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그녀 앞에는 컵라면이 놓여 있었다.


“주혁이는요?”

“물 끓여 오겠다면서 객실로 들어갔어요.”


거 자식, 엄청나게 빠르네.

점수 따려고 필사적인 모양이었다.

아무튼 주혁이가 나도 먹으라고 놔둔 컵라면이니만큼, 그녀의 맞은편 대각선 자리에 걸터앉았다.


‘옆에 앉으면 친한 척 하는 것 같고, 바로 앞에 앉으면 부담스럽잖아.’


뒤에 합류할 주혁이가 어디에 앉을지는 모르겠다.


‘고생해라, 주혁아. 파이팅.’


원래 자리는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 아닌가.

아무튼 컵라면 뚜껑을 열고 스프를 탈탈 털어 넣는 와중.

꼼짝도 안 하고 자리에 앉아있는 하은설은 어딘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멍때리나보다 싶은 마음에 주혁이 몫의 컵라면도 미리 열어놔야겠다 싶어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예?”

“쉿.”


그녀는 북풍설한처럼 차가운 목소리였다.

또한, 어딘가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지독하리만큼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S랭크 헌터.

그녀는 ‘빙결계’의 스킬 소유자.

차가운 한기를 줄줄 뿌리는 그녀는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뒤돌아보지 말고, 천천히 일어나요.”


느닷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안다.


‘뒤에 뭐가 나타났다?’


갑작스럽지만, S랭크 헌터가 하는 말이다.

허벅지에 쥐가 날 정도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던 와중.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흐~오오옹.


송화 어르신이 맡기고 간 고양이.

강호랑의 울음소리.

흠칫하며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호랑아!’


만약 뒤에 하은설이 경계할 만한 뭔가가 있다면 호랑이도 위험할 터.

하지만 고개를 돌린 내 눈에는 하은설이 경계할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엥?’


오직 호랑이만이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꼬리를 땅에 탁탁 두드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사실은.

호랑이는 하은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은설 역시 호랑이를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분위기 왜 이래?’


결국 중간에 끼인 나만 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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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하은설은 눈을 깔았다 +4 24.09.16 620 33 12쪽
» S랭크 헌터 하은설 +5 24.09.15 683 30 12쪽
15 이 산은 이제 제겁니다 +3 24.09.14 711 29 12쪽
14 설화 씨와 밤 산책을 +5 24.09.13 739 29 12쪽
13 사장님, 주무세요? +6 24.09.12 762 32 15쪽
12 일정은 겹치면 안돼요 +4 24.09.11 798 38 14쪽
11 장설화가 알을 깨고 나왔다 +7 24.09.10 869 37 14쪽
10 고래는 오랜만에 숨을 들이마셨다 +7 24.09.09 897 35 14쪽
9 고래는 숨을 쉬고 싶다 +4 24.09.08 886 37 14쪽
8 물개가 고래를 데리고 왔다 +4 24.09.07 912 36 13쪽
7 물개가 세 마리 +5 24.09.06 937 34 12쪽
6 첫 손님 +5 24.09.05 920 30 12쪽
5 어서오세요 +3 24.09.04 940 31 14쪽
4 앞으로 잘 부탁해 +4 24.09.03 1,026 31 14쪽
3 안 하던 짓을 하게 되네 +4 24.09.02 1,116 30 12쪽
2 매점에 뭐가 있어요 +6 24.09.01 1,298 38 13쪽
1 송화 펜션 +10 24.08.31 1,578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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