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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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휘(消諱)
작품등록일 :
2024.08.3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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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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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다녀오겠소.」


그는 그저 이렇게 알릴 뿐이다.

다른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이 던질 뿐이다.

지금 자신이 하는 말로 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그녀만이 알 일이다.

또한 길지 않은 남자의 말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그녀의 일이다.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리고 앤은 남자의 말에서 어떤 힘을 느꼈는지 그를 더 붙잡지는 않는다.

그녀가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도 했다.

그 진실을 앤이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이미 그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시도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누군가 움직이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시간이기도 했다.

행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것도 없으리라.

남자는 숲으로 빠르게 달려가며 그렇게 되뇌었다.


「뭐, 뭐야?!」


그리고 숲으로 들어갔을 때, 남자는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숨을 고르는 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 습격 때는 꼭 성을 함락시킬 거라고 중얼거리는 자를 찾아냈다.

기습의 적기는 바로 지금.

남자는 도끼를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자의 목에 도끼를 대고 묻는다.


「두목은 어디 있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필멸자는 멍하니 그를 쳐다볼 뿐이다.

예상치 못한 자의 등장에 허를 찔린 표정이었다.

남자는 그 얼굴을 보곤 혀를 차며 무법자를 두동강냈다.


「시간만 버렸군.」


허비할 시간은 없다.

그가 상대해야 할 적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남자가 아직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 누구도 혼자서 수많은 적을 상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

그는 그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네 놈은 또 뭐야?!」


그러나 남자는 그 운이 따라주지 않아 목숨을 잃는 자들을 여럿 보았다.

그조차도 몇 번이나 그 때문에 죽을 뻔했다.

몇 번이나 죽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 살아있다.

그것이 행운인지는 알 수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 그와 무기를 맞댄 자들에게 묻고 있다.


「두목은 어디 있나?」


남자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지 않는다.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바랄 만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운 좋게 그가 원하는 답을 한다면 살려 보낼 의향도 있다.

단순해야 한다.

순순히 불 것인가, 의미 없는 삶을 이대로 끝낼 것인가.

남자는 주사위 놀이를 하는 자처럼 무법자들에게 묻는다.


「두목은 어디 있나?」


짧은 물음 뒤에 내리찍는 도끼는 집행자의 것.

묻는 말에 곧이곧대로 답하면 될 것을, 상대는 바보같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쓰러지기만 하고 있다.

아는 것은 힘이요, 모르는 것은 죄악이라.

죄를 지은 자는 죽어야 한다.

죽어 토양의 양분이 되어야 한다.

대지가 그들을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네놈은, 사신인가...?」


몇 번의 죽음 끝에 누군가가 잘 내쉬어지지 않는 목소리로 묻는다.

남자는 대답 대신 도끼로 다시 한 번 희생자를 내려쳤다.

절명할 자는 절명한 자가 되어 고꾸라진다.

그와 함께 어디선가에서 적이 무리 지어 나타나고 있다.

그 어딘가를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지금으로선 높은 자가 아니고선 알 수 없다.


「멍청한 놈.」


남자는 그 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정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높음을 인정하지 않고 흙바닥에 처박으려고 하는 자다.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었던 존재를 폭로하려고 하는 자다.

그러면서도 자기 삶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자다.

그렇기에 남자는 지금 학살자이자 집행자의 모습으로 숲을 누비고 있다.

걱정 담긴 시선을 받았던 모습은 훌훌 벗어 던지고, 당연하다는 듯이 죽음과 삶을 저울질하고 있다.

그 정도는 한낱 인간인 그라도 할 수 있다는 듯이 눈을 감는다.


「사, 살려줘...」


압도적인 힘을 가진 자에게 무력한 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남자는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강한 자다.

외롭고 슬픈 사람이지만, 지금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고대의 늑대보다도 외로우면서도 강한 존재.

그는 바로 그런 존재다.

그런 존재이기에 여기까지 왔다.

이렇게 괴물이 되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대도 살린 적 없잖은가.」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

열 명을 죽이면 미치광이.

백 명을 죽이면 학살자.

그리고 남자는 이미 천 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

숭고한 목적과 뜻을 가지고 해 나갔다.

