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앤젤 (The Last An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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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p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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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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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죄를 먹는 자> 1화

DUMMY

“자네 방금 그 소리 들었는가?”




“들었고 말고.

내 그런 천둥 소리는 생전 처음 들어보네.

누군가 분명 심히 고통받고 있는 게야”




악마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비명과 같은 벼락이 내려 친 곳으로 향했다.


그들의 체형과 이목구비는 다양했으나 하나같이 새하얗고 창백한 피부에 검게 물든 눈두덩이를 갖고 있었다. 그들의 외적 공통점은 마치 죄수복의 한 종류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부분이 넝마를 걸치거나 드문드문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옷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입은 악마는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족쇄를 차고 있었다. 족쇄에 연결된 추의 크기는 각양각색이었다. 작고 가벼운 추를 지닌 악마들은 발을 질질 끌며 움직이는 한편, 무겁고 큰 추를 지닌 악마들은 두 팔로 추를 들어 올리거나 어깨에 이고는 힘겹게 움직였다.




“그런데 이 쪽은··· 다마네 오두막이 있는 곳 아닌가?”




커다란 오크통 크기의 추를 목뒤에 이고 땀을 뻘뻘 흘리던 악마 하나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는 나이든 악마 하나가 수박 크기의 추를 땅에 쿵 내려놓았다. 그는 두 손을 탈탈 털고는 손차양하며 아주 먼 곳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오른쪽으로는··· 플레제톤 강이 흐르고··· 왼쪽에는··· 갈까마귀 나무··· 큰 가지 여섯 개에··· 앙상한 가지는··· 여섯 개··· 옹이 구멍도··· 여섯 개···”




“어떻소? 다마네 맞는 것 같아?”




큰 추를 이고 있던 악마는 추를 땅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는 자신이 내려 놓은 추 앞에 털썩 앉았다.




“잠깐 기다려 봐!

어거스트, 자네는 그 급한 성미가 문제라고···”




“노인네가 이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구만···”




어거스트는 못마땅해하며 자신의 추에 몸을 기댔다.




“어디 보자, 오두막이··· 오두막이···”




늙은 악마는 미간을 한 것 찌푸리며 두리번거렸다.




“오두막이 없네?”




휴식을 취하던 어거스트는 벌떡 일어나 늙은 악마가 본 곳을 똑같이 살폈다.




“확실한 거요?

저쪽 방향이 맞냐고!”




“맞아.

확실하다고.

옆에 강도 있고, 나뭇가지 개수에 옹이 구멍 개수까지 내가 확인 했어”




늙은 악마는 허리를 굽혀 추를 다시 들어올렸다.




“이런···”




어거스트는 서둘러 자신의 커다란 추를 들어올리며 주변에 소리쳤다.




“어이! 다마네 오두막이 사라졌다!

서두르자고!”




그의 말을 들은 다른 악마들은 흠칫했다. 원래 걷고 있던 악마들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고, 휴식을 취하던 악마들은 다시 각자의 추를 들고 서둘러 이동하기 시작했다.






-






“다마!”




땅바닥에 오두막의 잔해가 보이기 시작하자 악마들은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다마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찾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잔해를 툭툭 차며 혹여 쓸 만한 것이 없나 뒤지는 악마들도 있었다. 지옥에서는 모든 자원들이 귀했다.




“하필 벼락이 오두막에 떨어졌나보군···”




어거스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껄껄,

사지가 다 터져서 죽어버린 건 아닌가 모르겠다!”




늙은 악마가 뒤에서 느긋하게 발을 질질 끌며 웃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농담을 던졌다.




“그것만큼 축복해줄 만한 일도 없을 거요.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거스트는 의외로 늙은 악마의 농담에 피식 웃으며 반응했다. 죽어서 더 이상 고통 받지 않는 것은 지옥에 떨어진 악마들 대부분의 소망이었다. ⎯⎯물론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지만




“그나저나, 아이는 어떨 것 같소?

태어나기도 전에 어미 뱃속에서 벼락부터 맞다니.

지옥의 환영식 한 번 호되게 당하는구먼”




“아이는 괜찮을 걸세.

우리네 몸은 강철만큼 튼튼하지 않은가.

아니지···

강철보다···

그 뭐냐···

음, 뭐 아무튼 간에”




늙은 악마는 별 관심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몇몇 악마들처럼 쓸 만한 파편들을 손으로 쓸어보고 있었다.


