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앤젤 (The Last An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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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p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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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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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그 협정이 이제 깨질 때가 온 것일 지도 모르죠.

우리 의지와는 다르게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께 선택권은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헤르멜의 말을 들은 포비의 동공이 흔들렸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고통 안에서의 위태로운 평화를 유지하는 것?

아니면 이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의 땅으로 가는 것?”




포비는 깊은 내적 갈등의 늪에 빠졌다.








쿵⎯



쿵⎯



쿵⎯



포비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는 길에도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평화를 위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쌓은 질서를, 이제는 평화를 위해 다시 자신의 손으로 파괴해야 한다는 것에 그는 괴리를 느꼈다.


생각에 잠긴 그의 옆에는 동상처럼 딱딱히 굳어 있는 카인이 서 있었다.




“카인,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나?”




카인은 포비의 물음에 답이 없었다. 정확히는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래···

자네를 가르칠 부모가 없으니 그 역할을 내가 해야 하겠지.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자네를 묶어 둘 수도 없고 말이야”




포비는 한 숨을 푹 내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뿌옇고 검붉은 증기 뒤로 가려져 있던 포비의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은 돔의 형태였는데 멀리서 봤을 때도 그 거대함을 숨길 수 없어 위압감을 주었다. 포비의 추 크기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납득될만한 크기였다. 성벽은 잿빛 돌을 깔끔하고 규칙적으로 쌓아 지어져 있었다.


그때 성 앞의 어수선한 인파⎯⎯스무 명에서 서른 명 정도 되어 보였다⎯⎯가 포비의 눈에 들어왔다. 포비는 의문을 품으며 그들을 살펴 보았다. 그의 성에 손님이 찾아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었다. 특히 무리 지어 오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웅성웅성



마침내 성 앞에 도착하자 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멈추거라⎯”




포비의 명령에 추를 운반하던 그의 노예들이 일제히 멈추고 추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쿵⎯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매캐한 연기와 함께 불송이가 한 차례 일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여기까지 찾아왔는가⎯”




포비는 추의 꼭대기에 서서 무리를 향해 외쳤다. 그랬기 때문에 아래에 있던 악마들에게는 그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포비의 말에 그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말하기를 망설였다.




“내가 물었다!⎯”




한층 커진 포비의 목소리에 악마들은 화들짝 놀랐다. 그들 중 하나가 이마를 땅에 박고 절을 하며 말했다.




“포비님!

송구스럽게도 저희 모두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저희 이야기를 한 번만 들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두려움에 덜덜 떨리던 그의 말이 끝나자 그와 함께 온 주변의 다른 악마들도 하나둘씩 재빠르게 절을 하기 시작했다.


포비의 의문은 더욱 깊어졌다. 평소에 자신에게 말 조차 걸지 못하는 자들이 부탁이라니.




“무슨 일인지 말해 보게⎯”




얼굴을 땅에 처 박은 악마는 거의 우는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포비님, 저희는 모두 보았습니다.

다마가 그의 아들, 카인이라는 자에 의해 완전한 소멸을 얻게 된 모습을 말입니다”




"그래, 나도 보았지. 그래서?”




그 악마는 좀처럼 말을 꺼내기 어려워 했다. 그가 계속 입을 열지 못하고 있자 옆의 다른 악마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저희도 안식을 얻고 싶습니다!”




한 명이 물꼬를 트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 고통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습니다!”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살아 고통 받는 것보다 사라져 버리는 게 낫습니다!”




악마 무리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며 뒤섞여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조용⎯”




악마들의 몸이 일제히 굳으며 하던 말을 멈추었고 순식간에 고요가 흘러들었다.


포비는 그들을 보며 물었다. 그의 표정은 사뭇 심각해 보였다.




“자네들은··· 아까 내가 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나?

우리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함께 나아 갈 것일세.

우리에게 오늘 그 자유를 향해 갈 운명의 창이 주어진 것이고.

자네들은 전혀 걱정할 것이 없네.

눈앞에 놓인 고통말고 더 멀리 보도록 하게.

우리는 함께 엘리시움으로 갈 것이야”




포비는 단언했다. 잠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고요를 깨고 한 악마가 입을 열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목소리는 포비에 대한 두려움으로 매우 위축되고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포비님, 여기 모인 자들은 모두 엘리시움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는 자들입니다”




포비는 그에 반박하려 입을 뗐다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 말을 꺼낸 악마는 포비가 별말이 없자,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엘리시움을··· 포비님께서는 직접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문 너머에 그 곳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십니까···?

포비님께서도 그저 듣기만 하신 것 아닙니까?

그것도 자신이 천사라고 주장하는 그 미치광이 헤르멜한테서요!”




그 악마는 울분을 토했다.


포비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포비는 모든 악마들이 자신과 같이 엘리시움을 갈구한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포비님, 저희는 당장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언제가 될 지도 모르는 해방을,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해방을 기다리기에 저희는 너무 나약합니다.

부디 저희를 소멸시켜 구원해주십시오!⎯”




다시 적막이 흘렀다.


포비는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의 앞에 엎드려 있는 악마들의 족쇄를 하나씩 훑어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보잘것없는 추를 지니고 있었다. 포비는 어떻게 그들을 설득하면 좋을 것인지 생각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도 않았을뿐더러 이내 그것이 아무 소용 없는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래.

이 자리에 모인 자네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나?”




“네, 그렇습니다”




악마들은 망설임 없이 일제히 말했다.




“그래··· 자네들의 뜻은 알겠네”




포비는 다짐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 두게.

카인은 예리한 단두대가 아니라는 것을.

자네들은 구원 받을 것일세.

하지만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이야”




“마음의 준비는 이미 되어 있습니다.