그렇기에 그가 용사라고 불리는 것일 거다.

지금은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지만, 여기 자신이 있다고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자.

그가 바로 용사다.


「개 같은 놈...!」


「개만도 못한 자군.」


모욕당해야 마땅한 자에겐 모욕을 주는 일.

억눌리고 핍박받는 자에겐 자유를 되찾아 주는 일.

그것이 용사가 해야 할 일이다.

고난이 가득한 가시밭길이지만, 그렇기에 용사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 누구에게도 호의를 바라지 않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용사라는 사람은 그렇게 외롭고 고달픈 존재다.

그렇기에 그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죄를 용서하고 악에서 구할 존재가 필요하다.

가시관을 쓴 자의 머리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할 한 줄기 빛이 필요하다.


「역겨운 인간 같으니.」


하지만 그에겐 그런 사람이 없다.

지켜주어야 할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몇 번이고 희망을 찾고 잃기를 반복할 뿐이다.

마지막 희망마저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자가 있을 뿐이다.

용사라는 것은 이렇게나 슬픈 운명이었나 보다.

어째서 남자는 이 저주받은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걸까.

그 답은 어쩌면 평생동안 찾지 못할 지도 모를 일이다.


「녀석을 포위해!」


「둘러싸서 족쳐!」


감상에 젖은 생각을 할 시간은 없다.

남자는 지금 홀로 무법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금방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은 대어처럼 서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잡아먹히지 않을 것을 안다.

남자 자신이 그들을 잡아먹는다면 모를까.


「그래도 좀 많군.」


남자는 낮게 중얼거리며 커다란 도끼를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그가 무법자들에게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새 구름처럼 모여드는 적들을 손쉽게 이겨내리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백중세의 싸움.

그리고 용사였던 자는 상대가 걸어온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가 지금까지도 용사로서 서 있는 것일 거다.

언젠가 다리가 부러져 설 수 없게 되더라도 목만은 마지막까지 꼿꼿이 서 있겠지.


「미친 놈...」


그리고 이 모습은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과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일 거다.

수많은 적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올 테면 오라는 듯이 자세를 잡는 그의 모습이 광기로 보일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 그는 미친 것도 아니고, 과욕을 부리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것 뿐이다.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서 있을 뿐이다.

태어나는 것조차 그가 선택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죽여!」


그런 남자를 향해 수많은 적들이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든다.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그를 공격한다.

남자는 눈먼 무기들을 향해 자신의 도끼를 휘둘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힘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끄아악!」


거칠면서도 날카로운 도끼질에 장작이 쪼개듯이 적이 쓰러진다.

그러나 한 번의 도끼질로 쓰러트릴 수 있는 상대는 잘해야 서넛 뿐.

열 명이 넘는 적의 칼질을 모두 막아낼 수는 없었던 남자는 대신 몸을 피하며 다시 한 번 도끼를 휘두른다.

죽지 않기 위해, 희망을 이어 나가기 위해 공격한다.

운명에 대고 삿대질하며 발악했던 것처럼 치열하게 맞선다.


「상대는 한 놈이야! 둘러싸서 족쳐!」


「죽여! 죽여서 신수님께 제물로 바쳐!」


제물.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살짝 지어 보인다.

아무래도 단순한 무법자는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물러날 수 없다.

그것이 자신의 운명일지라도 순순히 목숨을 내어줄 생각은 없다.

남자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남아 마지막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아, 크리스틴.

남자에게 이것마저 빼앗는다면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는데.」


살아야 한다.

살지 않으면 모든 가정이 의미가 없다.

살아야 한다.

살지 않으면 그녀를 다시 볼 수 없다.

살아야 한다.

이놈들을 죽이고 살아 돌아가야 한다.


「금방 돌아가마.」


크리스틴에게 약속했다.

그 약속은 지켜져야 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도끼를 들고 한 발짝 앞으로 나선다.

앞으로 나서서 다시 한 번 휘두른다.

그 어떤 후회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휘두른다.

막는 자는 몇 번이고 베어내겠다는 듯이 생명을 도끼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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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4 24.09.14 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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