어거스트는 웃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그의 피부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의 본능이 그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가 현재 느끼는 기분들은, 이들이 사는 지옥에서는 흔히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거스트는 자신을 거슬리게 하는 그 감정들 때문에 혼자서 고민하다가 이윽고 그의 추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무 영감님, 영감님도 뭔가 변한 게 느껴지십니까?”




어거스트는 다마 찾는 것을 잠시 다른 이들에게 맡겨 두고 아무에게 물었다. 건방진 그의 태도는 어디로인가 사라지고 진중하고 예의 바르게 바뀌었다.




“···”




아무는 아무 말 없이 쪼그려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땅바닥을 훑었다. 어거스트가 바라보는 아무의 뒷모습, 깡마르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그의 가죽위로 볼록 튀어나온 경추가 도드라져 보였다.


어거스트가 괜한 걸 기대했다는 눈치로 자신의 업보⎯⎯악마들은 그들의 추를 업보라고 불렀다⎯⎯를 들어 다시 나아가려고 할 때, 아무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과 손짓은 여전히 땅바닥에 있었다.




“무언가 변했지···

많이 변했어···”




어거스트는 아무의 말에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그 녀석이 아이를 밴 후로 말이네···”




순간 아무의 말을 들은 어거스트의 눈빛이 흔들렸다.




“사랑에 빠진 악마들은 숱하게 많아.

악마 열 명이 있다 치면 스무 명은 사랑을 하고 있을 걸세.

자네도 알겠지만, 침대를 달구는 것만큼 지옥의 고통을 잊기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지.

그래 봤자 아주 미세한 진통제 역할밖에 못할 테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거라도 어디인가?

목 마른 자에게는 썪은 물도 맑은 물로 느껴지는 것처럼···

그 비틀어진 사랑이 우리의 고통을 해소해 주는 것 아니겠는가?“




아무는 손을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여하튼 말일세···”




아무는 몸을 돌려 천천히 어거스트에게 걸어왔다. 어거스트 앞에 선 그는 구부정한 목을 완전히 펴지는 못하고 턱을 살짝 들어 어거스트의 눈을 지긋이 바라봤다.




“사랑에 빠진 그 어떤 악마도 그들의 후손을 가진 적은 없었네.

나도, 나보다 지옥에 먼저 떨어진 이들도, 그리고 그보다 더 먼저 이곳에서 살던 이들도.

그 누구도 악마가 악마를 잉태한 것을 본적이 없네”




아무의 동공이 확신으로 가득 찬 눈으로 변하며 한 치의 흔들림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리브의 배가 불러오면서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게야.

자네도 나도.

모든 도망자들을 말일세

그리고 우리를 벌하는 이 지옥도···

세계의 섭리에 균열이 생긴 것이지.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어떤 운명의 소용돌이에⎯⎯혁명, 혁신··· 그런 근사한 이름을 한 것들 있지 않은가?⎯⎯연루되고 만 것이야.

그리고 늘 그래왔듯··· 우리에게는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할 걸세.

우리에게는 그 소용돌이 몸을 맡기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아무의 관점은 어거스트에게 혼란감만을 남겼다. 어거스트가 경험했던 미묘한 변화는 훨씬 단순하고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처럼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거스트는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 어거스트를 보고 아무는 싱겁게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다들 지금 어디 가고 있지?”




아무의 눈은 어느새 다시 노망난 노인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방금까지 장중했던 그의 눈빛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아무는 대화를 끝내고 다시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하던 일을 계속했다.




“후··· 망할 노인네 같으니라고”




대화에 사뭇 진지하게 임했던 어거스트는 자조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어거스트를 뒤로하고 아무는 계속 헛소리를 내질렀다. 어거스트가 추를 다시 어깨에 지는 중에 멀리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다마를 찾은 것 같다!”




어거스트는 다마의 이름을 듣자마자 그 소리가 난 방향으로 재빠르게 달려갔다. 그의 추는 다른 악마들에 비해 꽤 크고 무거운 편이었다. 그러나 다마를 찾았다는 소식은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어거스트의 발바닥은 거칠고 뜨거운 지옥의 지면과 빠르게 마찰했다. 텁텁한 흙먼지가 일고 그의 발에 생긴 상처들이 뿜어낸 고운 피는 옅은 피안개를 형성했다.












“다마가···

맞는 거지···?”




어거스트가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무리를 지어 술렁거리는 악마들의 혼란스러운 뒷모습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다마와 리브,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의 안녕을 확인하고 싶었던 어거스트는 길을 막는 악마들을 제치고 선두로 나아갔다.