안식을 얻을 수만 있다면···”




“좋네···”




포비는 눈을 질끈 감고 카인에게 무언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러자 카인은 포비의 추에서 높이 도약하여 절하고 있는 악마들 앞에 착지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한 걸음 씩 다가갔다.


고개를 숙인 채 절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악마들은 카인이 점점 그들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스스로 내린 선택이었지만, 그들의 몸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고 떨고 있었다.




“포비님⎯

감사합니다!”




포비를 설득한 악마가 외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카인은 악마들에게 점점 가까워졌다.








으적으적


악마 무리는 카인에 의해 사라지고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검은 피가 낭자했다. 이제 구원을 기다리는 악마는 단 둘이었다. 카인의 품에 피 흘리며 안겨 있는 자 하나와 그것을 지켜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자 하나.




“크윽···”




카인의 품에 안겨 자신의 창자를 내어주던 여인은 고통스러워 했다. 그러나 눈물 흘리던 그녀는 행복하고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꿀꺽⎯




마침내 카인은 그녀의 남은 부위를 다 해치웠다. 카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마지막 남은 악마를 향해 걸음을 뗐다.


난생처음 동지들의 연쇄적인 죽음을 목격한 그는 공포에 삼켜졌다. 그는 마치 도살장에 혼자 남겨진 돼지처럼 보였다.




“으아악⎯!”




그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재빨리 도망갔다. 그러나 몇 걸음 떼지 못하고 자신을 구속하는 추의 무게에 당겨져 넘어졌다.


그를 놓칠세라 카인은 얼른 쫓았다.




“그만⎯”




포비가 말로 카인을 저지했다. 악마를 쫓던 카인이 돌처럼 굳었다.


겁에 질린 악마는 어리둥절해 상황을 살피었다. 그는 포비의 높은 추 위를 올려다 보며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포비의 검은 실루엣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왠지 그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 했다.


그 악마는 허둥지둥하며 자신의 하찮은 추를 냉큼 집어 그대로 줄행랑쳤다. 그는 도망가는 동안에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흠···”




점점 멀어져가는 악마의 모습을 보며 포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포비는 악마들의 무리가 있었던 자리를 말 없이 내려다 보았다.


그들이 남긴 검은 피의 웅덩이 한 가운데, 카인이 서 있었다.


카인은 머리를 살짝 움켜쥐더니 고통스러워 하는 듯 보였다. 그의 머리 위로 여러 영혼의 형상들이 함께 울부짖었다. 선명했던 그것들은 점차 흐린 영혼처럼 공중으로 흩어져 사라졌고, 카인의 각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짧게 더 자라 있었다.


카인은 고통에 어느정도 익숙해졌는지, 이전처럼 지친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포비는 카인이 변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대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대들은 우리의 자유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것이 되었군”




포비는 말을 멈추고 잠시 그들을 애도하는 듯 했다. 그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미안하네, 더 깊은 믿음을 주지 못해서"




포비는 카인을 향해 말했다.




“카인이여⎯

자네는··· 자네 앞에 서 있던 자들의 죄를 삼키고 증오를 키우고 있다.

그러나 그 증오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지.

나에게는 그 증오가 우리 동지들을 향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어.

그리고 꿈이 있지.

그러기 위해서 자네의 머리 속에 우리의 규칙들을 단단히 새길 필요가 있겠네.

원래는 내 힘으로 자네를 통제하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내 오만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어.

물론 원래라면 이것은 자네의 부모가 했어야 할 일이지.

살아 있었다면 말이야.

허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기에 그 역할은 내가 맡아야겠네”




포비는 보다 엄숙히 말했다.




“한 마리의 들짐승 같은 카인이여.

너를 길들이기 위해서 그 어떤 죄악도 망설이지 않겠다.

너를 무엇이든 꿰뚫는 날카로운 창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




포비는 카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그 입으로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라!”




카인의 피로 얼룩진 입이 떨리기 시작하며 천천히 열렸다. 마치 무언가 억지로 그의 턱을 잡고 벌리려는 듯 보였다.


마침내 그는 느릿하고 어눌하게 그의 인생 첫 마디를 내뱉었다.




“아···버지···”




포비는 카인의 모습에 흡족해 하며 혼자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삼켜지기 전에 말이지···”








끄아아악⎯



지옥의 남서쪽 지역⎯헬본하임. 악마들 간에 피 튀기는 전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포비 휘하의 유토프리움 악마들은 헬본하임의 악마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있었다. 전투에 임하는 악마들은 제각각 자신의 추를 무기로 삼거나 기괴한 형상의 둔기를 손에 집고 휘둘렀다.


곳곳에서 피와 함께 비명이 흩뿌려졌다.




“적들을 제압하라!

우리들의 자유를 위해서!⎯”




유토프리움의 지배자인 포비는 진영의 최후방에서 병력을 향해 소리쳤다. 높은 추 위에서 울려 퍼진 그의 목소리는 모든 병력의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기습을 당한 헬본하임의 악마들은 갑작스런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자···

이제 네 역할을 할 때다”




포비가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포비의 추가 만들어 낸 검은 그림자에서 어떤 형체가 천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 아버지”




그는 검은 그림자 안에서 조용히 대답하고는 전장을 향해 도약했다. 그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그의 모습이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그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그가 적군의 앞에 도달했을 때였다. 그는 오른손을 날카롭게 세워 적의 심장을 꿰뚫었다.


일순간 정적이 흐르고 그의 화려한 등장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정적을 놓치지 않고 포비는 외쳤다.




“적들을 제압하여 카인에게 주어라!

적군의 살점을 먹은 카인은 더욱 단단한 창이 될 것이다!

적들을 꿰뚫는 자유의 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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