“어거스트가 왔다···”




어거스트를 알아챈 몇몇 악마들은 속닥거리며 그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건···”




무리의 가장 앞열까지 뚫고 나온 어거스트의 눈 앞에는 핏자국이 낭자한 족쇄와 추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어거스트는 그 족쇄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다마의 업보가 분명해···”




오랜 친구의 족쇄를 본 어거스트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똑똑한 녀석이 굳이 이런 일을 했을 리가···”




어떤 악마들은 업보의 영원한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자기 자신의 발목을 잘라내기도 했다. 후에 다시 자세히 기술하겠지만, 그 행위는 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은 악마들이 고안해낸 ‘지옥 탈출론’의 첫 번째 단계였다. ⎯⎯물론 이 방법이 성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거스트는 다마처럼 현명한 자가 그런 무식한 탈출론을 믿고 무모하게 자신의 다리를 잘라냈을 리 없다고 믿었다.


어거스트가 다마의 족쇄를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할 때, 옆에 있던 다른 악마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앞쪽을 가리켰다. 어거스트는 자신의 어깨를 건드린 악마를 한 번 흘겨보고는 그의 손 끝이 향한 곳을 보았다.


악마의 손이 가리킨 곳에는 한 소년이 발가벗고 서있었다. 처음 보는 소년은 그들과 같은 외형을 하고 있었다. 소년의 손에는 누군가의 팔 한 쪽이 들려 있었다.




“다마···”




소년이 들고 있던 팔의 약지에는 투박한 검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어거스트는 그것이 다마의 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년은 들고 있던 팔을 악마들 보란 듯이 번쩍 들고는 천천히 뜯어 삼키기 시작했다. 전완부터 천천히. 팔은 점점 짧아지며 단숨에 손목만이 남았다.


악마들과 어거스트는 처음 보는 광경에 어안이 벙벙했다. 악마가 악마를 먹는 것은 그들 사이에 굉장히 비인륜적⎯⎯악마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나름의 도덕적 관념 따위가 존재했다⎯⎯인 행위였다. 물론 다른 악마를 먹는 자가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긴 했지만 그것은 마치 말 안 듣는 아이를 겁주기 위한 오래된 전설 같은 것에 가까웠다. 낯선 광경은 그들을 공포에 빠지게 만들었다.




“저 녀석··· 지금 동족을 먹는 건가···?”




뒤늦게 구경거리를 찾은 악마들은 아직 그 공포감에 장악되지 않아서 서로 중얼대며 상황을 설명했다.


어거스트는⎯⎯물론 다른 악마들도 마찬가지였다⎯⎯무엇을 해야 할지 작은 실마리 조차 잡을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현상의 대척점에 서있는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확고한, 소멸되지 않는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던 한편, 최근에 계속 느끼고 있던 희미하고 추상적인 불안감이 그 믿음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거스트는 소년을 막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그가 다마의 팔을 먹어 치우는 것을 보기만 했다.



꿀꺽.



소년이 마지막 한 조각까지 삼키는 소리가 잠시 정적을 깼다. 그리고 다시 정적이 이어졌다.



우드득



소년의 몸이 가동범위를 벗어나 이리저리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던 악마들은 모두 흠칫했지만 그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악마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흘렀다. 그들은 숨죽여 미지의 대상이 변신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끄아악⎯



뼈와 근육이 마구 혼합되고 분리되는 와중에, 알 수 없는 영혼들의 잔상이 비명을 지르며 빠르게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반복했다. 그 영혼들의 모습이 마치 연기 같기도, 수증기 같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숨죽여 지켜보던 악마들 사이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마침내 변신을 마쳤는지 그것의 주변을 감싸던 기현상은 사라졌고, 그것은 어느새 번듯한 청년이 되어 악마들 앞에 서있었다.




“지금 이게 무슨···”




악마들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동족의 고기를 취하는 모습과 그 이후 그것이 순식간에 성장⎯⎯악마들의 눈에는 진화에 가까워 보이는 모습이었다⎯⎯하는 것 까지.




“괴물이야···”




악마들은 굉장히 혼란스러워했다.



치이익⎯



그때, 다마의 족쇄와 그에 연결된 추로부터 타는 소리가 나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쩍쩍 갈라지다가 점점 곱고 검은 가루가 되더니 하늘로 흩어져 날아갔다. 다마의 족쇄가 있던 곳에는 그 검은 가루의 잔해만 조금 남게 되었다.


족쇄가 가루가 되어 날아가는 것을 본 악마들은 아무 말 없이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를 보았다. 분명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족쇄의 소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죽음이다··· 완전한 소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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